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라디오스타>가 공개한 고 유재하의 생전 모습.

MBC <라디오스타>가 공개한 고 유재하의 생전 모습. ⓒ MBC


2009년 방영된 MBC <라디오스타> 김현식 추모특집은 분명 '레전드'였다. 봄여름가을겨울의 김종진과 전태관 그리고 이승철이 출연해, 그간 8090 '추억팔이' 예능과는 격이 다른 품격으로 인정받은 바 있다. 비교적 추모방송이 잦았던 지난 1월 김광석 편의 경우, 역시나 '광석이형' 팬들의 심금을 울리며 호평을 이끌어 내기도 했었다.

그리고 다시 '유재하'가 찾아왔다. 11월의 첫날이면 어김없이 그리워지는 그 이름 말이다. 유재하는 김현식, 김광석에 이어 <라디오스타>가 마땅히 소환해야 했을 아티스트인만큼 늦은 감도 없지 않았다. 김현식과 김광석 편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내세우는 '고품격 음악방송'의 취지에 부합하는 반향을 일으켰다는 점을 상기해보면 더더욱.

반복이거나 업그레이드거나, 29일 방송된 '유재하이기 때문에' 편 역시 그간 <라디오스타>가 잘 해왔던 것이 무엇인지를 되새겨 줬다. 동시대 친구였던 김광민과 장기호가 그 시절 추억을 회고하고, '유재하 가요제' 출신 후배들인 조규찬, 박원이 그에 대한 나름의 존경을 표현하기, 그리고 조규찬이 부르는 '우울한 편지'와 김광민이 유재하를 위해 작곡하고 연주한 '지구에서 온 편지'는 더없이 특별했다.

그 사이사이 음악에 대한 전문적인 용어가 튀어나와도 '라스'식으로 웃음을 유발하는 동시에 "'그대 내품에'가 19금 가사 같다"는 박원의 돌발 발언을 이끌어 낼 줄 아는 특유의 분위기는 확실히 '이래서 <라디오스타> 구나'를 확인시켜주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또 한 명의 가슴 아픈 음악인을 추모했다. 맞다. '마왕' 신해철 말이다.

<라디오스타>가 신해철을 추모하는 방식

 29일 방송된 MBC <라디오스타> 화면.

29일 방송된 MBC <라디오스타> 화면. ⓒ MBC


"그리고 우리 곁을 떠난 또 한 사람 편안히 잠드시길. 당신이 있어 행복했습니다."

프로그램 말미, 제작진은 자막과 함께 신해철의 '일상으로의 초대' 뮤직비디오를 통해 그의 죽음을 함께 애도했다. 유재하 특집이 방송되던 수요일까지, 급작스레 떠난 '마왕' 신해철의 장례식은 계속되는 중이었다. 그렇게, 시청자들은 다시 한 번 신해철의 죽음을 절감해야 했다.

한편으로 호평을 받아 온 <라디오스타>의 추모 특집들은 우리네 장례식장의 풍경과 닮아 있을지도 모른다. 고인을 추억하며 때로는 슬픔과 감상에 젖고, 때때로 왁자지껄하게 웃기도 하는 장례식장 말이다. 사실 영정으로 남은 고인을 떠나보내며 살아남은 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있겠는가. 기꺼이 그를 기억하고 아파하며, 진심으로 망자의 명복을 빌어주는 길 밖에.

김광민의 입을 빌려 유재하가 진심으로 사랑했던 이의 존재를 알게 되고, 장기호의 입을 빌려 그가 김현식 밴드 오디션장에 처음 나타났던 순간을 공유하는 기쁨을 25년 만에 맛보게 해주는 것이야말로, 방송 프로그램이 팬들에게 선사할 수 있는 최고의 선물 아니겠는가. 거기에 감상과 웃음을 적절히 배합하는 <라디오스타> 특유의 분위기는 '정색'과 '진중함'과 점점 멀어지는 시대성을 반영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이에 발맞춰 <라디오스타>는 자타공인 '라디오스타'였던 신해철의 평안을 기원하며 유재하 편의 화룡점정을 찍었다. 그리고 시청자들은 언젠가 <라디오스타>에서 '신해철 특집'을 보게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을 것이다. 비록, 아직까지 '마왕'을 심정적으로 떠나보내지 못한 이들이 다수이겠지만.

그래서인지, <라디오스타>가 보여준 위대한 음악인들의 추모는 충분히 값져 보인다. 누구를, 어떻게, 누가 회고할 것이냐에 있어서만큼 이보다 더 빛난 예능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중문화계를 넘어 대다수 국민들이 신해철을 떠나보내는 중인 지금, <라디오스타>라서 다행이었다. 지난 9월, 신해철이 출연했던 방영분을 다시 찾아 봐야할 것 같다.

라디오스타 유재하 김현식 신해철 라스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3,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