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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각사 앞 길, 철학의 길
 은각사 앞 길, 철학의 길
ⓒ 김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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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각사와 버스 정류장 사이에 수로를 따라 걸을 수 있는 좁다란 길이 있다. 이름은 "철학의 길"이다. 철학의 길은 봄이 되면 빛을 발한다. 흩날리는 벚꽃 사이의 일본 전통식 목조 건물이 가지런히 일렬로 진열되어 있는 길. 한참을 걷다 보면 어느새 잡념이 사라진다. 제법 길다. 굴곡 지지 않는 평탄한 길을 끝까지 걸으면 1시간 정도 걸린다. 벚꽃 흩날리는 봄이 아니었지만, 햇살은 따사롭고 길을 평탄해 기분이 좋아졌다.

가는 길 내내 신이 났다. 여자 둘이서 "나 잡아봐라" 하는 것처럼 뛰기도 하고 가만히 서서 어느 가정집을 무심하게 사진 찍기도 했다. 철학의 길에는 가정집도 있지만, 이것저것 많은 상품을 판매하는 가게, 음식점들이 있다.

철학의 길
 철학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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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이야기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교토에 왔을 때, 짧은 일정을 소화해내려면 "은"이냐 "금"이냐 즉, 은각사이냐 금각사이냐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선다. 일정이 넉넉하다면 물론 두 곳을 가보라 권하고 싶지만 그렇지 않다면, 선택은 불가피하다. 은각사의 고즈넉함이냐, 금각사의 화려함이냐. 하지만 은각사에는 장점 하나가 더 있다.

바로 코 앞에 위치한 "철학의 길"이다. 물론 금각사 앞에도 길이 있지만, 지극히 주관적인 입장에선 철학의 길에 견줄 바는 못된다.

철학의 길은 은각사를 닮아있다. 햇살이 따사롭게 가라앉은 오후, 나무는 앙상하지만 봄이면 벚꽃이 필 것이다. 수로는 고요하게 흘러가지만, 바람은 살랑살랑 따사롭다. 시간이 조금씩 흘러, 어둠이 찾아오기 시작하자 이곳저곳에서 붉은 등을 켠다. 반투명 유리창으로 비치는 주황빛은 목조 건물과 참 잘 어울린다. 

2층 목조 건물과 정원
 2층 목조 건물과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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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를 다니며, 2층 목조 건물과 정원이 있는 집을 많이 보았다. 상황이 여의치 않아 정원이 없는 집 앞에는 꼭 화분이 놓여 있었다. 길과 정원 경계선인 듯했다. 집 앞에 가지런히 놓여 있는 화분이 길가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햇살을 마음껏 받은 화분은 참으로 복받은 듯하다.

그리고 그 옆에는 자전거가 놓여있다. 자동차만큼이나 많은 자전거. 집 앞으로 나와 자전거를 타고 어디론가 흘러가는 누군가가 상상이 된다.

오사카와 도쿄는 물론 우리가 상상하는 그 모습은 아닐 것이다. 찌르는 듯한 고층 빌딩과 볼거리, 먹거리, 즐길 거리가 가득한 거리를 상상했다면 쿄토는 조금 심심할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래서 더 좋았다. 내가 상상한 일본의 모습 그대로가 현실이 되어 있었으니깐.

철학의 길, 요지야
 철학의 길, 요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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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길에서 제법 유명한 카페가 있다. 요지야 카페. "요지야 카페 가는 방법"을 검색해보았더니 지식인은 명쾌하게 "이렇게 가도 되나 싶을 때까지, 혹시 지나친 건 아닌지 의심이 들 때쯤에 도착할 수 있다"라고 답한다. 그래서 이미 마음을 단단히 먹고 출발을 했다.

약 2km 남짓하는 철학의 길 수로를 따라 끝없이 걸었다. 그렇게 단단히 먹은 마음은 10분 20분 지나니 서서히 사그라들었다. 나래는 점점 의심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분명 지나쳤을 거라고.

나는 아니라며 타일렀지만 사실 나도 확신이 들지 않았다. 이윽고 우리 둘 입에서는 포기하자는 말과 함께 그냥 저까지만 걷자는 결론에 다다랐다. 버스 시간을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시간이 너무 흘러버리면 돌아가는 길이 막막했다. 정말 발길을 돌리려는 순간 좌측에 카페를 운명처럼 발견했다. 

넓은 정원이 있는 요지야 카페, 알고 보면 화장품 회사
 넓은 정원이 있는 요지야 카페, 알고 보면 화장품 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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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문을 지나 돌담길을 따라 걷다 보니 넓은 정원이 나온다. 양측에는 일본식 목조 건물이 떡하니 우리를 바라본다. 우측에는 요지야 화장품과 기념품을 판매하는 곳이다. 요지야는 기름종이 하나로 일본 여심을 사로잡은 메이크업 브랜드다. 좌측에는 요지야 카페가 있다.

사람들은 일렬로 앉아 정원에 서 있는 우리를 바라보았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매우 조용하다. 우리나라도 이런 문화가 있었으면 좋겠구나 싶을 정도로 고요하다. 주위가 조용하니 나의 말소리도 더 작아진다. 그러니 새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온다.

땅거미 진 어둠이 찾아오자 건물의 빛은 더 선명하다. 커다란 창문에 주황빛이 환하다.

목조 건물 사이로 새어 나오는 주황빛
 목조 건물 사이로 새어 나오는 주황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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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교토, #교토여행, #은각사, #철학의길, #요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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