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송파구 올림픽공원
▲ 산책 송파구 올림픽공원
ⓒ 김민수

관련사진보기


어제는 봄비가 종일 내렸습니다. 제법 쌀쌀하여 강원도 산간지방에는 때아닌 폭설도 내렸다는 소식입니다. 겨울과 봄과 여름이 혼재된 듯한 계절들을 맞이하면서 혼란스럽기도 하지만, 그 혼란스러움이 우리 사람들 살아가는 세상만큼은 아닌 듯합니다.

봄비가 그치고 아침이 밝았습니다. 각자의 일상에서 기쁜 일도 있었을 것이고, 슬픈 일도 있었을 것입니다. 자신에게는 전부인 듯 보이는 것도 누군가에겐 관심사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인간사라고는 하지만, 모두가 기억해야할 일들도 있는 법입니다.

송파구 올림픽공원 산책길에 벚꽃이 화들작 피어있다.
▲ 산책 송파구 올림픽공원 산책길에 벚꽃이 화들작 피어있다.
ⓒ 김민수

관련사진보기


봄은 느닷없이 왔다가 속절없이 갑니다. 봄비에 떨어진 꽃잎, 애써 피운 꽃잎들이 서설처럼 쌓인 것을 보면 슬프기도 하지만, 꽃이 떨어진 자리에 맺히는 열매를 생각하면 여전히 희망입니다.

그런데도 이 봄에 꽃비로 내린 낙화가 슬픈 이유는 다 피어나지 못하고 진 꽃들 때문입니다. 0416, 이 숫자가 이토록 두려운 기억의 파편이 되어 나를 찌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작년 4월 16일은 그저 일상으로 맞이했다면, 올해 4월 16일은 일상으로 맞이할 수가 없습니다. 트라우마가 된 것이지요.

어제 내린 비에 우수수 꽃비가 되어 떨어진 벚꽃
▲ 낙화 어제 내린 비에 우수수 꽃비가 되어 떨어진 벚꽃
ⓒ 김민수

관련사진보기


꽃이 피어나는 데 나는 아무것도 한 일이 없습니다.
꽃이 떨어질 때에도 나는 속수무책 바라보기만 했습니다.

그런데, 그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바라보기만 하고, 피어나면 '좋다'하고 지면 '슬프다'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행위인지요. 사실, 우리는 꽃이 피든말든 지든말든 우리에게 주어진 바쁜 일상을 살아가느라 볼 겨를조차도 없이 살아갑니다. 그러니, 피어나는 꽃에 기뻐하고 지는 꽃을 보며 슬퍼할 줄 아는 것도 감사한 일이지요.

사실, 세월호 참사로 숨진 아이들을 위해서나 유족을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 아무것도 없음, 그러나 그것은 무관심과는 다른 말입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지켜봐 주는 것, 그것이 삶의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제도 몇몇 지인들이 세월호 관련 집회를 하다 연행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들을 잘 압니다. 그렇게 착한 사람들이 아무것도 할 수 없음에 대한 몸부림을 칠 수밖에 없는 현실입니다. 정상적인 나라였다면 그런 몸부림없이도 이미 진상규명이 되었어야지요. 1주기를 맞이하면서 슬퍼할 지언정, 마음에 한을 지속적으로 깊게 각인하지는 않아야 정상이지요.

낙화한 꽃잎들과 12간지를 상징하는 동물들의 석상
▲ 낙화 낙화한 꽃잎들과 12간지를 상징하는 동물들의 석상
ⓒ 김민수

관련사진보기


그런데 말입니다. 그렇게 속절없이 떨어진 꽃, 그들이 있어 열매가 맺는다는 사실은 많은 희망을 품게 합니다. 그것이 비단 자연의 일만은 아닐 터이고, 우리네 세상사도 가만 보면 조금 더디긴 하지만 결국, 자연의 질서를 따라가기 마련이니까요.

꽃비가 내린만큼, 그래서 피어났던 꽃들을 놓은 가지들이 앙상한 만큼 봄이 간 것이 아니라 봄이 오고 있음도 봅니다. 꽃비를 내린 벚나무에는 연록의 이파리들이 돋아나 나뭇가지를 채우고, 노란 개나리 피었던 곳에도 연록의 이파리들이 즐비합니다. 나뭇잎들이 하나 둘 봄비의 독려를 받아 기지개를 켜며 피어납니다.

가는만큼 무르익는 봄을 봅니다.

송파구 올림픽 공원의 능선
▲ 산책 송파구 올림픽 공원의 능선
ⓒ 김민수

관련사진보기


봄이 느닷없이 왔다가 속절없이 갑니다.
그러나 그렇게 가는 것이 봄이고, 그래야 또 다음 계절이 피어날 것입니다.

문득 산책길에 공원 능선 정상에 자리한 나무를 봅니다.
공원이 조성되기 전에도 그 자리에 있었던 나무로 기억이 됩니다. 토성 능선에 자리했던 상징같은 나무는 개발이 되면서도 남아있었던 것입니다.

197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풍납동 일대는 장마철만 되면 상습적으로 수해를 입는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겅기도 성남을 가려면 저 토성 아래쪽으로 난 비포장길을 돌아돌아 가야 송파를 통해 가락동, 복정동을 거쳐 성남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꽤나 비탈진 길이었는데, 지금은 모두 공원에 편입이 되어버렸고, 그 길은 토성 아래(첫번째  두 번째 사진에 나오는 산책길) 산책로가 되었습니다.

우람한 나무가 되기까지 참으로 많은 세월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 긴 세월동안 나무는 늘 좋기만 했을까요?

빈 의자에 낙화한 꽃잎이 잠시 쉬었다 간다.
▲ 빈 의자 빈 의자에 낙화한 꽃잎이 잠시 쉬었다 간다.
ⓒ 김민수

관련사진보기


때론 모든 것을 다 놓고 싶을 정도로 춥기도 했을 것입니다. 바람에 시달리기도 했을 것이며, 가뭄에 혹은 물난리에 시달리기도 했겠지요. 그러나 이제 누구든 압니다. 저 나무는 아주 오랜 세월을 더 그곳에서 살아갈 것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맨 처음부터 그리 큰 나무는 아니었을 것입니다.
수많은 나무들 가운데 그토록 큰 나무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의지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의자와도 같은 존재, 우리는 알지 못하지만, 그 무언가에 기대어 서로를 의지하며 지금의 그가 되었을 것입니다. 무작정 큰 나무가 되겠다는 일념만 있었다면 그렇게 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누구에게나 쉼, 의지할 곳이 필요합니다.
큰 아픔을 겪은 이들은 더더욱 그렇습니다. 이런 쉼이 잘 이뤄지는 세상이 사람사는 세상이요, 살 만한 세상일 것입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어떻습니까?
애써 쉬려고 해도 빈의자를 빼앗아 버리거나 차지해 버리고, 골판지라도 깔고 쉬고자해도 그것마져 빼앗아버리는 형국입니다. '잠시 쉬었다 가자' 해도 경쟁을 부추키며 게으름으로 매도하고 있습니다. 쉼을 잃어버린 세상입니다.

그래도, 조금 더디더라도 결국 사람사는 세상도 자연이 흐름을 따라가지 않을까 싶은 꿈만큼은 버리고 싶지 않습니다. 그것까지 버린다면 절망이니까요.


태그:#봄, #산책, #꽃비, #낙화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