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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아래 동아투위)가 지난달 17일 40년을 맞았다. <동아일보> 기자들은 외부 간섭 배제·기관원 출입 거부, 언론인의 불법연행 거부 등 3개 조항을 골자로 한 자유언론실천선언을 1974년 10월 24일 발표했다. 하지만 그 후 정부 탄압으로 백지광고를 내는 상황까지 갔고, 독자들은 그들을 지지하며 후원했다. 그러나 경영진은 1975년 3월 17일 160여명의 기자들을 해고했다.

해직자들은 동아투위를 결성해 복직 투쟁을 벌이면서 언론 민주화 운동에 뛰어들었다. 그로부터 40년이 흘렀다. 당시 젊었던 그들은 이제 백발이 성성했고, 세상을 떠난 동지들도 있었다.

동아투위 40년을 맞는 심정이 궁금하여 동아투위 대변인을 지낸 이부영 전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을 지난달 23일 광화문에 있는 사무실에서 만났다. 이 자리에선 그의 정계 은퇴 선언 후 생활과 함께 언론 인생을 들어보았다. 다음은 이 전 상임고문과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진보, 보수, 여야 정치인들 묶어서 일본의 평화운동 세력과 연대"

  이부영 전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이부영 전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이영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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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계 은퇴를 선언한 지 한 달이 지났는데 어떻게 지내셨어요?
"은퇴 선언한 다음에 비교적 한가했는데, 동아시아 평화문제 때문에 준비하는 일이 있어서 점점 바빠질 거예요."

- 정계 은퇴를 선언하신 계기가 있으신가요?
"2012년 총선에서 낙선하면서 은퇴를 생각했어요. 현역 국회의원보다는 국회의원 아닌 입장에서 할 일이 있을 것 같아서요. 예를 들면 동아시아 평화문제라든지, 일본 평화헌법의 노벨상 수상 문제, 일본의 평화세력과 한국의 평화운동 세력 사이에 연대를 만드는 일은 지역구나 당의 일 때문에 하기 어려워요. 우리 안의 진보, 보수, 여야 정치인들을 묶어서 일본의 평화운동 세력과 연대하는 것이 내가 할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 일본 평화 운동에는 언제부터 관심을 갖게 되셨나요?
"오래 전부터 일본 평화운동을 잘 알았어요. 원폭 피해자들을 돕는 운동이라든지, 일본 안에 원자력 발전소 반대 운동하는 사람들을 잘 알고 지냈어요. 요즘 일본의 정치세력 가운데 평화 헌법을 꼭 지켜야 한다는 세력들과 자주 교류하면서 더 알게 됐죠."

- 정치인으로 25년을 사셨는데 돌아보면 어떤가요?
"하루도 마음 편하게 산 기억이 별로 없어요. 남들은 어떻게 평가하든 제 소신대로 선택하고 행동했다고 생각해요. 왜 회한이 없겠어요? 제 자신이 언론계 출신인데, 언론계로 돌아가지 못하고 상황에 이끌려 정치 참여를 했던 것도 사실이었어요. 그런 게 아쉬움으로 남았어요.

1995년 야당의 분당과 한나라당을 선택할 때는 DJP연대보다는 조순, 이회창 조합이 더 죄가 없어 보였어요. 2000년에 6·15선언이 있었잖아요. 그때 한나라당 안에선 제가 유일하게 6·15선언을 지지했어요. 그랬더니 당 안에서 '당신은 빨갱이니 나가라'는 말이 나왔죠.  한나라당을 떠날 마음의 준비를 시작했고, 2003년에 탈당해서 열린우리당 창당에 참여했죠.

열린우리당 안에서 국가보안법 개폐 파동이 있었는데, 그때 국가보안법을 개정하려고 했었죠. 당시, 당내 강경파들이 반대해서 개정하지 못하고 남았죠. 그것 때문에 많은 사람이 피해를 보고 있어요. 그것이 저에겐 몹시 아쉬움과 한으로 남습니다.

그때 보안법을 개정해서 찬양, 고무, 동조, 회합, 통신 등 5대 독소조항을 걷어냈었다면 피해자를 많이 줄일 수 있었을 거예요. 정치에서는 '달음질 처서 혼자 열 발자국 가는 것보다 열 사람이 같이 한 발자국 나아가는 게 낫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죠. 의회정치는 그런 게 필요해요."

- 지난달 17일, 동아투위 40주년을 맞이했는데... 이번엔 좀 더 특별했을 듯해요.
"일제 치하보다 긴 40년 세월이 흘렀습니다. 지금도 이 나라 법원은 그 사건에, <동아일보> 손을 들어 주는 나라입니다. <동아일보>는 '이제 1975년 대량해고 사태는 지나간 옛일이니 걱정할 것 없다'고 사원들을 다독이고 있습니다. 아무리 잘못했어도 권력과 사법부가 언론 소유주 편을 들고 있으니까 자기들이 옳았다는 거죠. 박종철 군이 죽은 뒤 민주주의가 세워지고 정의가 바로 서는 듯하더니, 사건을 은폐 조직하고 축소하던 자들이 더 득세하고 거기 가담하던 자가 대법관이 되는 세상입니다. 이런 세상이 온전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어림없는 희망이라고 봐요.

시간이 흐르면 거짓이 잊히고 사라질 것이라 그들은 기대하고 있어요. 그러나 진실은 바람에 실려 오고 이슬비에 묻어 내릴 거예요. 그래서 그들을 썩힐 거예요. 이런 세상이 계속되기를 바라는 것은 무서운 혁명의 폭풍이 몰려오도록 기도하는 것이나 다름없고 이렇게 갈 순 없다고 생각해요." 

"민주화 운동하는 동안, 장모님이 버팀목이 되었죠"

- 젊은 세대들은 동아투위를 잘 모르는데 간략하게 설명 부탁합니다.
"1970년대는 암울했어요. 3선 개헌 유신헌법 선포, 언론의 암흑시대를 맞아 당시 기자들은 기자직을 버리느냐 아니면 죽음을 걸고 싸우느냐 아니면 독재 권력의 시녀로 밥벌이나 하느냐의 갈림길에서 번민했어요. 당시 <동아일보> 기자들은 목숨을 걸고 싸우는 길을 선택했던 겁니다. 노조를 만들고 유신 권력에 정면으로 맞서 싸웠어요. 처음에 130여 명이 해직되었죠. 그래서 동아투위를 결성했어요.

민주사회에서 언론자유는 어떤 자유보다 우선하는 것이었고 또 모든 자유를 자유롭게 하는 자유입니다. 그러나 요즘에는 언론이 지나치게 소유주의 사유물처럼 되어서... 언론자유가 언론소유주만의 자유가 되고 있습니다. 언론이 썩고 있습니다. 언론을 소유주로부터 독립시키지 않으면 사유물, 독극물이 될 것입니다. 독립 언론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언론인들이 집단으로 운영하는 신문 방송, 인터넷 매체가 나와야 합니다."

- 동아투위 4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모였는데 어땠어요?
"16, 17일에 <동아일보> 앞에서 시위도 하고 프레스센터에서 기념식도 했어요. 최근 들어 성유보씨를 비롯해서 많은 동료가 세상을 떠나기 시작했어요. 그동안 마음고생과 생활고 등을 겪고 병들어 세상을 떠나지만, 저희는 나름대로 영웅이 아닌 평범한 시민과 언론인으로서 살다가 담담히 삶을 마치길 원해요. 그것이 저희의 길을 지키며 살아온 자부심이기도 해요. 큰 인물로 서서 자랑스러움을 드러내는 것도 인생이겠지만, 한국의 언론을 자유언론이나 독립 언론으로 만들기 위해 뚜벅 뚜벅 일생을 살아왔다면 그런 삶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 해직된 후 생활도 힘들었을 것 같아요.
"제가 못할 짓을 많이 했어요. 장모님이 대학교수였는데 홀몸으로 딸만 둘을 키웠어요. 그런데 집사람이 저에게 시집오고 얼마 안 되어, <동아일보>에서 해직당한 후 제가 민주화 운동하는 동안 장모님이 제 가정의 버팀목이 되어 주었죠. 장모님의 월급으로 저희 아이들 키웠어요. 그 와중에 장모님은 보직에 불이익을 당한 정도가 아니라 직급 강등을 강요받았죠.

저도 1980년대 초반에는 틈나는 대로 번역 일을 했어요. 제 이름으로 하면 안 되니까 다른 사람의 이름을 빌려, 알렉시스 토크빌의 <미국 민주주의론>이나 해럴드 리스키의 <국가란 무엇인가> 등을 번역하기도 했어요. 그리고 자주 감옥에 들어가 앉아 있으면서 여러 책을 읽는 행운도 누렸죠."

  이부영 전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이부영 전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이영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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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아투위에 참여한 걸 후회한 적은 없어요?
"저희 가정이나 장모님이 고생하는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죠. 그러나 그런 것이 87년 6월 항쟁으로 세상이 뒤집히고, 뭔가 자유가 많아지고, 나라 전체 분위기가 달라지는 것을 보면서 제가 약간 기여했다는 생각을 할 때는 고생한 보람이 있다고 생각했죠. 요즘엔 실망하는 일도 많이 있고, 다시 우리가 결의를 다잡을 때가 됐다고 생각해요."

- 현재의 <동아일보>를 보면 어떤가요?
"저희가 40주년 기념식 때 '<동아일보>는 쓰레기가 됐지만, 동아투위는 영원할 것이다'고 했어요. <동아일보>는 저희가 기자일 때에 비하면 3류 쓰레기 신문이 되었어요. 그게 안타깝고 속상해요. 이제 <동아일보>에 미련을 가질 건 없다고 생각해요. 저 신문은 저렇게 죄악을 저질렀는데 또 살아나서 어떻게 되겠어요?

지금도 반성을 전혀 안 해요. 언론자유를 자기들이 만들었다고 해요. 그런 걸 보면 저 신문은 다시 살아나기 어렵다고 생각해요. 왜 우리가 아베 정권에 대해서 절망하느냐면 잘못을 인정 안 하기 때문이거든요. 잘못한 사람에게 희망이 있는 건, 잘못한 걸 알기 때문이에요. 잘못해 놓고도 뻔뻔하게 잘못하지 않았다고 강변하는 것에는 희망이 없어요. <동아일보>나 <조선일보>가 대표적이죠."

- 40년이 흐르면서 같이 투쟁했던 동료들이 세상을 떠나는 데 마음이 어떠세요?
"그렇죠. 최근 들어 동아투위의 여러 동료가 부쩍 많이 떠나고 있습니다. 저와 대학 동기이자 입사 동기이고, 감옥도 함께 갔던 성유보 동지가 작년 10월에 떠났어요. 몸 한쪽이 떨어져 나간 느낌이에요. 책상 앞에 그의 장례 때, 썼던 사진을 몇 달 동안 걸어놨더니 아내가 죽은 사람만 너무 들여다보는 게 아니냐며 치우라고 하더라고요."

- 박근혜 정부를 신 유신체제라고 규정하는 목소리도 있던데, 현재 언론환경을 어떻게 보세요?
"박 정부를 유신체제라고 할 수 있겠어요? 행태가 그렇다는 거겠죠. 그래 봐야 얼마나 하겠어요? 아마 이번에 총리와 비서실장이 바뀌면서 분위기가 많이 바뀔 겁니다. 현장 기자들이 먼저 느낄 겁니다.

저는 권력에도 문제가 있지만, 언론 자체에도 문제가 많다고 봐요. 조·중·동이 종편을 함께 가지면서 보수 극우로 드라이브를 걸고 있어요. 언론이 권력보다 더하는 것 같아요. 요즘 <중앙일보>가 부분적으로 조·동과 다른 흐름을 만들고 있는 것 같아요. 

전체적으로는 제한된 광고시장을 보수 매체와 종편들이 가져가다 보니까 진보 매체가 얻어가는 수익이 줄었어요. 인터넷을 포함하는 진보매체의 활력이 눈에 띄게 침체하고 있죠. 이게 큰 문제입니다. 취재비를 넉넉히 줘야 하는데, 그런 걸 못하고 있어서 진보 매체들이 질적으로 고전하는 것 같아요. 그게 걱정이죠."

- 때아닌 해직언론인이 나왔는데 어떻게 보세요?
"빨리 복직해야죠. YTN 노종면 기자 등이 해직된 지 7년 정도. 복직 안 되는 것을 보면 설마 그들이 저희처럼 오래가진 않을 것으로 보지만, 이제 좀 언론계 쪽에서 해직언론인들을 위한 복직 투쟁에 힘을 기울이길 바라요. 계기가 되면, 해직 언론인들을 위한 전면 동조 투쟁을 해서 압박을 가해야지 않을까 싶어요."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이영광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이영광의 언론, 그리고 방송이야기'
*http://blog.daum.net/lightsorikwang)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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