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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을 다루는 학문인 미학을 가리키거나 심미적이라는 뜻의 단어 aesthetics에 부정(否定)의 접두사 an을 붙이면 마비, 마취 anaesthetic, anaesthesia란 뜻이 됩니다. 예술의 반대말은 추함이 아니라 '무감각'인 것이죠. 뛰어난 예술작품은 우리의 감각을 되살립니다."(p.35)

<예술수업> 표지
 <예술수업> 표지
ⓒ 어크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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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제목이 <예술수업>이다. '수업'이라니 난해하거나 지루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예술에 대해 제대로 알고 싶은 욕구를 충족 시키고자 읽기 시작했다. 기대 이상이었다. 예술에 대한 이해를 돕는 것은 물론 오종우 교수의 강의는 흥미진진했다. '재미'와 '어려운 수업 이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데 성공한 듯 보인다. 알고 보니 책의 기반이 된 그의 강의 '예술의 말과 생각'은 성균관대학교 최고 명강으로 꼽히며 티칭어워드(SKKU Teaching-Award)를 수상했다고 한다.

예술이 우리 생활에 필요한 이유

아리스토텔레스가 <정치학>에서 거론한 실질세계와 여분세계로 예술이 우리의 삶에 왜 필요한지 알 수 있다. 일 또는 공부와 같이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것들이 실질세계다. 반드시 해야 하지만 하기 싫을 때가 있다. 수고로움을 전제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행이나 음악, 운동, 미술과 같은 놀이(여분세계)로 실질세계를 보완하지 않으면 정신이 피폐해진다는 것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저자는 밀란 쿤데라의 소설 <느림>의 한 장면을 소개한다. 자동차 운전대만 잡으면 이빨을 드러내는 맹수와 같이 돌변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평소엔 얌전하고 자기 표현에도 서툰 인간이 운전대를 잡으면 속도를 높이고 앞 차량을 위협한다. 그렇게 해서 다소 일찍 도착은 하겠지만, 그 운전자는 서둘러 가는 동안의 시간은 잃어 버렸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빨리 도착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실질세계라면 운전 중이라도 여유를 가지는 것은 여분세계라는 것이다. 실질세계를 돌아보는 여유를 가지지 않고 실질세계에 함몰된다면 진정한 삶의 가치를 알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실질세계가 모두 진리가 아니고 늘 변하고 있다는 점도 알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여분세계 즉, 예술이 세상을 보는 안목을 깊고 넓게 해줄 수 있다고 한다.

정의를 위한 척도와 비례

여기에도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이 등장한다. '평등에는 두 종류가 있는데, 수적 평등과 비례 평등이 그것이다. 수적 평등은 수 또는 크기의 균등을 뜻하고, 비례 평등은 비율의 균등을 뜻한다. 이때 정의란 비례의 문제에 속한다.'(p.142)

5:4=2:1 라는 식에서 두 항이 수적으로 1차이가 난다고 해서 5:4=2:1이 같다고 하는 것이 수적 평등이고, 4:2=2:1 의 두 항은 비례를 따져서 고르다는 것인데, 후자인 비례 평등이 정의에 가깝다. 요즘 정부가 국민들에게 제기한 소득과 세금의 문제를 대입해 보면 이해가 쉽다.

척도와 비례를 설명하는 이 장(障)에는 햄릿의 유명한 대사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이 등장한다. 왕이었던 아버지가 꿈에 나타나 숙부에게 독살을 당했다고 말하자, 햄릿은 갈등한다. 현재의 왕 숙부에게 칼을 겨누자니 자신의 신변이 위태로워지고 모른 척하자니 진실을 외면한 비겁자가 되기 때문이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는 진실을 외면하고 사는 것은 죽느니만 못한 삶이고, 진실을 위해 죽음을 택한다면 오히려 제대로 된 삶을 사는 것이라는 심오한 뜻을 담고 있다. 저자가 '햄릿은 진실에 따라 제대로 존재(to be) 하기 위해 목숨을 잃는 비극적인 삶을 산다.'고 설명한다.

화가의 작품에 담긴 시선과 생각

마르크 샤갈의 그림은 '분할이니 도식이니 하는 어떠한 기교도 없이 사실적이기도 하고 환상적이기도 한 독특한 개성'을 지녔다. <손가락이 일곱 개인 자화상>에는 샤갈의 왼쪽 손가락이 일곱 개나 그려져 있다.

창 밖으로 에펠탑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 샤갈은 파리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었던 것인데, 이 시기는 그의 손가락이 일곱 개여도 모자랄 만큼 바쁜 시기였다고 한다. 그런데 정작 그가 캔버스에 그리고 있는 것은 농부와 소가 밭을 갈고 있는 고향의 풍경이다. 바쁜 파리 생활이지만 샤갈이 그리워한 것은 러시아의 고향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고.

그림을 통해 화가가 말하고자 한 것을 읽어내는 재미를 위해 저자는 입체파, 피카소도 소개한다. 그의 작품 <바이올린과 포도>에서 바이올린은 겹쳐 보이기도 하고 조각으로 나뉘어져 보이기도 하며 목 부분은 아예 분리되어 있다. 피카소의 말을 들어보자.

"바이올린을 생각할 때 신체의 눈으로 본 바이올린과 마음의 눈으로 본 바이올린은 서로 다르게 나타난다. 우리는 여러 각도에서 본 바이올린의 형태를 한 순간에 생각할 수도 있고 또 사실 그렇게 한다. (중략) 단 한순간의 스냅사진이나 꼼꼼하게 묘사된 종래의 그림보다 이상스럽게 뒤죽박죽된 형상들이 실재의 바이올린을 더 잘 재현할 수 있다."(p.198)

진정한 예술은 오픈엔딩

"좀 있으면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것이고 그때는 새롭고 멋진 생활이 시작될 거라고 여겼다. 그렇지만 두 사람은 그 끝이 아직 멀고 멀어, 이제야 겨우 아주 복잡하고 어려운 일이 시작됐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안톤 체호프의 소설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의 마지막이다. 유부남과 유부녀가 바닷가에서  만나 바람이 난다. 헤어져 일상으로 돌아가지만 유부남이 유부녀를 찾아 가고, 유부녀가 다시 유부남을 반복해 찾으면서 사랑과 일상 사이에서 갈등하기 시작한다는 내용이다. 서로를 원하지만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릴 것인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지는 아무도 모른 채 소설은 끝난다. 

'오픈엔딩은 의미가 모호해지고 커지는 것을 가리킵니다. 결론이 뚜렷하게 나면 내용은 분명해지지만, 더 이상 생각할 거리는 사라집니다. 그 때는 의미생산이 중단됩니다. 그러나 진정한 예술작품은 오랫동안, 때로는 평생토록 계속 의미를 생산하면서, 긴 여운을 남기는 것이죠.'(p.297)

예술이 우리의 삶으로, 우리의 현실로 그렇게 스며들게 하는 오픈엔딩에 대한 오종우 교수의 설명이다. 총 9개의 수업으로 구성된 오종우 교수의 강의는 재미와 감동을 주는 교양서임이 분명하다. 복습도 해야겠다.

덧붙이는 글 | <예술수업> 오종우 지음, 어크로스, 2015년 1월 21일 발행



예술 수업 - 천재들의 빛나는 사유와 감각을 만나는 인문학자의 강의실

오종우 지음, 어크로스(2015)


태그:#예술, #오종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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