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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선굴, 대금굴 같은 이름난 동굴들과 멋진 풍광의 해변을 간직한 강원도 삼척(三陟) 여행을 하고 싶어, 인터넷 지도를 살펴보다가 눈길을 끄는 곳을 발견했다.

삼척시에서 미로역-신기역-도계역에 이르는 영동선(嶺東線) 철도 노선을 따라 이름의 유래를 궁금하게 하는 하천인 오십천(五十川)이 흐르고 있어서다. 영동선 기차 길 옆으로 하천이 마치 연리지 나무처럼 꼭 붙어 함께 북쪽으로 동행하고 있다. 문득, 이 하천 길을 따라 자전거 타고 달려보고 싶어졌다. 영동선 철마가 거친 숨소리를 내며 달려가는, 첩첩산골이 대부분인 삼척 땅이지만 오십천이 있어서 덜 힘들 것 같았다.  

서울 청량리역에서 오십천이 가장 가까운 영동선 도계역까지 가는 유일한 무궁화호 열차를 탔다. KTX 열차나 관광열차에 비하면 누추할 정도의 소박한 열차지만 자전거족에겐 친근한 열차다. 열차 내 카페 칸에 자전거를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는 거치대가 설치되어 있기 때문이다. 도계역에서 오십천 길 따라 삼척시까지는 약 33km. 과연 어떤 길과 풍경이 기다리고 있을지... 자못 궁금한 나머지 청량리역에서 아침 7시에 출발한 기차 좌석을 뒤로 깊게 뉘여도 쉬 잠이 오지 않았다.

50번 굽이치며 흘러가는 오십천(五十川)

아련하고 특별한 풍경을 보여 주었던 영동선 무궁화호 열차 꼬리 칸.
 아련하고 특별한 풍경을 보여 주었던 영동선 무궁화호 열차 꼬리 칸.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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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거치대가 있어 좋은 영동선 무궁화호 열차.
 자전거 거치대가 있어 좋은 영동선 무궁화호 열차.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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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역, 철암역의 산악지대를 숨을 고르며 천천히 달리는 무궁화호 열차의 맨 뒤 칸으로 갔다. 보통 앞으로 다가오며 펼쳐지는 풍경에 익숙했던 눈에, 점점이 사라져가는 열차 꼬리칸의 풍경은 아련한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 했다.

스쳐지나가는 다른 열차의 뒷모습, 기차가 지나가자마자 철로에 들어서서 기차 길 정비를 하는 나이 지긋한 현장 직원들, 열차가 지나온 짧거나 긴 터널들의 묘한 흡입력... 흥미롭게 본 영화 <설국열차>에서 기차 꼬리 칸은 찬밥 취급을 받지만, 실은 아늑하고 정겨운 풍경을 보여주는 공간이었다.    

오십천 변을 따라 태백시 통동의 동백산역을 지난 열차는 첩첩산골 통리협곡이 있는 삼척시 도계읍에 자리한 도계역에 잠시 정차했다. 아직도 증기 기관차 시절의 급수탑이 남아있는 아담한 역사(驛舍)의 기차역이지만 도계읍은 5일장이 열리는 전두 재래시장, 중고등학교, 대학캠퍼스, 버스터미널 등이 있는 읍(邑)보다는 면(面)에 어울리지 않는 큰 동네다. 기차역 건너편에 오십천이 기차 길 옆을 따라 동해바다를 향해 유유히 흘러가고 있었다.

지리적으로 산이 많다 보니 삼척에는 논이 적고 밭이 많아 농산물은 그리 풍부하지 못하지만, 대신에 광산물 자원과 수산물이 풍부한 편이다. 삼척에서 많이 나는 광물은 석탄과 석회석이다. 주로 산으로 둘러싸인 도계읍 쪽에 광산이 몰려 있다. 산이 많은 삼척의 특이한 점은 이곳의 산은 거개가 석회암 성분을 띠고 있다는 점이다. 도계읍을 지나 흐르는 오십천변이 유난히 회색빛으로 보였던 이유가 있었다.

영동선 철길과 어울려 흘러가는 오십천, 가뭄으로 인해 많이 여위었다.
 영동선 철길과 어울려 흘러가는 오십천, 가뭄으로 인해 많이 여위었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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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산맥의 영향을 받아 해안까지 산지가 발달해 평야가 적은 강원도 삼척의 자연은 '천길 푸른 석벽에 오십 맑은 냇물'이라는 오십천(五十川)에 크게 의지하고 있다. 오십천은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구사리 백산에서 원통골로 넘어가는 큰 샘에서 발원하여 삼척 정상동에서 동해로 흘러 들어가는 48.8km 유역면적 294㎢의 강이다. 이 냇물을 따라 철로와 교통이 발달하였고, 옛날 삼척에서 영남으로 오고 가는 길은 오십천을 통하는 것이 유일한 길이었단다.

이 오십천을 따라가자면 어림잡아 오십여 번 물을 건너야 했는데, 물굽이가 오십 굽이나 된다고 하여 오십천이라 했다고 한다. 기차를 타고 편하게 갔다면 몰랐겠지만, 자전거를 타고 삼척시 오십천 하구까지 가보니 하천의 굽이치는 곡류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내겐 자전거에 달린 수통의 물을 오십 번 정도 마신 기억 속 오십천으로 남을 것 같다.    

근대문화유산이 된 아름다운 폐역, 하고사리역

오십천변을 달리다 마주친 시멘트 공장들.
 오십천변을 달리다 마주친 시멘트 공장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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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에서 영동선 기차 길과 오십천변의 한적하게 보였던 도로는 차량들 그것도 대형 덤프트럭이 흔히 오가는 국도였다. 어디 큰 건설 공사 현장이 있나 싶을 정도로 자주 오가는 덤프트럭들의 정체는 오십천변에 자리한 시멘트 공장이었다. 삼척의 향토기업으로 불리며 오래전부터 천변에 자리한 시멘트 공장들에서 쏟아져 나오는 거대 트럭들과 어깨를 스치듯 나란히 하고 차도를 달리기도 했다.

갓길도 없는 차도 맨 오른쪽 흰선을 생명선삼아 자전거 앞바퀴를 단단히 고정시키고 천천히 페달을 밟았다. 온갖 트럭과 차량들이 내달리는 하천변 국도에서 자전거의 존재는 일엽편주처럼 외롭고 위태로웠지만 동시에 보기드문 신기한 존재였나 보다. 트럭들은 천둥소리같이 들리는 경적을 한 번도 울리지 않았고, 보호해주려는 듯 살짝 비켜가기도 했다. 잔뜩 긴장하고 오르막 길을 몇 번 올랐더니, 지난 겨울 푹 쉬었던 허벅지와 종아리가 쥐가 난다며 아우성을 쳤다. 오십천을 다 달리고 나면 넓적다리와 장딴지에 자전거 바퀴무늬 같은 근육이 돋겠지...

영동선 열차가 지나가는 도계역에서 고사리역, 마차리역을 지나 신기역, 미로역을 향해 가는 길에 동행한 오십천은 하천 고유의 정취를 잃어버린 메마른 하천이었다. 강원도 영서 지역에 찾아온 40년 만의 지독한 가뭄이 하천의 메마른 풍경에 한 몫 하는 듯 했다. 하천 변 마을 길목마다 산불조심 초소가 자리하고 있었고, 유니폼 조끼를 맞춰 입은 동네 할아버지들이 초소를 지키고 있었다. 이맘때가 마을 뒤로 이어진 산에 불이 가장 나기 쉬울 때라고 한다.       

푸릇푸릇 찾아온 봄을 맞이하러 나온 농부.
 푸릇푸릇 찾아온 봄을 맞이하러 나온 농부.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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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에 닥친 최악의 가뭄까지 겹쳐 여위고 마른 회색 빛 하천에 온기를 넣어주고 보듬어 주는 유일한 존재는 봄이 찾아온 하천 변의 밭이었다. 언 땅이 녹고 햇볕이 땅속으로 스며들면서, 흙에서 아련하고 풋풋한 냄새가 풍겨왔다. 한껏 부풀어 오른 흙 위로 늙은 부부 한 쌍이 주저앉아 호미로 흙을 주무르고 있었다. 호미질을 할 때마다 봄볕은 조금 더 깊이 흙 속으로 스몄다. 마늘밭과 봄동밭에 김을 매는 농군 부부는 거의 말을 나누지 않았다. 날이 저물어 집에 돌아갈 땐 아마 남편이 앞서고 아내는 몇 걸음 떨어져서 뒤따라 갈 것 같았다.       

하천변길, 뚝방길, 38번 국도, 영동선 철길 옆 등 다양한 길을 달리다 폐역에서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이 된 무정차 무인 간이역을 만났다. 등록문화재 336호가 된 삼척 '하고사리역'이다. 동네 이름에서 따온 기차역인데 삼척시 도계읍엔 고사리, 발이리, 차구리, 마차리 등 마을 이름이 참 독특해서 기억에 남는다. 동네마다 재미있고 사연있는 이야기를 품고 있을 것 같다. 1966년 생겨난 하고사리역은 예전부터 마을의 중심지였다고 한다. 지금도 이름 정다운 소달 초등학교, 소달 중학교가 남아 있다. 하고사리역 앞에도 있던 산불감시 초소 할아버지가 하고사리 마을과 기차역 이야기를 들려 주었고, 그 앞에서 손자마냥 앉아 이야기를 들었다.

근대문화유산이 된 첩첩산중 사이 절경의 간이역 하고사리역.
 근대문화유산이 된 첩첩산중 사이 절경의 간이역 하고사리역.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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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흔적이 남아있는 깊은 산골마을, 종탑이 있어 덜 쓸쓸하게 보였다.
 겨울의 흔적이 남아있는 깊은 산골마을, 종탑이 있어 덜 쓸쓸하게 보였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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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석탄채굴을 위한 광업소가 생기고 인근에 고사리역(현재는 폐역)이 신축되면서, 마을과 연계성이 떨어지고 쇠락하게 되었다. 2006년 철거될 예정이었으나 간이역과 역사와 추억을 같이 한 마을 사람들이 강력하게 항의하여 등록문화재로 보존하게 되었다. 가지를 치렁치렁하게 펼치고 서있는 고목나무와 함께 마을 풍경이 한 눈에 보이는 간이역의 자리로 보아 마을의 기차역이었을 땐 무척 정겨운 풍경을 자아냈을 것 같다. 

화창한 봄날이지만 적막으로 가득한 인적 없는 마차리역을 지나면서 사람 사는 마을의 봄이 그리웠다. 그런 내 마음을 알았는지 하천변 소읍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신기역(강원도 삼척시 신기면)이 나타났다. 오십천 길을 달리다 만나는 기차역은 자전거 여행자에게 좋은 휴식처다. 깔끔한 역내 대합실에서 물통도 채우고 앉아 쉬다가 마주친 푸근한 인상의 역무원 아저씨는 늦은 점심 밥집을 찾는 내게 역 앞에 있는 식당 같지 안보였던 백반 집을 추천했다.

동네사람도 아닌 웬 뜨내기 여행자가 겁도 없이 점심 때가 지나 찾아와서인지 '어서 오세요!' 반기기는커녕 잠시 지나가는 비를 보듯 나와 애마 자전거를 힐끗 쳐다보던 아주머니. 새로 돋아난 봄 냉이를 엷은 된장에 끓인 국을 밥상에 올렸다. 그래도 손님이라고 입을 벌린 조개 몇 마리도 국속에 넣었다. 입을 벌리고 있었다.

국 한 모금에 지난 겨울동안 움츠려있던 뱃속 창자가 깜짝 놀라며 기지개를 켰다. 쌉싸래할 줄 알았던 냉이가 향긋한 봄내음을 품고 국물을 통해 몸속으로 피가 돌듯 퍼져갔다. 냉이면 냉이, 쑥이면 쑥, 시금치 된장국까지... 우리 조상들의 오랜 지혜가 담긴 된장의 포용력은 내 어머니의 품처럼 크고도 깊지 싶다.   

금강송 소나무들이 지키고 서있는 영경묘

조선 왕조 선대 능묘인 영경묘는 장대한 금강 소나무들이 지키고 있다.
 조선 왕조 선대 능묘인 영경묘는 장대한 금강 소나무들이 지키고 있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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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역을 지나 상정역(폐역)에 다다르다보면 '준경묘', '영경묘'(강원도 삼척시 미로면 하사전리)라는 설명글이 써있는 안내판이 보인다. 강원도 기념물이자 국가지정 사적이기도 하다. 준경묘(濬慶墓)는 조선 태조 이성계의 5대 조부인 양무장군(陽茂將軍)의 묘이고, 영경묘(永慶墓)는 양무장군의 부인 이씨의 묘다. 남한 지역에 유일하게 존재하는 조선 왕조의 선대(先代) 능묘다. 오십천 변에서 자전거로 10분 거리에 있는 영경묘에 가보았다.

왕릉에 있는 큰 무덤을 예상하고 갔다가 홍살문 너머 무덤을 지키고 서있는 키가 장대한 노거수(老巨樹: 오래되고 큰 나무) 소나무들에 놀랐다. 서울과 경주 남산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구불구불한 소나무들과 너무도 달랐다. 준경묘와 영경묘 일대는 오래 묵을수록 나무껍질이 벗겨지면서 붉은 빛 혹은 황갈색을 내는 금강송, 황장목, 춘양목이라 불리는 소나무 군락지였다.

소나무들은 암석처럼 단단하다고 하여 강송(剛松)이라고도 부르는데 강원도 지역의 소나무를 지칭한다. 오래된 능 주변에서 살고 있어선지 경건하고도 단정한 느낌이 들었다. 강원도의 혹독한 겨울을 견뎌낸 나무의 푸르름이 진중하고도 깊다.

삼척 영경묘 가는 숲길에서 마주친 예쁜 봄꽃들.
 삼척 영경묘 가는 숲길에서 마주친 예쁜 봄꽃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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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테가 조밀하고 심재(心材 : 나무의 제일 깊고 딱딱한 속살)에 송진이 가득 차 쉽게 썩지 않으며 잘 갈라지지도 않는다. 예로부터 임금의 관이나 궁궐 사찰의 대들보 기둥 등으로 사용하였으며 경복궁 중수 때, 불타버린 숭례문(崇禮門)의 복원공사도 바로 이 금강소나무가 쓰였다. 역시 소나무는 우리 땅에서 가장 흔한 나무이기도 하고 우리에게 특별한 존재이기도 하다. 유난히 산이 많은 삼척은 옛날 궁궐 건축에 쓰이던 금강소나무가 많이 나는 곳으로도 널리 이름나 있었는데, 삼척 사람들은 이 나무를 베어서 배에 싣고 동해를 돌아 서울에 진상하고 돌아왔다고 한다.

무엇보다 숲 속으로 걸어 들어갈수록 울창한 노거수 소나무 사이로 경쾌한 새소리가 들려오는 완만한 산길이 운치 있고 좋았다. 평일이다 보니 찾아오는 사람 하나 없었지만 적막하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산길 양지바른 곳에 피어난 볼그스름하게 물든 진달래꽃이며 노란색, 흰색의 보기 드문 제비꽃이 어찌나 귀엽고 고운지 자꾸만 발길을 붙잡았다. 올해 처음 봄꽃을 마주한 터라 더욱 반갑다. 봄꽃 축제장이나 동네 공원이 아닌 인적없는 숲길에서 오롯이 대면하니 내 마음을 더 화사하게 물들였다. 

오십천 하구에 자리한 관동팔경중 제1경, 죽서루

관동팔경중 제1경이라 할만한 오십천과 어우러진 죽서루 풍경.
 관동팔경중 제1경이라 할만한 오십천과 어우러진 죽서루 풍경.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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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바다가 지척에 있는 삼척시 하구엔 멋들어진 풍경의 유서 깊은 누각 죽서루(竹西樓)가 있다. 오십천이 감돌아 가는 물돌이의 절벽, 그 벼랑위에 날아 갈 듯 죽서루가 서있는 모습은 정말 아름답다. 관동 8경 중 유일하게 바다가 아닌 강을 품고도 제1경으로 꼽히는 삼척 죽서루. 유유히 흐르는 오십천의 맑은 물이 휘돌아가는 깎아지른 벼랑 위에 고고하게 서 있는 죽서루는 그 자체로 자연의 일부로 보였다.

죽서루는 경치가 좋은 절벽에 바위를 기초로 삼아 세워졌는데 열일곱 개의 기둥이 모두 길이가 다른 점이 특이하다. 누각을 지을 때 오십천 절벽의 바위 하나하나에 맞는 기둥들을 맞추느라 그 크기와 길이가 각기 다르게 된 것이다. 죽서루가 이렇게 아름다운 것은 그것이 자연을 담고 있고, 주위의 자연을 거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대 건축가들이 의도했지만 의도하지 않은 듯이 보이는 작품에서 보이는 '무위의 예술'은 실은 선인들의 이런 건축미에서 영감을 얻었지 싶다. 

누각 마당에 살고 있는 350살이나 묵었다는 여러 그루의 고목 향나무도 눈길을 끌었다. 기품 있는 나무 모습에 옛날엔 '학자나무'라고 불렸던 향나무, 하늘을 향해 한껏 가지를 펼친 모습이 신묘했다. 죽서루 누각 안마당 고대 선사시대의 원초적인 기운이 느껴지는 기기묘묘한 바위들도 볼거리다. 자연과 어우러진 풍류를 즐겼던 선조들의 안목이 돋보이는 죽서루는 국보 제213호이기도 하다. 죽서루 건너편 천변엔 동굴 신비관, 시립박물관, 문화예술회관 등이 모여 있다.

조선 성종 때에 노사신 등이 각 도의 지리, 풍속 등을 기록한 관찬 지리지 <동국여지승람>의 기록에 다음과 같이 소개돼있다.

'죽서루는 객관 서쪽에 있다. 절벽이 천 길이고 기이한 바위가 총총 섰다. 그 위에 날아갈 듯한 누를 지었는데 죽서루라 한다. 아래로 오십천에 임했고 냇물이 휘돌아서 못을 이루었다. 물이 맑아서 햇빛이 밑바닥까지 통하여 헤엄치는 물고기도 낱낱이 헤아릴 수 있어서 영동 절경이 된다'

기기묘묘한 바윗돌들과 수백 년 묵은 향나무들이 살고 있는 죽서루 안뜰.
 기기묘묘한 바윗돌들과 수백 년 묵은 향나무들이 살고 있는 죽서루 안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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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너 마을로 가는 주민도, 오십천 돌다리도 정답다.
 건너 마을로 가는 주민도, 오십천 돌다리도 정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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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동선 기차 길과 벗 삼아 함께 어울리며 흐르던 오십천. 죽서루를 지나면서 전형적인 도시 하천의 모습으로 바뀐다. 하천 변에 공원과 자전거 도로가 잘 나있고, 중상류 지역에선 잘 안보이던 시민들이 나와 산책을 하고 있었다. 하천 변에 예쁘게 자리한 장미공원도 눈길을 끌었다. 2013년 오십천변 7만㎡ 부지에 조성한 '삼척 장미공원'은 규모가 무척 크다 싶더니 전국 최대 규모의 장미공원이란다. 계절의 여왕 5월이 오면 오십천변 하류가 색색의 장미들로 화려해 지겠다. 

하지만 하천 건너편에 거대한 시멘트 공장이 아름다운 장미공원과 대치하듯 서있었다. 삭막한 살풍경의 회색빛 공장이지만 삼척에선 향토기업 대우를 받고 있는 오래된 회사다. 시멘트를 운송하는 커다랗고 긴 파이프가 하천을 가로질러 삼척항까지 뱀처럼 이어져 있다. 삼척항은 큰 어시장과 횟집이 들어선 정취 있는 항구로 이름을 떨쳤지만, 1937년 이곳에 시멘트 공장에 들어서면서 어업 기지라는 항구의 노릇을 바꾸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지금까지 삼척항은 시멘트 수출 항구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정말 바다가 가까워졌는지 문득 하늘에서 부리 끝에 빨간 립스틱을 칠한 괭이 갈매기들이 '끼룩 끼룩' 목청을 높이며 날아다니고 있었다. 정말 이름대로 고양이 울음소리같아 재밌다. 저 갈매기들은 이 하천이 첩첩산중 깊은 산골짜기 사이를 50번 굽어 돌며 흐르다 여기까지 온 걸 알까... 바다가 아닌 하천가 가로등 꼭대기에 앉아 있는 갈매기들을 마주보는 기분이 이채로웠다. 오십천은 짭짜름한 생선 비린내와 바다내음이 뒤섞인 삼척항에 닿아서야 비로소 제 할일을 다 했다는 듯, 어머니 품 같이 넓은 동해바다로 유유히 흘러갔다.

덧붙이는 글 | ㅇ 지난 3월 27에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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