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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서남각루가 한편으로 기울어 공사를 하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다
▲ 서남각루 화성 서남각루가 한편으로 기울어 공사를 하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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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계속하셔야죠. 저는 선생님의 열렬한 팬입니다."

오늘 우연히 현장 취재를 하다가 들은 말이다. 겨울이라서 길이 유난히 미끄러운 곳이 많다. 나는 항상 "도대체 그 역마살이라는 것이 나를 가만히 놓아두지를 않는다"고 불평한다. 주말에 약속까지 시간이 남아 겨울철 공사를 준비하고 있는 서남각루를 찾아가다가 그만 발을 헛딛고 말았다.

남수문 뒤편은 얼음이 얼어 길이 여간 미끄러운 것이 아니다. 남수문을 바라보고 걷고 있다가 그만 얼음판에 미끄러지고 말았다. 넘어져서 어디가 조금 멍들고 깨지는 것은 그리 큰 일이 아니다. 문제는 손에 들고 있는 카메라였다. 20년 넘는 세월, 문화재 답사를 하고 다니면서 깨 먹은 카메라만 해도 열 대가 넘는다.

"괜찮으십니까? 큰일 날 뻔 하셨네요."

망신살이 뻗친 취재길에서 우연히 만난 젊은이. 올해 대학교 3학년이라고 하는 그는, 이제 나이가 25살이란다. 아마 중간에 군 복무를 마치고 복학을 했을 터다. 얼음판에 엉덩방아를 찧었으니 그 아픔이라는 것이 대단하다. 주말이라 사람들이 남수문 근처에 상당히 많이 모여 있으니 더 아팠다.

카메라를 안고 넘어졌으니 그대로 얼음방아를 찧을 수밖에…. 항상 취재나 답사 길에 이런 일이 일어나면 몇 배 더 고통이 뒤따른다. 오늘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오래시간 답사를 하면서 카메라의 소중함을 알고 있는 나로서는, 차라리 내가 다칠망정 카메라는 지켜내야 한다. 카메라가 망가지기라도 한다면 취재나 답사가 모두 물거품이 되기 때문이다. 

엉덩이 아픈 것도 모르고 카메라부터 살펴

그동안 답사를 하면서 넘어지고 구르면서 고장난 카메라들
▲ 카메라 그동안 답사를 하면서 넘어지고 구르면서 고장난 카메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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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엉덩방아를 찧는데 달려와 "안 다치셨느냐?"고 물어보는 젊은이가 있다. 젊은이는 카메라를 꼭 붙들고 있는 나에게 "카메라가 그리 중요한 것이냐"고 묻는다. 그저 웃고 말았지만 새로 장만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터에, 망가지기라도 한다면 이런 낭패가 더 있을까?

"이 얼음판에 카메라를 들고 어디를 가시는 길이세요?"
"예, 저 위에 서남각루 공사 현장을 좀 찍으려고요."
"정말 괜찮으세요?"
"괜찮아요, 한두 번도 아닌걸요."
"답사를 얼마나 하셨기에 많이 사고를 당하셨나 봐요?"
"예, 한 20년 한 것 같네요."

화성관람을 하러 왔다는 젊은이는 여자 친구인 듯 한 사람과 동행이었다. 요즈음은 남들의 아픔에 대해서 무관심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지나던 길에서 쳐다보고 쫒아와 걱정을 해주는 젊은이가 여간 고맙지 않다. 엉덩이에 몰려드는 통증으로 다리를 좀 절었나보다. 젊은이가 근처 커피숍이라도 들어가 잠시 쉬는 것이 낫겠다고 한다. 그러더니 어느 틈에 약방으로 달려가 소염제를 사갖고 왔다.

고마운 김에 명함 한 장을 주었더니 명함을 보고 있다가 반색을 한다.

"티스토리 블로그 운영하시네요?"
"예, 바람이 머무는 곳이라는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럼 온누리 선생님이세요?"
"그런데요. 어떻게 절 아세요?"
"선생님 블로그에 매일 들어가서 보는데요. 공부 열심히 하고 있어요. 정말 반갑습니다."

이제는 다시 정신을 차려야 할 때

남수문 안편은 그늘이 져 있어 녹았던 눈이 얼어 빙판으로 변했다
▲ 빙판 남수문 안편은 그늘이 져 있어 녹았던 눈이 얼어 빙판으로 변했다
ⓒ 하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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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취재 현장에서 이렇게 반가운 사람을 만날 수 있다니, 세상이 참 좁다고 느낀다.

"선생님 정말 대단하십니다. 선생님 블로그를 보면서 저도 문화재에 관심을 갖게 되고, 우선 제가 사는 지역부터 돌아보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다가 오늘 화성을 1박 2일로 관람하러 왔어요."
"그래요. 제가 더 고맙습니다. 우리 문화재에 이렇게 관심을 가져주셔서."

세상 참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이런 일도 있구나 싶다. 그리고 그 젊은이가 한 없이 고맙다.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 문화재. 요즈음 들어 블로그 운영에 회의를 느끼던 차에, 나에게 이런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에 더 없이 고마울 뿐이다.

"선생님 힘내세요. 그래도 선생님 같으신 분들이 있어, 저희 같은 사람도 이렇게 문화를 알아가고 있으니까요."

그 한 사람이 나에게는 큰 힘이다. 그 말 한 마디가 정말 대가없는 일을 계속하게 만든다. 문화재 답사를 그만둘까 고민 중이라는 말에 "그래도 계속하셔야죠, 저는 선생님의 열렬한 팬입니다"라는 젊은이. 하기야 그렇다.

언제는 내가 대가를 바라고 시작을 했던가? 그저 우리 것이 소중하단 생각에 몇 십 년을 돌아다니는 나그네가 되지 않았던가? 오늘 취재 길에서 만난 젊은이로 인해, 난 또 끝없는 답사 길을 올해도 가야만 할 것 같다. 참 역마살 한번 오지게 질기다. 별별 인연으로 고리를 끊을 수 없게 만드는 것을 보니 말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와 티스토리 <바람이 머무는 곳>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취재, #답사, #카메라, #빙판, #망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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