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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사용자, 공익위원 등으로 구성된 최저임금위원회가 오는 23일부터 전원회의를 열어 2016년도 최저임금을 결정합니다. 사용자는 2015년 최저임금 5580원에서 동결을, 노동자들은 만원으로 인상할 것을 주장하고 있어 긴 논의가 전망됩니다. 그 결정을 앞두고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몇 차례에 걸쳐 싣습니다. [편집자말]
저는 2008년 대형마트에 입사한 7년차 비정규직 노동자입니다. 나름(?) 대기업 노동자인 저의 시급은 5800원. 작년 시급에서 단돈 150원 오른 금액입니다. 2015년 최저시급 5580원보다 220원 높은 금액이며 세금 빼고 나면 한 달 100만 원 남짓의 월급이 들어옵니다.

택시 운전을 하는 남편과 맞벌이로 두 딸을 키웠지만, 택시 노동자도 많이 벌어봐야 한 달 150만 원 남짓을 버는 저임금 노동자입니다. 우리 부부의 월급을 합쳐봐야 200만 원 선을 겨우 웃도는, 두 자녀를 키우기엔 턱없이 부족한 수준입니다.

마트 아줌마들을 애들 다 키워놓고 '용돈벌이나 여가 선용의 목적'으로 일하는 것 아니냐 비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만, 제가 일하며 7년간 만난 동료들은 모두 99% 생계형 노동자였습니다.

200만 원 남짓한 부부 월급, 아이들 장래와도 연결

제가 맡고 있는 업무는 고객들이 인터넷 쇼핑몰에서 주문한 품목 대로 대신 장을 보고 배송을 맡기는 일입니다. 하루에도 무거운 업무용 카트를 밀며 큰 매장을 수십 바퀴 돌아야 합니다.
▲ 하루 수십 번 대신 장을 봐 드립니다 제가 맡고 있는 업무는 고객들이 인터넷 쇼핑몰에서 주문한 품목 대로 대신 장을 보고 배송을 맡기는 일입니다. 하루에도 무거운 업무용 카트를 밀며 큰 매장을 수십 바퀴 돌아야 합니다.
ⓒ 김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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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지금까지 최저임금이 누구에 의해, 어떻게 결정되고 그로 인한 파장이 얼마나 큰지 단 한 번도 생각하지 못한 대한민국의 국민이자 그저 평범한 주부였습니다. 아껴 쓰고 쪼개 쓰며 아이 둘을 키우다 보면 그래도 지금보다 나아지겠지 생각했던 꿈은 물거품이 된 지 오래입니다. 20여 년 동안 열심히 살았지만 변변한 내 집 하나 장만하지 못했습니다.

남들 다 보내는 흔한 학원 한 번, 과외 한 번 시켜주지 못하고, 메이커가 뭔지도 모른 채 5천 원, 만 원짜리 옷도 감사하게 생각하는 아이들을 마음 아프게 바라보며 키웠습니다. 아이들 만큼은 열심히 공부해서 부모보다 더 나은 직업을 갖고 미래를 꿈꿀 수 있는 건전한 사회의 일원이 되어 줄 것을 소망했습니다.

이렇게 가슴 졸이는 것 말고 특별히 해줄 게 없는 부모의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미안하고 또 미안했습니다. 부모로서 뒷받침 해줄 것이 없는 상황에서 아이들이 인문계에 가면 대학 진학은 꿈도 못 꿀 것이고, 제대로 된 직업마저 갖기 힘들 것 같아 특성화고에 보냈습니다.

큰 딸은 특성화고에서 좋은 선생님과 친구들을 만나 열심히 공부하며 작은 희망을 가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 집안 형편이 어려우니, 일단 취업을 먼저 하고 나중에 대학에 가도 될 거 같아서 취업 신청을 했어"라고 딸이 말했습니다. 너무나 미안한 마음에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공부에는 때가 있는 거다' 싶어 취업을 미루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대학 진학을 설득했고, 학교 이름보다는 취업률 좋고 전문직을 택할 수 있는 간호대에 진학하길 권유했습니다.

대학을 가더라도 돈 걱정 없이 공부만 할 수 있는 세상이 아닌지라, 학자금 대출은 필수 코스였습니다. 대학 입학 후 1학기 등록금만 내주고 나머지는 '장학금과 학자금 대출'을 받아 아이들이 스스로 해결하겠노라 약속했습니다.

그렇게 두 딸 모두 간호대에 진학하여 큰 딸은 2년차 간호사, 둘째딸은 간호대 3학년생입니다. 요즘 같은 취업난 속에 그래도 전문직인 간호사 엄마라고 주위에서는 부러워합니다. 두 딸이 하고 싶은 것이 아닌, 현실을 택하도록 권유한 엄마의 마음은 찢어지는데 말입니다. 

엄마, 아빠는 여전히 최저임금 노동자입니다. 가난을 대물림 하지 않으려고 20여 년을 땀 흘려 일해 왔지만, 대한민국 가장들의 설자리가 5580원의 최저임금이라면 무슨 꿈을 더 꿀 수 있을까요?

죽지 않을 만큼 간신히 숨만 쉬고 살아가는 저임금 노동자가 600만 시대라는데, 이 사회에서 무슨 미래가 그려지며 더 나은 내일을 꿈꿀 수 있을까요? 수백만 저임금 노동자들이 100만 원 남짓한 월급으로 생계를 꾸려나가는데, 그 아이들에게 무엇을 해 줄 수 있을까요?

사회에 발을 디디자마자, 저임금-비정규직으로 살아가야 하는 우리 아이들을 "쉽게 빠지고 벗어나기 힘든 저임금의 늪"에서 구해내는 길이 '천운'밖에 없는 걸까요? 대한민국 40, 50대 가장은 할 말이 많습니다. 나라를 살리고자 모든 것을 내던진 엄마, 아빠들이 이제는 나라가 나서 대한민국의 미래를 다시 열어야 한다고 당당히 말하고 싶습니다.

나라 망할까봐 돌반지, 결혼 패물 팔아준 우리 시대 가장들

한 대형마트 노동조합이 지난 해 개최한 임금인상 집회에서 직접 만들어 온 피켓을 들고 있다. 대형마트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대동소이하지만 거의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을 받고 있다.
▲ 열심히 일하면 미래를 그려볼 수 있는 회사를 원합니다 한 대형마트 노동조합이 지난 해 개최한 임금인상 집회에서 직접 만들어 온 피켓을 들고 있다. 대형마트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대동소이하지만 거의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을 받고 있다.
ⓒ 김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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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 시대 고령화는 급속도로 진행되고, 20, 30대는 인턴제다 뭐다 해서 쓸모없는 경력만 쌓아 제대로 된 취업을 하기 힘듭니다. IMF를 겪으며 잘 나가던 가게 사장님이 신용불량자가 되고, 번듯한 기업 정규직에서 명퇴다 뭐다 쫓겨나 택시 노동자로, 자영업자로 살아왔지만 빈곤은 계속됩니다.

결혼 적령기는 점점 늦어지고, 아이들에게 한창 돈이 많이 들어갈 나이에 더욱 빈곤해지는 세상이 되다보니, 더 빈곤한 삶이 두려운 30대들의 출산율은 갈수록 낮아집니다. 쓸 돈이 없으니 당연히 경제가 침체 되는 악순환이 계속 됩니다. 

세상은 천운을 타고 태어나 대대손손 풍요롭게 사는 사람들만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IMF 때 나라가 망할지도 모른다는 말에 아이 돌반지며 금이빨, 결혼 패물까지 팔아 준 사람들은 천운을 타고난 소수가 아닌 최저임금으로 숨만 쉬며 살아가는 다수의 약자들이었습니다.

대한민국이 어려울 때 모든 것을 내던진 우리 시대 가장들이 더 이상 가난의 대물림에 절망하지 않도록 도와주세요. 좀 더 나은 미래를 꿈꿀 수 있도록 대한민국 정부가 나서야 합니다. 최저임금위원회와 나라 윗분들께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최저임금은 많은 사람들이 더 나은 내일을 꿈꾸기 위한 마지막 희망입니다.


태그:#대형마트, #최저임금, #마트 노동자, #서비스, #저임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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