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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대학교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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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피해서 말을 못하겠다…. 기계설비 분야 경력만 10년인데 지난달 월급이 147만 원이다."

김홍범(59)씨가 씁쓸하게 웃었다. 그는 국립 충남대학병원(원장 김봉옥)에서만 6년째 일하고 있다. 소아병동에서 냉, 난방 등 기계설비, 보수 업무를 하고 있다. 회갑을 앞두고 있지만, 아직 4인 가구의 가장이다. 두 아들 중 막내는 대학교를 막 졸업했다.

보건복지부가 고시한 올해 4인 가구 최저생계비는 166만 원이다. 김씨는 19만 원이나 적다. 더 서글픈 건 월급이 깎였다는 거다. 지난 5월 월급은 156만 원이었다. 물론 다른 국립대 병원의 같은 시설관리직 직원들과 비교했을 때 전국 최하위 수준이다. 인근 충남대 시설관리 직원들과 비교해도 평균 60~70만 원이나 적다.

그런데도 지난달부터 시설관리 도급업체가 바뀌면서 월급이 5.9% 줄어들었다. 물가는 오르고, 경력도 늘어나는데 월급이 오르지는 못할망정 어떻게 큰 폭으로 곤두박질 한 것일까?

김씨는 "충남대병원의 행태가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다"며 "비정규직 직원들에 대한 무관심과 소외가 얼마나 극심한지를 보여 주는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관련기사 : "충남대병원, 닭 한 마리 내주고 돼지 내놓으라고 해").

월급 156만→147만 원 "상식적으로 이해 안 된다"

김홍범(59)씨. 국립 충남대 병원(원장 김봉옥) 소아병동에서 냉, 난방 등 기계설비, 보수 업무를 하고 있다. 경력 10년, 충남대병원에서만 6년 차인 그의 지난 달 월급은 143만 원이다.
 김홍범(59)씨. 국립 충남대 병원(원장 김봉옥) 소아병동에서 냉, 난방 등 기계설비, 보수 업무를 하고 있다. 경력 10년, 충남대병원에서만 6년 차인 그의 지난 달 월급은 143만 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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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대병원 내 비정규직 시설관리 업무에는 87명이 근무하고 있다. 충남대병원은 지난 5월 병원 내 시설관리 용역입찰 공고를 내면서 기초금액을 26억9800만 원으로 공고했다. 입찰에 참여한 시설관리업체들은 병원 측이 제시한 기초금액을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다.

기초금액 안에는 시설관리에 필요한 직원 인건비와 운영 관리비, 용역업체 이익률 등이 포함돼 있는 게 불문율이기 때문이다. 낙찰업체는 병원 측이 제시한 기초금액을 근거로 23억6200여만 원(낙찰률 87.995%)을 제시했다.

하지만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수십 대 경쟁률을 뚫고 선정된 도급업체가 울상을 짓고 있다. 알고 보니 기초금액은 지난해보다 5900만 원(2014년 27억5700만 원) 줄고, 낙찰금액은 6800여만 원 줄어들었다. 아무리 계산기를 두드려도 이익은 고사하고 직원 인건비조차 맞출 수 없는 상황이 생긴 것이다.

김씨의 월급이 돌연 156만 원에서 147만 원으로 줄어든 주된 이유다. 충남대병원은 왜 터무니없이 지난해보다 낮은 용역관리금액을 제시한 것일까?

"병원 측이 지난 4월 결성한 시설관리노조를 무력화시키기 위한 게 아닐까 의심하고 있습니다. 노조가 생기면 좋을 게 없으니 당해보라는 것 같아요."

"자정부터 오전 6시가 휴식시간? 근무수당 왜 안 줬나"

비정규직 시설관리 직원들은 지난 4월, 노조(공공비정규직노조 충남대분회)를 결성했다. 노조를 만든 것은 6년 만의 일이다. 병원 측이 실수로 용역 기초금액을 잘못 산정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병원 측이 기초금액 산정을 실수로 잘못했다는 말도 나와요. 애초 작성한 원가내역서만 보면 다 드러나는 데 병원 측이 노조 측이 요구하는 원가내역서를 일절 공개하지 않고 있어요."

뒤늦게 노조는 분통 터지는 일을 알게 됐다. 10여 년 동안 병원 측이 연장근무수당과 야간근무수당을 떼먹어온 것이다. 아예 시설관리용역 입찰 때 용역인건비를 편성하면서 주간 근무의 경우 낮 1시부터 오후 1시까지, 야간 근무시 자정부터 오전 6시까지를 휴식시간으로 분류하는 방식으로 연장근무수당과 야간근무수당을 주지 않았다. 이는 전국 국립병원 시설관리직 중 최하위 월급을 받아온 이유이기도 했다.

노조 측이 4교대(주간-주간-당직-비번) 근무자를 기준으로 산정한 사라진 근무수당만 대략 102시간에 달한다. 1인당 월 30~40만 원에 해당하는 액수다(관련 기사 : 충남대 병원은 왜 돌연 3교대 근무로 바꿨나?). 21일 충남대병원은 수당 미지급과 관련해서 "도급업체(용역업체)에 확인해 보겠다"고 답했다.

"노조에서 지방노동위원회에 병원을 상대로 진정을 제기했어요. 점심시간과 야간 밤샘근무시간이 휴식시간이라니요? 세상에 떼먹을 게 없어서 근로자들의 근무수당을 떼먹습니까? 노조를 결성하지 않았으면 떼먹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을 거예요."

병원 측은 올해 용역입찰 때에도 용역인건비에 대기근무시간을 휴식시간으로 분류했다. 그런데도 병원 측은 "근로자들에 대한 임금산정과 지급 여부에 대한 일차적 책임은 용역 업체에 있다"며 책임을 용역업체로 떠넘겼다.

와중에 병원 측은 근무형태까지 변경했다. 십 수 년 동안 해오던 근무형태를 전면 개편한 것이다. 기존 밤 근무형태를 4교대에서 3교대로 변경했는데 기존보다 평일 낮 근무자는 17명이 줄고, 공휴일에는 21명의 근무자가 줄어들었다. 병원 측은 줄어든 인력을 충원하지 않고 근무형태만 바꿨다.

"정말 이해가 안가요. 일하라는 게 아니라 하지 말라는 거예요. 3명이 하던 일이 1명이 하는 곳도 있어요. 피로누적에 사기저하가 이만저만 아닙니다. 스스로 그만두기를 바라는 것 같아요."

병원 측은 지난 8일 "직무 분석을 진행 중"이라며 "그 결과에 따라 향후 운영계획이 일부 변경될 가능성은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바뀐 근무형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바닥 방수페인트 작업에 세면기 설치까지 시켰다"

병원 측은 시설관리직 직원들에게 바닥 방수페인트 공사까지 떠맡겼다.
 병원 측은 시설관리직 직원들에게 바닥 방수페인트 공사까지 떠맡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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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는 또 병원 측이 비정규 시설관리직원들에게 업무 외 일까지 시켜왔다고 밝혔다.

"우리는 시설관리 기술직이예요. 그런데 병원에서는 종종 우리에게 전혀 관련 없는 일을 시킵니다. 한 예로 지난봄에 국제평가의료기관에서 인증 평가를 했어요. 준비 기간만 모두 두 달이 걸렸죠. 그런데 병원 측은 기계실을 청소시키고, 바닥과 벽에 방수페인트를 바르게 했어요.

기계실 바닥 면적만 100평, 옥상까지 합하면 200평 정도가 돼요. 그러면서 우리는 기계까지 관리했죠. 우리 업무가 아닌데 시킨 거예요. 그때 고생을 해서 아직도 팔에 제대로 힘이 들어가지 않아요."

뿐만이 아니다.

"어떤 날은 세면기 30여 개를 가져다 놓고 시설관리직원에게 설치하도록 했어요. 모두 우리 업무가 아녜요. 다른 공사 전문 업체에 맡길 일을 비정규직 시설관리직원에게 시킨 거죠. 그래도 참고 하려고 했는데 대우는 여전히 전국 꼴찌인 겁니다."

21일, 충남대병원은 업무 외 일을 시킨 것과 관련하여 "담당자에게 해당 지시가 업무 외 일이 맞는지 확인해보겠다"고 밝혔다. 김씨는 또 작업 공구조차 제대로 지급되지 않고 있다고 토로했다.

"병실에 보면 냉난방 에어컨 탱크가 있어요. 우리가 봄, 가을 두 번씩 청소합니다. 내가 6년 전에 올 때부터 청소기 좀 사달라고 해도, 지금까지 청소기가 없어요. 충남대병원 측에서 사줘야 하는데 이것도 용역업체에 떠밀고 있어요. 작업하기 위해 좋은 공구가 필요한데, 환경이 매우 열악합니다."

- 임금 책정도 들쭉날쭉하다고 들었는데요?
"전 용역업체 전임 소장 때 일인데요. 지난 7년 동안 원칙 없이 임금을 책정했어요. 예를 들면 같은 기사인데 누구는 월 150만 원을 주고 누구는 190만 원을 지급했어요. 늦게 입사한 기사가 더 받고…. 자기 맘에 들면 더 얹어주는 일이 비일비재했던 겁니다. 이것도 노조 결성하고서야 안 일이에요. 이전엔 전혀 몰랐어요."

- 우선 당장 해결돼야 할 일은 뭐라고 생각하나요?
"두 가지인데요. 우선은 급여예요. 전국 국립대병원 대비 최하위를 받아왔는데 더 깎는 게 말이 됩니까? 똑같은 일을 하는 데 충남대 시설관리직원들과 평균 월급이 거의 60~70만원이나 차이가 나요. 전국 국립대병원 같은 시설관리직원과 비교해도 최하위예요. 자존심도 상하고…."

- 다른 하나는 뭐죠?
"근무시간을 10여 년 이상 해오던 기존 방식으로 원상회복해야 합니다. 아니면 인원을 보충해 주든지요."

김을용 공공비정규직노조 충남대 병원 분회장
 김을용 공공비정규직노조 충남대 병원 분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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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 있던 김을용 공공비정규직노조 충남대 병원 지회장이 말을 거들었다.

"관리규모에 따른 필요인원은 몇 명이고 평 단가는 얼마인지 분석해서 그에 따른 입찰 기초금액을 제시해야 해요. 그래야 적정 금액이 나올 것 아닙니까.

그렇게 기준을 정하고 입찰을 붙여야 하는데, 그동안 그런 부분에 무성의했기에 터무니없는 가격을 책정한 것이죠. 그래야 지금처럼 말도 안 되는 일을 막을 수 있어요."

- 노조 결성으로 불이익을 주는 것 같다고도 했는데 노조결성을 후회하지는 않나요?
"노조를 만들지 않았으면 우리는 계속 당하고 있었을 겁니다. 그동안 인간적으로 많이 소외당해 왔어요. 그래서 노조를 통해 뭉쳐서 권리를 주장하게 된 겁니다. 끝까지 싸울 생각입니다."

- 시민들에게 바람이 있다면요?
김홍범 : "병원과 환자들을 위해 열심히 일한 대가가 겨우 이것밖에 안 되는가 싶어서 굉장히 억울합니다. 기댈 곳이 없어요."

김을용 노조분회장 : "용역직원들이 이렇게 차별받는 현실을 병원을 이용하는 시민들도 아셨으면 해요. 힘을 실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편집ㅣ곽우신 기자



태그:#충남대병원, #부당대우, #갑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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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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