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랜드 프로축구 아스널 박주영 선수

박주영 ⓒ 연합뉴스


박주영의 추락은 어디까지일까. 사우디아라비아 알 샤밥에서 활악하던 박주영이 구단과 계약해지를 결정했다. 이번에도 아름다운 결말은 아니었다. 지난해 10월 우여곡절 끝에 알 샤밥과 8개월 단기 계약을 맺었던 박주영은 그나마도 불과 4개월만에 또다시 소속팀 없는 무적 신세로 전락했다.

박주영이 알 샤밥에서 남긴 성적은 7경기(선발 5회) 1골에 불과하다. 외국인 선수로서 기대에 걸맞은 성적표와 거리가 멀었다. 알 힐랄과 데뷔 전에서 결승골을 터뜨린 이후로는 내내 침묵했다. 사우디 현지 언론에서는 "박주영이 중동 문화와 축구에 적응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며 본인도 계약 해지를 원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어느 쪽이든 결국 중동 진출 역시 초라한 실패로 끝났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박주영은 2005년 K리그 FC 서울에서 프로에 데뷔한 이래, 2008년부터 해외무대에 진출하여 프랑스, 영국, 스페인, 사우디를 거쳤다. 특히 첫 유럽팀이던 AS모나코(프랑스)에서 전성기에 접어들며 103경기 26골로 개인 최다 출전과 득점기록을 세웠다. 이때까지만 해도 박주영은 '천재'라는 찬사를 들으며 한국축구를 대표하는 공격수이자 유럽무대에서도 인정받는 유망주로 꼽혔다.

하지만 2011년 아스널(잉글랜드)에 입단하면서 박주영의 축구인생은 급격한 풍랑 속으로 빠져들어갔다. 세계 정상급 선수들이 즐비한 아스널에서 박주영은 주전 경쟁에서 철저하게 밀렸다. 3년간 박주영이 아스널 소속으로 출전한 경기는 모두 합쳐도 7경기에 불과해도 리그 경기에서는 단 한 번 교체 출전에 그쳤고 득점은 컵대회에서 기록한 한 골이 전부였다.

이 기간 스페인 셀타 비고(2012/2013, 26경기 4골 1도움)와 잉글랜드 챔피언십 왓포드(2013/2014, 2경기)에 임대되어 재기를 모색하기도 했지만 역시 별다른 활약을 보이지 못하고 초라하게 떠났다. 급기야 2014년 브라질월드컵 기간 중 아스널에서 방출된 박주영은 4개월 가까이 무적 신세를 전전하다가 중동으로 눈길을 돌렸으나 여기서도 적응에 실패했다. 특히 모나코 시절 이후로는 가는 팀마다 1년도 제대로 버티지 못하고 실패와 방랑을 거듭하는 '떠돌이' 신세로 전락했다.

박주영의 몰락은 한국축구에도 씁쓸한 교훈을 남긴다. 한때 박주영은 차범근-박지성의 뒤를 이어 한국축구를 빛낼 최고의 재능으로 꼽힌 적도 있었다. 그러나 재능만 있었을 뿐, 안목과 의지는 부족했다.

박주영의 축구인생을 바꾼 세 번의 갈림길

박주영의 축구인생이 정상궤도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몇 차례의 분기점이 있었다. 첫 번째는 역시 아스널 입단이었다. 박주영은 2011년 8월 자신을 간절하게 원하던 프랑스리그 상위권의 릴이 아닌, 뒤늦게 제의가 들어온 아스널로 갑자기 방향을 선회했다. 규정상으로는 문제가 없었지만 계약성사 직전까지 갔다가 사전 연락도 없이 입장을 바꾼 것은 도의적인 논란을 일으키기 충분했다.

설상가상으로 아스널 입단 이후 주전경쟁에서도 밀리며 기량이 급격히 하락세를 타기 시작했다. 당시 박주영은 프랑스리그에서는 상당히 인정받는 공격수였다. 만일 아스널이 아닌 릴에 갔더라면 좀 더 안정적인 출전기회를 보장받는 것과 함께 챔피언스리그도 누빌 수 있었을 것이다.

두 번째는 병역 논란이다. 박주영은 모나코 시절 병역의무를 37세까지 미룰 수 있는 '국외이주사유 국외여행 허가' 규정을 통해 장기 체류권을 얻어 병역 이행을 미루기로 했다. 박주영은 유럽에서의 선수생활을 이어가고 싶었지만 해결하지 못한 병역이 걸림돌인 상황이었다. 실제로 박주영은 2006년부터 2012년까지 와일드카드를 포함하여 병역혜택이 걸린 모든 대회에 개근하던 중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모나코 장기체류권 취득은 병무청의 허가를 받았다고 하지만, 국가대표 선수가 일반 유학생이나 이민자를 위하여 마련한 규정을 개인의 이익을 위하여 악용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었다. 사실상 병역 회피가 가능한 안전 장치를 마련했다는 꼼수 의혹에 휩싸인 박주영은, 뒤늦게야 기자회견을 통하여 해명에 나섰지만 이미 여론은 싸늘하게 돌아선 뒤였다.

마지막으로 국가대표팀 '무임승차' 논란이다. 박주영은 2012년 런던올림픽 대표팀에 승선하여 동메달을 얻어내며 꿈에 그리던 병역혜택을 얻어냈다. 당시도 아스널에서 출전기회도 얻지 못한데다 병역 논란에 휩싸인 박주영의 발탁에 부정적인 여론이 많았다. 그러나 당시 홍명보 감독은 '박주영이 군대에 안 가면 내가 대신 가겠다'고 선언하며 박주영을 과감히 발탁했고, 박주영은 일본과의 3-4위전에서 결승골을 뽑아내며 해피엔딩에 성공했다.

하지만 2년 뒤 브라질월드컵에서 똑같은 상황이 재현되었지만 결과는 전혀 달랐다. 박주영은 올림픽 동메달로 병역혜택을 받았지만 이후에도 소속팀에서의 입지는 개선되지 않았다. 국가대표팀 사령탑에 취임한 홍명보 감독은 올림픽 신화의 재현을 꿈꾸며 다시 한번 경기력이 떨어진 박주영을 불러들였지만 이번엔 결과가 참혹했다.

박주영은 월드컵 2경기에 주전 공격수로 선발출전 했지만 118분간 단 한 개의 슈팅도 날리지 못하는 극도의 부진을 보였고, 홍명보호는 월드컵 조별리그에서 초라한 경기력으로 탈락하며 국민적 비난을 받아야 했다.

월드컵의 실패는 어쩌면 예고된 것이었다. 특히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런던올림픽 이후 박주영의 행보였다. 대표팀이 공격수 부재로 '박주영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절실한 시점에서도 박주영은 아스널을 떠나 경기력을 끌어올릴 수 있는 새 소속팀을 찾는 데 소극적이었다.

월드컵 최종엔트리 발표가 임박한 시점에서 뒤늦게 왓포드로 임대되었지만 별다른 활약이 없었고, 급기야 시즌 중 소속팀을 떠나 대표팀에 합류하며 '황제훈련'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당시 최종엔트리 발표 이전이라, 박주영의 대표팀 합류는 특혜 시비를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브라질월드컵 몰락의 단초를 제공한 '의리축구' 논란의 중심에 바로 박주영이 있었던 것은 국민들의 분노를 자아냈다.

한국축구의 빗나간 박주영 감싸기, 독으로 돌아왔다

브라질월드컵 이후 박주영은 어느새 실패의 아이콘으로 낙인이 찍히고 말았다. 무적 선수 생활이 길어지면서 병역특례 자격 유지에도 논란이 제기됐다. 유럽을 떠나 마지막 돌파구였던 중동에서도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 슈틸리케 감독이 이끄는 2015 호주 아시안컵 최종엔트리에서는 무명의 이정협에 밀려 탈락하는 굴욕도 겪었다. 이정협은 아시안컵에서 인상적인 활약으로 '군대렐라' 신드롬을 일으키며 박주영에 대한 미련을 무색케했다.

박주영의 몰락은 본인의 책임도 있지만 주변의 잘못된 영향도 컸다. 한국축구계는 그동안 박주영에 대하여 지나친 과보호와 특혜를 베풀어왔다. 그 이면에는 최근 계속되고 있는 대표팀의 공격수 부재라는 딜레마를 놓고 '박주영 말고는 대안이 없다'는 나름의 이유 때문이었다. 박주영의 부적절한 처신을 감싸느라 많은 팬들이 축구대표팀에 등을 돌리는 결과를 만들었고, 무임승차와 의리축구 논란으로 국제적인 웃음거리를 만들었다.

결과적으로 그런 과보호와 특혜가 박주영을 살린 것도, 한국축구를 일으켜세운 것도 아니었다. 지난 아시안컵에서 기존 대표팀 공격수들이 사실상 전멸한 상황에서, 슈틸리케 감독이 부임 3개월 만에 이정협이라는 깜짝 스타를 발굴해낸 것은, 그동안 '선수가 없다'고 불평하던 한국축구계의 고정관념과 게으름에도 경종을 울리는 사건이었다.

무엇보다 이제는 박주영 스스로가 자기만의 세계에서 벗어나 홀로서기를 할 필요가 있다. 박주영은 여론의 관심이 커질수록 점점 스스로를 감추고 은둔하려는 듯한 모습을 보여왔다. 미디어와 거리를 두고 사생활에 대한 노출을 꺼려하는 것은 박지성이나 이청용 같은 선수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박주영의 '불통'은 단지 유명세를 기피하는 차원이 아니라, 자신을 둘러싼 수많은 구설수와 의혹에 대해서 최소한의 책임있는 해명과 소통도 거부하고 있다는 데 문제가 있었다.

박주영의 축구인생은 현재 더 이상 떨어질 곳없는 나락에 놓여 있다. 전 세계를 떠돌며 돈도 벌고 병역혜택도 얻었으니 금전적으로는 성공한 인생일지 모르지만, 가장 중요한 축구선수 본연의 가치에서 현재 박주영에 대한 평가는 바닥이나 마찬가지다.

박주영의 축구인생은 혼자만의 힘으로 이 자리까지 온 것이 아니라는 깨달아야 할 필요가 있다. 그를 믿고 수많은 기회를 제공하며 기다려준 축구인들과 팬이 있었고 넓게는 국가가 있었다. 개인의 자유와 권리만 생각하기 전에 박주영은 자신이 누린 혜택에 대하여 보답할 책임도 있다. 누구나 실수는 할수 있다. 그러나 실수에 있어서 교훈을 얻지 못하고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고 있다면 그것은 더 이상 실수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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