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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N 뉴스 캡처] 잇따라 롯데월드와 관련된 소식이 들려오면, 방귀가 잦으면 똥이 나온다는 농담이 떠오른다.
▲ [YTN 뉴스 캡처] 잇따라 롯데월드와 관련된 소식이 들려오면, 방귀가 잦으면 똥이 나온다는 농담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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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따라 롯데월드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이번엔 제2롯데월드 영화관이다. 지난 9일 롯데시네마 월드타워점에서 영화 상영 중 화면과 좌석이 흔들려 소방차가 긴급 출동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심지어 바로 뒤 10일, 롯데월드 석촌호수 부근 송파구 잠실동의 5층짜리 다세대주택이 한 쪽으로 약 30cm 정도 기울어지는 현상이 발생해 송파구청이 지난 달 25일부터 보강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아직까지 인과관계가 명확히 밝혀지진 않았지만 전문가들은 지하철 9호선의 영향을 지적했다. 지난달 29일 바닥과 천장 균열이 발견 되고, 실내서 금속 부품이 떨어진지 얼마 되지 않아 이런 소식들이 들려온다. 시민들의 불안감을 계속해서 고조시키는 것이다.

방귀가 잦으면 똥이 나온다던데 불안한 사건의 초기 징후들은 아닐지 심히 염려된다. 올해는 국민들을 슬픔과 피로로 찌들게 만드는 사건이 너무 빈번하게 발생하는 것은 아닐는지 모르겠다.

세월호 사건, 환풍구 사고 그리고 의료사고로 추정되는 신해철 씨의 죽음까지, 참으로 다사다난한 한 해다. 세월호 법이 통과되고 환풍구에 차단막을 설치했다 하여 우리 사회가 완벽한 재난 대책 시스템을 갖춘 것일까? 재난에 따른 위험과 그 대책을 심도 있게 분석하고자 한다.

재난의 원인인 '위험'

본래 위험(Risk)이라는 용어는 17세기 스페인의 항해술 용어에서 나온 것으로 위협을 감수하다, 암초를 뚫고 나가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로부터 위험이란 부를 얻기 위해서 당연히 감수해야만 하는 난관이라는 함의를 갖게 되었다.

또한, 이 단계에서 위험은 잠재적인 부수효과이자 예외적인 것으로 취급되었다. 산업자본주의의 시대에 그처럼 많은 모험가들이 나타나고, 자본의 탐욕스런 시장 확보 전쟁이 곧잘 영웅적 모험담으로 묘사됐었다.

허나 그 같은 '낭만의 시대'는 이제 지나갔다. 그 부작용인지 구조적 위험으로 가득 차 있는, 참으로 아슬아슬한 '위험사회'가 도래하였다. 이제 한국사회가 온갖 위험으로 가득 차 있다고 말하는 것은 별다른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 누구나 할 것 없이 너무 잘 알고 있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온갖 긴장으로 가득한 한국사회 내 위험성은 어떠할까. 독일 사회학자인 울리히 백의 저서 <위험사회>(1986) 일부분을 인용하고자 한다. 그에 따르면 위험사회로서 현대 산업사회의 위험성은 다섯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 현대의 위험은 방사선과 같이 인간의 평상적인 지각능력을 완전히 벗어난다. 둘째,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위험의 분배 및 성장에서 더 큰 영향을 받는다. 즉, 위험의 사회적 지위가 나타난다. 셋째, 위험의 확산과 상업화는 자본주의의 발전논리를 완전히 종식시키는 대신에 자본주의를 새로운 단계로 끌어올린다.

넷째, 부는 소유할 수 있지만 위험으로부터는 그저 영향을 받을 수 있을 뿐이다. 다섯째, 사회적으로 공인된 위험은 특수한 정치적 폭발력을 지닌다. 지금까지 비정치적인 것으로 여겨졌던 것들이 정치적인 것으로 변한다. 
- 울리히 백 <위험사회 中, 현대 산업사회의 위험성>

위험이 평상적 지각범위를 벗어나고 산업의 논리 속에서 체계적으로 재생산되면서 현대 산업사회는 위험사회로 이행된다고 울리히 백은 주장한다. 위험사회는 현대 사회가 존재론적으로 재앙에 근거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결국, 경제적 부를 희생할지라도 위험을 사전에 철저히 봉쇄하는 것, 이것이 위험사회에서 인류가 취할 수 있는 유일한 발전경로이다.

과거에 발생했던 사건들을 다시 떠올려보자. 신행주대교 붕괴(1992년 7월), 우암상가 아파트 붕괴(1993년 1월), 구포역 열차전복(1993년 3월), 예비군 부대 폭발사고(1993년 6월), 아시아나 항공기 추락(1993년 7월), 서해 훼리호 침몰(1993년 10월), 성수대교 붕괴(1994년 10월), 충주호 유람선 화재(1994년 10월), 아현동 도시가스폭발(1994년 12월), 대구 지하철 가스폭발(1995년 4월), 삼풍백화점 붕괴(1995년 6월), 미국 괌 대한항공 항공기 추락(1997년 8월), 화성 씨랜드 화재(1999년 6월), 대구지하철 화재 참사(2003년 2월), 그리고 가장 최근에 발생한 부산외국어대학교 신입생 환영회 붕괴 사고(2014년 2월).

무언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은가. 무너지고 떨어지고 폭발하는 사고가 끊임없이 계속된다. 이런데도 우리 사회가 재난에 대한 시스템을 완벽히 갖췄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세월호 사건이 다시 일어나지 않기 위해선 세월호 특별법만으로 충분할까? 누가 이 시대를 평화기라고 부를 수 있을까.

한국 사회에서 위험이 발생하는 원인

울리히 백의 위험사회는 위험과 안전을 사회발전의 중심에 놓는다는 점에서 한국 사회의 현실을 돌이켜 볼 수 있는 관점을 제시한다. 그동안 한국 사회는 무려 30년간에 걸친 군사독재 하에서 위험과 안전의 문제는 완전히 도외시한 채, 오직 외형적인 성장만을 지표로 삼은 '폭압적 근대화'의 길을 달려왔기 때문이다. 군사독재체제의 폐해를 해결해야 한다는 문제는 사실상 바로 서지 못한 재난 대책 '청산'이라는 문제와도 구조적으로 결합되어 있다.

세월호 사건 또한 이와 무관하지 않다. 과도한 적재량은 산업사회의 원리 자체가 커다란 내적 한계를 지니고 있음을 보여준다. 지금도 여전히 횡행하고 있는 과도한 자본의 탐욕이 이 사회를 동물적 생존경쟁으로 내몰고 사람들을 분열증에 시달리게 한다는 점을 직시하도록 한다.

이것을 적절히 통제하여 부정과 비리의 근원을 차단하는 것은 '역사를 바로 세우는 것'이고 서구적 근대화의 한계를 넘어서는 길이다. 계속해서 재난 대책이 바로 서지 못하는 원인을 위에서 언급한 울리히 백의 위험성의 특징 중, 두 번째 사유에서 찾고자 한다.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위험의 분배 및 성장에서 더 큰 영향을 받는다.' 어찌하여 이런 현상이 발생할까? 이에 대한 분석을 위해 잠시 리스크 관리자로 유명한 김중구씨의 '세월호 사고와 위험사회' 글 일부분을 살펴보도록 하자.

위험사회의 속성 중에 하나가 바로 원인제공과 손해 당사자의 인과관계가 불일치 한다는 점입니다. 수학여행 중에 배에 탄 한 학생이 세월호 침몰로 사망했습니다. 이 학생이 자신이 죽어야 할 만큼 원인제공을 한 것입니까? 아닙니다. 우연히 그 배에 탔을 뿐입니다. 그 학생이 아니라 바로 내가 그 희생자일 수도 있습니다.

지금 속속 알려지는 바와 같이 세월호는 안전에 문제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제주도로 가기 위해 6000톤급의 큰 여객선을 타면서, 그 여객선의 안전이 얼마나 보장되는지에 대한 정보를 일일이 알아야 합니까? 아니죠! 세월호의 안전에 대한 보장은 우리 사회체계가 해주는 것입니다. 몇 가지를 든다면, 선박안전감독기구가 선박의 운행안전을 점검하는 일을 하고, 해경이 선박의 안전운항에 대한 통제체계를 갖추고 있습니다.

명문적으로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실제 이 학생이 자신의 안전에 관련된 복잡한 사항을 점검하지 않는 것은 사회체계에 대한 신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 김중구,<세월호 사고와 위험사회>

문제는 여기서부터 발생한다. 원인 제공과 손해 당사자와의 인과관계를 밝혀내는 것도 쉽지 않으며 그렇다 보니 그것이 시간이든 돈이든 상당한 사회적 비용을 야기한다. 그러다보면 원인을 밝혀내려고 하는 집단조차도 쉽게 피로감을 느낀다. 사건은 점점 흐지부지 돼 버리고 대중 사이에서도 피로감을 성토하는 이야기들이 새어나온다.

혹자는 재난을 당하는 당사자들이 있더라도 사회 전체가 감당하는 손해는 분배 돼 있으니 억울할 게 없는 거 아니냐는 이야기를 할 수 있다. 위험을 이야기할 때, 사회전체평균을 이야기하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발상이다. 잠시 <환경문제전문가회의>의 한 보고서를 살펴보자.

모유에 베타-헥사클로로사이클로헥산, 헥사클로로벤젠, DDT가 상당한 정도로 농축되어 있는 경우가 종종 발견된다.(1985, 33).

이러한 유독물질들은 살충제와 제초제에 함유되어 있다. 그러나 이 보고서에는 그 물질들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밝히지 않고 있다. 다른 부분에서는 "납에 노출되는 것은 평균적으로 위험하지 않다"고 쓰고 있다(35). 이 진술이 숨겨 포함하는 것을 비유를 들어 설명하자면 이렇다.

납은 다음과 같이 배분된 것이다. 두 사람이 2개의 사과를 가지고 있다. 한 사람이 2개를 다 먹는다. 따라서 두 사람은 평균 1개의 사과를 먹은 셈이 된다. '평균상으로는' 세계의 모든 사람이 식량을 충분히 섭취하고 있다라고 진술할 수 있겠지만, 이것은 명백한 냉소주의다. 지구의 한 곳에서 사람들이 굶어 죽을 때, 다른 곳에서는 과식의 결과가 발생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재난 역시 평균을 매기는 것은 절대적 냉소주의다. 대한민국의 한 곳에서 사람들이 죽어갈 때 한 곳에서는 평화롭기 그지없는 일상이 지속되는 것이다.

세월호 사건이 발생한 지 일 년도 되지 않았는데 벌써 피로감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세월호 자체의 기술적 결함이나 지켜지지 못한 안전규정이 밝혀졌으니 이제 끝난 거 아니냐고 묻는 사람들은, 그 피로감에서 빨리 탈출하고 싶은 마음에 그럴 것이다.

문제는 세월호 사건이 애초에 단순한 사건이었더라면 이렇게 한국사회를 뒤흔들어 놓지도 않았을 거다. 보다 근본적인 '사회적 시스템'의 문제를 이야기해야 되고, 그러기위해 상당한 시간이 투입되어야 한다. 이렇게 되면 피로감으로 인한 공감능력의 상실로 위험을 더 크게 당면하는 계급과 위험에 노출되지 않는 계급으로 나누어진다.

울리히 백은 이것을 위험사회에서 새로 발생하는 '신계급주의'라고 보는데, 사회적 체계에서 재난을 겪지 않은 집단과 재난을 겪기 쉽거나 재난을 겪었던 집단에서 서로 투입되어야 하는 비용을 달리 보게 된다.

즉, 사회적 위험집단들이 갈라진다. 이렇다보니 이 위험은 체계적이고 되돌릴 수 없는 해를 끼치지만, 일반적으로 눈에 보이지 않으며 인과적 해석에 기초를 두어야 하기 때문에 판단하거나 관찰하는 입장에서만 존재한다.

이렇게 되면 의외로 해석에 따라 지식의 견지에서 사건이 변화될 수 있고, 혹은 과장되거나 각색되거나 축소될 수 있다. 그만큼 이 위험은 사회적으로 정의되고 구성될 소지를 특히 많이 지니게 된다. 그러면서 사건의 본질은 이미 멀어지게 되고 동의된 재해만이 도마 위에 오르게 된다. 이미 재난에 대한 대책을 세웠다고 생각할 때는 방향이 많이 틀어진 상태가 될 수 있다. 그것은 때에 따라 위험을 배증시킨다.

결국, 잘못된 분석이 암묵적으로 위험의 증가를 허용하는 것이다. 세월호가 그렇게 되지 않을 거라는 단정은 힘들다. 재난재해는 구성에서부터 그 분석을 위험계급에 따라 달리하기 때문이다. 왜곡되거나 축소된 사건을 가지고 대책을 세웠을 때는 이미 늦었다. 모든 사회가 그 원인을 되돌아가서 분석하기에는 너무 많은 비용이 투입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위험사회에선 '우연히' 혹은 '큰 부나 권력의 습득'으로 재난을 피할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진 집단이 승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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