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시즌 프로야구는 '극장 야구'가 대세다. 이기고 있는 팀도 지고 있는 팀도 경기가 끝날 때까지 안심할 수 없는 승부가 이어진다. 9회에도 승부가 뒤집히는 것은 예사다. 지켜보는 팬들은 짜릿하지만, 매 경기 천당과 지옥을 오르내리는 선수들은 죽을 맛이다.

고생이 가장 심한 것은 역시 구원 투수들이다. 경기의 마무리를 책임져야하는 투수들의 어깨가 특히 더 무거워졌다. 마지막 1이닝, 아웃카운트 하나를 버티지 못하고 패배의 멍에를 뒤집어써야하는 경우도 흔하다.

지난 시즌부터 시작된 마무리 대란, 구원투수 수난시대

프로야구는 지난 시즌부터 마무리 대란에 허덕이고 있다. 국내 최고의 마무리로 꼽히던 오승환이 일본으로 진출하면서 마무리 투수 경쟁은 춘추전국 시대에 돌입했다. 여기에 본격적인 타고투저 열풍까지 불기 시작하면서 구원투수들의 수난이 본격화됐다.

현재 각 팀을 살펴보면 믿을만한 고정 마무리를 보유한 팀 자체가 많지 않다. 삼성 임창용, 넥센 손승락, KIA 윤석민, SK 윤길현 정도다. 두산은 올 시즌 마무리로 낙점된 윤명준이 불안한 모습을 보이자, 함덕주와 사실상 '더블 스토퍼' 체제를 도입했다. NC와 한화는 당초 주전 마무리였던 김진성과 윤규진이 각각 부상으로 전열에서 이탈하면서 임창민과 권혁이 임시 대타로 나서고 있다.

봉중근 등장 지난 3월 19일 서울 목동야구장에서 열린 2015 KBO리그 시범경기 넥센 대 LG 경기. LG 세번째 투수 봉중근이 8회말 역투하고 있다.

▲ 봉중근 등장 지난 3월 19일 서울 목동야구장에서 열린 2015 KBO리그 시범경기 넥센 대 LG 경기. LG 세번째 투수 봉중근이 8회말 역투하고 있다. ⓒ 연합뉴스


올 시즌 마무리 불안으로 홍역을 앓고 있는 팀들이 상당수다. 대표적인 경우로 LG와 롯데를 꼽을 수 있다. LG는 지난 3년간 부동의 수호신이었던 봉중근이 극심한 난조에 빠지면서 불펜 운용에 고민이 깊어졌다. 봉중근은 9경기에서 2패 3세이브(1블론 세이브) 평균자책점 21.21을 기록 중이다.

연일 롤러코스터 야구를 선보이고 있는 롯데나 최하위 KT는 아예 확실한 마무리 자체가 없는 실정이다. 롯데는 지난해 20세이브를 올렸던 김승회가 극도의 부진 끝에 2군에 내려간데 이어, 이정민·김성배 등이 빈자리를 메우고 있다. 하지만 돌아가며 블론 세이브를 기록하는 등 불펜 전체가 좀처럼 안정을 찾지 못하고 있다. 막내구단 KT는 마무리 후보로 낙점됐던 장시환·김사율 등이 부진한 데다 연패가 길어지며 세이브 상황 자체가 잘 나오지 않고 있다.

그나마 마운드 전력에 여유가 있는 상위권 팀들도 상황이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다. 디펜딩챔피언 삼성은 최근 불펜 불안과 함께 4연패 수렁에 빠졌다. 지난 28일 LG전에서는 4-2로 앞선 9회 마무리로 등판했던 임창용이 4피안타를 맞고 5실점을 내주며 뼈아픈 역전패를 당하고 말았다. 임창용의 올 시즌 두 번째 블론 세이브였다.

불규칙한 등판... 연투에 혹사 다반사

눈빛 투구 친정팀인 KIA 타이거즈에 복귀한 투수 윤석민이 15일 광주-기아 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LG 트윈스와의 시범경기에서 6회초에 등판해 강렬한 눈빛으로 앞을 보며 공을 던지고 있다.

▲ 눈빛 투구 친정팀인 KIA 타이거즈에 복귀한 투수 윤석민이 지난 3월 15일 광주-기아 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LG 트윈스와의 시범경기에서 6회초에 등판해 강렬한 눈빛으로 앞을 보며 공을 던지고 있다. ⓒ 연합뉴스


올 시즌 10개 구단을 통틀어 2세이브 이상을 기록한 선수 중 블론 세이브가 없는 선수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나마 안정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윤길현도 지난 25일 한화전에서 9회 끝내기 역전패의 제물이 되는 등 수난을 피해가지 못했다.

국내 무대 복귀 후 마무리를 맡은 KIA 윤석민은 26일 두산과 연장 접전에서 3⅓이닝을 던지고도 패전투수가 되는 등, 아직 안정감 있는 모습과는 거리가 있다.

이처럼 각 팀마다 뒷문 불안이 이어지면서 마운드에서의 보직파괴와 변칙 기용이 늘어나고 있다. 한화는 권혁과 박정진의 필승조를 주축으로 송은범·배영수 등 선발 자원들도 유사시 불펜에 투입하는 김성근표 '벌떼야구'로 재미를 보고 있다.

삼성 시절 주로 '원 포인트 릴리프'로 활약하던 권혁은 한화에서는 셋업맨과 마무리, 롱릴리프를 오가는 전천후 계투로 중용되고 있다. KIA는 FA 최대어로 90억 원 몸값을 들인 윤석민의 활용도를 극대화하기 위하여 2~3이닝 이상을 소화하는 '롱 마무리'로 활용하고 있다.

확실하게 타자를 압도하는 구위를 지닌 구원투수들이 부족해지면서 그만큼 벤치의 계산은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투수 개개인의 역량보다, 철저한 데이터에 기반한 감독의 투수교체 타이밍과 마운드 운용이 승부에 미치는 영향력이 더욱 커졌다.

한편으로 불안한 접전 속에 구원투수들의 불규칙한 등판도 늘어나면서 연투나 혹사에 대한 부담 또한 증가했다. 여름이 다가오는 가운데 각 팀마다 혹사당하기 쉬운 불펜투수들의 구위나 체력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시즌 중반으로 향하는 프로야구 순위 판도의 최대 변수가 될 가능성이 높다.

○ 편집ㅣ곽우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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