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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1600년 전의 이야기다. 160년 전도 아득한 느낌인데 1600년 전이라니. 그것도 작고 힘없는 나라의 한 남자와 그를 사랑한 여자에 관한 이야기. 당연히 이 뮤지컬에는 망부석(望夫石)이라는 말을 후세에게 알려준 존재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그런데 <바람처럼 불꽃처럼>에서 그 주인공은 덤이나 곁가지가 아니다. 망부석의 의미가 주는 안타까움과 먹먹함보다는 대장부적인 아우라를 관객에게 선사하는 여전사적인 이미지를 풍기며 우리에게 다가오기 때문이리라!

김한나 작, 창작 뮤지컬은 그래서 보는 재미가 쏠쏠한 교훈을 선사하는 단순 역사물이 아니다. 핵심 키워드라 할 수 있는 지조와 절개를 역설하는, 1600년 전 실존했던 남자의 외침이 그때보다 오히려 지금 더 성성하게 우리의 귓가에 파고들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현 세태에 대한 풍자를 넘어선 일갈(一喝)이 있다. 그 중심에 사분오열의 정치권이 있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분열의 극(極)은 합(合)이기 때문일까?

박제상과 그의 아내 그리고 아들 무대에서 공연중인 세 배우
▲ 박제상과 그의 아내 그리고 아들 무대에서 공연중인 세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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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드림뮤드가 선보인 <바람처럼 불꽃처럼>은 우리 뮤지컬 생태계에 신선한 충격을 선사한 작품이다. 일반 소극장 연극 혹은 소극장용 뮤지컬과는 제작 규모에서 게임이 되지 않는 자본을 투입해 관객과 만났다는 이유만으로도 그 존재 가치를 입증하는데 부족함이 없다. 쉽지 않은 용단을 내린 연출자 겸 극작가이자 배우인 김한나 대표는 충분히 박수를 받을만 하다. 단지 그 이유 때문에 주목해야 한다면 사실 얼마나 초라한가? 다행히도 이 작품은 창작이라는 단어의 모든 조건을 충족했다.

뮤지컬의 특성상 아주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음악이 외국의 유명 작품을 라이선스로 들여온 것과 달리 100% 순수 창작이다. 그 부지런한 노고 뒤에 숨은 창작자의 절실함을 안다면 마땅히 경배가 있어야 할 것이다. 작사자로서도 모습을 드러낸 김한나와 함께 호흡을 맞춘 황지혜 음악감독의 역량이 만만치 않다. 젊음의 패기라고 하기에는 노련함이 빛난다. 이 연륜을 앞지르는 재능이 선뜻 다음을 기약하게 한다.

안무를 책임진 이소정 안무 감독도 빼놓을 수 없다. 시대극이라는 틀에 갇히지 않고 배우들의 몸짓을 다채로움 속에 녹여낸 해석이 세대를 아우른다. 무엇보다 안무의 볼륨감이 입체적이다. 이 모든 조화가 서진형 조연출의 디테일에 빚을 지고 있음을 이해한다면 <바람처럼 불꽃처럼>이 열악한 토종 창작 뮤지컬 생태계 속에서 얼마나 깊은 산고 끝에 꽃피웠으리라는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가 있을 것이다.

장점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의상 역시 철저한 고증을 받아 제작했으며 극을 받쳐주는 무대미술과 소품 또한 빛을 발한다. 스펙터클하지는 않지만 무대의 좌우와 위 아래를 폭넓게 사용하는 장치들은 이슬기 무대감독에 힘입은 바가 크다. 조밀하면서도 유기적인 모든 스태프의 이런 노력 덕분에 역으로 이 작품은 외국에서 공연이 가능하다.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초청 공연을 넘어서서 라이선스도 가능하고 직접 장기공연도 가능하다. 미리 그것을 염두에 두었음을 김한나 대표는 인터뷰에서 굳이 숨기지 않았다.

노래하는 김씨부인 역의 김한나 열연을 펼치는 김씨 부인 역의 김한나 드림뮤드 대표
▲ 노래하는 김씨부인 역의 김한나 열연을 펼치는 김씨 부인 역의 김한나 드림뮤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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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수제(手製)만이 제공 가능한 장인정신을 넘어서는 진정성

모방과 복제의 환류(還流)로 교묘하게 사람을 현혹하는 꼼수가 발달한 디지털 시대에 핸드메이드라는, 오직 수제(手製)만이 제공 가능한 장인정신을 넘어서는 진정성 때문에 관객들은 안정적이고 조화가 훌륭한 스토리텔링과 어우러진 연출에 깊은 공감의 박수를 보낸다.

이 뮤지컬, 볼수록 짠하다. 주류를 자처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변두리도 아닌 드림뮤드만의 이 '선전포고'는 그야말로 멋진 일갈(一喝)의 향연이다. 가슴이 시원하고 후련하면서도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는 진한 감동이 확실한 메시지를 묵직하게 선사한다. 대체 무엇 때문일까? 줄거리를 음미하지 않을 수 없다.

서기 418년, 내물왕의 동생으로 고구려에 볼모로 잡혀갔다 조카의 왕위 계승권을 찬탈한 뒤 왕위에 오른 실성왕. 그에 의해 시시각각 목숨을 위협받던 미래의 눌지왕은 두 파로 나뉜 신하들의 반목과 왕위 계승 과정에서의 혼란으로 안팎이 어지럽던 당대 신라의 위기를 정면 돌파하기 위해서 친정 쿠데타를 감행한다. 그리고 내정간섭에 저항하지 못하던 실성왕을 제거한 뒤 내치를 기하지만 여전히 고구려와 왜에 볼모로 잡혀간 자신의 두 동생에 대한 그리움으로 괴로워한다.

그때 삽량주 태수 박제상이 당시 강대국이었던 고구려와 왜에 볼모로 잡혀간 눌지왕의 두 왕제, 보해와 미해를 탈출시킬 것을 눌지왕에게 간한 후 먼저 보해를 고구려에서 무사히 구해온다. 그리고 미처 피로가 풀리기도 전에 가족들한테 알리지도 않고 기세를 몰아 왜국으로 향한다. 그러나 왜국은 그의 접근을 탐탁지 않게 여긴 나머지 의심 어린 눈으로 관찰하는데 그런 감시의 눈을 피해 박제상은 끝내 기지를 발휘, 미해 왕자를 탈출 시킨 후 왜국왕의 회유책을 거부하고 끝내 유명을 달리한다.

<바람처럼 불꽃처럼>의 장점은 뭐니 뭐니 해도 역사가 전하지 못하는 사각지대의 '진실'을 상상력을 동원해 '팩트'의 틀에 갇히지 않고 인물을 재해석해 현재 지금으로 대입했다는 것이다. 지구 상 유일한 분단국가라는 오명 아닌 오명의 정치적 현실에 남북의 대치 상태는 1600년 전의 삼국 시대의 또 다른 현재진행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위난의 시대에 지정학적 4강 구도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 당대 민중들이 염원하던 부국강병의 절실함을 그대로 승계한 것인데 안타깝게도 정치권은 여야를 막론하고 이런 희망을 충족시켜주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이 뮤지컬의 울림이 큰 것은 지조와 절개라는, 겉으로 드러난 교훈이 내포한 메시지가 과연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관객 스스로가 답을 찾는다는 데 있다. 통절한 카타르시스는 재미와 감동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는 덕목이다.

굳이 옥에 티를 찾자면 이 뮤지컬을 통해 처음으로 데뷔를 하는 신인배우들과 주연 배우들 간의 실력차가 배역을 상회하는 것과 극 초반 군무와 합창에서 노래가 음악에 묻혀 가사 전달이 원활하지 못한 점을 들 수 있다. 론칭 쇼를 겸한 기자간담회에서 보여주었던 부분적인 문제점들. 예를 들면 1600년 전의 일본 전통 악기인 샤미센에 대한 소품 고증 문제와 같은 것들은 우려를 말끔히 불식하고 흠 없이 해결되어 작품의 완성도에 대한 의심이 기우였음을 증명했으나 연기자 간의 격차 해소는 단기간에 해결할 수 없는 해결과제로 보인다.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친 배우들의 인사 커튼 콜에 화답하는 출연진들
▲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친 배우들의 인사 커튼 콜에 화답하는 출연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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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박제상 대신 그의 대변자가 된 '김씨부인'

그리고 극 중반에서 후반으로 넘어가면서 나중에 국대부인으로 추존되는 박제상의 아내인 '김씨 부인'에게로 무게중심이 옮겨간다. 그녀는 극을 이끌어나가는 원톱으로 바통을 이어받은 후 강력한 카리스마를 발휘한다. 이 부분은 클라이맥스로서 극의 흐름과 완성도 측면에서 아무 문제가 없지만 박제상이라는 인물이 '역사'에서 자취를 감추고 그의 아내가 '대변자'가 되어 메시지를 전달하는 다소 기묘한 구조를 갖는다.

모험적일 수도 있는 이런 말미의 실험적인 연출은 그 의도가 색안경을 쓴 자들에 의해서 자칫 지역감정에 기반을 둔 정치적인 해석을 유도할 수가 있기에 우려가 되기도 한다. 김씨 부인에게서 느껴지는 왠지 모를 잔다르크적인 아우라가 국권 통수권자로 비치지 말라는 법도 없기 때문이다. 의도한 것은 아니겠으나 이런 난감함을 스릴로 만끽하는 것도 어쩌면 이 작품만의 묘한 매력이라고 한다면 지나친 것일까?

사람을 이용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악용하는 것이 문제인 것처럼 가벼움이 나쁜 것이 아니라 가볍기만 한 것이 문제인 세태에서 계몽주의적 판타지에 사로잡히지 않고 재미와 감동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데 성공한 <바람처럼 불꽃처럼>은 역사와 뮤지컬이 만난 창작물로서 우리에게 교훈보다 분명한 메시지를 던져준다는 점에서 많은 이들의 성원이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문화 소비의 주체인 관객이 손님이 아닌 주인으로 극장을 찾아주기를 바란다는 김한나 대표의 절실함처럼 창작 뮤지컬의 고정관념을 깬 이 작품의 롱런을 희망하는 것은 비단 나만이 아닌 뮤지컬과 대중 공연문화를 사랑하는 많은 이들의 소망일 것이다. 잘 다듬어진 한 편의 산문시와 같은 깔끔하고 개운한 뒷맛을 남겨주는 뮤지컬과의 만남을 서두르기를 권한다.

덧붙이는 글 | 후아이엠에도 실을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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