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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프터 서비스'. 역사학자 한홍구 성공회대 교양학부 교수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단어를 꺼냈다. 반헌법행위자 열전(가칭)을 설명하며 나온 말이다.

반헌법행위자 열전(아래 열전)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내란, 학살, 고문조작, 부정선거 등을 통해 헌법을 파괴한 이들의 명단을 수록하는 책이다. 김기춘, 정홍원, 이완구, 황교안, 황우여, 김진태 등 현 정부의 전·현직 고위 인사들이 수록 대상으로 꼽힌다. 2009년 편찬된 <친일인명사전>과 달리, 수록 대상자의 대부분이 현존하는 인물이다. 열전에는 총 300여 명의 이름이 수록되며, 편찬 작업은 4~5년 가량 걸릴 예정이다.

한홍구, 조국, 김두식, 박노자 등 사회 각계 인사 33인이 열전 편찬 제안자로 이름을 올렸다. 제안자 중 한 명인 한홍구 교수는 지난 21일 <오마이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열전에 첫 번째로 수록하고 싶은 인물로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을 뽑았다. 김기춘 전 비서실장은 '초원복집 사건'의 주인공이다. 그는 열전의 역할이 "김기춘이 법치를 이야기할 때 '당신은 왜 법을 안 지켰느냐?'라고 묻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기성세대가 반헌법행위자의 손발을 묶는 작업을 하겠다"고 말했다.

한 교수는 열전을 "젊은 세대를 위한 일종의 민주화 애프터 서비스"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열전에 "(기성세대의) 책임감 내지는 미안함"이 담겨있다는 것이다. 현재의 젊은 세대를 "단군 이래 가장 능력 있지만, 가장 기가 꺾인 세대"라고 평한 한 교수는, 젊은이들에게 "헌법에 나와 있는 권리를 누리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한홍구 교수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조선일보가 헌법 운운? 말도 안 된다

 한홍구 성공회대학교 교수(자료사진)
ⓒ 권우성

- 왜 '반헌법행위자' 열전을 편찬하는 것인가? '반헌법'은 잘 사용하지 않는 단어이기도 하다.
"'헌법'이라는 가치가 새롭게 부각됐다. 우리나라가 민주화가 이루어지기 이전엔 헌법이 논의 대상에서 밀려있었다. 지금은 주먹 대신 법을 내세울 수밖에 없는 시대다. 그리고 법 중에서는 헌법의 위상이 제일 최고다. 헌법의 가치를 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어떤 의미에서는 헌법이 도구가 되는 시대다. 진짜로 헌법의 가치를 지켜온 사람들이 '헌법'이라는 이름으로 탄압 받는 시대다. 예컨대 통합진보당을 들 수 있다. 통합진보당에서 '종북'이라고 분류되는 몇 명이 있을지 모르지만, 당원 절대다수는 과거 학원 민주화를 위해서 헌신해온 사람들이다. 그런 통합진보당을 해산시켜놓고 <조선일보>가 '헌법이 대한민국을 지켰다'라고 말하는 것은 정말 말이 안 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내란과 고문으로 기본권을 짓밟으며, 대한민국 헌법을 어겼던 자들이 헌법을 지켰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들이 자리를 꿰차고 법치를 말하고 있다. 헌법을 파괴했던 자들이 누구고, 그들이 지금 뭘 하고 있는지 제대로 밝혀서 젊은 세대에게 헌법을 돌려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열전이 젊은이들에게 줄 수 있는, 선물이라고 하긴 좀 거창하고 책임감 내지는 미안함 같은 거다.

그리고 또 이런 짓을 하면 반드시 다 남게 된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어렸을 때, 칠판에 떠든 놈 이름 적지 않았나. 하다 못해 가장 작은 공동체의 규율을 어긴 사람도 이름을 적었는데. 하물며 나라를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헌법을 유린하면서 자기들의 이익을 취하는 것을 기록으로 안 남기고서야 되겠나."

- 사전이 아닌 열전이라는 형식을 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사전은 품이 많이 든다. 웬만한 사람들이 다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사전을 꼼꼼하게 만들려면 시간과 정력, 그리고 돈이 어마어마하게 들어간다. 이것은 민간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좋은 세상'이 오면, 천천히 사전 만드는 작업을 해도 된다. 하지만 지금은 김기춘, 황교안 같은 자들이 최고 권력자인 시대이다. 몇 만 명이 들어갈지 모르는 사전을 언제 만들겠나. 급한 대로 열전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 열전에 들어갈 첫 번째 인물로 누구를 넣고 싶나?
"김기춘이다. 열전에 300명쯤 담겠다고 했는데, 아마 경쟁률이 300대1은 될 거다. 예전에 <한겨레>에 김기춘 과거에 대한 글을 기고한 적이 있다. 새로 자료조사를 하지도 않고 생각나는 사건에 대한 연도만 정확하게 정리했더니, 밤새 앉은자리에서 120매쯤 썼다. 김기춘은 남아 있는 자료가 많다. 익히 알려지고 중요한 자다. 미주알고주알 쓰면 원고지 300~400매는 거뜬히 쓸 수 있다."

- 현 정권에 있는 실세들이 열전에 실린다고 한들 눈이라도 꿈쩍할까?
"예를 들어, 이 사업을 통해 국정원을 처단하는 것이 가능할까? 아니다. '이거라도 해야겠다'인 거지, '이걸 하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아니다. 현실을 바로잡으려면 훨씬 더 많은 희생과 투쟁이 필요하다. 반헌법행위자 열전 편찬은 과거사 관련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최소한도'의 작업인 거다.

또 실세들이 두려워할까 걱정하는 거 같은데, 맹자란 책을 보면 공자가 춘추를 지었더니, 난신적자(기자 주-나라를 어지럽히는 불충한 무리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들이 두려움에 떨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두려움에 떨도록 만들어야 한다. 젊은 세대들이 많이 읽으면 두려움에 떨 것이고, 여러분들이 관심 가지지 않으면 두려움에 떨지 않을 거다.

자라나는 젊은 세대들이 기억을 하면 그자들이 두려워하지 않을 수가 없다. 왜냐, 자기 아들, 딸, 손자도 어디서 들을 거 아닌가. 자기 아버지 혹은 할아버지가 '사실은 대한민국에서 조작 간첩 제일 많이 하고, 엉뚱한 사람에게 유서 대필이라는 누명을 씌우는 자였다'라고 하면 안 볼 수가 없으니까."

단군이래 최고 스펙 젊은이들, 기죽지 말아야

지난 2009년 11월 열린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발간 국민보고대회' 모습. 서울 효창동 백범 김구 선생 묘소에서 당시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 윤경로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장, 김병상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사진 왼쪽부터)이 백범 김구 선생 묘소에 '친일인명사전'을 헌정하고 있다.
 지난 2009년 11월 열린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발간 국민보고대회' 모습. 서울 효창동 백범 김구 선생 묘소에서 당시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 윤경로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장, 김병상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사진 왼쪽부터)이 백범 김구 선생 묘소에 '친일인명사전'을 헌정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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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젊은 세대는 반헌법행위자 열전에 담기는 사건들, 예컨대 '인혁당 사건'이나 '강기훈 유서대필' 등을 학교나 사회에서 제대로 배우지 못한다. 젊은 세대가 반헌법행위자 열전의 내용에 공감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패턴을 봐야 한다. 예를 들어 3.15부정선거와 국정원 댓글 사건은 다르지 않다. 3.15 부정선거(기자 주-1960년 3월 15일 자유당정권에 의해 대대적인 부정행위가 자행되었던 정·부통령선거) 때는 불 끄고 투표함에 뭘 넣는 단순한 방식이었다면, 지금은 댓글을 다는 방식으로 바뀐 것밖에 없다. 결국, 헌법을 파괴한다는 면에서 본질적으로 똑같다. 다른 점은 3.15 부정선거 때는 사형이라는 엄벌을 했는데, 지금은 아무것도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과거 사건을 몰라도) 젊은 세대들은 이 부분에 대해 분노해야 한다."

- 젊은 세대는 당장 눈앞에 닥친 삶이 너무 고달파 여유가 없는 경우가 많은데.
"그럴 수도 있다. 근데 젊은이들은 그 여유 없는 것이 왜 그런가를 생각해야 한다. 우리 사회가 왜 젊은이에게 하늘을 쳐다볼 기회마저 가져갔는가? 결국 헌법을 어긴 자들이 역사의 심판도 받지 않고 다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지금 사회의 불평등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으로 경제민주화가 제시되고 있다. 제헌헌법의 권위 있는 해설서를 보면 이와 같은 경제민주화 이야기가 나온다. 그런데 국가보안법을 떠드는 자들, 즉 헌법을 어긴 자들이 이 내용을 잡아먹었다 이거다."

- 세상이 쉽게 바뀌지 않아 좌절하는 젊은이들도 많다.
"그게 저쪽에서 말하는 거다. '세상이 바뀔 거 같냐?'는 패배주의를 전파한다. 저놈들은 세상이 안 바뀐다고 하지만 세상이 안 바뀌긴 왜 안 바뀌나? 우리가 아직 승자가 되지 못했다 뿐이다."

- 젊은이들은 이렇게 힘든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하나?
"나는 지금 학생들에게 '민주화를 하라'고 말하는 게 아니다. 자기 이익을 챙기라고 말하고 싶다. 요즘 젊은이들은 불이익도 참더라.

물론 우리 때는 자기 이익을 챙기면 나쁜 놈 소리를 들었다. '민중들이 고통받고 있는데 자기만 생각한다'고. 근데 돌이켜보면 과거 자기 삶의 이익과 대의를 결부시키지 못한 사람들은 다 지금 이상한 사람이 됐다. 인간은 이기적인 동물이다.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당연하다. 이걸 억누르고 좋은 일을 하라는 게 아니다. 어떻게 하면 남을 해치지 않고 나의 이익을 챙길 수 있는가, 혹은 적어도 뺏기지 않을 수 있는가를 생각해야 한다는 거다.

지금은 헌법에 있는 내 권리, 일할 수 있는 권리, 행복추구권, 사상의 자유, 언론출판의 자유, 집회결사의 자유 같은 그렇게 많은 권리를 침탈당하고 있다. 나는 젊은이들이 민주주의의 가치가 파괴되고 있는 자신의 일상 영역 속에서 싸워주길 바라는 거다."

- 정확히 어떤 불이익을 말하나?
"예컨대 2008년 금융위기 때, 기업들이 신입사원 월급을 엄청 깎지 않았나. 기성세대는 임금을 동결하고, 신입사원 월급을 깎았다. 그런데도 젊은 세대는 가만히 있었다. 개개인을 두고 보면 단군이래 가장 능력 있으면서도 단군이래 가장 기가 꺾여있다. 헌법을 읽어봐라. 헌법에 있는 기본권을 들여다봐라."

- 헌법을 어기고도 현재 승승장구하는 자들을 보면 사람들은 오히려 맥이 빠지지 않을까.
"그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 구조의 강고함에 대해 놀라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김대중·노무현 정권이 있었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그사이에 역사가 바뀌었었다. 이제 다시 정권이 바뀌니, 이 자들이 다시 나와서 마지막 발악하는 것이다. 만화 영화를 보면 악당이 최후의 싸움을 할 때 민낯을 드러낸다. 지금 이 자들의 민낯이 드러나는 과정이다. 긴 역사에서 한 챕터가 드러나는 과정이다.

나는 등산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친구를 따라 등산을 가보면 정상에 가까웠을 때가 가장 힘들다. 그럴 때 뒤를 돌아보면 된다. '아, 내가 정말 많이 왔구나'하고 위안이 된다. 우린 지금 많이 온 거다. 우리가 힘들 때 저놈들은 더 힘들다. 그리고 숨이 턱까지 차있다. 간신히 불안 속에서 버티는 거다. 대중들에게 역사가 바뀔 거 같으냐고 말하면서."

- 그렇게 치면 역사는 퇴보한 것이 아닌가?
"내가 강연을 가면 '그런다고 세상이 바뀌는가?', '역사가 진보하는 거 맞나?'라는 질문을 가장 많이 듣는다. 역사는 진보 안 하나?

세월호 사건 때 박근혜 대통령이 사과하지 않았나. 사람들을 못 구한 거에 대해서. 이승만은 사람 죽이고 갔다. 이승만은 다리 끊고 도망갔다가 돌아와서 사과는커녕 오히려 피난 못 간 사람들을 잡아 죽였다. 그렇게 치면 지금은 민주주의가 발전한 거 아닌가? 물론 세월호 진상규명 안 된 것에 엄청 좌절하지만, 실은 그거 굉장히 발전한 거다. 먼 과거에 비해.

또 정말 바뀐 게 뭐냐면, 윤 일병 사건, 임 병장 사건 같은 경우 신문에 났다. 근데 군대에서 1년에 몇 명 죽는 줄 아나? 한 130~140명 죽는다. 근데 왜 많아 보이느냐? 신문에 나기 때문에 많아 보이는 거다. 유신 때는 1500명 죽었다. 이승만 땐 2500명 죽었다. 나는 이것이야말로 민주화의 성과라고 생각한다. 세상이 안 달라지나? 여전히 120명 죽는 게 문제라는 비판은 당연히 해야 하지만, 그걸 세상이 안 달라졌다고 해야 하나?"

김기춘에게, '너는 왜 법 안 지켰는데?'

반헌법행위자 열전에 관해 설명하는 한홍구 교수
 반헌법행위자 열전에 관해 설명하는 한홍구 교수
ⓒ 박현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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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태껏 기성세대가 한 작업은 무엇이라고 보나?
"헌법을 파괴하지 못하도록 하는 작업이 민주화 운동이었다고 본다. 그런데 반헌법 세력들이 그 헌법을 가지고 장난질하고 있다. '여태까지 헌법 어긴 자들은 빠져라', '헌법을 파괴한 자들은 빠져라'라고 해야 한다.

열전 편찬 작업은 김기춘이 나와서 법치를 이야기할 때, '너는 왜 법 안 지켰는데?'라고 말하는 거다. 우리가 그렇게 해서 그 자들을 찌그러뜨려 놓을 테니까, 이 헌법에 나와 있는 권리를 갖고 여러분들이 '알아서 하시라' 이거다. 기성세대들이 그자들의 손발을 묶는 작업을 하겠다는 거다. 일종의 민주화 애프터 서비스다."

- '진정한 헌법의 가치'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누려야 사는 것이다. 누리라고 만든 헌법이다. 젊은 세대들이 헌법에 있는 가치를 누렸으면 좋겠다. 지금 헌법이 꼭 좋은 헌법은 아니다. 우리 옛날에 더 좋은 헌법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87년에 제정한 헌법에 있는 것만이라도 누려라, 이거다.

나는 탱크 몰고 와서 국민을 짓밟은 자의 이름 적기에도 바쁘다. 행복추구권과 같은, 헌법에 있지만 죽어있는 권리들은 여러분들이 찾아 써야 한다. 나는 헌법에 있는 몇 개 조항에 대해서만 말하는 거다. 나머지 조항은 여러분들이 말해야 한다."

○ 제보 : (가)반헌법행위자 열전 편찬위원회(준)
○ 연락 : (02)2610-4189 / badmen0815@gmail.com
○ 후원 계좌: 국민은행 006001-04-198120 (사)평화박물관건립추진위원회


○ 편집ㅣ이정환 기자

덧붙이는 글 | 김예지 기자와 박현광 기자는 <오마이뉴스> 22기 대학생 인턴 기자 입니다.



태그:#한홍구, #반헌법행위자, #반헌법행위자 열전, #김기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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