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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 박사(왼쪽)와 김범수 다음카카오 이사회 의장이 지난 2013년 6월 26일 서울 역삼동 마인드프리즘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직장인 마음 건강 캠페인'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 박사(왼쪽)와 김범수 다음카카오 이사회 의장이 지난 2013년 6월 26일 서울 역삼동 마인드프리즘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직장인 마음 건강 캠페인'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 마인드프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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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일자리 잃게 된 마당에 사회 공헌을 말할 자격이 있나요?"

심리치유기업 마인드프리즘 노동조합 조합원들이 지난 11일 '진짜 사장'을 찾아 다음카카오 판교 사옥을 방문했다. 지난주 김범수 다음카카오 이사회 의장 면담을 요청한 뒤 기다리다 못해 직접 찾았지만 결국 질의서만 전달하고 돌아서야 했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조 마인드프리즘지부 조합원 4명이 서울시 강남구 역삼동 케이큐브타워에 있는 회사 회의실을 점거한 건 일주일 전인 지난 6일이었다. 오는 15일로 성큼 다가온 회사 폐업과 전 직원 해고를 막으려고 철야 농성에 나선 것이다(관련기사: '전 직원 해고 위기' 마인드프리즘 노조 농성 돌입).

한때 카카오(현 다음카카오) 본사가 있었던 이 건물에는 지금도 케이큐브벤처스를 비롯해 김범수 의장이 투자한 기업들이 둥지를 틀고 있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카카오와 다음커뮤니케이션 합병 이후 다음카카오 계열사로 거듭났지만 마인드프리즘은 조만간 쫓겨날 처지다. 이 건물 소유주인 김범수 의장이 지난해 마인드프리즘을 버렸기 때문이다.

'진짜 사장' 찾아 나선 마인드프리즘 조합원들

마인드프리즘 노동자들이 5월 6일 폐업 철회를 촉구하며 사내 철야농성투쟁을 시작했다. 회사는 5월 15일부로 폐업과 전 직원 해고를 통보한 상태다.
 마인드프리즘 노동자들이 5월 6일 폐업 철회를 촉구하며 사내 철야농성투쟁을 시작했다. 회사는 5월 15일부로 폐업과 전 직원 해고를 통보한 상태다.
ⓒ 홍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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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마인드프리즘에 남은 시간은 고작 사흘뿐이다. 더 답답한 것은 마인드프리즘에는 노조를 상대할 '사측'이 없다는 것이다. 전임 대표이사들이 지난 3월 회사를 그만두면서 회사 지분을 남은 임직원들에게 모두 나눠 줬고, 현재 대표이사는 자신에게 '권한'이 없다며 노사 교섭을 거부하고 있다. 노조가 '진짜 사장' 나오라고 외치는 이유다. 과연 마인드프리즘의 진짜 사장은 누구일까?

[후보 1번] 창업자 정혜신-이명수 부부

마인드프리즘 창업자는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 박사와 남편 이명수씨다. 두 사람은 지난 2004년 오늘날 개인 심리 상담 프로그램인 '내마음보고서'와 기업 단체 대상 '내마음 워크숍'을 두 축으로 하는 심리치유 전문기업을 만들었다. 특히 정 박사는 지난 2011년 경기도 평택에 쌍용차 해고자 가족을 비롯한 공권력 피해자 심리치유센터 '와락'을 만들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사업 취지는 좋았지만 회사 경영은 어려웠다. 당시 '내마음보고서' 상담 비용은 무려 500만 원에 달해 개인 고객은 제한됐고, 기업 상담 고객 유치도 쉽지 않았다.

[후보 2번] '구원투수' 김범수-김화영 형제

경영 위기가 한창이던 지난 2012년 당시 모바일 메신저 '카카오톡'으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던 김범수 의장이 구원투수로 등장했다. 한게임 창업자인 김 의장은 NHN(현 네이버) 대표이사 시절 정혜신 박사에게 심리치료를 받은 인연으로, 지난 2012년 11월 마인드프리즘 지분 70.5%를 사들여 최대주주가 됐다.

김 의장은 단순 지분 투자에만 그치지 않고 친동생인 김화영 전 공동대표를 앞세워 직접 경영에 참여했다. 지난 2013년엔 '내마음 보고서' 비용을 8만 원으로 확 낮춰 대중화하고, 전국 직장인을 대상으로 한 '1000만 힐링 프로젝트'를 선언하기도 했다.

덕분에 2년 사이 직원 수는 9명에서 28명으로 불었지만 적자 구조는 좀처럼 바뀌지 않았다. 결국 지난해 6월 정혜신 박사가 안산 세월호 사고 희생자 가족 치유에 전념하겠다며 회사를 떠난 뒤 회사는 대대적인 구조조정에 나섰다.

일부 직원들이 반기를 들어 권고사직은 막았지만 결국 8명이 '희망퇴직'했고 김화영 전 대표도 그해 10월 회사를 떠났다. 김범수 의장이 마인드프리즘에서 손을 뗀 것도 이 시점이었다. 김 의장은 지분 85%를 새 경영진에게 무상으로 넘기고 개인적으로 회사에 빌려준 돈 26억6500만 원을 포기했다. 

[후보 3번] 김창성-박인정 공동대표

16일 부로 재계약 없이 계약 기간이 종료되는 마음치유 활동가 두명을 위해 회사 정문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인 박세영 전국보건의료산업노조 마인드프리즘지부 지부장. 해고노동자들의 심리 치유를 전문으로 해온 마인드프리즘은 지난해 구조조정을 시작으로 노사 갈등을 빚어온 이들은 지난달 노조를 설립했다.
▲ 계약직 동료 위해 1인 시위 나선 '마인드프리즘' 직원 16일 부로 재계약 없이 계약 기간이 종료되는 마음치유 활동가 두명을 위해 회사 정문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인 박세영 전국보건의료산업노조 마인드프리즘지부 지부장. 해고노동자들의 심리 치유를 전문으로 해온 마인드프리즘은 지난해 구조조정을 시작으로 노사 갈등을 빚어온 이들은 지난달 노조를 설립했다.
ⓒ 손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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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성-박인정 팀장이 공동대표를 맡았지만 노사 갈등은 시작일 뿐이었다. 회사가 계약직 마음 치유사 두 명을 해고하려 하자 직원 9명이 노조를 결성했다. 이 가운데는 쌍용차 가족 심리치유센터 '와락' 시절부터 활동해온 김미성 조합원도 포함돼 있었다.

경영진은 결국 회사의 위태로운 경영 상황을 앞세워 두 사람을 해고했고 노조는 회사가 '사람에겐 마음이 있다'는 기업 가치를 훼손했다며 회사와 광화문에서 1인 시위와 집회를 벌였다(관련기사: 쌍용차 해고자 돕던 마음 치유사들 '해고 위기').

결국 지난 2월 16일 정혜신 전 대표가 중재에 나섰다. 당시 두 공동대표가 갖고 있던 지분85%를 전 직원에게 똑같이 나눠줘 사실상 종업원 지주회사로 만들고 3월 말까지 전 직원이 동의하는 회생안을 내놓으면 김범수 의장이 지원금을 대겠다는 약속까지 이끌어냈다.

하지만 이미 조합원과 비조합원 간에 감정의 골이 깊어질 대로 깊어진 상태였다. 당시 다수를 차지한 비노조 직원들은 내마음보고서와 워크숍 사업 분사를 요구했지만 노조는 기업 가치를 훼손할 뿐 아니라 노조를 배제하려는 의도라며 거부했고 결국 합의는 이뤄지지 못했다(관련기사: "회사 유지 불가능"... 마인드프리즘 폐업 위기).

[후보 4번] 권한 없는 신임 대표와 임직원 주주

두 공동대표까지 회사를 그만둔 뒤 김형욱 팀장이 지난달 1일부터 새 대표를 맡았다. 하지만 김범수 의장 지원금 없이 회사가 회생할 가능성이 없다며 지난달 15일 한 달 뒤 폐업을 예고하고 남은 직원 14명에게 해고를 통지했다.

이에 노조는 조합원만 회사에서 내쫓으려는 '위장 폐업'이라고 의심하고 있다. 하지만 노조의 교섭 요구에는 김 대표는 "(지분을 나눠 가진 직원들이 모여 결정하기 때문에) 권한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공교롭게 마인드프리즘 노조가 사무실을 기습 점거한 지난 6일 일부 언론에서는 김범수 의장이 사회 혁신 기업가를 지원하는 국제 단체인 '아쇼카 한국' 등과 접촉해 사회 공헌 재단을 만들려 한다는 소식이 흘러 나왔다. 아쇼카 한국에서 지원하는 국내 사회 혁신 기업가 6명에는 정혜신 박사도 포함돼 있다.

김범수 '소셜 임팩트' 첫 단추는 마인드프리즘

심리치유기업 마인드프리즘 노조 조합원들이 6일 오후 서울 역삼동 사무실에서 '위장 폐업'과 전 직원 해고 철회를 요구하는 무기한 철야 농성에 돌입하기 앞서 결의를 다지고 있다.
 심리치유기업 마인드프리즘 노조 조합원들이 6일 오후 서울 역삼동 사무실에서 '위장 폐업'과 전 직원 해고 철회를 요구하는 무기한 철야 농성에 돌입하기 앞서 결의를 다지고 있다.
ⓒ 김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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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의장은 이미 지난해 11월 한 국제 스타트업(벤처 창업) 행사 기조연설에서 사업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를 아우르는 '소셜 임팩트' 기업 투자를 통한 사회 공헌을 강조했다. 현재 다음카카오 안에 이를 실현할 조직을 만들고 있고 재단 설립까지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마인드프리즘 노조는 김 의장이 자신들을 내버려둔 채 또 다른 사회 공헌 재단을 만든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실제 김 의장은 지난 2013년 6월 마인드프리즘에서 '직장인 마음건강 캠페인'인 '1000만 힐링 프로젝트'를 발표하면서 "마인드프리즘을 앞으로 사회적 기업, 더 나아가 재단 형태로 키워나가겠다"라는 포부도 밝혔다. 마인드프리즘이야 말로 김 의장이 말하는 '소셜 임팩트'의 첫 단추였던 셈이다.

노미선 노조 사무장은 "김 의장이 이제 와서 사회에 공헌하겠다는데 마인드프리즘은 고용 안정 실패 프로젝트였다"라면서 "노동자를 존중하거나 노조를 인정하지 않는 사회 공헌이 무슨 의미인가"라고 따졌다.

어버이날이었던 지난 8일 오후 농성장을 찾은 정혜신 전 대표는 "나도 이번 사태로 (노사 양쪽에서)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다"라면서도 "회사 폐업이란 극단적 사태만은 막아야 한다"라며 노사 협상을 주선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5개월간 매일 같이 둘로 갈려 서로 얼굴을 붉혀야 했던 마인드프리즘 임직원들 마음도 상처투성이다. 그 사이 조합원 9명 가운데 5명이 회사를 그만뒀고 남은 조합원 4명과 비조합원 10명 사이에도 감정의 골이 깊이 패어 있다. 하지만 이대로 며칠이 지나면 이들도 모두 해고당해 뿔뿔이 흩어질 처지다.

'진짜 사장'이 누구냐는 질문에 노조도, 비노조 직원도 선뜻 대답하지 못한다. 하지만 지금 마인드프리즘 사태를 풀 열쇠를 쥐고 있는 이가 김범수 의장이라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3년 전 '1000만 힐링 프로젝트'를 앞세워 마인드프리즘을 되살린 사람, 이대로 죽일 수도, 다시 살릴 수도 있는 사람. 그가 바로 마인드프리즘의 '진짜 사장'이다.

○ 편집ㅣ김지현 기자



태그:#마인드프리즘, #다음카카오, #김범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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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팩트체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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