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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200미터 정도의 길
▲ 무악동 옥바라지 골목 길이 200미터 정도의 길
ⓒ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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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3호선 독립문역 3번 출구 앞에는 작은 안내가 있다. '서대문형무소 옥바라지 아낙들의 임시 기거 100년 여관골목'이라는 종로구청에서 설치한 인왕산 아래 및 무악동 관광 및 골목길 투어 코스를 소개하는 표식이다.

20세기 초반에 설치된 서대문형무소 기결수들의 옥바라지를 돕던 아낙들이 머물던 여관 골목을 소개하는 안내판을 살펴보고 잠시 걸었다.

옥바라지 골목 여관 길
▲ 무악동 옥바라지 골목 여관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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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여m 정도 되는 골목은 사실 별다른 것이 없었다. 이미 1987년 연말, 형무소는 의왕시로 이전했고, 이곳은 재개발 바람이 불어 대로변의 상가들만 장사를 할 뿐 골목 안쪽은 철거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라 조용하기만 했다.

금전적인 여유가 없는 장기 투숙자나, 저녁이면 돈 떨어지고 술 취한 취객들이 이슬을 피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찾아들 것 같은 초라한 여관이 몇 개 보였다. 이제는 문을 닫은 듯한 양복점도 보였다. 그 이웃에 아직은 쓰임이 있는 듯한 세탁소와 허름한 민박집, 여인숙, 정말 작은 점방. 그리고 호텔이라는 이름을 달고는 있지만 손님은 거의 없어 보이는 숙박업소 2곳도 보였다.

대로 변의 안쪽 길
▲ 무악동 옥바라지 골목 대로 변의 안쪽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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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문이 많구나
▲ 상가 뒷문 뒷문이 많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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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로변의 상가는 대체로 지은지 50년은 돼 보인다. 특이하게도  대부분의 건물은 뒤편의 골목으로 작은 출입구가 있어 약간의 의문을 가지게 한다. 임시 퇴로? 탈출구? 아니면 그냥 쪽문? 아무튼 느낌이 유별나다.

그리고 간판은 아니지만, 건물 곳곳에 페인트로 쓰여진 대서소, 도장, 철물점 글씨 등. 참 정겹기도 하고, 시골스럽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재미있다. 왜 이런 구조와 이런 업소가 남아있고, 지금은 또 왜 이렇게 초라할까?

지난 6일 오후 궁금함과 의문을 갖고, 문화 유산에 관심이 많은 성균관대 건축학과 윤인석 교수의 소개로 미리 약속을 잡은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의 박경목 관장을 만났다.

무악동
▲ 무악동 여인숙 무악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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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관 골목에 관한 기록이 있나?"

"김구, 여운형, 유관순 같은 독립운동가부터 살인범과 잡범까지 모두 다 수감됐던 서대문형무소의 기결수들의 옥바라지를 하던 아낙들의 기록은 물론 그곳 여관에 대한 자료도 별다른 것이 없다. 그냥 현재 있는 그대로 일 뿐이다.

작은 안내판 하나에 상가 건물을 앞에 두고 뒤편의 여관, 여인숙, 양복점, 슈퍼, 호텔, 식당, 민박, 한옥 여러 채 가 남아 있을 뿐 형무소가 1987년 이전한 이후로는 더더욱 자료가 없는 상황이다. 현재 재건축 바람까지 불어 누구에게도 쉽게 물어보는 것이 쉽지 않다."

박경목 관장
▲ 서대문형무소역사관 박경목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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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옥바라지 아낙들이 머물던 여관 골목이라는 구전 이외에는 거의 자료가 없는 건가?"

"그렇다고 볼 수 있다. 누가 언제 머물렀다는 기록이 있지 않고, 현재는 물어볼 사람도 거의 없다. 이곳 여관의 주인들에게 물어보면 가능할지 모르지만, 재개발 여파로 혹시 자료가 나와서 보존하자는 소리가 나올까봐 외부인이 방문하는 것조차 싫어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특이한 상가의 모양이나, 다양한 글씨들, 여관, 여인숙, 슈퍼, 식당 등이 무언의 표식으로 당시의 시대상을 말해주는 것만은 틀림없다."

"그럼 보존이나 자료관을 만드는 것에 고민은 없으시겠다."

"단순한 문제는 아니다. 개인적으로 그대로 두는 것이 좋을 것 같지만, 개발이 필요하다면 어느 정도 정리를 할 필요도 있을 것 같다. 사견이지만, 이쪽 형무소 주변에 일부 건물이나 가옥을 이전 복원하는 것도 필요는 할 듯하다."

대서소, 도장 등등
▲ 아직도 남아있는 형무소의 흔적 대서소, 도장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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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대화를 나누고 박 관장과 함께 길을 건너 100년 여관 골목으로 다시 갔다. 짧은 골목이지만, 박 관장의 설명으로 조금 더 이해가 갔다. 하지만 내가 생각한 것과 별다른 차이나 심도는 없었다. 그러나 고민은 더 깊어지는 듯했다.

내 생각에도 재개발 이전에 몇몇 건물과 여관을 형무소 귀퉁이로 옮겨 '옥바라지 아낙들이 이용하던 여관, 여인숙, 집, 식당'이라는 이름의 전시관을 만들면 좋을 듯 했다. 물론 아직은 내 머릿속을 맴도는 상상일 뿐이다.

여관 골목을 멀리서 보다
▲ 무악동 여관 골목을 멀리서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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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과 민박집도 보인다
▲ 골목 안쪽의 더 작은 골목 한옥과 민박집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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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20년도 넘게 지난 과거의 시간. 아낙들이 머물던 여관들은 현재는 다른 사람들이 머무는 곳으로 쓰이고 있다. 골목 또한 다른 사람들만 오가는 곳이다. 하지만 충분히 100년 가까운 시간동안의 하나의 목적으로 쓰임이 있었고, 지금도 동일한 공간에 남아있다면 나름 보존의 가치가 있다고 본다.

하지만 보존만을 주장하다가는 개발이나 발전에 저해가 될 것이 분명해 보이는 곳이다. 너무 아쉽지만, 공간을 이동해 시간의 흐름을 유지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보이는 곳이다. 골목을 살펴본 다음, 박 관장과 함께 길을 다시 건너 영천시장을 둘러보았다.

시장 입구에는 일제 강점기에 지어진 것으로 보이는 붉은 벽돌의 창고 건물이 보였다. 현재 상가로 쓰이고 있었다. 중간 쯤 있는 영화 <아리랑>을 만든 춘사 나운규 감독이 살던 집은 헐리고 집터만 덩그러니 남아있는 것을 발견했다. '에이, 시장도 별로 볼 것은 없구나' 그래도 나름 맛있어 보이는 튀김과 빵집을 발견해 조만간 다시 한 번 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은행나무가 있어 행촌동
▲ 행촌동 권율장군 은행나무 은행나무가 있어 행촌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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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관장과 헤어진 후 나는 발길을 돌려 한국 독립운동에 기여했던 앨버트 테일러의 가옥인 딜쿠샤(Dilkusha)와 그 옆에 있는 권율 장군의 은행나무를 보기 위해 행촌동으로 갔다.

언론인 테일러의 집
▲ 딜쿠샤 언론인 테일러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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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의 역사 문화적 가치가 있는 유산의 개발과 보존, 참 어려운 난제인 것 같다. 문화유산에 대해서는 절대 복원 및 보존주의자였던 나는 최근 역사의 수레바퀴를 앞으로 돌리기 위해서는 약간의 개발 및 발전도 꼭 필요하다는 의견을 동의, 수용하며 살고 있다.


태그:#서대문형무소, #무악동 옥바라지 골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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