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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섭(61ㆍ소원면 파도리)씨.
 이경섭(61ㆍ소원면 파도리)씨.
ⓒ 이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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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 4년차. 귀어를 목표로 내려온 태안군 소원면 파도리. 아침이면 어김없이 귓가를 넘실거리는 파도소리에 아예 이곳을 노년의 정착지로 결심했다는 이경섭(61ㆍ소원면 파도리ㆍ사진)씨를 지난 18일 소원면소재지 한 촌스런 다방 한구탱이(구석의 충청도 방언)에서 만났다. 눈빛 선한 인상의 이씨는 원래 경남 하동이 고향인 경상도 남자다.

일찍이 보일러 기술을 익히면서 수원으로 상경한 이씨는 가끔 낚시를 위해 찾던 태안에 어느 순간 마음을 뺏겼단다.

"귀촌은 오래전부터 꿈꿔온 일이었지만 강원도 횡성쪽으로 계획중이였죠. 하지만 언제부턴가 이곳(소원면 파도리)이 눈에 선하더라고요."

2010년께 장모님을 모시고 아내와 함께 파도리에 터를 잡게 됐다는 경섭씨.

처음에는 어업 일을 배우며 표고버섯, 고구마, 감자, 배추, 고추, 마늘 등 농산물을 닥치는 대로 심어 경작했지만 인심 좋은 동네주민들 덕에 지금은 마늘농사만 조금 지을 뿐 여타 다른 작물들은 세 가족 먹을 만큼은 들어온단다.

그 이면에는 이씨의 탄탄한 보일러 설비 실력과 산나물 채취와 낚시로 하루도 쉬지 않고 마을 일을 찾아다니는 부지런함이 있었다.

"태안군에 귀농한 분들에게 제 애칭이 '아치내 파도소리'인데요. 아치내는 제가 사는 마을의 이름을 딴 거고요. 파도소리는 제가 이 마을에서 가장 좋아하는 단어예요."

청초한 잎사귀가 아침안개의 까마득함을 욕할 리 만무하다. 그저 그 순간을 다스리며 열심히 시간을 보내는 법을 배우고 익힐 뿐이다. 육십 줄에 들어서고 보니 그간 해왔던 일들의 잔상이 그저 고맙고 또 고맙기만 하다.

"파도리 내 280가구 중 저희 집 인근에만 25가정 정도 사는데 그 중 제 손을 안 거쳐 간 집이 없을 정도예요. 보일러 냉온수기 켜는 법과 텔레비전 버튼 작동법 등 젊은 세대들이 보기엔 단순한 것도 어르신들에게는 때론 어려운 숙제죠."

자신보다 나이 어린 사람은 찾기 어려운 시골의 녹록치 않은 현실에서 이씨는 온 맘과 뜻을 다해 어르신들을 모시고 있다. 그리고 또 이씨가 매달 태안에 귀농한 사람들과 팀을 이뤄 하고 있는 것이 바로 봉사활동이다.

보일러 수리부터 지붕개량, 잡풀 제거, 집안 청소까지 태안에 살기로 마음먹은 사람들이 모여 이씨와 함께 태안사랑을 몸소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동네사람들이 묏자리까지 준다고 하는데 제가 가긴 어딜 갑니까? 하하하. 조금 손해 본다는 심정으로 베풀고 살아야 시골생활도 좀 더 넉넉해지고 편해집니다."

계절이 바뀌는 시간의 절정을 몸소 헤아릴 수 있고 바람의 깊이와 파도소리의 기분을 시시때때 소통할 수 있는 이곳이 이씨는 지상낙원이자 천국이라고 표현한다.

어디 낯선 곳에서의 삶이 처음부터 평탄했겠는가. 그저 그들과 호흡하며 진짜 파도리 주민이 되려고 노력했던 그의 결실이 이제부터 차츰차츰 눈에 차들어 가는 중이란 표현이 더 맞겠다.

"태안으로 내려오면서 치매를 앓고 있는 장모님을 모시게 된 것도 어찌 보면 저희 부부의 복이죠. 장모님도 이곳생활을 좋아하세요."

10여년 전 친 남동생에게 신장을 이식해 준 뒤 건강이 매일 신경 쓰인다는 이씨. 아내 박영미(57)씨와 85세 장모님과의 행복한 동거가 부디 지금 이씨의 웃음처럼 넉넉하고 즐겁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태안미래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태안군, #귀농, #귀어, #파도리, #봉사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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