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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동조합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레이들로 보고서' 전문이 새롭게 번역 출간됐다. 이 보고서의 실제 제목은 '서기 2000년의 협동조합'(Co-operatives in the year 2000)이다. 협동조합 관련 서적이나 자료에서 종종 언급됐으나, 이미 절판되어 전문을 접하기 힘들었는데 이렇게 보게 되니 반갑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레이들로 보고서'는 21세기 협동조합에 대한 전망을 담고 있다. 작성 시점은 1980년이다. 국제협동조합연맹(ICA)은 1978년 코펜하겐에서 열린 ICA 중앙위원회에서 21세기 협동조합 발전 방안을 연구해야 할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고, 그 연구작업을 A.F.레이들로 박사에게 요청한다. 레이들로는 1980년이라는 시점에서 협동조합의 역사를 개괄하고 다가올 21세기 협동조합운동이 직면한 도전과 극복 과제를 정리했다.

35년 전에 예견한 21세기 협동조합의 미래

레이들로 보고서
▲ <21세기의 협동조합> 표지 레이들로 보고서
ⓒ 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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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보고서는 35년 전에 작성됐지만 2015년인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통찰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협동조합운동의 '교과서'라 할 만하다. 1980년 당시 ICA 중앙위원회는 향후 20년 동안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변화의 결과 20세기 말에는 어떤 조건 아래서 협동조합 조직이 운영되고 있을지 다양한 의견과 전망을 정리해 연구하기로 결정한다.

신자유주의 확산과 다국적 기업의 성장이라는 세계 경제의 변화 속에서 세계 협동조합 관계자들은 위기의식을 가졌다. 협동조합 시스템이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현대에 적응하지 못하고 다국적 기업의 세력에 대항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도 작용했다. 그들은 등장 이후 200년동안 일궈온 협동조합의 내구력과 추진력을 앞으로도 유지하기 위해서는 협동조합의 근본적 변화와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했다.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사람들은 항구에 오래 정박해 있다가 밧줄이 풀려 불확실성의 바다로 떠내려가는 배에 타고 있다고 느낀다. 지금은 문명을 지탱하는 기둥이 흔들리는 시대다. 인류는 단순히 과거를 답습하며 나아가지 않고, 오히려 새로운 방향으로 힘차게 나아갈 수 있는 다른 길을 모색할 것이다. 지금과 같이 중대한 시기에, 다소 미쳐 돌아가는 세상에서 협동조합은 '온전한 정신이 모이는 장소'(islands of sanity)가 되도록 노력해야만 한다.(40~41쪽)

보고서는 21세기를 앞둔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협동조합 지도자들은 판단을 해야 하고 가장 좋은 방법을 찾아야 한다며 근본적으로 필요하고 우선시해야 할 네 가지 영역의 선택에 집중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즉, 식량, 고용, 소비재 유통, 지역사회 환경 분야다.

모든 종류의 협동조합 조직은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를 연결하는 역할을 주도적으로 수행해야 한다. 도시가 확장하면서 잠식되는 농지를 보호하고 장기적인 식량공급계획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다루는 포괄적인 식량정책을 개발해야 한다. 보고서는 전 세계의 관점에서 2000년에 협동조합이 인류에게 기여할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일은 식량 분야에서 세계의 기아를 극복하는 일이 될 것(177쪽)이라고 예견한다.

전 세계 협동조합운동이 21세기 새로운 사회질서를 위해 식량 다음으로 할 수 있는 가장 큰 기여는 다양한 종류의 노동자 생산협동조합에서 양질의 고용을 만드는 것이다(178쪽). 보고서는 노동자협동조합이 발전한다면 노동이 자본을 고용하는 것으로 그들이 새로운 산업혁명을 이끌어낼 것이라고 내다본다. 또한 소비자협동조합은 윤리적 소비를 통해 절약과 검소를 강조해 후기산업소비사회의 거품과 낭비를 버리게 해야 한다.

협동조합의 큰 목표는 수많은 지역사회를 건설하고 마을을 만드는 것이다. 많은 경제적, 사회적 필요도 충족하고 지역사회도 창조하는 병용 효과를 낼 수 있는 협동조합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 모든 협동조합은 지역 사람들이 지역 내부로 눈을 돌려 자신들의 자원을 발견하고 필요한 서비스를 시작할 수 있도록 할 수 있다. 주택, 저축과 신용, 보육, 의료, 식품, 주간보호 등 되도록 넓은 범위의 경제, 사회 서비스를 아우르는 협동조합 복합체를 구상해야 한다.

미래에 예상되는 협동조합 (Implications of the Future) - 135쪽

1. 협동조합운동은 통해 협동조합의 본질적인 개념, 사상, 도덕적 요구를 분명히 하고 알리는 일은 협동조합운동에서 중요하며,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다.
2. 협동조합의 원칙은 운영 규칙보다 기본적인 수칙에 대한 진술로 구성할 필요가 있고, 모든 유형의 협동조합에 적용되는, 더 이상 줄일 수 없는 최소 조항에 담아야 한다.
3. 미래에는 특히 지역사회 단계에서 다목적 협동조합 유형에 중점을 두면서 다양한 규모의 다양한 협동조합이 요청될 것이다.
4. 협동조합의 민주적 성격은 협동조합 시스템의 모든 단계와 모든 측면에서 보장돼야 한다.
5. 경제적으로 효율적이면서 사회적으로도 영향력이 있는 협동조합이야말로 새로운 시대에 가장 매력적인 협동조합일 것이다.
6. 협동조합과 국가 간의 상호작용은 가까운 장래에 크게 늘어나고 강화될 것이다.
7. 미래에 협동조합 시스템의 발전은 각국의 경제 부문에 화합하는 부문을 만들어 넣어야 보장할 수 있을 것이다.
8. 미래에 세계 협동조합운동에서는 다양한 사상을 허용해야 한다.

한국의 협동조합은 '트리플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

보고서는 "기업이 무시무시한 권력을 갖고 있는 시대다. 이 시대에 수많은 사람이 법인권을 누리고, 나아가 서로에게 희생을 강요하지 않고 그렇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협동조합 방식"(221쪽)이라고 확신한다. 이러한 자신감은 어느 정도 검증이 되었다. 세계 금융위기 속에서 수많은 기업들이 도산하고 노동자들이 해고당하는 와중에서도 협동조합은 흔들리지 않고 살아남았다.

한국에서도 협동조합 붐이 일었다. 협동조합기본법이 제정된 이후 2년 반동안 7천여 개가 넘는 협동조합이 생겨났다. 협동조합의 대부로 불리는 이탈리아 볼로냐 대학의 스테파노 자마니 교수는 "세계적으로 이렇게 빨리 협동조합이 성장한 경우는 보지 못했다"고 놀라움을 표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양적 팽창은 빨랐지만 질적 성장은 제자리 걸음이다. 김성오 한국협동조합 창업경영지원센터 이사장은 '세계일보'와의 인터뷰(6월 8일자)에서 "수많은 협동조합 창업·경영 교육과 컨설팅을 하면서 파악한 바로는 협동조합의 50% 정도는 전화 연락이 닿지 않는다"며 "사실상 절반 가량은 문을 닫은 것으로 보고 있다"고 했다.

'레이들로 보고서'에서는 협동조합의 역사를 회고하며 세 단계의 성장과 변화를 겪었고 각 단계마다 위기에 직면해도 잘 극복해왔다는 평가를 내린다. 첫 번째는 '신뢰의 위기'다. 초기에는 많은 이들에게 협동조합은 불가능한 발상이었지만 차츰 받아들여지면서 대중의 머리 속에 숭고한 이상으로 자리잡았다. 신뢰의 위기를 지나자 '경영의 위기'라는 두 번째 위기가 찾아왔다. 많은 협동조합이 기업 도산처럼 실패해 사라졌다. 하지만 젊은 경영인 다수가 협동조합 사업에 매료됐고 서서히 이 위기도 극복됐다.

협동조합 시스템이 잘 자리 잡은 곳에 도래한 세 번째 위기는 '사상의 위기'다. 레이들로 박사는 "이 위기는 협동조합의 참된 목적, 그리고 일반 기업과 뚜렷이 다른 협동조합만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는지 불쑥불쑥 의심하는데서 시작한다"며 "협동조합이 다른 기업과 같은 사업 기술과 방법을 사용한다면, 과연 조합원의 지지와 충성을 얻어내는데 실제로 합당한 명분이 되는가? 더욱이 세상이 이상하고, 때로 복잡한 방향으로 흘러간다고 할 때 협동조합도 그 방향을 따라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새로운 경제적, 사회적 질서를 만들려고 해야 하는 것일까?"라고(27쪽) 의문을 던진다.

보고서를 번역한 염찬희도 지적했지만 한국의 협동조합은 이 세 가지 위기를 동시에 맞딱뜨리고 있다. '5명 이상만 모이면 가능하다'며 장밋빛 '낙관론'이 득세하더니 어느새 '비관론'이 확산되는 분위기다. 한국의 협동조합은 유례없는 빠른 성장세에도 불구하고 유례없이 빠른 위기를 맞이한 셈이다. 신뢰의 위기, 경영의 위기, 사상의 위기가 혼재된 '트리플 위기'에 직면한 한국의 협동조합이 본 궤도에 안착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협동조합은 경제적 목적 뿐만 아니라 사회적 목적도 가지고 있다. 레이들로 보고서는 "사회적 목적이 전혀 없는 완전 사업체인 협동조합은 성격이 다른 협동조합보다 더 오래 생존하겠지만, 길게 보면 점차 약해져서 마침내 해체될 것이다. 반면에 사회적 임무에 역점을 두면서 건실한 사업을 위한 실천은 도외시하는 협동조합은 아마도 꽤 빨리 무너질 것"이라며 "전체 시스템 내부에서 상식적인 균형을 유지하는 일이 필요하며, 경제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 사업과 이상주의, 실용적인 전문 경영인과 비전을 가진 일반 지도자를 잘 섞는 일이 필요하다"(114쪽)고 충고한다.

덧붙이는 글 | <21세기 협동조합>(A.F.레이들로 지음/염찬희 옮김/알마 펴냄 / 2015. 07.)
이 기사는 이민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blog.yes24.com/xfile340)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본인이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1세기의 협동조합 - 레이들로 보고서

A. F. 레이들로 지음, 염찬희 옮김, 알마(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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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시골 농촌에서 사려깊고 유쾌하고 유능한 동료들과 함께 마을교육공동체 활동을 하고 있다. 좌충우돌하는 마을학교를 운영하면서 날마다 협동의 위력을 실감하고 있다. 작지만 커다란 변화는 '그렇게' 만들어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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