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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별 따기'로 비유되고 있는 대한민국의 취업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대학생들은 자신을 기업이 원하는 사람으로 만들어간다. 스토리 있는 자기소개서를 위해 각종 대외활동에 열을 올리고 비용을 지불하면서까지 스펙 하나라도 더 늘려야 하는 것이 취업준비생들의 현실이다. 특히 돈을 지불하고 취업에 필요한 교육이나 정보를 얻는 '취업 사교육'시장은 나날이 커져가고 있으며 사교육비에 대한 부담 또한 지나치게 높아지고 있다.

한국고용정보원의 '2015고용동향브리프' 4월호 따르면 4년제 대학졸업자의 취업을 위한 평균 사교육비용은 510만 원으로 나타났다. 이 비용은 대학생들의 취업에 소요되는 기간인 평균 5.2년 동안의 비용으로 본격적인 취업준비기간인 1.2년에 집중되어 있다. 여기에는 어학연수, 자격증 준비, 어학 성적, 교육 등에 지출하는 비용이 포함되어있는데 이는 대부분 대기업의 1차 전형인 서류에 기본적으로 들어가야 하는 항목들이다.

보통 대기업의 채용절차가 서류, 인·적성 검사, 면접으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서류를 준비하는 것 이외의 사교육비용까지 고려하면 취업준비생들은 훨씬 많은 비용을 지출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취업준비생들은 사교육비부담을 어떻게 해결하고 있을까. 그들은 왜 부담이 되는 비용을 지불하면서 까지 취업사교육을 받으려고 할까. 실제 취업준비생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기 위하여 취업준비가 한창인 서울소재의 4년제 대학생 두 명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비싸고 대비도 힘든 인·적성 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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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승헌씨의 취업 사교육비 지출 내역 표
ⓒ 김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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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자원경제학과를 졸업한 송승헌씨(가명, 28)를 처음 만났을 때, 그의 표정은 밝았다. 그의 얼굴에선 '불안한 취업 준비생'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인터뷰가 시작된 뒤 취업사교육에 대한 경험과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그의 모습에서 진지함이 느껴졌다.

그는 지금까지 토익학원, 오픽(OPIc) 학원을 통해 어학점수를 만들었으며 기업마다 다른 인·적성 검사 대비를 위한 인터넷 강의를 여러 번 수강했다. 면접컨설팅 같은 특별한 사교육이 포함되지 않은 평균적으로 많은 취업준비생들이 받고 있는 것들이다. 토익과 오픽학원 등록에 한 달에 40만 원, 각 기업별 인·적성 검사 대비 인터넷 강의 10강(일주일 분량)에 10만 원, 적성검사문제집 3회 분량에 2만 원 정도가 들어갔다.

채용시즌이 되면 동시에 여러 기업의 인·적성검사와 면접을 대비해야 하므로 수입이 없는 취업준비생 입장에서는 충분히 부담이 되는 돈이다. 그는 현재 용돈을 쪼개어 그 비용을 충당하고 있는데 결국 경제적으로는 부모님께 많이 의지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이렇게 부담이 되는 돈을 지불하고 받은 사교육의 내용은 과연 만족스러울까? 그는 인·적성 검사 대비과정에 대한 불만을 힘주어 말했다. 시중에 나와 있는 각 기업별 모의고사 문제집이나 인터넷 강의가 기업의 출제 스타일을 파악하는 데는 어느 정도 도움이 되긴 하지만, 문제를 풀어서 인성이나 적성 검사를 대비하는 것에는 분명 한계가 있는데 끊임없이 대비 자료들이 나오고 있어서 곤란하다는 것이다.

주어진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골라야 하는 인성검사 문제는 해답도 나와 있지 않기 때문에 답답하기만 하다. 실제 인·적성 검사를 대비하는 인터넷 강의의 내용도 반복되는 것이 많고 별로 도움이 되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남들이 다 하기 때문에 계속 콘텐츠를 구매 하고 있다고 한다.

자격증도 따야하고, 영어학원도 다녀야 하고

인문계열의 취업난에 빗대어 '인구론(인문계졸업생 구십 퍼센트가 논다)'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그에 비하여 특수 기술을 배우는 공학계열은 취업의 관문이 상대적으로 더 넓다고들 하는데, 그렇다면 공과대학 학생들은 취업사교육의 그늘에서 벗어나 있는 것일까.

건축사회환경공학과 전공인 조민혁(가명, 25)씨는 마지막 학기를 다니며 취업준비를 하고 있다. 과학생회 활동도 하고 동아리 활동도 하면서 나름대로 대학생활을 알차게 보냈다고 생각했지만, 취업 준비를 앞둔 지금 마땅한 스펙이 없어서 걱정이다.

결국 채용 서류에 넣을 특별한 스펙이 없어 한 달 전 토목기사자격증 준비를 시작했다. 그는 아직은 독학으로 공부를 하고 있지만 한 번 떨어지면 인터넷 강의를 들어야 한다며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실제로 주변의 동기들은 자격증 취득을 위해 인터넷 강의를 많이 수강한다고 한다. 알아보니 현재 토목기사자격증 대비강의는 28강좌 완성에 50만 원이라는 적지 않은 비용에 팔리고 있었다.

이외에도 조민혁씨는 토익점수를 더 올리기 위해 학원에 등록할 예정이며 몇 달 전 요즘 새롭게 필수 스펙이 되었다는 토익스피킹 학원을 다녔다. 실무능력을 강조하는 현재 기업들의 채용 트렌드에 맞추어 '영어로 유창하게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임을 증명해주는 스펙을 갖추기 위해서였다.

취업에 드는 사교육비용은 어떻게 하고 있냐는 질문에 그는 시골에 계시는 부모님께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아 전적으로 자신이 충당하고 있다고 했다. 틈틈이 과외를 하고 장학금으로 받은 돈을 모아 놓고 있으며, 앞으로 들어가는 비용 또한 빠듯하게 준비해야 한다고 한다. 그는 이번 여름 방학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될 취업준비 계획으로 면접을 위해 피부 관리와 다이어트 또한 해야 한다며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공과대학 학생도 취업 사교육에서 벗어나 있지는 않은 것이다. 공인 어학 성적 취득을 위한 영어학원은 계열과 상관없는 취업준비생들의 대표적인 사교육이며, 오히려 공과대학 학생들 사이에서는 전문자격증 취득을 위한 사교육이 유행하고 있었다.

과열된 취업 사교육과 기업의 채용제도

보통의 취업준비생들은 기업 앞에 '을'이 되어 어학점수를 만들고 자격증을 준비하고 자신의 적성과 인성을 평가하겠다는 시험에 대비한다.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기업이 평가하는 모든 것들이 남들보다 뛰어나야하며 채용정보도 빠르게 알아내야 하기 때문에 취업준비생들은 취업사교육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러한 취업사교육의 과열은 많은 문제점을 낳았다.

가장 표면적으로는 평균적인 사교육의 액수가 500만원을 넘을 정도로 취업준비생들의 경제적인 부담이 커졌다. 더 큰 문제는 아직 일정한 수입이 없는 대학생들의 비용 부담은 결국 부모님의 경제력 차이에 따른 불평등 문제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실제로 한국고용정보원의 조사에 따르면 월 1000만원 이상의 수입을 가지고 있는 부모의 경우에는 자녀의 취업 사교육비로 평균 1092만 원, 월 300~500만 원의 수입을 가진 부모의 경우에는 평균 363만원을 지출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불안한 취업준비생들의 심리를 바탕으로 가르치는 데에 한계가 있는 부분까지 사교육이 성행하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교육이라는 이름 아래 수많은 인터넷 강의와 면접 컨설팅 회사에서는 인성, 사상, 태도 같은 개인의 고유한 특성을 기업이 원하는 정답에 맞추어 바꾸도록 하는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인·적성 검사 대비 강의로 유명한 한 취업컨설턴트는 기업의 인성 검사에 대해서 "그 기업이 원하는 인재는 어떤 인성을 가지고 있을지 생각해야 한다. 바로 자기 자신이 그런 사람이 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인성 모의 테스트를 통한 자기점검 또한 필요하다"라며 기업의 수요에 인성을 맞추는 일이 취업을 위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과열된 취업 사교육 시장 속에서 많은 취업준비생들은 비싼 돈을 주고 기업이 원하는 모습과 스펙을 산다. 결국 기업은 사교육을 통해 얻은 스펙을 평가하고 사교육을 통해 기업에 맞게 교육된 정답을 말하는 사람을 '인재'로 선발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현재 기업들의 채용제도는 참인재를 뽑는 방식으로 합리적인 것일까. 과도한 사교육을 유발하고 오로지 기업이 원하는 모습으로 자신을 바꾸게 하는 현재의 채용제도를 취업준비생으로서 한 번쯤 의심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김혜진 시민기자는 서울청년정책네트워크(http://seoulyg.net) 대학생기자단입니다.



태그:#취업, #취업사교육, #청년, #인적성검사, #불평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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