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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봄, 우리는 세월호 사건을 통해 한 사회의 문화가 생명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음을 보았습니다. 무고한 생명을 죽음에 이르게 한 원인을 우리는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요. '새들마을학교'는 배우고 가르치는 일, 즉 교육이 이 사회의 문화를 낳았다고 생각합니다. 교육과 배움으로 바른 문화를 만들기 원하는 이들이 모여 '생명을 살리는 교육'을 고민하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열린도시연구소 새 들'과 산하 '새들마을학교'는 '생명의 교육, 길을 찾아서'라는 주제로 '고뇌와 축제로 펼치는 교육문화연구학교'를 10월 9일부터 12월 25일까지 12회 진행합니다. 이를 계속 연재합니다-  기자말

현실 인식에 따른 교육의 목적

서태지 9집 <크리스말로윈> 뮤직비디오는 어린 소녀와 마을 주민들이 그들의 행복한 일상을 위협하는 존재들을 향해 맞서 싸우러 나가는 장면으로 끝이 난다. 서태지는 자신의 딸에게 세상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세상에는 거친 면도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자 했다. 사랑하는 딸에게 아름다운 이야기를 어찌 들려주고 싶지 않을까만은, 아름답다는 것이 거친 세상의 진실을 외면하는 것이 아님을 서태지는 <크리스말로윈>을 통해 드러낸다. 

서태지 9집 중 '크리스말로윈' 뮤직비디오 영상 캡쳐
▲ 삶을 지키러 싸움에 나선 마을사람들 서태지 9집 중 '크리스말로윈' 뮤직비디오 영상 캡쳐
ⓒ 최봉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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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마을학교가 진행하는 '고뇌와 축제로 펼쳐 가는 교육문화연구학교'는 교육의 목적이 '충의 만남의 교육'이라는 화두로 포문을 열었다. 그리고 학교 교육이 '그 순간 행복한 것'만을 향해 있어서는 곤란하다 지적했다. 세상은 함께 살아가는 전체 구성원들의 일상을 위협하는 일이 항존하기 때문이다. 교육은 본질을 직면하는 충의 만남을 인도하고 돕고 번성시키는 교육이 되어야 하며, 이렇게 만난 충의 만남들이 연대해 전체의 안위를 위협하는 것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인도하고 돕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 짚었다. (관련 기사 : 한글창제와 명량대첩, 모두 '충' 덕분? http://omn.kr/ajpa)

그리고 지난 24일 4번째 만남에서 함께 살펴본 '우리 교육의 발자취'(발제안 보기)에서는 바로 이러한 현실 인식을 구체적인 우리 역사를 통해 확인했다. 우리 역사는 안주∙사대∙경쟁 세력과 안위∙주체∙통일지향 세력이 대립해 왔다. 전자는 공동체 안위를 위협하는 현실을 외면하고 안주하면서 내부적으로는 사대주의에 근거해 상대를 적대시하고 분열을 조장했고, 후자는 전체 공동체의 안위를 위협하는 사태를 직시하며 공동체 전체를 지켜내기 위해 주체성을 가지고 철저히 대비할 것으로 주장하며 내적으로 하나가 되려 했다. 그리고 위협이 존재하는 현실 인식을 외면했을 때 나라는 위기에 처하곤 했다.

발제 후 나눔 시간은 바로 이러한 역사와 현실에서 우리 교육의 목표는 어디쯤 있어 왔는지를 짚어 보는 계기였다. 우리 교육의 발자취는 공동체 외적 위협에 대해서는 안주하면서 내부 경쟁에 매몰되게 하거나, 비록 미세한 물줄기였지만 공동체 외적 위협을 생생히 직시하고 그것에 대비하여 시간과 지역을 뛰어넘어 하나 될 것을 가르치는 교육이 팽팽히 맞서 왔다. 지금도 혼돈되어 있는 두 방향성 속에서 앞으로의 우리 교육은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를 분명히 결정하고 나아가야 함을 헤아려 볼 수 있었다.

'우리 교육의 발자취' 발제를 듣고 나누고 있는 참석자들
▲ 모둠별 나눔 시간 '우리 교육의 발자취' 발제를 듣고 나누고 있는 참석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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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를 지킨 교육, 나라를 잃은 교육 

우리는 교육이 나라를 커다란 위협에서 거듭 구했던 훌륭한 역사가 있다. 고조선, 고구려, 신라로 이어지는 교육 전통에는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를 대비해 평상시 무를 겸비하고 거기에 지성과 덕성 교육이 함께 어우러져 있었다. 이 정신과 역량이 있었기에 고구려는 70년이나 이어진 중국 수당과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고구려는 밖으로 위협 세력에 대비하며 안으로 하나 되는 교육에 힘썼고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에서 번번이 다윗의 승리를 낳는 쾌거를 기록했다. 

신라는 삼국 중 가장 작은 나라였고 당나라의 힘을 빌려 삼국을 통일했지만, 한반도 전체를 집어삼키려는 당나라의 야욕을 막아냈다. 이는 삼국의 역사적 정황과 당나라 주변 정세도 영향이 있었지만, 신라 내적으로 그 역량을 감당할 자질이 준비되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 중심에 고구려의 선배제도를 계승한 화랑도가 있었다. 뿐만 아니라 삼국 유민들이 신라와 힘을 합쳐 당나라에 맞섰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삼국은 결정적인 순간에 아(我)와 비아(非我)를 분별했으며 평상시 강인한 능력을 겸비함을 통해 힘을 합해 외부의 위협 세력을 물리쳤다. 고조선부터 이어져 내려오던 이 선배의 교육 정신은 삼국 전체에 공히 자리잡았던 교육 문화였다. (관련 기사 : 사대주의 버리고 선배와 함께)

그러나 나라를 위기에서 지켜내고 안으로 하나로 통일되는 교육이 주류 교육에서 밀려나기 시작한 시점은 안타깝게도 한반도 역사에 있어 고조선 이후 최초 통일국가를 이뤘던 고려에서였다. 마침내 통일을 이뤄낸 한민족은 그것이 세상 다였다고 생각해서일까. 이제 이대로 천년만년 갈 거라 생각해서일까. 한반도 땅에서 가장 큰 나라를 누리게 된 고려 권문세가들은 자신이 앉은 자리가 세상 권세를 다 쥔 자리처럼 여겨졌던 것인지 모르겠다. 안일함이 빚은 비극일까. 아니 그 안일함에서 맞본 권력욕을 아직도 못 버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라의 통치를 책임 맡은 이들은 나라 내부에서 자기 자리를 유지하는 데 급급하며 외세의 침략 야욕에 무감했다. 군신관계를 요구해 오는 금나라에 대해 정벌을 외쳤던 묘청의 난은 사대주의자 김부식 일파에 의해 저지되었고 그때부터 한국 역사의 주류 권력은 사대주의자의 손으로 아직도 회귀하고 있다. 그때부터 나라의 주류 교육은 나라를 지키고 안으로 하나 되는 교육에서 변질되어 외부적으로는 공동체를 위협하는 요소에 안일하고 내부적으로 우리끼리 경쟁하고 죽고 죽이는 공부를 조장하는 교육으로 굳어져 갔다.

하지만 고려에서의 이 중요한 역사적, 교육사적 전환은 고려를 세운 왕건의 간곡한 당부를 정면으로 외면한 걸음이요 결과였다. 후삼국 전체를 아우르는 덕망과 탁월한 정치 전략으로 통일 국가를 일구어 낸 왕건은 결코 권세와 물질에 안주하지 않았다. 그는 훈요10조를 통해 "이웃에 강폭한 나라가 있으면 편안한 때에도 위급을 잊어서는 안 되며 . . 국가를 가진 자는 항상 무사한 때를 경계할 것"이며, "무일(無逸)(방심하지 말라)를 써서 붙이고 출입할 때마다 보고 살펴라"고 후사들에게 당부했다. 왕건 이후 고려의 주요 권력가들은 정확히 이 왕건의 당부와 정반대의 걸음을 걸었다. 나라를 외세로부터 지켜낼 무인을 종 취급하며 멸시함으로써 하나로 힘을 뭉쳐 외세의 침입을 막아 내야 하는 내적 힘을 분열시켰다. 외세의 위협에 무감한 채 병기를 농기구로 전환해 버렸다. 또한 유학을 국가 이념으로 삼고 그 기준으로 관리를 뽑기 위한 교육이 주가 되었으며 그 교육은 나라가 결국 몽골의 지배 아래로 떨어지게 되는 것을 막지 못했다.

더욱 아이러니한 것은 이성계가 왜적의 침입으로부터 나라를 구한 공으로 백성들로부터 명망을 얻었음에도 그는 외세로부터 나라를 지키는 일을 거부하고 사대했다. 함께 나라를 지키는 데 앞장섰던 최영 장군을 배반했으며 유학을 공부하며 나라를 걱정했던 벗들을 죽이고 유교의 나라를 건설하며 대국을 섬기는 소국으로 자임한 것이다. 이후 조선의 권세가들은 유교 성리학을 중심으로 이념 싸움을 벌였고, 학문을 핑계로 자리다툼을 벌였다. 백성의 삶은 피폐해져 가고 마침내 두 번의 전란으로 크나큰 고통을 겪어야 했지만 그럼에도 사대부들은 내부 분열과 싸움에서 헤어나오지를 못했다. 조선의 주류 교육이 전체 공동체의 삶을 위태롭게 하거나 위태로워지는 현실을 구하지 못했다.

우리는 나라의 주류 교육이 내부적으로 우리끼리 물고뜯으면서도 외부의 위협에는 무대책인 경향성을 지금까지도 목도하고 있다. 안전이 문제시될 때 나라의 권력을 잡은 이들은 언제나 '괜찮다, 별 문제 없다'라는 말뿐이다. 그러다 문제가 생기면 철저히 외면하고 고통받는 자를 오히려 더욱 짓밟는다. 이렇듯 함께 공부하는 이들이 경쟁의 적일 수밖에 없는 현실은 본래부터 있어 왔던 영구적인 우리의 특성이 아니라 우리나라 역사상 어느 시점에서 새롭게 노정된 경향성임을 기억해야겠다.

변질된 교육사에서 흐르는 맑은 물

그러한 교육의 전환에도 불구하고 한국사 초기에 형성되었던 맑은 물을 흘려보내려는 교육은 때로는 맹렬하게 때로는 처연하게 그 숨결을 이어 왔다. 피와 배반의 역사로 시작된 조선, 능력이 억압과 동반되는 본(태조-태종-세조)을 보였던 조선 초기 역사를 만회라도 하듯, 세종대왕은 상처받고 외면당한 백성들의 얼을 세워 주기 위해 문자를 창제했다.

백성을 위해 아무런 유익을 주지 못하는 성리학을 붙들고 글자 하나로 죽이고 대결하던 성리학자들과 사대부들은 두 번의 전란으로 파괴된 백성의 삶을 구조해 주지 못했다. 하지만 바로 그 환란과 전란의 고통을 온몸으로 겪으며 자라난 실학자들은 백성들의 삶을 소생시키기 위해 생을 바쳐 헌신하며 실제 삶과 연결된 공부의 중요성을 몸소 보여 주었다.

마침내 일제에 나라가 빼앗기자 이 땅 백성의 현실에 가슴 아파하며 생을 바쳐 나라를 구하고자 했던 독립운동가들은 우리의 자랑스런 전통이 살아 있는 고대 역사를 복원하려 했다. 정신을 올바로 고양하고 문무를 겸비하여 홍익인간의 정신을 이어받아 자긍심을 가지고 일제로부터 우리 스스로 자유를 쟁취하고자 했다.

서슬퍼런 독재 시대를 뚫고 참교육을 외치며 정의가 살아 있음을 보여주고자 민주교육추진전국교사회의회(전국교직원노동조합의 전신)이 일어났으며, 정치에서의 정의 구현을 위해 노력했던 흐름은 교육과 일상의 삶으로 파고들어 마을과 삶이 총체적으로 어우러질 수 있는 교육을 실현하는 대안교육의 노력으로 확산되었다. 

현재 우리 주류 교육의 본질인 경쟁 교육은 우리끼리 경쟁하며 관계가 파괴되는 동안 국가적으로 반드시 커다란 위협에 노출되게 할 것이다. 우리의 주류 교육 어디에서도 현재 우리가 어떻게 삶과 생존의 위협 앞에 있는지를 가르치고 있지 않다. 에너지 위기, 식량 위기, 관계 파괴, 자아의 존엄성 상실, 무분별한 폭력과 성적 문화로 인한 정신의 파괴, 안전 불감증에 의한 일상적 위기, 밖에서 들어오는 전염병 등에 대해서 어떠한 대대적인 위기 관리도 찾아볼 수 없다. 다만 국가가 적을 향해서나 할 법한데도 국민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한다는 뉴스만 자꾸만 들려올 뿐이다. 전쟁이 일어났을 때 우리 자신을 지키기 위한 작전 통제권은 미국이 싫다고 하는데도 가져 달라고 애원하며 대신 무기들을 구입하면서까지 미국 의회를 설득하고 달래기까지 한다.

현재 우리 정부가 하고 있는 위기 관리는 북한에 대한 경계, 그리고 자국 국민들에 대한 경계. 그 두 가지 외에 찾아보기 어렵다. 이것을 우리는 내부적인 분열과 자기 파괴라고 하는 것이다. 이렇게 스스로를 소외시키는 정책은 반드시 국가적 큰 위기에 봉착하고 말 것이다. 그 고통은 또다시 이 땅의 구성원들이 고스란히 다 짊어져야 한다. 이러한 정황에서 교육은 어떤 내용을 담아야 하는 것일까.

2014년 여름들살이로 찾은 고려 이색,이곡 선생의 문원서원 시우에서
▲ 생명의 교육, 길을 찾아서 2014년 여름들살이로 찾은 고려 이색,이곡 선생의 문원서원 시우에서
ⓒ 최봉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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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교육의 상류, 홍익인간 정신

이 모든 한국사의 질곡과 교육의 변질에도 불구하고 한반도 역사의 시작이 '홍익인간'의 이념에 바탕한 것이었다는 사실은 참으로 감동적인 일이다. 광복 후 나라를 새롭게 건설해야 하는 시점에도 바로 이 홍익인간 이념을 우리의 교육 이념으로 천명했다.

"홍익인간은 우리나라 건국이념이긴 하나 결코 편협하고 고루한 민족주의 이념의 표현이 아닌 인류 공영의 뜻으로 민주주의 기본 정신과 완전히 부합되는 이념이다. 홍익인간은 우리 민족정신의 정수이며 일면 기독교의 박애정신, 유교의 인, 그리고 불교의 자비심과도 상통되는 전 인류의 이상이다." (문교부, 1949년)

항존하는 위협과 분열이 근원적으로 극복된 세상, 즉, 널리 인간이 이롭게 되는 세상을 지향했다는 것은 끊임없이 불안과 소외로 삶의 안위를 위협하는 이 현실에 큰 희망과 위로가 아닐 수 없다.

새들마을학교는 언제나 "너에게도 좋은 것과 나에게도 좋은 것이 대립하지 않으며 그 결론에 이르는 것을 포기하지 말아야 하며 그 과정에서 우정과 신뢰가 쌓여야 한다"고 늘 가르친다. 어떤 가르침도 '널리 세상을 이롭게 한다'는 홍익인간의 정신 그 손바닥 안이 아닌가. 우리가 그 힘으로 결국 연대하고 구현하는 삶으로 교육한다면, 우리의 일상의 삶을 위협하는 많은 도전들로부터 우리의 삶을 지켜낼 수 있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새들마을학교 홈페이지(club.cyworld.com/saedeulmaeul)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교육, #새들마을학교, #교육문화연구학교, #홍익인간, #서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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