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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 때는 내가 원하는 작업 해보게."
"방학 때는 내 스타일 찾으려고." 

매 학기 종강 무렵 미술대학 학생들이 버릇처럼 하는 말이다. 그러나 두 달 남짓한 방학기간은 턱없이 부족하다. 이들은 떠밀리듯 휴학을 선택한다. 취업을 염두에 둔 많은 대학생들에게 휴학은 전필(전공필수)과목이 된 지 오래지만, 미술대학에서의 휴학은 조금 다르다. 예술가를 꿈꾸는 이들이 무엇을, 어떻게, 왜 배워야 하는지 갈피를 잡지 못해 멈춰서고 있는 것이다.

동양화과 졸업을 앞둔 김민정(24, 가명)씨는 1년을 휴학하고 올해 복학했다. "이대로 졸업하면 작가로서 뭘 할 수 있을지 무서웠다"고 했다. 작년 민정씨와 같은 학번 학생의 과반수가 휴학계를 냈다. 개인차가 있겠지만, '졸업 작품을 하기 전의 부담, 작가로서 진로에 대한 고민'이 공통된 이유였다. 미술대학 수업에서 겪는 학생들의 불안과 좌절은 심각한 수준이다. 졸업 후 생계 걱정은 물론이고, 예술가로서 정체성을 찾지 못하여 꿈이 좌절되는 경우가 많다.

잡으려 할수록 멀어지는 예술

ART 예술가로 살아남기!
▲ ART 예술가로 살아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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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예술가를 꿈꾸며 대학에 입학한 학생들이 휴학과 복학을 반복함에도 불구하고 끝내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찾지 못하는 걸까? 회화과 졸업생 이유리(26, 가명)씨는 여러 예술의 장르가 융합하는 현대 미술의 추세를 반영하지 못하는 딱딱한 미술대학 체제를 지적했다.

그는 "동시대 예술의 흐름과 괴리된 전공 구분과 수업 내용이 학생들의 휴학을 부추기고 있다"며 "한국 미술대학 특유의 자기 '과'의 정통과 역사를 지키려는 것이 역설적이게도 학생들의 작품 제작 기회를 빼앗고 있다, 갑갑함을 느낀 학생들은 학교를 벗어나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대표적 미술대학 중 하나인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은 동양화과, 회화과, 판화과, 조소과, 예술학과 등 11개 전공으로 구분되어 있다.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은 동양화과, 서양화과, 조소과, 공예전공 등 7개 전공으로 구분되어 있다. 현대 작가들은 다양한 표현양식을 구축하며 동시대 미술의 새로운 영역을 확장해가고 있다. 동시대미술 작품은 매체 간의 경계가 사라지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다양성의 시대에 기존의 전공 구분 방식은 시대착오적이다. 그리고 이같은 전공 구분에 교수와 학생이 얽매여 있다.

평론가 반이정은 칼럼에서 여전히 20세기 미술사를 고답적으로 학습하는 미대 커리큘럼이 미대생의 흥미와 동기를 떨어트린다고 지적한 바 있다. 길게는 3학년까지 끌고 가는 '기초실기'라는 이름의 커리큘럼에 회의를 느끼는 미대생도 상당수다. 전공 기초 실기는 동양화과의 경우 '수묵화', '채색화' 등의 전공 기초 수업으로, 주로 과별로 구분된 매체의 기법을 익히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동양화과 강사 지은상(45, 가명)씨는 "실기 수업의 목표가 '기법 배우기'라면 무의미하다. '풍경', '인물', '정물'과 같은 방식이 아니라, 학생들이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 중 자발적인 주관에 의해서 소재와 매체를 선택할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며 단순히 실기 수업 시수의 문제는 아니라고 지적했다. 그는 "기존의 '채색화', '수묵화'와 같은 실기 수업은 '정체성 찾아가기'처럼 작업의 내용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기초실기' 수업은 이름 그대로 학생으로서, 예술가로서의 의식을 키우고 기반을 다지는 수업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A+ 받으면 좋은 예술가가 될 수 있을까? 

공식 교과과정이 무색할 정도로 실기수업의 실제 내용과 방향은 교수의 재량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학생 개개인이 작품을 창조해 나가는 과정이 수업이기 때문이다. 수업마다 '좋은 작품'에 대한 평가도 지극히 주관적이다. 학생들은 추구해야 할 예술적 지점을 전적으로 교수에게 맡긴다. 교수에 따라 지극히 개별적인 수업은 학교, 학과에서 원하는 졸업생, 작가상 또한 애매해지게 만든다.

서양화과 강사 김상현(48, 가명)씨는 다음과 같이 평가방식의 문제점을 꼬집는다.

"미대 교수들은 고민 없이 학생들을 기존의 수업과 평가방식으로 내몰고 있고, 학생들은 교수의 평가에 목을 맨다. 평가를 해야만 하는 교수들이나, 평가를 받아야만 하는 학생들이나 참 안됐다. 나이 많은 남성교수들은 20대 여학생들의 자기 이야기로 가득한 작업내용을 공감하지 못한다. 학생들은 교수가 무엇을 원하는지 읽히지 않으면 불안해한다."

평가를 잘 받기 위해 교수의 입맛에 맞춰 작품을 만들다 보니 미술이란 무엇인가, 왜 하는가, 미술가로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에 대한 근원적 물음과는 멀어져간다. 졸업 때까지 자기 작업이 없다고 말하는 학생들도 있다. 서울에는 홍대와 강남 일대를 중심으로 미술대학원이나 유학을 준비하는 학원들이 성행하고 있다. 한 학원대표는 "미술대학 졸업생들도 포트폴리오에 넣을 작품을 제작하기 위해 온다, 수업 과제 이외에 자기 작업이 없는 학생들도 부지기수"라고 전했다.

예술가로 살아남기

미술대학에서 미술을 완벽히 규정하고 가르치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교수도 학생도 무엇을 가르치고 배워야 할지 알기 어렵다. 학교 내에서 '교육'과 '예술'이 별개의 분야라는 이분법적 생각에서 벗어나, 교수들도 수업이나 평가에서 다양한 시도를 해야 한다. 학생들도 예술적 주체로서 세상을 치열하게 마주해야 한다.

"저는 교육을 교육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왜냐면, 교육은 검증된 걸 가르쳐주는 거잖아요. 그런데 현대예술은 패러다임이 너무 자주 바뀌어요. 그걸 검증해서 아이들에게 가르치려다보면 이미 현장과는 동떨어진 걸 가르칠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저는 날것 그대로 가지고 가서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눠요. 그렇다고 제 방식이 제일 좋다는 건 아니에요. 저는 많은 현대예술 텍스트 중 하나일 뿐이에요. 저는 교육이 작업 같아요. 작가의 가치관이 들어가야 하는 거니까요. 작업이라는 게 꼭 구체적으로 뭘 만들어야 하는 게 아니라, 시스템에 새롭게 접근하고, 그걸 통해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거 아닐까요. 저는 이게 예술의 가치라고 생각해요." - 김월식 작가 포럼앤포럼, 2012 인터뷰 중

'예술가로 살아남기'라는 책에서 저자는 예술로 성공하기 위한 조건으로 재능, 직접적으로 할 수 없는 일을 다른 방법을 통해서 완수하는 능력, 제대로 될 때까지 노력하는 열정의 세 가지를 꼽는다.

하지만 자신도 '현대예술 텍스트 중 하나'라는 김월식 작가의 말처럼, 예술가가 되기 위한 절대조건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미술대학 학생들에게 내가 원하는 작업을 하고, 작가로서 꿈을 키우는 시간이 방학, 휴학 기간이 아니라 수업 시간일 수는 없을까. 물론 미술대학 안에서만 배울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미술대학에 다니는 시간이 젊은 예술가들의 예술 행보에 의미 있는 시간이어야 하지 않을까.

○ 편집ㅣ장지혜 기자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배혜진 시민기자는 서울청년정책네트워크(http://seoulyg.net) 대학생기자단입니다. 청정넷은 7월 13일부터 7월 19일까지 열리는 서울청년주간(http://youthweek.kr/)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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