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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 임기 2년에 접어들면서 인권이 후퇴하는 경향을 보였다. 집회·시위의 자유 및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을 포함해 수많은 우려가 나왔다."

지난 달 25일 세계 최대 인권단체인 국제앰네스티가 <2015 국제앰네스티 연례보고서>라는 인권 실태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그동안 앰네스티는 매년 연례보고서를 통해 구체적 인권 사안에 대한 우려를 표명해 왔습니다. 하지만 이번처럼 '인권이 후퇴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고 직접 언급한 것은 2008년 이후 처음입니다.

앰네스티 "박근혜 정부 인권 후퇴 경향 보여"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헌법 제1조의 선언으로 우리는 어떠한 자격도 요구받지 않고 우리가 세운 정부의 주인이 됩니다. 그리고 이 선언이 실질적인 정치 체제로 뿌리내릴 수 있도록 하는 장치가 바로 헌법 제21조입니다.

헌법 제21조는 언론·출판의 자유에 관한 내용이지만 결국 표현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헌법재판소는 헌법 제21조의 보호 대상이 되는 표현의 형태를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담화·연설·토론·연극·방송·음악·영화·가요 등과 문서·소설·시가·도화·사진·조각·서화 등 모든 형상의 의사 표현 또는 의사 표현의 매개체를 포함한다."(영화진흥법 제21조 제4항 위헌제청, 2000헌가9, 2001.08.30.)

구체적으로 짚어보자면 표현의 자유는 양심·사상의 자유, 집회·결사의 자유, 학문·예술의 자유 등을 폭넓게 아우르는 민주 사회의 핵심 가치라고 단정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표현의 자유가 제한되고 있다'는 평가는 우리가 선택한 정치 체제를 정부가 훼방 놓고 있다는 뜻입니다.

세계 최대 인권단체 국제앰네스티는 인권 실태 보고서인 <2015 국제앰네스티 연례보고서>에서 "박근혜 대통령 임기 2년에 접어들면서 인권이 후퇴하는 경향을 보였다. 집회ㆍ시위의 자유 및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을 포함해 수많은 우려가 나왔다"고 평가했다.
 세계 최대 인권단체 국제앰네스티는 인권 실태 보고서인 <2015 국제앰네스티 연례보고서>에서 "박근혜 대통령 임기 2년에 접어들면서 인권이 후퇴하는 경향을 보였다. 집회ㆍ시위의 자유 및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을 포함해 수많은 우려가 나왔다"고 평가했다.
ⓒ 크리월드 creworld.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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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를 위해 민주주의보다 우선하는 자유

민주주의는 본질적으로 다수에 의한 지배를 의미합니다. 민주주의가 자칫 다수를 방패 삼아 잘못된 결정을 내리려 할 때 표현의 자유는 최후의 보루로서 그 선택을 저지합니다. 표현의 자유가 보호하는 소수의견이 지배적인 의견과 대등한 위치에서 논쟁에 부쳐지는 것입니다. 이는 다수에 의한 독재가 정당화되지 않도록 소수의견에 동등한 주권을 부여한다는 의미입니다. 표현의 자유가 민주주의를 견인하는 것이죠.

영국의 기자 출신 로버트 하그리브스는 자신의 저서 <표현 자유의 역사>(시아출판사, 오승훈 역, 2006)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민주주의가 효과적으로 기능하려면 다수가 소수에게 반대할 권리를 줘야 한다. 다수와 소수 모두 자신들의 견해를 다른 사람들에게 설득시키기 위해 언론 자유가 필요하다. 따라서 언론 자유는 민주주의에 우선하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궁극적 목표는 인간의 존엄성 실현입니다. 표현의 자유는 인간이 존엄하기 위해 필요한 자유와 권리를 주장하고 요구할 수 있는 자유입니다. 이 또한 표현의 자유가 민주주의보다 우선한다는 로버트 하그리브스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입니다. 미국은 표현의 자유를 수정헌법 1조에 명시해 놓았습니다.

표현의 자유 억압은 집단적 판단 왜곡하는 것

우리 정부는 종종 어떤 주장이나 의견이 사람들을 선동하고 혼란에 빠뜨렸다는 이유로 표현의 자유를 억압했습니다. 여기서 정부가 간과한 점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정부의 생각처럼 어리숙하고 모자라지 않다는 것입니다.

민주주의는 평범한 사람들에 대한 믿음을 전제합니다. 정치학자들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정치적 판단은 자신이 속해 있는 공동체에 널리 퍼져 있는 가치와 신념을 따른 것이기 때문에 특별한 기능이나 개성을 요구하지 않는다."(<정치학으로의 산책>, 21세기 정치연구회 엮음, 2011)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정부의 조치는 이와 같은 집단적 판단을 정권의 이해관계의 결실로 왜곡시킬 가능성이 클 수밖에 없습니다.

표현의 자유 좌우하는 정부의 자의적 판단

앰네스티의 보고서를 한 인권단체의 개별 입장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통령을 비판하는 전단을 뿌리고, 명예훼손 혐의로 소환장을 받은 사람들도 과연 그렇게 생각할까요.

통일부 당국자는 10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전단 살포 행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전단 살포라는 것은 헌법상 가치인 표현의 자유의 영역으로 전 세계적으로도 그 가치에 대한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다. 따라서 기본적으로 당국에서 강제적으로 규율할 수 없는 문제라 생각한다."

이 발언은 대북 전단 살포에 대한 정부의 입장을 밝히는 자리에서 나왔습니다. 전단을 휴전선 인근 지역에서 살포하면 표현의 자유로 보호받을 수 있나 봅니다. 이 당국자가 덧붙인 말은 이렇습니다.

"표현의 자유를 위한 행동이 다른 사람의 안전 등을 해쳐서는 안 되며 이런 차원에서 전단 살포가 해당 지역 주민들의 신변 안전에 명백한 위험이 되는 경우에는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대통령 비판 전단을 뿌린 사람들을 수사한 이유는 명예훼손이었습니다. 대통령 전단 살포가 해당 지역 주민들의 신변 안전을 위협했는지, 그렇다면 이때 적용되는 혐의가 명예훼손이 맞는 건지, 정부의 설명이 필요한 대목입니다.

표현의 자유 억압하는 정부에 보내야 할 소환장들

2014년은 표현의 자유가 갖가지 방법으로 억압받은 한 해였습니다. 검찰은 정당 부대표의 카카오톡 대화 내용을 압수수색 하는 과정에서 2368명의 카카오톡 개인정보도 함께 가져갔습니다. 대통령이 본인에 대한 모독이 도를 넘었다고 하자 검찰은 전담수사팀을 꾸려 온라인 명예훼손을 엄벌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세월호 참사 당일 대통령의 행적에 대한 의혹을 제기했던 외신기자는 기소됐습니다. 정부는 한 정당의 정치적 지향을 빌미로 정당 해산 심판을 청구했고, 원하는 결과를 얻어냈습니다. 대한민국 헌정사에서 쿠데타 없이 정당이 해산된 것은 1958년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1987년 개정된 현행 헌법부터 1995년 <요하네스버그 원칙>, 1948년 <세계 인권 선언>, 1789년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 1776년 <버지니아 권리장전>까지. 표현의 자유를 가볍게 여기는 정부에게 우리가 보낼 수 있는 소환장들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개인블로그(http://reframelive.com)에도 게재됐습니다.



태그:#표현의 자유, #국제앰네스티, #명예훼손, #대북 전단, #전단 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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