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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모르는 촌뜨기였던 내가 서울 생활을 시작한 지 어느덧 2년. '어느 지방에서 올라왔니?'란 질문에 우리 군에서 밀고 있는 특산품인 인삼부터 출세한 연예인 이름까지 동원하며 소개를 해줘도 아무도 모른다. 그만큼 우리 집은 시골인가 보다. 나는 그곳에서 초등학교를 거쳐 중학교까지 다녔고, 고등학교 땐 더 큰 세상을 경험하기 위해 청주로 유학을 갔다. 나의 '독거'는 그때부터 시작된 것이다.

고등학생으로 3년, 재수생으로 1년을 청주에서 혼자 살았고, 서울로 올라와서도 여전히 혼자 살고 있다. 그렇다 보니 원룸에서 하숙집, 고시원까지 안 살아본 곳이 없다. 대학 1학년 때는 운 좋게 학교 기숙사에서 살게 되었지만, 턱없이 적은 기숙사 정원 탓에 금방 쫓겨나 지금은 고시텔에서 살고 있다.

내 이야기를 조금만 더 해보자면, 요즘 매일 이 고민을 한다. '오늘은 누구랑 밥 먹지?' 혼밥(혼자 밥 먹기)은 죽어도 싫어서 끼니때마다 밥 친구를 찾아 나선다. 나처럼 지방에서 올라와 자취하는 친구들이 있어 그나마 다행이지만, 그 친구들마저 바쁘면 눈물을 삼키며 쓸쓸히 혼자 밥을 먹어야 한다. 이런 생활이 내 독거를 더욱 외롭게 만든다.

또 다른 고충은 월세와 보증금인데, 경상도 사투리를 빌려 말하자면 얘네 때문에 정말 '후달린다'. 월세 50을 내고도 책상 하나, 침대 하나, 옷장 하나, 칸막이 샤워실 하나가 겨우 들어가 있는 방을 얻었다니. 좁은 방에서 생활해야한다는 불편함보다 이 좁아터진 방이 서울 땅 위에 존재하는 유일한 나만의 공간이라는 사실이 슬프다.

독립을 준비하는 20대의 고민, 주거 스트레스

나의 이야기로 시작은 했으나 주거 스트레스는 나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는 대학생들을 비롯해 부모로부터 독립을 준비하는 많은 20대 청년들의 일상이기도 하다. 집에서 나와 살려면 그래도 잘 곳은 있어야 하니 좁아터진 비싼 방이라도 그래, 억울하지만 참고 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먹고 자는 일은 우리가 하루도 빠짐없이 마주해야 하는 문제다. 숨을 쉬듯 매일 반복되는 일이기 때문에 그것이 이루어지는 공간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쉽게 잊는다. 공간이 담는 것은 사람만이 아니다. 공간은 그 역할에 따라 다양한 의미를 담는다. 사람이 모이는 공간은 사람 사이의 관계를 형성해 유대감을 제공하고, 외부와 단절된 공간은 개인의 사생활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처럼 말이다.

다양한 역할의 공간이 존재하지만 그 중에서도 우리 하루의 시작과 끝을 책임지는 곳이 바로 주거 공간이다. 우리는 집에서 편히 쉴 수 있고 나만의 여가를 누릴 수도 있다. 또 가만히 앉아 생각을 하기도 하고 속상한 일이 있는 날이면 아무도 모르게 펑펑 울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주거 공간은 우리 삶의 재충전을 돕는다고 할 수 있다. 집은 단지 하룻밤 눈 붙이기 위한 공간이 아닌,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닌 생활 영역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주거 빈곤층이라 불리는 1인 청년 가구에게 그들의 주거지는 그들에게 재충전의 장으로서 역할을 하기는커녕 비싼 월세로 인한 경제적 압박과 함께 안 그래도 한껏 짊어지고 있는 삶의 무게를 더해줄 뿐이다.

새 학기마다 조금이라도 더 싼 방을 찾아 헤매는 대학생들. 비좁은 방에 어울리지 않는 비싼 월세. 청년에게 주거 공간은 '스트레스'를 제공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주거 문제에 접근하는 청년들이 있다.

청년 대안 주거, 그 가능성을 바라보다

최근 청년 주거의 대안적 모델로서 많은 주목을 받고 있는 '셰어하우스', 혹은 '달팽이집'과 같은 '사회적 주택'은 이러한 1인 청년 가구의 문제를 공동 주거의 형태로 풀어나가고 있다. 혼자 살 때의 비용 부담을 줄이기 위해 여럿이 모여 함께 살아 보자는 것이다. 함께 살게 되면, 비용부담도 줄어들고 집에서의 생활 반경이 넓어진다. 방 한 칸을 포함해 거실과 부엌, 베란다까지 다 내가 돌아다니고, 쉴 수 있는 공간이 되기 때문이다.

같은 공간을 다른 사람과 공유한다는 것은, 특히나 생계의 기본이 되는 주거지의 공유는 단순한 물리적 차원의 공유를 넘어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타인과 어울려 산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사람이 주거지를 필요로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자신만의 '독립된 공간'을 확보하고 싶어서다. 보통 2인 1실로 운영되는 공동주거에서는 방문을 닫더라도 나만의 공간은 만들어지지 않는 셈이다. 화장실 문을 닫고 용변을 볼 때를 제외하고는 혼자 단독으로 어느 공간을 차지하고 있을 수 없다.

그렇다면 공동 주거지에서 사생활의 보장은 기대하기 어려운 걸까. 서울 남가좌동에 위치한 대안주거공간 달팽이집에서는 이를 어떻게 해결하고 있는지 그곳에 사는 임소라씨를 만나보았다.

"개인적으로 저는 공동주거에 확신이 없었어요. 근데 살아가는 친구들을 보면서 확신이 생겼어요. 제가 언제 17명의 친구, 식구가 생기겠어요. 여기 손님들도 많이 오는데, 그 손님들도 갑자기 17명의 친구가 생기는 거죠."

그녀는 다른 사람들과 같이 사는 게 힘도 들고 재밌기도 하다고 했다. 구성원 간에 관계가 맺어지고 이를 유지해야하는 공동주거의 특성상 힘든 점이 있긴 하겠지만, 다들 마음을 내어주려 한다고 했다.

"오늘 같은 경우 제가 늦게 일어나서 '뭐 대충 사먹어야지' 했는데 위층에서 밥 먹는다길래 같이 먹고 하니까 좋죠. 저희가 17명이 사니까 '아 저거 같이 하면 재밌겠다' 하는 것들을 같이 할 수 있어서, 혼자가 아니어서 그런 것들이 좋아요."

대신 그들은 2인 1실로 쓰는 방은 문을 닫고 '쉬는 공간'으로, 거실은 '일도 하고 수다도 떠는 공간'으로 정해두었다. 또, 원래 좌식이었던 방에 이층침대를 두어 예전보다 확실히 개인적인 공간을 만들어 나름대로의 사생활이 가능하도록 했다.

달팽이집에서 만난 그들의 모습은 단순히 돈을 내고 집을 사용하는 소비자가 아닌, 그 집의 주인들이었다. 그들은 한 달에 한 번 자발적으로 반상회를 한다. 달팽이집 건물 마당에는 마을 주민들이 와서 놀며 쉴 수 있는 평상과 그네, 마을 사람들에게 전하는 글귀를 걸어 두었다. 그들은 '이 집이 잘 지켜졌으면 좋겠다'는 주인의식을 가지고 문제가 생기면 그 문제를 수면 위로 띄워 같이 이야기하며 해결하려 한다. 예를 들어 코고는 친구로 인해 같이 방 쓰는 잠귀가 밝은 친구가 괴로운 상황이 생기면, 소리에 예민하지 않은 친구가 방을 바꿔주는 식으로 말이다. 이러한 주체성은 공동주거의 문제를 조금씩 보완해 나가면서 '함께'의 가치를 통해 주거의 질을 높인다.

달팽이집 1층 평상
 달팽이집 1층 평상
ⓒ 민달팽이유니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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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 주거 모델은 사회의 주거 빈곤 문제의 해결을 위한 하나의 시도이지, 무조건적인 해결책이라고는 할 수 없다. 사람마다 추구하는 라이프 스타일이 다르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 함께 생활하는 것이 조금이라도 불편한 사람에게 공동주거는 처음부터 적합한 대안이 아닐 수 있다. 그러나 아직 초기 단계에 있는 대안 주거의 단점만을 바라보기 보다는 그러한 시도들과 운영 과정에 관심을 갖고, 스스로의 주거 선택권을 넓힐 줄 아는 것이 필요하다. 대안 주거에 대한 인식은 다양한 주거문화의 형성을 촉진하는 시발점이 될 것이다.

자신이 처해있는 주거환경이 부조리하지만 참고 사는 청년들이 많다. 청년의 주거권이 보장되려면 그들 스스로 자기가 사는 공간의 주인이 될 수 있어야 한다. 모두가 똑같은 매뉴얼대로 살 필요는 없다. 나만 괜찮다면 조금은 다른 삶의 방식을 선택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러한 용기가 발현되기 위해서는 현재 존재하는 사례들에 대한 인식이 선행되어야 한다.

서울은 땅이 좁고 사람이 많으니 당연히 비싸고 비좁은 방에서 살 수밖에 없다고 체념할 것이 아니라 그 문제를 다른 청년들은 어떤 방식으로 해결하고 있는지 보자. 그것이 누군가에게 완벽한 대안이 아닐지라도 이는 하나의 좋은 사례가 되어 앞으로 청년을 위한 대안주거의 확산을 가져올 수 있다. 그러한 선순환이 대안에 대한 또 다른 대안의 발전을 끌어내 열악한 청년 주거 현실을 변화시키는 원동력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김은진 시민기자는 서울청년정책네트워크(http://seoulyg.net) 대학생기자단입니다. 청정넷은 7월 13일부터 7월 19일까지 서울청년주간(http://youthweek.kr/)을 열었습니다.



태그:#대안공간, #대안주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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