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국제시장>의 한 장면

영화 <국제시장>의 한 장면 ⓒ CJ엔터테인먼트


지난 8일 1000만을 넘어 1300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국제시장>은 여전히 박스오피스 4위를 유지하며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다. <명량> <아바타> 에 이어 역대 박스오피스 순위 3위를 기록하는 성취를 이루었다.

그런데 과연 사람들은 단순히 그 시절을 추억하기 위해 <국제시장>을 보러가는 것일까? 오히려 <국제시장> 세대 혹은 그와 비슷한 삶을 살아온 세대들은, 그 영화를 통해 현실을 살아가는 자신의 결핍감을 위로받으려고 하는 것은 아닐까? 추억은 힘이 세다고 하지만, 사람들은 현실의 자존감이 떨어질 때 과거를 탐닉하게 된다. 어쩌면 우리 시대 <국제시장>의 흥행은 바로 그 시절을 살아온, 혹은 그런 사고방식으로 살아온 세대의 자기 회한을 역설적으로 반영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주인공 덕수의 삶은 파란만장했지만 정작 영화에서 이 인물이 제대로 형상화되었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경우가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시절을 살아온 덕수는 그저 시대가 요구하는 것을 수용하고 그 속에서 자신과 가족을 살게 하기 위해 스스로를 던진 인물이기에, 그에게 '자아'를 요구하는 것 자체가 어쩌면 어불성설일 수도 있다. 그렇게 '자신'이란 존재를 버려 둔 채 생존을 위해 달려온 세대들은, 이제야 뒤늦게 영화를 보며 자신들의 삶의 정당성을 복기하고자 한다.

<국제시장>의 후일담, 혹은 말하지 않은 이면의 이야기

 고맙다 아들아에 출연한 이대연과 안재민

고맙다 아들아에 출연한 이대연과 안재민 ⓒ kbs


이렇게 장황하게 <국제시장>의 이야기를 늘어놓은 것은 바로 <고맙다 아들아>란 드라마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가기 위해서다. 이른 설 특집극으로 편성된, 사실은 종영한 <왕의 얼굴>의 공백을 메우고자 땜질식으로 편성된 이 2부작 특집극은 골칫거리 두 아들의 이야기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제목은 '고맙다 아들아'이다. 일반적으로 교육 문제를 둘러싼 아이와 부모를 다루는 드라마에서 갈등과 해소에 초점을 맞춘 것과 달리, 갈등의 원인이 된 부모들의 삶의 자세까지 시야를 확장했다. 그리고 확산된 시야 안에는 <국제시장>의 덕수와 그리 다를 바 없는 삶을 살아온 또 다른 부모 세대의 삶이 존재한다.

극 중 형 장형산(이대연 분)은 <국제시장>의 덕수처럼 전형적인 우리 시대의 장남이다. 어려운 가정에서 태어나 의사가 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던 그는 자신이 일용직 노무자, 외판원, 심지어 새우잡이 배 선원을 하며 돈을 버는 대신 동생을 의사로, 아내를 초등학교 교사로 만들었다.

그런 형의 희생으로 동생인 장형준(최진호 분)는 원치 않았지만 의사가 되었고, 이제는 아내와 아이들을 위해 서울 시내 그의 이름을 내건 정형외과를 유지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동생과 가족을 위해 희생한 형의 학력은 고졸 검정고시에 방통대. 5급 사무관을 바라던 그는 주민센터 좌천이란 좌절을 맛본다. 형은 난생 처음 동생에게 어려운 부탁을 했지만 그에 대한 동생의 반응은 냉담하다.

자존심이 상한 형은 그에 대한 보상으로, 한때 그가 꿈꾸었지만 동생이 대신 이룬  꿈을 아들 재우(안재민 분)을 통해 다시 한 번 이루고자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아들은 삼수를 하고도 또 의대 입시에 실패하고 만다. 자신처럼 억지로 의대를 보내지 않겠다던 동생 역시 아들 시우(이정신 분)에게 서울 시내에 번듯한 정형외과를 한다는 자신의 '사회적 위치'에 걸맞는 이른바 '스카이' 행을 요구한다.

의대 입시에 3수를 하고도 실패한 재우, 재수를 하면서 1년 내내 좋은 성적을 낸 줄 알았더니 그 모든 것이 우등생을 바라는 부모에 대한 '사기'였던 시우. 이렇게 두 사촌 형제는 그들 부모들의 바람대로는커녕, 그 발끝에도 미치지 못한 채 심지어 속이기까지 하고 집을 나가 버린다.

말도 없이 집을 나선 재우, 그리고 금고의 돈까지 들고 집을 나선 시우. 그렇게 부모들이 원하는 방향에서 엇나가기 시작한 아이들의 일탈은 뜻밖에도 부모들의 해묵은 문제를 끌어 낸다.

상처 입은 부모가 상처 입은 아이를 만든다

 고맙다 아들아 한 장면

고맙다 아들아 한 장면 ⓒ kbs


<고맙다 아들아>는 결국 학력을 향해 치달아 가는 우리 사회 현상들의 근저에 장형산, 장형준과 같은 부모 세대의 보상 심리가 깔려있다고 짚는다. 즉, <국제시장>은 우리 아버지, 할아버지 세대의 삶을 그럴듯하게 그려냈지만, 정작 그 시절을 살아온 부모 세대들은 그렇게 자신을 던지며 살아온 삶으로 인해 상처받았고, 그 상처를 자식들에게 요구하는 것이 오늘날 우리 사회의 숱한 교육적 갈등을 유발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영화는 스펙터클한 화면에 그 시절을 아름다운 추억으로 그려내지만, 정작 그 시절을 살아온 사람들의 상처는 치유되지 않은 채 곪아 문드러져 자식 세대까지 상처 입게 만들고 있다고 지적한다.

일찍이 <신의 저울>을 위시하여 <즐거운 나의 집> <골든 크로스>까지 우리 사회의 문제들을 날카롭게 형상화해왔던 유현미 작가답게 교육 문제를 둘러싼 가족 간의 갈등조차 그 문제 자체를 넘어 시대적 혜안을 드러낸다. 현실의 교육 문제를 낳은 것이 결국 부모 세대가 잘못 선택한 삶의 방식 때문이라는 것이다.

결국 생존을 위해, 혹은 성장을 위해 선택된 부모 세대의 삶의 방식이 비록 드라마에서처럼 입지전적 성공을 이루고 나라를 잘 살게 만들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 과정에서 '자신'을 놓친 부모 세대의 삶이 여전히 자식들에게조차 '자신'을 상실한 채 남 보기에 그럴 듯한 삶으로 몰아 붙이고 있다는 것을 단 2부작의 드라마로 그려낸다.

날카롭게 자식들의 교육 문제를 넘어 부모 세대의 근원적 문제로까지 지평을 넓히던 드라마는 설 특집극답게 전형적으로 아들의 사고를 매개로 부모 세대의 '급' 반성과 세대간·형제간 화해로 마무리 짓는다. 드라마에서는 그렇게 아버지와 아들, 형과 동생이 서로의 손을 잡고 '미안하다' '다 내 탓이다'라며 기회를 얻지만, '실제로 문제에 봉착한 부모와 자식들에게 과연 그런 기회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오히려 급조된 듯한 해피엔딩을 보며 들게 만드는 결말이었다.

시우는 옥상에 올라 마지막 한 발을 내딛지 못한 자신을 원망했지만, 많은 아이들이 겨우 몇 점의 수능 성적 때문에 여전히 자신을 버리고 삶을 버리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삶을 돌아볼 기회를 가진 드라마 속 아버지들은 '고맙다 아들아'라고 말하며 그 존재 자체만으로 든든한 아들들과 둘레 길을 걷지만, 현실의 아버지와 아들 혹은 형과 동생은 해묵은 오해를 풀지 못한 채 남보다 못한 사이로 남기 십상인 것이다.

그럼에도 역설적 제목 <고맙다 아들아>처럼, 자식들의 문제를 통해 부모들의 삶마저도 반추해볼 수 있는 기회를 준 이 특집극은 장황한 미니시리즈 못지 않게 여운을 남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고맙다 아들아 국제시장 이대연 이정신 안재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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