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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례행사처럼 진행되는 구제역, AI 바이러스의 창궐과 살처분은 인간의 건강까지 위협하고 있음에도 한국의 1000만 돼지들의 99.9%가 사육되는 '공장식 축산' 시스템의 실체는 철저히 베일에 싸여 있습니다. 5월 7일 개봉해 극장에서 상영중인 다큐멘터리 <잡식가족의 딜레마>는 전국을 뒤흔들었던 구제역 살처분 대란 이후 '진짜 돼지'를 찾아 떠나는 한 가족의 여정을 담은 작품입니다. 영화 제작·배급사인 시네마달이 '당신의 식탁이 위태롭다'란 타이틀로 기획 기사를 보내와 몇 편에 걸쳐 게재합니다. [편집자말]
구조되어 병원 치료중인 희망이
 구조되어 병원 치료중인 희망이
ⓒ 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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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KARA) 페이스북을 후끈 달군 사건이 있었다. 페이스북에 제보된 사진 속 길고양이는 얼굴의 절반 이상이 심한 염증으로 덮여 한쪽 눈 이외 다른 얼굴 부위가 보이지 않아 일명 '얼굴 없는 고양이'로 불렸다.

수많은 분들이 밤잠을 설칠 정도로 고양이의 상태는 심각해 보였다. 며칠 동안 각고의 노력 끝에 지역 봉사자들과 카라 활동가들이 이 불쌍한 고양이를 구조했다. 모두가 고양이가 살아나길 바라고 그 작은 몸으로 견뎌내야 했던 고통에 공감한다. 고양이는 '희망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꿈 속에서 가위에 눌린다. 옴짝달싹 할 수도 없는 작은 감금틀에 갇혀 있다. 빠져 나가려 해보지만 길이 없다. 심지어 몸을 돌릴 수조차 없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내가 볼 수 있는 것은 바로 내 옆, 또 그 옆에도 모두 똑같은 감금틀 속에서 나처럼 갇힌 채로 서로의 고통을 응시하는 모습이다. 나도 그들도 살아있다. 온몸이 뻐근하고 답답한 고통이 느껴진다. 정신을 잃는다. 이게 꿈이 아니라면 어쩌면 좋지?

'생명'으로서의 돼지와 닭 vs. '기계'로서의 돼지와 닭

좁은 스톨에 갖힌 돼지들의 모습
 좁은 스톨에 갖힌 돼지들의 모습
ⓒ 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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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에 함께 살고 있는 1000만 마리의 돼지와 1억 마리의 닭들은 이름이 없다. 그들은 공장식 축산 시스템을 돌려 '고기와 달걀'을 찍어내는 기계이자 원료이다. 밀가루가 이름이 없고 기계 나사들이 이름이 없는 것처럼 이 동물들에게도 이름이 필요하지 않다. 공장의 기계 부품과 장치들이 모두 제자리에 놓여 역할을 해야 하듯, 이 '살아있는 동물'들도 모두 제자리에서 다른 장치나 부품처럼 기능을 한다.

이 동물들은 생산 효율을 최대화하고 관리 비용을 최소화하여 수익을 내기 위해 산란계 배터리 케이지와 돼지 스톨에 갇혀 살아간다. 이 감금틀이 공장식 축산에서 그들이 배정받은 자리다. 그들은 이곳에서 새끼를 낳아 지속적으로 공장을 돌리는 원료와 부품을 제공하며 몸집을 불려 '고기'가 되고, 끊임없이 '달걀'을 생산한다.

돼지의 가축화는 대략 7000(9000)~5000년 전, 닭의 가축화는 8000~4500년 전에 시작됐다. 이 기간 중 급격한 공장식 밀집 사육이 보편화된 기간은 전 세계적으로 50여 년 정도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1990년대 들어 불과 20여 년 동안 공장식 축산이 폭발적으로 확산되었다.

공장식 축산은 비위생과 과밀, 유전적 다양성 상실로 인해 전염성 질환 확산에 최적의 환경을 제공한다. 우리나라는 2000년대부터 구제역과 AI(조류 인플루엔자)로 몸살을 앓다가 2011년 구제역으로 무려 350만 마리의 소, 돼지를 대부분 생매장 살처분 하기에 이르렀다. 구제역과 AI로 인한 살처분은 바로 지금도 진행 중이다.

좁은 틀에 갇힌 돼지와 닭들
 좁은 틀에 갇힌 돼지와 닭들
ⓒ 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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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는 사회적 동물로서 혈연관계의 암컷들이 비슷한 시기에 발정하여 공동 육아를 한다. 땀을 흘리지 않아 체온 조절을 위해 진흙 목욕을 하고, 주둥이로 땅을 파며 먹이활동을 한다. 돼지는 배변 장소와 쉬는 장소를 구분하는 깨끗한 동물이며, 지능이 높아 동료의 행동을 관찰해 정보를 연역할 수 있다.

닭은 모래 목욕으로 털을 관리하며, 높은 횃대에 올라가 쉬고, 자기만의 공간에 알을 낳아 품는다. 자연환경에서 활동시간 대부분을 부리로 먹이를 탐색하며 보낸다. 닭의 부리는 신경총이 분포된 매우 예민한 기관이다. 닭은 바로 급여되는 맛없는 사료보다 참고 기다렸다가 맛있는 애벌레를 받아먹는 학습이 가능하다.

생후 210일이 된 암퇘지는 인공수정으로 교배를 시작해 이 때부터 폭 60cm, 길이 200cm의 스톨에 갇혀 거의 평생을 보낸다. 스톨에 갇힌 돼지에게 좁은 철장 외에 아무것도 주어지지 않는다. 115일의 임신기간을 거쳐 출산 후 20여일간 새끼들에게 젖을 줄 때도 어미 돼지는 스톨에 갇혀 있다. 1년에 최소 두 번 이상 3~4년간 이러한 출산 과정을 반복하다가 생산능력이 떨어지면 도축된다.

어미 돼지는 새끼를 낳기 전에 간절히 둥지를 짓고자 하는 욕구를 가진다. 감금틀 속에서 출산해야 하는 어미 돼지의 둥지 짓기 본능은 철장을 씹는 정형행동(stereotype behaviour, 아무런 의미와 목적 없이 반복적으로 행하는 행동)으로 나타난다. 돼지는 새로운 상황이나 물건에 대한 호기심이 많으며, 이 욕구는 그들이 살고 있는 환경이 단조로울수록 더욱 강해진다.


달걀을 생산하는 산란계의 수명은 70주령이다. 보통 가로 50cm, 세로 50cm의 철창 케이지 하나에 암탉 6마리가 사육된다. 닭 한 마리에게 주어지는 공간은 환산하면 416cm²로 A4 종이 한 장(623.7cm²)의 2/3 밖에 안된다. 좁은 공간에서 닭은 날개 한번 제대로 펼쳐보지 못한 채 평생 알을 낳다 도축된다.

부리로 탐색하며 먹이활동을 하려는 닭의 욕구는 좁은 배터리 케이지에서 전혀 충족되지 못한다. 욕구 불만이 된 닭은 자신이나 동료 닭의 깃털이나 알을 낳아 빨갛게 부어있는 생식기를 쪼는 카니발리즘으로 발현된다. 카니발리즘으로 인한 생산성 저하를 막기 위해 닭의 부리는 두 차례에 걸쳐 잘린다.

크고 차가운 악과 작고 뜨거운 악

너무 크고 구조화된 악은 잘 인지되지 않는다. 천만 마리, 1억 마리가 넘는 농장동물들이 기본적으로 동물학대와 착취 시스템 속에서 신음하고 있어도 우리들은 그 문제를 뜨겁게 인식하지 못한다. 너무 당연하게 공장식 축산이 보편화 된 가운데 살고 있다 보니 일상화된 농장동물학대가 당연한 듯 느낀다.

농장동물의 고통은 무시된다. 동물 생매장 살처분 장면이나 비참한 사육 환경은 마치 강한 마취제나 환각제처럼 생명 감수성을 마비시켜 버렸다. 반면 얼굴이 심하게 상한 길고양이 '희망이'는 큰 관심을 받고 구조되기에 이른다. 이 길고양이의 생명의 무게와 고통의 깊이는 배터리 케이지 안 닭이나 돼지 스톨에 감금된 어미 돼지들이 겪는 고통에 견주어 얼마나 더 무겁고 깊을까.

정말 무서운 것은 차갑게 제도로 굳어진 악이다. 농장동물들은 공장식 축산이라는 '크고 차갑고 무서운 악'의 시스템 속에서 고통 받고 있다. 산란계 배터리 케이지와 돼지 스톨은 공장식 축산의 표상이자 생명을 도구화한 인간이 쌓아올린 어리석음과 탐욕 그리고 오만의 바벨탑이다.

유럽연합, 캐나다, 뉴질랜드, 미국의 여러 주에서는 더 이상 탑 쌓기를 그쳤다. 산란계 배터리 케이지와 돼지 스톨을 금지한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여전히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바벨탑을 쌓고 있다. 우리나라의 산란계 복지농장은 단 58곳, 돼지 복지농장은 단 2곳뿐, 산란계와 돼지의 99%가 각각 배터리 케이지와 돼지 스톨에서 키워진다.

공장식 축산의 문제점 : 유럽연합 28개국은 지난 2012년과 2013년 각각 배터리 케이지와 돼지 스톨 사육을 금지했다. 우리도 할 수 있다.
 공장식 축산의 문제점 : 유럽연합 28개국은 지난 2012년과 2013년 각각 배터리 케이지와 돼지 스톨 사육을 금지했다. 우리도 할 수 있다.
ⓒ 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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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는 전국 곳곳의 공장식 축산 농가의 동물학대 실태를 조사했다. 실태조사 영상은 지난 11일 열린 황윤감독의 영화 '<잡식가족의 딜레마> 특별상영회'에서 최초로 발표했다. 또 이날 카라와 녹색당, 동물을 권리를 옹호하는 변호사 모임은 산란계 배터리 케이지와 돼지 스톨 추방을 위한 백만인 서명운동을 시작했다.

더불어 카라는 농장동물에 대한 구조적인 학대와 착취를 정당화하고 육식을 당연시하거나 일부 강요하는 사회 시스템의 문제를 '육식주의(Carnism)'라 명명하고 도전해 온 <우리는 왜 개는 사랑하고 돼지는 먹고 소는 신을까?>의 저자 멜라니 조이(미국 보스턴 매사추세츠대학 교수)를 초청해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고 젖어든 '육식주의 매트릭스'를 깨뜨려 보려 한다. 멜라니 조이 교수와 임순례 카라 대표의 대담회는 오는 16일 열린다.

영화 <잡식가족의 딜레마>, 감금틀 추방 백만인 서명운동 개시, 멜라니 조이와 임순례의 대담이 과연 구조적 악 가운데 있는 농장동물들을 육식주의 매트릭스에 갇힌 사람들의 인식을 깨고 '구조'할 단서를 찾을 수 있을까. 

오는 5월 16일 '우리는 왜 개는 사랑하고 돼지는 먹고 소는 신을까?'의 저자 멜라니 조이 교수와 카라 대표 임순례 감독의 대담회가 열린다.
 오는 5월 16일 '우리는 왜 개는 사랑하고 돼지는 먹고 소는 신을까?'의 저자 멜라니 조이 교수와 카라 대표 임순례 감독의 대담회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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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ㅣ최유진 기자



태그:#공장식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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