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왕 위의 왕 : 간신>의 민규동 감독이 1일 오전 서울 강남구 신사동 수필름 사무실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영화<왕 위의 왕 : 간신>의 민규동 감독이 1일 오전 서울 강남구 신사동 수필름 사무실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한창 상영 중인 영화 <간신>에 대한 해석과 반응이 분분하다. 그 중 큰 줄기는 아무래도 여성 캐릭터를 너무 가학적으로 다뤘다는 평이 될 것 같다. 조선시대 연산군과 그의 폭정을 상징하는 채홍사를 소재로 당시 고통 받는 민중의 아픔을 적나라하게 담고 싶었다는 게 민규동 감독의 변이다.

보다 자세히 들을 필요가 있었다. 여전히 관객들은 흥청이 되고 싶었던 여인들, 즉 왕의 노리개를 자처하며 채홍사에 들어온 두 캐릭터에 대해 의문을 품고 있다. 극중 단희와 설중매 역을 한 임지연과 이유영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하는 이들도 분명 존재한다. 지난 1일 민규동 감독의 사무실을 찾았다.

권력 비판? "그보다 역사에서 쫓겨난 서민들을 담고 싶었다"

언제부터 <간신>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까. 민규동 감독은 본래 다른 시대물을 준비 중이었다. 해방직후와 한국전쟁 직전 시기에 천착하며 <1949>와 <럭키보이>의 시나리오를 쓰고 있었으나 제작이 장기화하면서 <간신>에 시선을 두게 됐다. 2년 전 영화진흥위원회 주관으로 시나리오 심사과정에 참여했다가 발견한 작품이었다. 본래 제목은 <채홍사>. 민규동 감독은 "중종반정의 승리자들이 자신을 위한 역사를 정리했는데 사실 그때는 민심이 이반돼서 민란이 일어나던 시기였다"며 "역사의 맥락 속에서 희미하게 사라진, 탈색돼버린 민초들을 마주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일제강점기 독립투사든 위안부 할머니 이야기든 그걸 정확히 다루는 게 본래 어렵다. 대체 왜 그럴까 고민이 있었다. 좀 더 과거로 거슬러 가 조선시대를 보니 역사 권력자들의 싸움에 희생된 여성들 사이에 간신이라는 특급 조연이 있더라. 간흉을 통해 바라보면 연산군과 당시 백성을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권력의 허망한 속성을 표현하느냐 마느냐에 대한  고민은 했다. <간신>이라는 제목에서 사람들이 기대하는 게 있잖나. 채홍사를 소재로 잡지 않았다면 관객 분들이 원하는 맥락으로 갔을 거다. 요설로 정적을 제거하고 사리사욕을 취하는 모습 말이다. 하지만 영화에선 이걸 초반 5분에 다 보여줬다. 그간 드라마에서 수 없이 나온 내용잖나. 거기에 집중하면 여자들이 들어올 틈이 없다. 그래서 단희와 설중매 같은 민초를 대표하는 인물 이야기에 왕과 간신 사이에서 또 다른 권력이 되는 양상을 취할 수밖에 없었다."

노출에 대한 불쾌감? "관객 분들의 성장통이라 생각"

 영화<왕 위의 왕 : 간신>의 민규동 감독이 1일 오전 서울 강남구 신사동 수필름 사무실에서 작품에 대한 뒷이야기를 전해주고 있다.

영화<왕 위의 왕 : 간신>의 민규동 감독이 1일 오전 서울 강남구 신사동 수필름 사무실에서 작품에 대한 뒷이야기를 전해주고 있다. ⓒ 이정민


관객들이 불편을 느낀다고 지적했던 지점을 얘기했다. 극중 여성 캐릭터들이 주먹에 맞는 장면, 두 여성이 서로를 탐하도록 왕이 부추기는 장면 등이다. 민규동 감독은 "관객들의 성장통이라고 생각한다"고 정리했다. 영화에서 묘사된 장면은 에로틱과 충격적 정서 그 중간에 서 있다. 민규동 감독은 "성적 충동을 원했던 분들에겐 배신감을 줬을 것"이라고 운을 뗐다.

"(임지연, 이유영씨가 연기한) 노출 장면은 여성 조감독들의 시선이 많이 반영된 결과다. 배우를 착취한 걸로 오해받지 않게 여러 의견을 내보고 수정해보라고 했다. 사실 <감각의 제국>이나 <가장 따뜻한 색, 블루> 등에 비하면 <간신>은 유치원 수준의 노출 감성이다. 한국 영화 안에 묘한 보수성이 있는데 그걸 넘는 게 중요했다. 마치 성교육을 처음 받을 때 민망해하는 것처럼 그 이후엔 보다 높은 차원으로 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근데 노출 장면은 전체 중 10분의 1도 안 된다. 관객들이 많이 기억하는 건 그만큼 충격적이라는 증거겠지.

노출에 있어선 두 가지로 접근했다. 하나는 다큐다. 로마 황제는 길거리에서 간음하곤 했다. 또한 과거 권력가가 절에 들어가 비구니 수십 명을 간음한 행태를 보면 상상을 초월한다. 대충 우리가 아는 대로 표현하기 보단 인격적 대우도 받지 못한 걸 그리려 했다. 다른 하나는 아이러니적 접근이다. 영화에서 남자가 억압당하는 모습을 묘사하면 그 캐릭터에 대한 착취로 읽지, 남성 자체에 대한 폭력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여성을 같은 방식으로 다루면 여성 자체에 대한 착취로 보는 일이 많다. 장애인 묘사도 마찬가지다. 소수자에 대한 폭압이라고 생각한다.

<간신>을 일종의 카니발리즘이라 생각했으면 했다. 영화 속에서 캐릭터들은 즐겁게 사람을 죽인다. 어느 시선을 따라가냐의 문제인데 끔찍하다고 생각하면 이야기에 몰입 못한다. '당신이 간신입니다. 폭력을 조장하고 행하는 사람입니다'라고 그 입장에서 생각해보길 원했다. 그간 내가 기존 작품에서 취해온 여성에 대한 시선이 있기에 어느 수준으로 표현하는 게 적절한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걸 뚫고 나가고 싶었다. 궁극적으로 그런 폭력과 비이성이 지금 시대에도 벌어지고 있다. 권력자에 대한 분노로 나아가길 바랐다."

고통 받는 민초의 모습을 은유와 상징으로 피하고 싶지 않았다는 말이다. 단편영화 <열일곱>, 상업영화 데뷔작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 등을 통해 민규동 감독은 여성에 대한 진보한 시각을 이미 일관성 있게 담아왔다. "관객들이 느낀 불쾌감이 연산군이나 권력자를 향하지 않고 감독에게 향하는데 만약 변영주 감독이 같은 작품을 찍어도 그랬을까"라며 "흥행을 노렸다면 다른 방식으로 다뤘을 거다. 사실 에로틱하게 찍는 것도 자신있다"며 라고 민규동 감독이 뼈있는 농담을 덧붙였다.

"폭력 역시 기존과 다르게 다르고 싶었다"

 영화<왕 위의 왕 : 간신>의 민규동 감독이 1일 오전 서울 강남구 신사동 수필름 사무실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영화<왕 위의 왕 : 간신>의 민규동 감독이 1일 오전 서울 강남구 신사동 수필름 사무실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또 하나, 폭력을 묘사하는 방식에 대한 논란이다. 이에 대해 민규동 감독은 "<내 아내의 모든 것>(민규동 감독의 전작) 때는 별 기대치도 없다가 류승룡이 연기한 캐릭터가 웃기다는 소문으로 흥행한 경우인데, 희한하게 <간신>은 이걸 봐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로 정리되더라"며 "이미 선입견으로 감상법을 정해놓고 바라보려는 보수적 태도가 아직은 강함을 느꼈다"고 말했다. 

<간신>에서 주요 인물들의 폭력을 다룰 때 민규동 감독은 슬로우모션을 종종 사용했다. 기존 영화와 다른 지점이다. 긴박감과 감정 표현을 위해 헨즈헬드(손에 카메라를 들고 촬영하는 방식)를 택하거나 짧게 단위를 끊어 찍는 게 아니라 오히려 고속 카메라를 통해 길고 늘어지게 표현했다. 

"왕이 박치기를 한다거나 목이 반쯤 잘린 순간 등을 담았다. 광기의 순간을 포착한 거다. 단순한 폭력을 넘어 심리적 폭력을 찾아 가려 했다. 매일 반복되는 권력자의 폭압을 신선하게 들여다보지 않으면, 관객들이 고민하고 생각할 지점을 놓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여자 몸을 붓으로 다루는 왕을 그린 것도 같은 이유다. 정작 여자 몸을 탐하는 장면은 영화에 담지 않았다. 불필요했다. 흥청의 최종선발을 앞두고 설중매와 단희를 벗긴 채 교합을 시키는 장면도 단순한 노출을 넘어 깨달음으로 나가기 위함이었다. 대결 이후 두 여자가 서로 껴안고 왕에게 맞서는 순간 신선한 에너지가 나올 거라 믿었다."

이 세밀한 설정을 위해 배우들은 탈진 직전까지 현장에서 집중했다. 단희와 설중매가 벌인 4분의 대결 장면을 위해 민규동 감독은 한 번도 끊지 않고 롱테이크로 촬영했다. 배우들에게 "4분의 분량이지만 4시간 동안의 정사라고 생각해 달라" 당부했을 정도다.

인터뷰 말미에 민규동 감독은 각 배우들에게 던졌던 주문들을 열거했다. 연산군 역의 김강우와 간신 임숭재 역의 주지훈을 두고 서로 상반된 태도로 대했고, 임지연과 이유영은 한계점까지 가기를 요구했다. 배우들에게 모든 가능성을 열어주거나 혹은 일체의 애드리브도 허용하지 않으면서 그는 <간신>에 자신만의 인장을 찍었다. 민규동 감독의 설명처럼 <간신> 이후 적어도 한국 영화가 폭력과 성을 다루는 방식이 보다 진일보하길 바라본다. 관객 역시 이러한 감독들의 도전에 곧 호응할 날이 오지 않을까.

간신 민규동 주지훈 이유영 임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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