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림걸즈>의 한 장면

<드림걸즈>의 한 장면 ⓒ 오디컴퍼니


어떤 스타이든지 병아리 시절이 있기 마련이다. 뮤지컬 <드림걸즈>의 에피, 디나, 로렐도 '드림걸즈'로 빛을 보기 전에는 흑인 R&B 가수 제임스 썬더 얼리(일명 지미)의 백코러스였으니 말이다. 드림걸즈보다 먼저 유명세를 탔던 제임스는 틀에 얽매이는 것을 싫어하는 '자유로운 영혼'이다.

제임스가 큰물에서 놀 수 있도록 매니저인 커티스가 수완을 발휘해서 마이애미 호텔에서 공연하게 됐을 때, 제임스는 커티스의 바람대로 백인에게 거부감이 들지 않도록 얌전하게(?) 노래했어야만 했다. 하지만 제임스는 평소처럼 자유롭게 노래하는 바람에 매니저를 난처하게 했다. 있는 그대로의 제임스를 보여주고 싶어 했기 때문에 생긴 해프닝이다.

뮤지컬 배우 박은석이 뮤지컬 팬들에게 본격적으로 어필하기 시작한 건 지난 2014년 <드라큘라>부터다. 당시 주연인 김준수와 류정한의 언더스터디로 알려졌지만 실은 대극장 무대에 주연으로 9번 올랐다. 박은석이 제임스처럼 활발한 역할을 어떻게 소화할까 궁금했는데, 무대를 쥐락펴락하는 장악력과 능글능글한 연기력을 모두 겸비하고 있었다.

- 제임스는 자신의 백 코러스로 있었던 드림걸즈가 독립한다고 할 때, 화를 내기보다는 오히려 축하해준다.
"제임스는 드림걸즈를 처음 만날 날, 세 명의 여가수가 노래를 잘 부른다는 걸 알았다. 제임스는 드림걸즈가 재능이 있다는 걸 처음으로 알았던 가수다. 제임스는 스타이기는 해도 야욕에 찬 사람이 아니다. 어린아이처럼 인간미가 넘친다. 내가 제임스 같은 입장이라도 해도 드림걸즈가 독립하는 걸 축하해 줄 것 같다."

- 커티스는 마이애미 호텔 같은 큰 공연장에서 공연할 때 정숙하게 노래 부를 것을 요청하지만, 제임스는 자기가 부르던 대로 부른다. 음악 스타일에 있어 '몸에 안 맞는 옷'을 주문받아도 자기만의 것을 고집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같은 배역인 (최)민철 형 및 다른 배우들과 캐릭터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다. 제임스는 흑인이라 소울 음악을 추구한다. 흑인이 추구하는 소울이 무엇인가 궁금해서 소울 음악을 공부했다. 소울은 흑인들이 노예 시절부터 혼을 담은 삶의 이야기를 노래로 풀어간 음악이다. 흑인의 정서를 소울이라는 형식의 노래로 응축해서 표현하는 것이다.

제임스의 매니저인 마티는 어릴 적부터 제임스가 소울에 남다르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그를 키운다. 마이애미 호텔처럼 정숙한 자리라 해도 제임스는 소울의 정서를 폭발시킨다. 소울은 천부적인 음악적 자산이라 제임스는 '날 죽일 수는 없어, 나에게는 소울이 있어'라고 외친다. 제임스는 소울인 거다."

 <드림걸즈>에서 제임스 썬더 얼리를 연기하는 박은석

<드림걸즈>에서 제임스 썬더 얼리를 연기하는 박은석 ⓒ 오디컴퍼니


- 제임스가 히트한 곡을 백인 가수가 표절한다.
"뮤지컬이 아닌 실제 미국 역사로 보아도 당시 흑인들은 백인에게 많은 노래를 빼앗긴다. 커티스 역시 백인들이 흑인의 음악을 빼앗은 경우를 많이 봤다. 미국의 1960년대만 해도 흑인은 식당에서 백인과 함께 앉을 수 없었고, 교회에서 백인과 함께 예배드릴 수도 없어서 예배드리는 시간도 백인과 흑인이 달랐다. 흑인은 백인에게 음악을 빼앗겨도 항변할 수 없다는 패배주의적인 입장이 팽배했다.

넘버 '스테핀 투 더 배드 사이드(Steppin` to the bad Side)'에는 '참는 것도 한계가 있어'라는 가사가 등장한다. 여기에는 백인이 부당하게 흑인의 노래를 빼앗는 것에 대한 억울함과 분노가 담겨 있다. 커티스는 마티처럼 음반계에 오래 있던 사람이 아니라 갓 입문했다. 그래서 백인이 흑인의 노래를 빼앗는 걸 부당하게 생각하고는 자기만의 질서를 만들어간다."

- <드라큘라>에서 첫 대극장 주연을 연기했다.
"<드라큘라>를 할 때는 스스로 만족하지 못했다. 대극장에서 첫 주연을 연기하다 보니 부담감이 많았다. 연습할 때 대극장 주연에 맞게 적응해야 할 점도 많았다. 모든 걸 쏟아 부었다는 느낌을 받지 못해서 꼭 다시 하고 싶은 작품이다. <드라큘라>를 통해 대극장 뮤지컬에 적응했기 때문에 <드림걸즈>에서는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것을 많이 표현하고 있다."

 <드림걸즈>의 한 장면

<드림걸즈>의 한 장면 ⓒ 오디컴퍼니


- 검도를 하다가 국악을 하고, 연기하게 되었다.
"어릴 적부터 운동을 좋아했다. 중학생까지만 해도 검도 대회에 나가면 상도 잘 탔다. 그러다가 고등학생이 되어서 방황의 시기를 겪었다. 운동을 쉬다가 다시 하게 되었는데, 문제는 운동하는 감각을 쉬는 동안에 잃어버렸다. '과연 운동이 내 길인가' 하고 생각해보니 17살의 박은석은 불안하기만 했다.

고등학교를 두세 군데 옮겨 다녔다. 집은 분당인데 지방에 있는 고등학교에 다녔다. 다른 친구들이 등교하기 전, 학교에 일찍 가서 운동하다 보니 친구를 사귈 기회도 많지 않았다. 한 번은 운동하다가 도망갔는데 관장님에게 들켜서 엄청나게 혼이 나기도 했다. 검도를 좋아하기는 했지만 고1 때 그만뒀다. 

이후 '내 인생의 소망은 무엇일까' 고민하다가 국악을 시작했다. 전라도 남원에 국악예고가 있다. 국악예고가 상업고등학교 옆에 붙어 있었다. 상고 교무부장 선생님이 외삼촌이었다. 외삼촌이 이곳에 와서 (상고 수업을 위해) 컴퓨터 수업을 하면서 고등학교를 졸업할 것을 권유했다. 외삼촌의 권유대로 상고에 들어갔는데 옆 학교인 예고에서 국악 소리가 들렸다.

운동을 하다 보니, 상고에 들어가기 전에 몸을 쓰는 무용을 해볼까 생각했다. 예고에서 들리는 피리 소리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 빠져들고 말았다. 피리 소리에 매료되어 고2 때 예고에 들어갔다. 대학 진학을 염두에 두지 않았는데, 예고에서 악기를 다루면서 대학 진학에 대한 꿈이 생기기 시작했다.

국악을 늦게 시작해서 주위 사람들은 지방대에 가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서울에 있는 추계예술대학교를 목표로 잡았다. 악기를 가장 늦게 배웠지만, 2년 후에는 가장 먼저 대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다. 군대 있을 때에는 군악대를 다녀올 정도로 음악 생활을 충실히 했다.

음악 생활을 잘하다가, 고1 때 검도에 대한 회의가 들었던 것처럼 군대를 제대할 때 고민이 생겼다. 내가 좋아하는 길을 걷는 게 다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었다. 진지하게 고민하다가 사람들을 위한 길이 배우가 되는 것이라는 확신에 배우의 길로 접어들었다. 검도를 8년 하고 그만뒀다. 신기하게도 국악도 8년을 하고 연극영화과로 진로를 돌렸다."

드림걸즈 김준수 박은석 류정한 드라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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