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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8일, 그리스 알파은행 아테네 지점 ATM 앞에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그리스의 디폴트 선언이 임박한 가운데, 현금을 인출하려는 사람이 몰리고 있다.
▲ 그리스, 은행 영업중단 긴급조치... 디폴트 임박 지난 28일, 그리스 알파은행 아테네 지점 ATM 앞에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그리스의 디폴트 선언이 임박한 가운데, 현금을 인출하려는 사람이 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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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상은 결렬되었다.

트로이카(유럽연합과 국제통화기금, 유럽중앙은행)는 여전히 지독한 수준의 긴축을 그리스에 요구했고, 그리스의 알렉시스 치프라스 총리는 이에 대해 본인이 판단하는 대신, 국민투표에 부칠 것을 선언함으로써, 최후의 승부수를 던졌다.

그리스 의회는 이를 압도적인 표차로 의결했고, 이에 따라 그리스인들은 오는 7월 5일 국민투표를 치른다. 채권단의 살인적인 '긴축'요구를 거부해줄 것을 국민들로부터 명 받으며 선택된 시리자 당의 대표로서, 치프라스 총리는 긴축을 받아들이느니 자신의 정치적 운명을 건 승부수를 띄울 수밖에 없었을 것.

국민투표 결과 그리스 국민들이 트로이카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결정한다면, 현 내각은 사퇴해 다시 총선을 치러야 하며, 투표결과가 제안을 거부하는 것으로 나온다면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는 극명한 사실이 될 것이다. 그 어느 쪽을 선택하든 그리스는 상당한 시간 동안 불안한 시절에 내던져질 공산이 크다.

7월 5일 국민투표까지 모든 판단이 유보되면서 그리스 정부는 7월 6일까지 은행 문을 닫고, 현금 자동인출기로 인출할 수 있는 금액도 일일 60유로까지 제한하기로 했다.

그리스의 국민투표 결정이 내려진 후, 유럽연합측은 이 같은 결정에 크게 반발하였으나, 결국 28일 유럽중앙은행의 그리스 은행에 대한 긴급자금지원이 기존 수준과 같은 선에서 유지될 것임을 긴급회의를 통해 밝혔다. 이는 그리스의 유럽연합 탈퇴가 가져올 파국을 막기 위해 정치적 대화의 창구를 열어두겠다는 의지의 표명으로 해석된다. 국제통화기금의 라가르드 총재도 그리스와 언제든지 대화할 뜻이 있음을 피력하였다.

"IMF는 실수 저질렀다, 논리 전환 필요"

그리스의 재정 위기가 그 어느 때보다 긴박한 지점을 향해 달려가는 지금, 그리스 위기의 초기대응을 지휘해 왔던 전 IMF 총재 스트로스 칸이 그동안의 침묵을 깨고, 현 상황에 대한 자신의 해법을 제안했다. <르몽드>를 비롯한 프랑스 언론들은 그의 의견을 비중 있게 보도했다.

"IMF는 그리스를 비롯한 재정위기에 처한 유럽 국가들에 대해 실수를 저질렀으며 나는 그 실수에서 내가 져야할 책임을 기꺼이 질 준비가 되어있다. IMF는 문제의 근본 원인에 대해서 오해하였을 뿐 아니라, 그리스 상황의 심각성을 과소평가 하였다. 우리의 처방은 부적절했고, 처참한 파국으로 몰았으며 지나치게 엄격하였다. 그리스 위기의 근본 원인은 완결되지 않은 유럽통화 통합에 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핵심 또한 거기에 있다."

서로 경제적, 정치적 환경이 상이한 국가들이 단일 통화 체제로 묶이면서, 회원국 중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약한 국가에서 이 같은 위기 상황이 초래될 수 있음이 처음부터 예측됐음에도 이를 보완하는 장치 없이 일방적인 경제 독트린 속에 모두를 몰아넣은 오류에 대한 전 IMF 수장의 뒤늦은 반성이다.

칸 전 총재는 "나의 제안은 그리스에 대한 추가지원을 중단하는 대신, 그리스가 자력 회생할 수 있도록 부채를 대폭 축소시켜 주고 남은 부채에 대해서도 상환날짜를 대폭 연장하는 것"이라고 구체적인 해법을 제시하며 "논리의 전환"이 절실히 필요함을 역설했다.

IMF 관료가 경제위기에 처한 나라에 내린 처방에 치명적 실수가 있었음을 자백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IMF 수석 경제학자 올리비에 블랑샤르와 다니엘 라이는 IMF 공식 사이트에 올린 보고서(2013.1)를 통해, IMF가 유럽 국가들을 상대로 적용한 긴축 모델은 경제예측에 관한 수학 공식상의 치명적인 실수였음을 밝힌 바 있다.

이들은 경제 위기상황에서 '긴축'이라는 처방이 나타낼 수 있는 효과는 일반적인 상황에서 긴축이 발휘하는 효과에 비해 최고 3배까지 크게 나타날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였다는 것이다. '위기'라고 규정된 상황에서 사람들은 미래를 예측할 수 없고, 불안과 공포라는 심리에 휩싸이기 때문에 일어날 수 있는 심리적, 인간적 변수를 무시했던 것이다.

IMF가 유럽 경제위기 긴축모델을 처방하면서 예측한 공공재정의 감소, 증가에 따른 실물경제에 있어서의 상관지수는 IMF가 예측한 것보다 실제에서 2~3.5배나 높게 나타났다. 고용과 성장의 문제에 있어서 IMF가 내린 '긴축'이라는 처방이 역효과를 가져왔음은 대부분 경제학자들이 인정한 사실이다. 또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지역의 외환위기 때에 IMF가 내렸던 처방도 상황을 오히려 악화시켰다는 분석이 뒤따른 바 있다.

이토록 명백한 해법의 오류가 지적되고, 그 어떤 정직한 경제학자도 감히 '긴축'이 현 상황에 대한 해법이라고 말할 수 없게 된 상황에서, 한 치 변화도 없는 트로이카의 반복적인 요구는 그리스를 극단적인 상황으로 몰아갈 뿐 아니라, 세계 경제를 다시 한 번 불안으로 소용돌이 치게 한다.

우린 이런 유럽을 원하지 않았다

급진좌파연합(시리자)의 당수이자 야당 지도자인 알렉시스 치프라스. 사진은 지난 1월 25일 그리스 총선 승리 후 지지자들 앞에서 연설하는 모습.
▲ 그리스 총선, 급진좌파연합 시리자 압승 급진좌파연합(시리자)의 당수이자 야당 지도자인 알렉시스 치프라스. 사진은 지난 1월 25일 그리스 총선 승리 후 지지자들 앞에서 연설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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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7일 국민들에게 국민투표를 제안하면서 치프라스 총리는 이렇게 말했다.

"그들(트로이카)의 제안은, 그리스 국민에게 새로운 부담을 지우고, 사회를 고갈시키며, 모든 사회 경제 활성화의 희망을 무너뜨리는 것이며, 불평등을 가속화시키는 것이었습니다. (...) 이 모든 제안은 노동과 평등과 존엄 등 모든 근본적인 인권과 유럽이 획득해온 사회적 권리를 직접적으로 침해하는 것으로, 이는 그리스 민중을 모욕하는 것입니다.

(...) 우리에게 그 어떤 전망도 보여주지 않는 극단적이고, 치욕스러운 제안 앞에서, 나는 여러분들이 그리스의 역사가 그대들에게 명하는 바에 따라 근엄하고, 자랑스럽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할 것을 권합니다. 이 권위적이고 극단적인 요구에 대하여 우리가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단호하게 답하기를 희망합니다. (...) 나는 여러분들의 민주적인 선택의 결과가 그 무엇이 되었든 존중할 것을 약속합니다."

다수의 그리스 사람들은 긴축을 원하지 않지만, 유럽연합 탈퇴도 원하지 않는다. 그들은 유럽민중들을 피폐하게 만드는 현재 유럽연합의 '긴축' 일변도의 방향이 전환되기를 원하며, 이제 고통에서 헤어날 수 있기를 바란다.

국민투표에서 구제금융안 부결이 그리스의 유럽연합 탈퇴를 직접적으로 의미하진 않는다. 국민투표가 부결되면 그들이 더욱 더 유리한 고지에 서서 협상을 그들 뜻대로 이끌 가능성도, 그리고 마침내, 오만한 금융자본가들의 유럽연합에 균열을 가하고, 본질을 변화시키는 첫걸음이 될 일말의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그리스 국민들을 응원하는 유럽 민중들의 목소리가 점점 더 커지는 것은 연초부터 지금까지 진행된 그들의 놀라운 저항이 세상에 진실을 좀 더 큰 소리로 전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프랑스 <위마니테>지는 "유럽연합은 지금 그 근본부터 심하게 흔들리고 있으며 유럽을 뒤흔드는 행위는 바로 브뤼셀(유럽연합본부)의 복도에서 이뤄지고 있다"면서 "채권국들이 그리스에 요구한 안들은 여전히 그리스 민중들의 삶을 더 심한 궁지로 몰아넣으면서 부자들은 배려하고 있다, 이는 유럽 건설의 이념에 완벽히 위배되는 것"이라고 사설을 통해 유럽연합을 비난했다.

그리스가 재정위기에 빠진 직접적 원인도 탈세와 투기를 일삼던 자본가들 때문이며 위기 초기, 외국으로부터 들여온 자금들이 투입된 곳도 자본가들의 놀이터였던 그들의 은행들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트로이카의 해법은 민중들의 허리를 꺾고, 부자들의 솜털은 가만두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자본가를 배불리고 민중의 등가죽을 벗기는 이런 유럽은 필요 없다는 아우성이 점점 더 크게 유럽에 울려 퍼질 수밖에 없다. 모두가 7월 5일 그리스 인들의 손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이유다.

○ 편집ㅣ최유진 기자



태그:#그리스, #국민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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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 글을 쓰며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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