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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정누리(가명, 25)씨는 독립영화감독이 되고 싶다. 얼마 전엔 황윤 감독의 <어느 날, 그 길에서>를 인상 깊게 봤다. 로드킬을 당하는 동물들이 여과 없이 담긴 장면들에 불편한 마음이 들었지만 신문과 텔레비전에서는 쉽게 볼 수 없었던 사회 문제들을 느낄 수 있었다. 정씨는 이러한 이유 때문에 계속해서 독립영화를 찾게 된다고 했다. 오락, 흥미의 역할을 하는 영화와는 다르게 독립영화를 보면 사회의 구성원으로써 책임을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다. 독립영화 특유의 분위기도 마음에 든다.

정씨는 영화과 입학 이래로 꾸준히 독립영화를 제작해 오기도 했다. 부모님께 받은 용돈이나 아르바이트로 번 돈도 영화 제작에 투자했다. 그러나 '좋아서' 시작한 활동은 '작품을 어디 내놓을 곳도 없다'는 이유로 요즘 큰 고민을 안겨주고 있다. 사람들과 영화를 공유하고 싶은 마음은 잠깐 접어두기로 했다.

나날이 발전하는 영화산업, 그 이면엔?

한국콘텐츠진흥원 자료에 따르면 2015년 영화산업 매출 전망은 전년 대비 8.5%가 상승한 5조 4000억 원. 영화산업 수출 전망은 전년도 대비 13%가 상승한 0.4억 달러다. 1년 동안 개봉하는 영화는 약 150~200편으로 기술의 발전과 해외 진출 등의 영향으로 영화 산업은 나날이 성장하는 추세다.

그러나 정씨와 같은 독립영화 관객이 보고 싶은 영화를 볼 수 있는 기회는 오히려 한정되고 있다. 집에서 10분 거리에 영화관이 세 곳이나 있어도, 보고 싶은 영화를 보기 위해서 다른 지역에 가는 것은 물론이고, 왕복 세 시간이 넘게 걸리는 곳에 가야만 영화를 볼 수 있다는 사실에 그 영화를 보러 가야 할지 말지 고민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 입장권 통합전산망의 자료에 따르면 독립영화는 전체 영화의 20~45% 로 매년 증가하고 있으며 마찬가지로 개봉하는 독립영화도 2010년 6%에서 2014년 20%로 늘어나고 있다.

독립영화가 극장 개봉하기 위한 절차는 간단하지 않다. 우선 독립영화감독이 배급사에 연락을 하고 영화를 보낸다. 배급사에서 이를 확인하고 1~2주 후에 답을 준다. 혹은 감독이 영화제에 영화를 출품한 후, 좋다는 답변을 받으면 된다. 그러나 사실상 긍정적인 반응을 얻긴 쉽지 않다. 서울독립영화제 같은 경우 출품되는 영화는 장편과 단편을 합해 매년 700~800편 가량 된다. 이중,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영화는 5~10편뿐이다.

<니가 필요해>의 배급 PD인 허브(별명)씨는 얼마 전에 영화진흥위원회에 상영 지원 신청을 고민하다가 하지 않기로 했다. 지원을 받더라도 개봉할 수 있을지 여부가 미지수이기 때문이다.

"개봉 지원을 받아도 100퍼센트 그 돈 가지고 개봉하기는 불가능해요. 개봉을 한다고 해도 관객들이 다큐멘터리를 보러 올까도 미지수예요. 돈도 부족하고, 불안감이 있죠. 배급사와 계약을 하더라도 충분히 상영 보장이 되는 게 아니에요."

영화와 어울리는 공간을 찾아서, 유랑이 시작되다

영화마다 어울리는 공간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다큐유랑은 상대적으로 문화 격차가 많이 나는 지역에서도 상영을 할 계획이다.
▲ 다큐유랑 모습 영화마다 어울리는 공간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다큐유랑은 상대적으로 문화 격차가 많이 나는 지역에서도 상영을 할 계획이다.
ⓒ 이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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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에서, 관객을 쉽게 만날 수 없었던 독립영화 감독들이 모였다. <늘샘천축국뎐>의 늘샘 감독, <니가 필요해>의 김수목 감독, <바보들의 행군>의 나바루 감독, <불안한 외출>의 김철민 감독, 그리고 <자전거, 도시>의 공미연 감독이다. 그들은 '다큐유랑'이라는 커뮤니티를 만들어 활동하고 있다. 유랑은 일정한 거처가 없이 떠돌아다님을 의미한다. 다큐유랑도 그렇다. 늘샘 감독 "덜 외롭기 위해서 다큐유랑을 시작했다"며, "혼자보단 여럿이서 함께 하는 것이 의미 있을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각자의 이야기를 가지고 모인 다큐유랑은 극장이 아닌 다른 곳에서 관객을 만나보기로 했다.

다큐유랑은 영화를 보면서 다른 사람과 수다를 떨거나 큰 소리로 웃을 수 있는 공간을 원한다. 감독의 의도가 관객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영화 상영에 있어 관객과 제작자 사이의 원활한 소통이 중요하다. <바보들의 행군>의 배급 PD인 조이예환씨는 "극장을 원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영화 상영 하면 오직 극장만을 떠올리는 거에 대해서는 반대한다"며, "다양한 공간에서 자유롭게 영화를 상영하고 싶다"고 말했다. 영화마다 어울리는 공간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다큐유랑은 상대적으로 문화 격차가 많이 나는 지역에서도 상영을 할 계획이다.

실제로 대규모 멀티플렉스 극장에서의 영화 관람 경험은 관객들에게 멀티플렉스의 편리함뿐만 아니라 '획일화의 불편함'을 함께 경험케 한다. 많은 관객들은 '영화관에서 크게 웃거나 울고 싶을 때' 자신의 감정 표현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점에서 일종의 결핍을 느낀다. 다른 사람이 큰 소리로 웃거나 울어도 불편하지만, 막상 스스로도 감정 표현을 제대로 할 수 없어서 눈치가 보인다는 것이다.

 "혼자보단 여럿이서 함께 하는 것이 의미 있을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각자의 이야기를 가지고 모인 다큐유랑은 극장이 아닌 다른 곳에서 관객을 만나보기로 했다.
▲ 다큐유랑의 모습 "혼자보단 여럿이서 함께 하는 것이 의미 있을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각자의 이야기를 가지고 모인 다큐유랑은 극장이 아닌 다른 곳에서 관객을 만나보기로 했다.
ⓒ 이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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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유랑에 모인 감독들이 찾는 공간은 결국 '관객' 이 있는 곳이다. <자전거, 도시>의 공미연 감독은 "영화를 통해서 관객과 공유 하고 싶은 욕구가 가장 크다"며, 사람들과 영화를 통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작게는 개인의 삶, 크게는 사회를 변화시키는 경험을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공동체 상영과 같은 방식들을 통해 단순히 구매하고 소비하는 영화문화가 아닌, '세상을 좀 더 알아가는 과정'으로서의 영화문화를 만들어가기를 바란다.

영화를 꿈꾸는 청년들이 많다. 유명한 영화과의 경우 입시 경쟁률이 100:1까지 오르기도 했다. 제각기 다른 이유지만, 다큐유랑이 그렇듯 자신의 작품을 통해 누군가와 소통하고 공유하고 싶다는 마음은 같을 것이다.

그러나 극장에서 영화를 개봉할 수 있는 기회도 적을뿐더러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유명한 영화감독은 게 중에 무척 소수이다. 복잡한 영화산업의 구조적인 문제들로 인해 청년들은 영화 제작 현장에 있기보다 공공기관이나 대기업의 영화 배급사로 진로를 바꾸기도 한다. 영화를 제작해도 배급이 되지 않으면 내 놓을 공간도, 사람들과 소통할 수 도 없기 때문이다. 일정한 수입을 얻기도 힘들다. 독립영화가 주목받지 못하고, 관객들이 찾지 않을수록 청년들의 기회도 점점 빼앗기고 있다.

다큐유랑을 인터뷰 하면서 다큐유랑의 실험이 영화 상영과 관람문화에 있어 또 다른 선택의 폭을 제안한다는 생각과 동시에 한편으론 제작자가 직접 공간을 찾고 관객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 씁쓸하기도 했다. 나 또한 다큐멘터리 감독을 꿈꾸고 있기에. 다큐유랑의 작은 실험이, 실험 이상의 더 큰 가치를 갖기를 빈다. '가상'의 세계를 이야기 하는 영화는 '현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그렇게 청년을 유랑시키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이혜원 시민기자는 서울청년정책네트워크(http://seoulyg.net) 대학생기자단입니다. 청정넷은 7월 13일부터 7월 19일까지 서울청년주간(http://youthweek.kr/)을 열었습니다.



태그:#다큐유랑, #다큐멘터리, #독립영화, #청년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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