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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제정된 인성교육진흥법이 오는 7월 21일부로 시행된다. 초중고에 재학 중인 자녀를 두고 있다면 눈여겨 볼만한 법령이다.

인성교육은 '인성'을 교육을 통해 기르겠다는 것인데 '인성'은 영어로 'character, Personality' 즉, 개개인의 성격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교육부가 말하는 인성이 무엇인지 살펴보자.

교육부는 우선 '핵심가치·덕목'으로 "예(禮), 효(孝), 정직, 책임, 존중, 배려, 소통, 협동"등 7대 덕목을 지정하고 이를 실천하기 위한 세부항목인 '핵심역량'을 제시했다. 아래는 교육개발원에서 개발한 인성검사도구에서 사용되는 평가항목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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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중등 학생 인성수준 조사 및 검사도구의 현장활용도 제고 방안연구 中" .
ⓒ 현주(한국교육개발원,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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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직, 책임, 공감, 소통, 자율 모두 좋은 말이다. 하지만 '바람직한' 인성의 정의는 문화적 맥락과 시대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한다. 동양에서는 예의로 여겨지는 간접화법이 서양인들에게는 답답함을 느끼게 한다. 또한, 조선시대에는 신분제에 불만을 갖지 않고 순응하는 것이 노비에게 요구되는 '바람직한' 인성이었을 것이다.

프랑스에는 한국의 인성교육과 비슷한 개념으로 '시민교육'이 있다. 프랑스의 시민교육은 프랑스 혁명 이후 민주의식 확립을 통해 구체제로 돌아가는 것을 막기 위해 실시되었다. 하지만 1960년대 중반 이후 많은 이들이 학교와 시민교육을 지배계급의 지배를 위한 도구로 생각하게 되었다.

국가 또한 수업내용이 급진적으로 변할 것을 우려해 시민교육을 중등교육과정에서 제외했다. 하지만, 시민교육의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되었고 결국 시민교육은 다시 부활한다. 현재 프랑스의 시민교육에서 '인권에 대한 감수성, 개인 및 집단적 책임의식, 비판정신과 논증의 실천을 통한 판단력 함양' 등을 통한 적극적인 시민을 양성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출처 : "독일, 프랑스, 한국의 시민교육", 우리교육매거진)

역사적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인성교육은 때로는 개인보다 국가의 체제 유지를 위해 이용될 수 있다. 이렇듯 '바람직한'인성이란 매우 상대적인 개념임을 알 수 있다.

이런 복잡한 가치판단의 문제는 뒤로 미루더라도 이러한 핵심역량(Core value)들이 무엇인지에 대해 합의하는 것은 쉽지 않다. 미국의 경우에도 수십 개의 기관들이 인성과 관련된 핵심역량을 제시하지만 서로 공통되는 항목들이 많지 않다. 그리고 설사 핵심역량에 대해 합의를 하더라도 해당 역량을 측정하고 평가하는 것은 훨씬 어려운 영역의 일이다.

정말 요즘 아이들의 '인성' 자체가 문제일까?

교육부는 '인성교육진흥법'의 제정이유를 "입시와 성적 중심의 교육 및 학교폭력 등으로 인한 공교육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인성교육 강화를 통한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즉 많은 문제들의 원인이 '개인'의 특성인 인성에 있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지난주, 예쁜 쌍둥이를 늘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으로 해놓는 지인과 저녁을 함께 하던 중 이런 말을 들었다.

"애 키우면서 알게 되는 진리가 뭔지 알아? 애들은 시킨 대로 절대 안 해. 지가 보는 그대로 따라하지"

그렇다. 한국의 학생들은 중학생 때부터 치열한 입시 속에서 '협동'과 '공감'보다는 '경쟁'에 익숙해진다. 그 뿐 아니라 미디어에서 접하는 세상은 매일이 비상식의 연속이다. 정론(政論)이 아닌 당론(黨論)에 매몰된 정치인들의 모습에서 어떻게 '소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며, 국가의 안위를 책임져야 할 정보기관의 위법행위를 보며 어찌 '정직'을 배울 수 있을까?

자기 또래 수백 명이 타고 있는 배가 가라앉고 있는데 도망치는 어른들과 속수무책인 정부를 보면서, 사회와 타인에 대한 '책임'과 '신뢰'를 얼마나 가질 수 있을까? 이런 현실 속에서 머리로만 배우는 인성교육이 얼마나 효과적일지는 의문이다.

인성교육은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빨간약이 아니다. 한국사회에 깊게 뿌리내린 경쟁문화는 경제성장의 둔화로 인한 양질의 일자리 감소와 맞물려 점차 심화되고 있다. 지금 한국사회에 인성교육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성장의 한계에 부딪친 경제구조 자체에 대한 진지한 반성과 통찰을 통한 근본적인 해결책의 모색이다. 이를 무시하며 많은 구조적 문제들을 그저 개인만의 문제로 몰아간다면 인성교육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

인성교육진흥법이 성공하기 위한 조건은?

아직 인성교육진흥법의 영향을 예측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는 현재 한국사회가 처한 상황을 환기 시켜준다는 점에서는 분명 긍정적이다. 이 법안이 부작용 없이 의도한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들이 선행되어야 한다.

인성교육진흥법이 발표되고 벌써 250여개의 인성교육과 관련한 민간업체가 등장했다. 심지어 종교계에서도 "이번 기회를 청소년 포교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으며, 모 대학에서는 이미 불교와 접목한 인성교육 지도사 과정을 진행 중이다.

민간자격증의 경우 교육비를 지불하면 쉽게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는 경우가 다수인데다, 교육과정이 부실한 경우도 많다. 즉, 양성되는 인성교육지도자라는 이들의 전문성이 떨어질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이로 인해 발생할 자격증 장사, 인성교육 과정에서의 비효율성을 방지하기 위해 교육당국은 교육기관과 강사의 인증기준을 철저하게 하고, 인증 후에도 지속적인 관리를 시행해야 할 것이다.

사실 민간업체가 '인성교육'에 벌떼같이 몰려드는 이유는 '돈'이 되는 새로운 사교육 시장과 연결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지난 1월 22일 대통령보고에서 "올해부터 교원을 양성하는 교육대·사범대와 일부 대학에서 시행 중인 인성평가를 강화한 뒤 다른 대학에도 우수 사례를 발굴해 확산시키겠다"며 고교교육 정상화 기여대학 지원사업과 연계해 우수사례를 지원하는 등"대입에서 인성 평가를 확대 반영하도록 유도할"계획이라고 밝혔다.

발표 후 학계와 현장의 많은 질타를 받고, 결국 지난 7월 14일 "별도로 계량화된 평가 검사나 시험" 등은 명확히 제한한다고 한발 물러선 모습을 보였지만, 여전히 '학생부 종합전형' 즉, 입학사정관 제도 등에서는 '대학의 자율성을 존중'하되 '고교교육 정상화에 기여할 수 있도록 유도'해 나갈 것이라는 입장을 취했다. 최근 입시에서 입학사정관(학생부 종합전형)전형의 비율이 높아지는세가 한국 특유의 높은 교육열과 결합하면 새로운 사교육 시장과 함께 가계의 교육비 부담이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교육 당국은 인성교육과 대입 평가를 분리하고, 이에 대한 분명한 태도를 통해서 학생과 학부모들의 혼란을 방지해야 한다.

입학사정관제(학생부 종합전형)의 비율은 매년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인성교육의 학생부 반영은 새로운 유형의 사교육 시장을 형성할 수 있다.
▲ 입학사정관제도 증가 추세 입학사정관제(학생부 종합전형)의 비율은 매년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인성교육의 학생부 반영은 새로운 유형의 사교육 시장을 형성할 수 있다.
ⓒ 진일석(원자료:대교협 대입전형실시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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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성'은 글자 몇 자 외우고, 문제를 푼다고 길러지는 것이 아니다. 인성마저 입시경쟁의 승자가 되기 위한 스펙이 된다는 것은 인성교육의 본질과 모순된다. 교육당국은 이 점을 명심하고 인성교육이 평가의 도구로 쓰이지 않도록 입장을 분명히 해야 한다.

교육의 형태 또한 교실에서 이루어지는 1회성의 인성교육보다는 일상에서 체험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교육을 시행해야 할 것이다. 언젠가는 인성교육을 해야 한다는 말이 장난처럼 여겨지는 한국사회가 되기를 바라며 글을 맺는다.

[기타 참고 자료] <인성교육진흥법>,국가법령자료센터


태그:#교육, #교육부, #인성, #인성교육, #인성교육진흥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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