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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순씨의 아크릴화 가을 도봉산
 박은순씨의 아크릴화 가을 도봉산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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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들이 아마추어 작품 치고는 수준이 있는 걸요."
"그러게요, 더구나 그냥 아마추어가 아니라 70을 훌쩍 넘긴 노인들이 뒤늦게 배워서 올린 작품들이라는데, 참 대단하잖아요?"

서울 왕십리 성동구청 1층에 있는 '비전 갤러리'에서 인근에 있는 '성동노인종합복지관' 어르신들이 그림과 시, 그리고 사진을 전시하고 있었다. 먼저 시선을 붙잡은 것은 그림들이다. 정확히 말하면 서양화의 한 종류인 아크릴화였다.

"우와! 이 그림은 크기도 크지만 색채와 그림의 선이 매우 도전적인데요. 그림의 제목이 '도봉산에서'네요, 가을 도봉산을 그린 그림인가 봐요."
"정말 그러네요, 웅장한 바위봉우리가 붉은 단풍과 아주 잘 어울리는 걸요."
"남성적인 그림으로 보이는데 할머니 작품이군요."

50~60대로 보이는 시민 두 사람의 발길을 붙잡은 것은 산수화, 그 중에서도 서울 도봉산의 웅장한 세 개의 바위봉우리와 단풍이 곱게 물든 풍경이었다. 그림의 주인공은 박은순씨. 그런데 그림그리기를 시작한 지 겨우 1년째라고 한다.

이감단씨 아크릴화 참 좋은 시절
 이감단씨 아크릴화 참 좋은 시절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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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직환씨작품 초가을 계곡
 안직환씨작품 초가을 계곡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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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카메라를 꺼내들고 보니 사진 찍기가 곤란했기 때문이다. 그림 액자에 유리가 끼워져 있어서 천정의 불빛들이 유리에 반사되었다. 안내하는 노인에게 전등불 좀 꺼줄 수 없느냐고 물으니 자신들은 그런 걸 할 수 없다고 한다. 아쉽지만 그냥 카메라에 담아보았다.

그 옆에 있는 같은 크기의 그림은 대조적으로 섬세함이 돋보이는 꽃그림이었다. 안직환 노인의 '초가을 계곡'도 참 좋은 그림이다. 커다란 나무가 골짜기 중심에 서 있고, 그 나무 앞을 휘돌아 흐르는 시냇물과 배경이 된 산이며 바위봉우리가 매우 조화롭고 아름답다. 더구나 이 그림은 유리가 끼워져 있지 않아 사진으로 담기도 매우 좋았다.

그림, 시, 사진 노인들의 취미작품 정말 멋져요

맨 뒤편 벽엔 노인들이 쓴 시들이 걸려 있었다. 둘러보노라니 김영자씨가 쓴 '여운'이라는 시가 눈길을 붙잡는다.

"수평선에 걸터앉은 해/잔잔한 물결위로/일그러진 풍경화를 그린다./ -중략-/ 푸른 꿈밭에서 뛰놀던 시절/색색으로 풀려 나온다/ 한숨 쉬고 있던 고통의 빛깔이/굽이굽이 넘실거린다.(하략)"

노인이 뒤돌아본 그 가난했던 어린 시절이 눈에 보이는 듯 선하게 다가오고 있었다.

안병식씨 작품 바닷가의 휴식
 안병식씨 작품 바닷가의 휴식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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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자씨의 시 여운
 김영자씨의 시 여운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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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한편의 시 김을분 할머니의 '고향의 맛'도 매우 감성적이다.

고향집 마당에서/한 식구로 살던 대추나무/-중략-/바람난 대추 한 알/배틀하고 촉촉한 젖 내음 처럼/ 상큼하고도 풋풋한 맛(하략)

나이가 많아지면 감성도 떨어진다는데 이 할머니는 예외인 것 같았다.

이번엔 전시장을 들어서며 지나쳤던 사진들을 둘러보기로 했다. 사진들도 대부분 풍경을 담은 것들이었다. 그런데 그 중에서 시선을 꽉 잡는 작품이 있었다. 호수에서 물보라를 일으키며 멋진 수상스키를 하는 모습을 담은 작품이었다. 노인이 카메라로 담기엔 쉽지 않은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단풍이 곱게 물들며 가을이 깊어가는 올림픽공원의 풍경을 담은 김시현 할머니는 나이가 76세였다. 성동노인복지관 사진동아리에서 총무를 맡고 있다고 했다, 함께 안내를 하고 있는 왕광언(74)노인의 사진은 작품성이 매우 뛰어났다.

김을분씨의 시 고향의 맛
 김을분씨의 시 고향의 맛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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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월선씨 사진작품 젊음
 박월선씨 사진작품 젊음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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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위에 둥지를 틀고 새끼를 치고 있는 왜가리부부의 모습을 담은 사진이었다. 그런데 때마침 왜가리부부가 서로 부리를 맞대고 사랑이라도 속삭이는 것 같은 모습을 절묘하게 포착했기 때문이다.

"저 모습 잡으려고 3~4시간은 기다렸을 거예요, 그런데 왜가리부부와 가족들이 사는 모습이 얼마나 정답던지, 사람들보다 낫던 걸요. 멀리서 날아오는 짝을 반기며 날갯짓을 하고, 서로 목을 감고 부비며 사랑하는 모습이 참으로 감동적이었어요."

좋은 사진을 찍으려고 기다리며 살펴보다가 왜가리부부의 사랑하는 모습에 감동받았다는 74세의 남성노인의 말이 더 감동적이다. 노인은 자신의 사진작품에 남다른 자부심과 보람을 갖고 있었다. 자신들의 작품 사진 옆에 서서 포즈를 취한 김시현 할머니와 왕광언 노인은 앞으로도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해 더 열심히 활동하겠다고 했다.

무료로 배우고 전시한 노인들의 무지개페스티벌

"이 나이에 화가는 무슨?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요, 그냥 취미로 해보는 거지요, 그래도 이렇게 전시회도 해보고, 재미는 있네요."

"그림, 이거 하면 할수록 더 어려운 것 같아요, 정성들여 그려도 마음에 찰 때가 거의 없어요, 허허허"

멋진 작품을 전시한 노인은 정말 조금은 자신이 없는 표정으로 겸손하게 말했다. 그림 그리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라는 것이다. 노인들은 나름대로 소질과 취미를 갖고 있었지만 젊은 시절엔 어려운 형편 때문에 감히 꿈도 꾸지 못했다고 한다. 가정을 돌봐야하고 자식들 교육에 허리를 펼 겨를이 없었기 때문이란다.

김시현씨 사진작품 올림픽공원
 김시현씨 사진작품 올림픽공원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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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광언씨 사진작품 사랑
 왕광언씨 사진작품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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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들의 작품 옆에서 포즈를 취한 김시현(76) 왕광언(74)씨
 자신들의 작품 옆에서 포즈를 취한 김시현(76) 왕광언(74)씨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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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립노인복지관에서 무료로 가르쳐주고, 이 전시장도 구청에서 무료로 빌려주니까 전시하지 노인들이 무슨 돈이 있겠어요. 참 고마운 일이지요."
"그럼은요, 다 가난한 노인들인데 돈 들여 하라면 못하지요."

전시회에 참여한 노인들은 대부분 70세를 훌쩍 넘긴 분들이다. 그래도 뒤늦게나마 자신들의 취미와 특기를 살려 예술분야 작가에 도전한 노익장이 대단해보인다. 이 갤러리에서는 지난 11월 10일부터 '제14회 노인의 날 및 개관14주년 2014 무지개페스티벌'이 열리고 있다.

전시회는 먼저 지난 주간에 서예와 사군자 작품들이 전시 되었다. 이번 주 부터는 아크릴화를 중심으로 한 그림들과 시, 그리고 사진작품들이 26일까지 전시된다. 전시된 작품들을 둘러보면 어르신들의 멋진 솜씨와 실력, 그리고 노년의 열정을 느낄 수 있다. 전시장은 성동구청 1층에 있다. 지하철 왕십리역 3번 출구를 이용하면 편리하며 관람료는 무료다.


태그:#박은순, #성동구청 비전갤러리, #성동노인종합복지관, #아크릴화, #전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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