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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 애월읍 하가리 더럭분교 교정 풍경.
 제주시 애월읍 하가리 더럭분교 교정 풍경.
ⓒ 신용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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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주민 498명(200세대, 남 245명, 여 253명, 2014년 1월 1일 현재)으로 밭 186ha와 과수원 80ha를 소유하고 있는 제주시 애월읍 하가리는 제주도 여느 마을과 비교할 때 별반 차이가 없다.

오히려 오름·곶자왈·해변가 등 천혜의 자연환경을 소유하고 있는 일부 마을에 비해 환경적인 혜택을 보면 조금 뒤처져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학교 살리기·공동주택·오수관 정비 등 SOC(사회간접자본)를 활용하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 때 학생수가 16명까지 떨어지며 폐교 위기까지 갔던 더럭분교는 이장을 비롯해 마을 주민들의 노력으로 현재 76명의 학생이 다니고 있다. 장봉길 하가리장은 "제주도에서 학교 살리기에 성공한 마을은 우리 마을밖에 없는 것으로 안다"며 자랑스러워했다.

특히 학생들을 유치하기 위해 마련한 공동주택은 곽지리와 송당리 등 다른 마을의 공동주택 사례에 롤모델이 되었다.

장 이장은 "남편과 부인이 따로 살고 있는 부부는 안 받고 꼭 같이 사는 부부만 받고 있다"며 "이와 함께 제주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제주도민이 돼서 정착할 가정만 받고 있다"고 강조했다.

하가리 공동주택은 제주의 시골마을에 정착하고 싶은 이주민들에게 인기가 많다. 그도 그럴 것이 도시 아파트만큼 깔끔한 환경과 시설을 갖춘 20~30평 규모의 공통주택을 보증금 200만 원과 연세(제주에서는 월세가 아닌 일년치 연세를 내는 문화가 있다) 250만 원을 받고 제공하기 때문이다.

한편 하가리는 지난달 관광객들이 즐겨찾는 더럭분교 교정과 연화못 앞에 세워진 '프롬 더럭' 카페로 인해 한동안 시끄러웠다.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사장 A씨가 마을 주민들의 동의없이 이 마을 이름인 '더럭'을 비롯해 '연화못', '연화지', '프롬더럭', 'from더럭' 등 5개를 특허 상표로 등록했기 때문. 이밖에도 'from더럭 연화못카페', 'from더럭 연화못분교', '연화못분교 from더럭', '연화못분교' 등 4개는 특허 공고 중이었다.

애월읍 하가리와 상가리의 옛 마을 이름은 '가락(加樂)'으로 제주말로는 '더럭'이다. 하가리에 있는 연못 또한 옛날부터 연화(蓮花)못, 연화지(蓮花池)로 불리고 있다.

장봉길 이장은 당시 <제주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카페에서 '프롬 더럭' 빼고 나머지는 모두 마을에 무상 기부채납 하겠다고 하는데, 남몰래 상표등록 했다가 걸리면 무상기부 하는 것이냐"며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고 이것은 도둑질 한 거나 마찬가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결국 카페 주인 A씨는 자신이 운영하는 카페 '프롬 더럭' 상표만 빼고 나머지는 모두 마을에 기증했다.

장 이장은 "프롬 더럭 사건은 우리 마을 문제만이 아니라 대한민국 농촌 전체의 현실"이라며 "마을의 고유 이름은 제주도를 넘어 나라의 공공의 자산이다. 상호를 내걸고 장사를 할 수도 있지만 공공의 자산을 개인이 독점을 해서는 절대 안 된다"고 강조했다.

연꽃 피는 마을의 자랑, 연화못

연화못.
 연화못.
ⓒ 신용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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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50평의 커다란 못으로 애월읍 하가리의 대표적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연화(蓮花)못(혹은 연화지)은 600여 년의 역사가 있는 못으로 고려 25대 충렬왕 시절 산적들의 집터였다고 한다. 문헌에 따르면 산적들은 이곳에 고래등 같은 기와집을 짓고 이 연못에 딸린 작은 못 중 하나인 샛물통에 작은 초막을 지어 살면서 마을을 지나는 행인들의 재물을 약탈하는 일을 일삼아 왔다.

그러던 중 신임판관이 초도순시 차 이곳을 지나갈 것이라는 정보를 입수한 산적들은 판관 일행을 습격할 음모를 꾸미고 있었다. 하지만 이 마을에 사는 뚝 할머니가 이를 눈치 채고 산적들의 흉계를 관가에 알렸다. 이후 산적들은 관군에 의해 모두 소탕됐으며 움푹 패인 산적들의 집터는 소와 말의 물을 먹이는 못으로 활용됐다.

17세기 중엽 대대적인 수리공사로 지금의 식용 연꽃이 있는 못은(서남쪽못) 식수로 쓰고, 큰 못은 우마 급수와 빨래터로 사용되며 샛통은 나물을 씻는 용도로 뚝을 쌓아 지금에 이르고 있다.

이곳의 연꽃이 언제 심어졌는지 자세한 기록은 없다. 다만 19세기 중엽 제주목사 한응호가 지방 순시 중 이곳에 들러 연꽃잎에 술을 따라 마시고 시를 읊었으며 양 어머니로 하여금 연꽃을 지켜 가꾸도록 했다는 유래가 전해진다. 

현재 연화못 가운데 육각정이 서 있으며 기초공사 때 뻘 속에서 고려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목재와 기와가 발견돼 연화못의 역사를 뒷받침해주는 자료가 되고 있다.

못 가운데 육각정과 장지동산의 고목림이 연계되는 장관은 하가리의 일경으로 일컬어지고 있다.

장봉길 하가리장 "이주민들, 제주 아끼는 마음으로 정착해야"

장봉길 하가리장.
 장봉길 하가리장.
ⓒ 신용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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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 정착하려는 이주민들이 제주도민이 되고자 하는 절박한 마음으로 제주에 와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많이 와서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시험적으로 제주에 내려온 이주민들이 있기에 여러 문제들이 발생합니다. 그런 마음이 결국 이주민들이 원주민들과 반목하며 부딪치고 서로 어려움을 겪는 핵심이 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몸이 아파서 수술로 잠깐 몇 년 쉰 것을 제외하고 지난 1998년부터 십수 년 동안 마을 이장 일을 맡고 있는 장봉길(62) 하가리장은 이주민들의 제주 정착에 대한 생각이 단호했다.

장 이장은 "경제적으로 자본이 부족한 상태로 제주에 내려왔다면 이곳에 내려와 사는 이상 절박함과 간절함으로 원주민들과 잘 어울리며 살아야 한다는 마음이 있어야 하는데, 살다가 뜻대로 일이 잘 안 되면 다시 돌아간다는 마음이 있어서 서로에게 상처가 되고 있다"며 안타까워 했다.

장 이장은 제주도 200여 개 마을 이장 가운데 월급을 안 받는 유일한 이장이다. 현재 제주시 이장협의회 회장까지 맡아 마을 발전과 함께 제주도 마을의 원활한 네트워크화를 위해 분주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장 이장은 최근 여러 매스컴의 영향으로 연화못과 더럭분교 등이 알려지면서 관광객들의 마을을 찾는 것과 관련, "젊은 관광객들 가운데 남녀를 불문하고 담배 피우는 분들을 많이 발견한다"며 "하지만 마을 어르신들이 그 모습을 보시면 많이 불편해 하신다. 담배를 피우고 싶다면 지역 정서에 맞게 어르신들이 안 보이는 구석에서 담배를 피웠으면 좋겠다"고 관광객들을 향해 당부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지역일간지 <제주신문>에 실린 기사입니다.



태그:#하가리, #장봉길, #연화못, #더럭분교, #제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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