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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에 1만 4427명, 하루 평균 약 40명. 대한민국의 자살 사망자 수치(2013년 통계 기준, 통계청)다. 한국의 자살률은 2000년대 들어 가파르게 상승했는데 2013년 현재 인구 10만 명당 자살자 수는 28.5명이다. 전체 사망원인 중에서도 암, 심장질환, 뇌혈관질환에 이어 자살이 4번째다. 한국은 OECD 국가들 중에서 자살률이 가장 높다.

자살의 원인을 한두 가지로 정리할 수는 없으리라. 하지만 자살을 전적으로 개인의 책임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 한국이 지금보다 타인을 배려하는 사회, 함께 나누는 사회였더라면 막을 수 있었을 안타까운 죽음도 적지 않다.

여기서 소개할 두 사건도 마찬가지다. 주민에게 모욕을 당한 아파트 경비원과 동급생들의 학대에 못 이겨 스스로 목숨을 끊은 중학생이 나오는 사건이다. 어떤 이유로 비극이 벌어졌는지, 가해자나 관련자들은 어떤 법적 책임을 지게 되었는지 살펴본다.

[판결ⓢ] 어느 아파트 경비노동자의 쓸쓸한 죽음

지난해 10월 7일 경비노동자 분신사고가 일어난 아파트의 한 경비원이 근무를 서고 있는 모습.
 지난해 10월 7일 경비노동자 분신사고가 일어난 아파트의 한 경비원이 근무를 서고 있는 모습.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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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께 용서를 빕니다. 아무 잘못 없이 폭력을 당하고 보니 머리가 아파 도저히 살 수가 없어 이런 결정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무 잘못이 없는 나에게 경비가 무엇 하는 경비냐는 말과 폭력을 당하고 보니 내가 왜 그런 폭력을 당해야만 하는지 머리가 돌 지경입니다. 언어폭력과 폭행을 당해본 본인은 어디 가서 하소연합니까. 주민 여러분, 내 잘못이 있다면 나를 용서하시고 아파트 경비가 언어폭력과 폭행당하지 않게 해주세요.'

2010년 10월 창원시 어느 아파트에서 아파트 경비원 서현명(가명, 66) 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는 2통의 유서를 남겼는데 한 통은 이런 내용이었다. 서씨는 대체 무슨 일을 당한 걸까? 참극이 있기 1주일 전이다.

"야이, 씨X. 경비가 뭐하는 기고, 니가 하는 게 뭐 있나?"

아파트 주민인 50대 남성 오만규(가명)씨가 다짜고짜 서씨에게 험한 욕설을 퍼부었다. 그래도 분이 안 풀렸는지 오씨는 급기야 손으로 서씨의 가슴을 치고, 다시 멱살을 잡고 경비실로 끌고 갔다. 오씨는 계속해서 "경비가 뭐하노" 하면서 연신 주먹질을 해댔다. 그러고선 멱살을 잡고 관리소장에게 끌고 갔다.

무슨 이유로 50대 주민이 60대 경비원에게 손찌검을 하고 수모를 주는 걸까. 이유는 어이없을 정도로 단순했다. 아파트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시끄럽게 하는데도 경비원이 말리지 않아서였다. 서씨는 평소에도 아이들이 떠들 때마다 애먼 경비원들을 닦달했다.

아파트 주민 앞에서 항상 '을'일 수밖에 없는 서씨에겐 별다른 대응방법이 없었다. 그저 묵묵히 당하며 분을 삭일뿐이었다. 그전부터 오씨의 폭력이 두려워 근무지를 옮겨달라고 여러 차례 관리소장을 찾아갔지만 안 된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병원치료까지 받은 서씨는 몸의 상처보다도 마음의 상처가 너무 깊었다. 화를 풀 곳도, 하소연할 사람도 없었다.

서씨를 비롯한 경비원들은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급여를 받고 경비 업무 말고도 다양한 '잡무'를 한다. 그러면서도 주민들로부터 민원이 제기되면 해고 위험이 따르기 때문에 주민들의 무리한 요구를 거절할 수 없고, 불만이 있어도 어디에 호소할 수도 없었다. 서씨도 마찬가지였다. 자신보다 나이가 적은 오씨에게 욕설과 폭행을 당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결국 서씨는 유서를 남긴 채 아파트 옥상에 올라 생을 마감한다.

법원 "폭행과 자살 간 상당인과관계 없다"

서씨가 죽음을 택한 뒤에야 법은 뒤늦게 개입한다. 오씨는 사실상 서씨의 죽음에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했다. 그렇다면 살인이나 상해치사, 폭행치사죄가 적용될 수 있을까. 현행법과 판례론 어렵다. 오씨의 폭행과 자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쉽게 얘기해서 어떤 행위(폭행)를 했을 때 일반적인 경험에 비추어 그에 따른 결과(자살)가 나올 것으로 인정될 경우에만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뜻이다.

오씨는 서씨에게 폭력을 행사한 사실, 즉 상해죄로만 기소되었다. 1심 법원(창원지법 마산지원 김희수 판사)은 유죄를 인정, 오씨에게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과 사회봉사 40시간을 선고했다. 법원은 "오씨가 범행을 부인하며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지 않아 죄질이 불량하고, 폭행 사건 이후 서씨가 자살까지 하게 된 점에 비추어 엄히 처벌해야 한다"면서도 상해 정도가 가볍다며 실형 대신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그럼에도 오씨는 억울함을 호소하며 변호사를 통해 상소했다. 하지만 2심도 3심도 "1심의 형이 부당하지 않다"고 판결했다. 사건이 발생한 지 2년 반 만에 오씨는 유죄가 확정되었다. 인정된 죄명은 상해, 형량은 징역형의 집행유예였다. 서씨와 유족들의 고통에 비하면 결코 무겁다고 할 수 없다. 법이 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였을까.

서씨의 유족들은 민사소송도 제기했다. 오씨를 다시 법정에 세워 안타까운 죽음의 책임을 추궁하기 위해서였다. 유족들은 "오씨가 그동안 폭행과 모멸감을 주는 언행을 함으로써 자살하게 된 것"이라며 위자료를 청구했다.

1심 법원(창원지법 제5민사부 재판장 노갑식)은 오씨의 폭언과 폭행 때문에 서씨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여 자살에 이르게 된 점은 인정했다. 하지만 역시 폭력과 자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는 없다고 보았다.

그러나 법원은 "오씨가 평소 별다른 근무상 잘못이 없는 서씨에게 잦은 항의를 해왔고,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줌으로써 서씨뿐만 아니라 유족들에게 상당한 정신적 고통을 주었다"며 정신적 손해(위자료)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시했다. 민사재판에서 법원은 서씨의 사망에 대해서 오씨에게 직접적인 잘못이 있다고 인정하지는 않았지만, "결국 오씨의 폭행 등이 원인이 되어 고인이 자살에 이르게 되었다"며 사망의 책임을 일부 인정했다.

법원은 원고일부승소 판결을 내렸다. 유족들의 정신적 고통에 따른 위자료 액수는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오씨의 항소로 2심(부산고법)까지 간 사건은 재판부가 제시한 조정안을 양쪽이 수용하면서 끝이 났다.

재판결과 아파트 경비로 일하며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서도 하소연도 못한 채 쓸쓸하게 세상을 떠난 서씨의 억울한 심정을 달래줄 수 있었을까. 서씨는 어쩌면 돈보다 오씨의 진심어린 반성과 사과를 원했을지도 모른다. 서씨가 남긴 다른 한 통의 유서는 자식들에게 다음과 같이 당부하고 있다.

'아들, 딸 내 말 잘 듣고 생활하는 데 지장이 없도록 하라. 세상을 살다보면 좋은 일 나쁜 일 많다. 아빠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다 해도 모든 것을 용서하고 살아라. 아빠가 언어폭력과 폭력을 당해 머리가 아파 살 수가 없다. 경비가 무엇 하는 경비냐는 말이 내 머리를 떠나지 않는구나. 내 머리가 터지기 전에 먼저 저리 가고 싶구나. 마지막 엄마 잘 모시고 잘 살기 바란다.'

서씨의 죽음 이후에도 아파트 입주민들의 '갑질'과 폭력은 멈추지 않았다. 그 뒤에도 비슷한 사건은 또 발생했다. 2014년 10월 서울 압구정동 한 아파트에서 50대 경비원 이아무개 씨가 자신의 몸에 불을 기름을 붓고 분신을 기도한 것이다. 그는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한 달 만에 숨졌다.

그는 유서에 "여보 날 찾지 마요, 먼저 세상 떠나요, 아들들 미안"이라고 적었다. 유족과 동료들은 일부 주민의 지속적인 언어폭력과 멸시가 자살의 원인이라고 분개했다. 하지만 누구 하나 책임을 지는 사람은 없었다. 돈이 사람을 지배하는 천박한 세상이 만든 죽음 앞에 법은 무력할 뿐이었다.

[판결②] 학교폭력으로 자살, 법적 책임은 누가?

드라마 <후아유>의 한 장면
 드라마 <후아유>의 한 장면
ⓒ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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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학교로 가본다. 우리나라에서 비극적인 사건 중 하나는 학교폭력 때문에 피해 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다. 이 자살은 누가 어떻게 책임져야 할까. 친구들의 괴롭힘을 참다못해 세상과 등진 소년. 법원은 어떻게 재판했을까.

정민(가명, 14)군은 같은 중학교 동급생 강혁(가명)군, 선표(가명)군과 친구였다. 정민군은 두 사람의 인터넷게임 캐릭터 레벨을 올려주면서 가까워졌다. 하지만 두 친구와 정민군의 관계는 친구에서 '주종관계'로 점점 변질되기 시작했다.

"너, 오늘까지 캐릭터 레벨 올려놔. 안 그러면 죽어."

정민군이 게임을 열심히 하지 않는 날엔 주먹질과 발길질이 이어졌다. 그뿐 아니었다. 두 사람의 반성문이나 숙제도 모두 정민군의 몫이었다. 거절하거나 싫은 표정을 지으면 곧바로 '보복'이 이어졌다.

더 기막힌 건 폭행의 대부분이 정민군의 집에서 이뤄졌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정민군의 부모가 낮에 집에 없다는 사실을 알고 집으로 찾아와서 괴롭혔다. 둘은 정민군의 집에서 과자나 라면을 먹으면서 정민군에게 캐릭터를 키우라고 시켰다. 성이 차지 않으면 "무릎 꿇고 손들고 있어라"며 벌을 세웠다.

폭행은 상습적인 범죄 행위가 되어갔다. 심지어는 커터칼로 손목을 긋고, 라이터의 가스를 들이마시게 하는 가혹행위까지 일삼았다. 강혁군 등은 게임 캐릭터 구입을 위해 돈을 빼앗거나 패딩점퍼를 뺏기도 하였다.

활달한 성격이던 정민군은 여덟 달 동안 가혹행위를 당한 뒤 점점 내성적으로 변해갔다. 사정을 모르던 부모는 친구들이 집에 오고 음식이 없어지는 일이 잦자 정민군을 나무랐다. 그리고 담임교사에게 "정민이가 요즘 부쩍 돈을 많이 쓰고 게임을 많이 한다"며 상담과 지도를 부탁했다.

하지만 정민군은 이미 한계에 부딪쳤다. 정민군은 친구들에게 "너무 힘들어서 자살하고 싶다"는 말을 공공연하게 했다. 폭행과 가혹행위를 견디다 못한 정민군은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는 선택을 하고 만다. 그 전날까지도 정민군은 캐릭터를 열심히 키우지 않는다는 이유로 전선줄을 목에 감겨 방바닥에 던져주는 과자를 주워 먹어야 했다.

불행한 자살? 사회적 타살이다

아들이 떠난 뒤에야 이런 내막을 알게 된 정민군의 부모는 통곡했다. 그들은 억울한 죽음에 법적 책임을 묻겠다며 가해학생 부모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대구지법 제11민사부 재판장 권순탁)은 우선 "가까운 친구들에게 가해행위 사실을 털어놓으며 자살을 암시하는 등 불안해하다가 급기야 자살에까지 이르게 되었다"며 가해행위와 정민군의 사망 사이에는 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전제했다.

그렇다면 손해배상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 우선 강혁과 선표의 부모다. 미성년자의 부모는 자녀를 감독할 의무가 있기 때문에 이를 제대로 못했다면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

다음으로 정민군이 다니던 사립중학교와 교장, 담임교사도 책임이 있다. 법원은 "가해행위는 대부분 학교 밖에서 이루어지기는 했지만, 학교에서의 교육활동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므로" 학교에도 일정한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정민군이 친구들에게 자살충동을 호소할 정도였는데 담임교사가 주의를 기울였다면 일이 터지기 전에 조치를 취할 수 있지 않았을까? 법원은 교장과 담임교사에게는 자살을 예방하기 위해 조치를 취해야 할 의무, 부모를 대신해 가해 학생들을 감독할 의무가 있으므로 사망에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다만 정민 군이 부모나 교사에게 자신의 고통을 적극적으로 알려서 해결방안을 모색하지 못한 점, 담임교사 면담에서도 피해사실을 숨긴 점, 정민군 부모가 좀 더 노력을 기울이지 못한 점 등을 들어 책임을 제한했다. 강혁과 선표의 부모, 학교와 교장, 담임교사의 책임비율은 40%로 정해졌다.

여기서 정민군이 왜 주위에 손을 내밀지 않았는지 의문이 들 법하다. 정민군이라고 그러고 싶지 않았을까? 그러나 공포와 고통 속에서 어린 소년은 더 이상 버티기 힘들었으리라. 불과 열다섯에 세상과 작별해야 하는 심정은 어땠을까. 정민군은 유서를 통해 이렇게 마지막 말을 남겼다.

'저는 부모님한테나 선생님, 경찰에게 도움을 구하려고 했지만, 걔들의 보복이 너무 두려웠어요. 저는 매일매일 가족들 몰래 제 몸의 수많은 멍들을 보면서 한탄했어요. 나에게 잘 대해주던 내 친구들, 고마워. 또 저를 격려해주시던 선생님들, 감사합니다.'

아파트 경비원의 죽음, 그리고 폭력에 견디다 못한 학생의 죽음. 이것을 두고 한 개인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고만 치부할 수 있을까. 사회가 좀 더 나은 노동환경을 제공했더라면, 학교가 좀 더 세심하게 학생을 배려하고 학교폭력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더라면 안타까운 죽음은 막을 수 있었으리라. 그런 점에서 두 사건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들의 죽음은 자살이 아니라 사회적 타살이라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

○ 편집ㅣ최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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