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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9.01 경남발전연구원 구내식당 메뉴
▲ 경남발전연구원 구내식당 2014.09.01 경남발전연구원 구내식당 메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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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근한 이불 속에서 달콤한 단잠에 빠져 있는데 갑자기 머리맡에 놓아둔 휴대전화 알람이 시끄럽게 울어댄다. 알람 소리에 살짝 짜증이 나 눈도 뜨지 않은 채 손을 더듬거려 알람을 끈다. 일어나진 않는다. 5분 단위로 3개의 알람이 맞춰져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앞으로 2번의 알람이 더 울리면 일어나는 거다.

무거운 몸을 일으켜 눈을 반쯤 감은 채 욕실로 들어가 씻는다. 머리를 털어 말리고 옷을 챙겨 입는다. 삼시세끼 중 아침 식사가 제일 중요하다지만, 아침을 안 먹고 산 지 벌써 몇 해가 지났는지 셀 수도 없다. 이제는 아침을 먹으면 속이 이상할 정도로 적응이 된 상태다. 그렇게 집을 나와 꽉 막힌 도로를 달려 겨우 회사에 출근했지만, 여전히 내 마음은 포근한 이불 속에 있다.

비몽사몽 오전 격무에 시달리다 보면 어느새 점심 시간이 된다. 점심 시간에 든든하게 밥을 먹고 나서야 제대로 정신이 차려진다고나 할까? 1시간의 점심 시간을 밥 먹는 데만 다 쓰기엔 너무 아깝다. 그 시간 만큼은 여유로운 직장인이고 싶기 때문이다.

점심 시간 30분 전부터 동료와 함께 오늘의 메뉴를 고른다. 이전 직장에서는 회사에 구내식당이 있었기 때문에 그냥 나오는 대로 먹으면 됐다. 그 때는 이 놈의 '짬밥'이 얼마나 먹기 싫었는지 모른다. 지금 회사는 구내 식당이 없기 때문에 매일 밖에 나가 사 먹어야 한다. 그런데 이것도 하루 이틀이지 맨날 메뉴 고민하는 것도 이제 스트레스가 됐다.

회사에서 밥값으로 나오는 '식대 지원금'은 한 달에 10만 원. 한 달에 20~22일 정도 근무를 하니 한 끼에 5천 원 꼴이다. 밖에 나가 5천 원짜리 밥 먹기란 하늘의 별 따기인 시대인데 식대는 올라갈 줄 모른다. 몇 차례 노사협의회를 통해 회사에 건의했지만 '지원금'이라는 이유로 거절 당했다.

'짬밥' 두 번 다시 쳐다보지 않으려 했건만...

2014.11.12 노동지청 구내식당 메뉴
▲ 고용노동부 창원지청 구내식당 2014.11.12 노동지청 구내식당 메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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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회사는 경남도청이 있는 경남 창원시 의창구에 있다. 이 동네는 경남 지역 관공서가 모인 곳이다. 그래서 그런지 주변에 식당이 많다. 하지만 손에 5천 원 들고 나가 밥을 먹을 수 있는 곳은 거의 없다. 분식점에 가서 라면에 김밥만 먹어도 5천 원이 훌쩍 넘는다. 게다가 점심 시간이 되면 주변에서 근무하는 수많은 사람이 식당으로 몰려 1시간 안에 밥 먹고 들어오기에도 빠듯할 정도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점심 시간에 밥 먹는 것도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계속되는 물가 상승에 점심값도 부담스럽고 무엇보다 아까운 건 '시간'이었다. 그래서 대안으로 선택한 방법은 '구내 식당'이었다. 이전 직장에서는 '짬밥'이라고 두 번 다시 쳐다보지 않겠다고 했던 식판밥을 스스로 다시 찾아갔다.

회사 근처 관공서에는 각 서에서 운영하는 구내 식당이 있다. 그 중 일부 구내 식당은 외부인에게도 열려 있다. 내가 근무하는 곳 근처로 보자면 '경남발전연구원', '고용노동부 창원지청', '국민연금 창원 지점'의 구내 식당은 일반인도 이용할 수 있다.

그 중 가장 많은 사람이 즐겨 이용하는 곳은 경남발전연구원 구내 식당이다. 식당 규모도 크고 위치 또한 좋아 많은 사람이 즐겨 찾는다. 나도 이 식당을 약 3년가량 이용해왔다. 처음엔 많은 사람이 이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언제든 가면 편안하게 밥 먹을 수 있었는데 최근엔 일찍 서두르지 않으면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한다. 가격은 최근 몇 년간 500원이 인상돼 3500원이다. 요구하는 사람들이 많아져 카드 결제도 가능하고 한 번에 식권을 여러 장 구매해 놓고 이용할 수도 있다.

경남발전연구원의 폭발적인 인기로 사람이 별로 없는 조용한 식당이 필요했다. '경남발전연구원은 사람 많아서 안 간다'는 사람들은 바로 근처에 있는 고용노동부 구내 식당을 이용했다. 경남발전연구원과 불과 20여 미터 거리에 있으면서도 식당 규모가 작고 카드 결제가 불가능해서 그런지 이용하는 사람들이 적어 북적거리면서 밥 먹는 게 싫은 사람들이 이용하기 좋았다.

몇 년간 경남발전연구원만 이용하다 처음 고용노동부 식당을 갔을 때는 음식의 미묘한 맛의 차이 때문에 약간의 거부감이 들었지만, 시간이 지나자 이내 적응이 됐고 곧 단골이 되었다. 매주 월요일 각 구내 식당들은 일주일간의 식단표를 붙여 놓는데 식단표 사진을 찍어 온 사람들이 그룹 채팅방을 만들어 공유하고 각자 마음에 드는 메뉴가 나오는 식당을 이용하는 '꾀'를 부리기도 했다.

이른바 '구내식당 특식'이 나오는 날이 일주일에 한 번 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분식'이 나오는 날이다. 고용노동부 식당은 목요일, 경남발전연구원은 금요일이 특식날이다. 분식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날에 맞춰 각 식당을 이용하면 되고 싫어하는 사람은 반대로 움직이면 된다.

경남발전연구원과 고용노동부 길 건너편에 있는 국민연금관리공단 구내 식당은 다른 식당에 비해서 최근 단가가 500원 더 올라 4천 원에 밥을 먹을 수 있다. 길 건너편에 근무하고 있는 사람들은 주로 이 식당을 이용한다. 이 식당은 2014년 8월까지 경남발전연구원 구내 식당을 운영하던 사장님의 동생이 운영한다고 했다. 하지만 길 건너편이라 멀고 단가가 500원 비싸 잘 이용하지는 않았다.

900원짜리 커피까지

2014.10.27 국민연금 창원지점 구내식당 메뉴
▲ 국민연금 창원지점 구내식당 2014.10.27 국민연금 창원지점 구내식당 메뉴
ⓒ 강상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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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내 식당에서 밥을 먹고 나면 30분 정도의 시간이 남는다. 나는 이 30분의 시간을 이용해 한 달에 책을 1~2권 정도 읽었다. 평소 시간이 없어 책을 못 읽는다는 말을 많이 했는데 구내 식당 이용으로 밥값도 아끼고 덤으로 책 읽을 시간까지 생겼다. 그리고 가끔은 밥 먹고 경남도청 안에 있는 공원을 걷는데 계절별로 예쁜 꽃과 나무들이 많아 구경하며 걷기 좋다.

가끔 3500원짜리 밥 먹고 5천 원짜리 커피 사 마시는 사람들이 있는데 경남도청 안에 있는 커피 가게에 가면 아메리카노를 900원에 마실 수 있다. 경남도청 직원들의 '복지'형태로 운영되는 것인데 일반인도 이용이 가능하다.

'락'중엔 단연 '식도락'이 최고라고 한다. 꼭 비싼 음식을 먹어야 즐거운 것만은 아니다. 현대 사회에선 '시간'은 '금'이니 구내 식당을 이용하면 돈 아끼고 시간까지 벌 수 있으니 꿩 먹고 알 먹고가 아닌가.

○ 편집ㅣ조혜지 기자



태그:#구내식당, #식판밥, #점심, #식대, #관공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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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콘텐츠 대표 문화기획과 콘텐츠 제작을 주로 하고 있는 롯데자이언츠의 팬이자 히어로 영화 매니아, 자유로운 여행자입니다. <언제나 너일께> <보태준거 있어?> '힙합' 싱글앨범 발매 <오늘 창업했습니다> <나는 고졸사원이다> <갑상선암 투병일기> 저서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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