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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파주의보가 내려진 지난 10일, 경남 ‘산청 3매’를 찾아 지리산으로 갔다.
 한파주의보가 내려진 지난 10일, 경남 ‘산청 3매’를 찾아 지리산으로 갔다.
ⓒ 김종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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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역에 한파주의보가 발효된 10일.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내 마음에는 어떤 바람이 불었는지 모르지만, 승용차를 몰고 산청으로 향했다. 꽃샘추위 속에 봄을 찾고 싶었다. 매화의 은은한 향기가 그리웠다. 경북 안동 도산서원에 있는 퇴계 이황 선생이 심은 도산매, 강원도 강릉 오죽헌에 율곡 이이 선생이 심은 율곡매에 견줘도 전혀 손색없는 선비를 닮은 산청 3매로 반짝 추위를 이겨내고 싶었다.

진주에서 산청 가는 국도 3호선으로 가는 길에 하얀 머리를 한 지리산이 보였다. 지리산을 안고 가는 길이었다. 산청군 신안면 원지를 지나 경호강을 건너 단성면을 지났다. 남사 예담촌도 나중에 돌아올 길에 보고자 지나쳤다. 지리산 천왕봉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목인 시천면 사리에 이르러 차를 세웠다. 옛 덕산장터였던 남명기념관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경남 산청군 시천면 산천재에서는 지리산 천왕봉이 가까이 보인다.
 경남 산청군 시천면 산천재에서는 지리산 천왕봉이 가까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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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도로 건너 산천재(山天齋)로 향했다.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평생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은 남명 조식(1501~1572) 선생이 명종 16년(1561년) 예순하나 때 세운 학당이다. 노란 산수유가 바람에 흔들흔들 제 몸을 가누지 못했다. 노란 산수유를 뒤로 하고 산천재 안으로 들어가자 매끈한 배롱나무들이 먼저 반긴다.

뜰 한가운데에 의롭게 매화 한 그루 서 있다. 연륜이 450여 년에 이르는 '남명매(南冥梅)'다. 저 멀리 지리산 천왕봉을 바라보며 덕을 쌓기 위해  48세부터 61세까지 살았던 합천 뇌룡정을 떠나 산천재를 지은 선생은 뜰에 매화나무 한 그루를 심었다.

남명 조식선생이 직접 심은 산천재 뜰에 있는 남명매(南冥梅)
 남명 조식선생이 직접 심은 산천재 뜰에 있는 남명매(南冥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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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쉽게도 내가 찾은 10일은 나무 가득 매화가 피지 않았다. 드문드문 팝콘처럼 꽃이 피었다. 바람은 세차게 매화를 흔들었다. 선생의 매화에 대한 애정은 '설매(雪梅)'라는 시에 묻어난다.

한 해가 저물어가니/ 홀로 지내기 어려운데/ 새벽부터 날 샐 때까지/
눈까지 내렸구나/ 선비 집은 오래도록/ 외롭고 쓸쓸했는데/ 매화가 피어나니
다시 맑은 기운 솟아나네


남명 선생은 칼을 품고 방울을 달아 자신을 경계하며 '경의(敬義)'를 실천하며 살았다. 지조 높은 선비를 닮은 매화는 봄을 시샘하는 겨울 바람 장군의 시샘에도 굴하지 않는 모습이 당당하다. 의롭다.

남명매를 구경하고 차를 돌려 왔던 길을 거슬렀다. 지나쳤던 남사예담촌이 보이는 삼거리에서 좌회전했다. 차로 10여 분 깊숙이 들어갔다. 단성면 운리. 단속사지 이정표를 보고 왼편 언덕으로 차를 좀 더 움직여 세웠다. 신라 시대 절터였던 단속사지다. 단속사지 입구에는 남명선생이 사명대사(유정)에게 써준 시(贈山人惟政- 산사람 유정에게 주는 시)가 비에 새겨져 있다.

꽃은 연못가 돌 위에 떨어지고 / 옛 절의 축대 위엔 봄이 깊었네
이별의 때를 기억해 두시도록/ 정당매 푸른 열매 맺었을 때를


산청 단속사지에 있는 보물 제 72, 73호인 삼층석탑.
 산청 단속사지에 있는 보물 제 72, 73호인 삼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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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를 지나면 보물 제 72호, 73호인 삼층 석탑이 동과 서로 나란히 서 있다. 단속사는 신라시대 때 창건했다고 전한다. 지금은 동서 삼층석탑과 주춧돌만 남아 있다. 비록 절터만 남았지만 여기에서 2~3km 떨어진 곳에 최치원 선생이 썼다는 광제암문(廣濟嵒門)에서 짚신을 갈아 신고, 절을 다 돌고 나오면 미투리가 다 닳아 없어졌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올 정도다.

단속사 터 뒤에 있는 정당매(政堂梅)
 단속사 터 뒤에 있는 정당매(政堂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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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속사 터 뒤로 매화가 있다. 정당매(政堂梅)다. 아쉽게도 정당매는 2014년 고사해 후계목이 그 뒤에 자라고 있었다. 정당매는 이른바 고시생이었던 강회백(1357~1402)이 단속사에 머물며 과거 공부를 할 때 심은 매화다. 강회백이 고려 우왕 2년(1376년) 급제, 정당문학(政堂文學, 종2품)겸 대사헌에 이르자 매화를 정당매라 불렀다. 강회백은 46세로 일생을 마치기 전에 정당매를 찾아 시 한 수를 읊었다.

우연히 옛산을 돌아와 찾아보니/ 한그루 매화 향기 사원에 가득하네/
나무도 옛 주인을 능히 알아보고/ 은근히 눈 속에서 나를 향해 반기네


강회백의 후손인 강희안(1419~1464)은 자신이 쓴 '양화소록(養花小錄)'에서 매화가 사랑받는 이유 네 가지를 "첫째로 함부로 번성하지 않고, 둘째는 늙은 매화나무가 아름답고, 셋째는 살찌지 않고 마른 모습 때문이다. 넷째는 꽃봉오리가 벌어지지 않고 오므라진 자태 때문"이라고 했다.

남사예담촌 분양고가에 있는 원정매(元正梅)
 남사예담촌 분양고가에 있는 원정매(元正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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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매의 후계목들이 정당매처럼 오랜 시간 동안 함께하기를 빌며 남사예담촌으로 향했다. 약 500여 년 전에 형성된 남사마을은 조선 시대 전통적인 양식을 갖춘 고택이 여러 채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 1호로 선정된 이 마을은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을 거슬러 올라온 느낌을 자아낸다. 또한, 매화 고목이 많기로 소문난 마을이다. 이 중에서도 진주 하씨로 32대째 살아온 '분양고가(汾陽古家)'의 원정매(元正梅)가 유명하다.

약 500여 년 전에 형성된 남사마을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 1호로 뽑혔는데 조선 시대 전통적인 양식을 갖춘 고택이 여러 채 있다.
 약 500여 년 전에 형성된 남사마을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 1호로 뽑혔는데 조선 시대 전통적인 양식을 갖춘 고택이 여러 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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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양고가는 원정공 하집(1303~1380)이 살았던 집이다. 하집이 거처했던 사랑방 앞에는 610년의 세월을 묵묵히 함께한 매화나무가 있다. 원정매 주위에는 원정매의 씨가 뿌리 내린 후손들이 햇살에 꽃망울을 터트려 찾아간 보람을 느끼게 했다. 매화나무 앞에는 '매화 시비'가 나란히 한다.

집 양지 일찍 심은 한 그루 매화/ 찬 겨울 꽃망울 나를 위해 열었네/ 밝은 창에 글 읽으며/
향 피우고 앉았으니/ 한점 티끌로 오는 것이 없어라


이 밖에도 남사예담촌에는 오래된 매화나무가 더 있다. 최씨매와 정씨매가 그것이다. 최씨매는 최씨 고택에 있는 나무높이 7m, 수관폭 5.5m, 근원직경 27.6m의 백매가 눈부시게 매달린다. 정씨매는 '사양정사' 뒤로 나무높이 6m, 수관폭 5.8m, 근원직경 24.8m로 100년 수령의 홍매화다.

보통 3월 20일을 전후로 ‘산청 3매’는 만개한다. 오늘은 온 우주의 기운을 담아 새 생명을 내보려는 꽃눈만 보았다.
 보통 3월 20일을 전후로 ‘산청 3매’는 만개한다. 오늘은 온 우주의 기운을 담아 새 생명을 내보려는 꽃눈만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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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나무는 난초, 국화, 대나무와 함께 사군자로 여기며 선비들이 소중하게 여겼다. 단정하고 아담하면서도 매서운 추위를 뚫고 꽃을 피워내는 매화는 의지가 굳세고 끄떡없는 기상을 닮았다며 오래부터 사람들이 좋아했으리라.

"나 찾다가/ 텃밭에 / 흙 묻은 호미만 있거든
예쁜 여자랑 손잡고 / 섬진강 봄물을 따라 / 매화꽃 보러 간줄 알그라"(<봄날>중에서)


김용택 시인처럼 매화꽃 보러 봄을 찾아 떠난 하루다. 선비정신으로 피어난 산청 3매화를 찾아 나선 길이다. 산청 3매는 보통 3월 20일을 전후로 만개할 듯하다.

덧붙이는 글 | 산청한방약초축제 블로그http://blog.naver.com/scherbfest
해찬솔일기



태그:#산청 3매, #매화, #남명매, #정당매, #원정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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