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동열 KIA 타이거즈 감독이 지난 25일 전격 사퇴했다. 지난 19일 2년 재계약을 발표한 지 불과 일주일 만이다.

프로야구 사상 재계약한 감독이 곧바로 사퇴를 한 일은 사상 처음이다. 그 결정적인 배경이 건강이나 일신상의 사유가 아닌 '여론' 때문이라는 데 주목할 만하다. 실제로 재계약 발표 직후 선동열 감독과 KIA 구단에 대한 비판 여론은 상상을 초월했다. 선 감독이 직접 나서 사령탑으로서는 다소 굴욕적인 '반성문'까지 써가며 성난 민심을 달래려고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선동열 감독은 고향 팀이자 선수 시절 영광의 무대이기도 했던 타이거즈의 홈팬들에게도 철저히 외면받는 신세가 됐다.

[비상] 스타 선수에서 스타 감독으로 거듭나다

"올해는 꼭" 지난 4월 1일 오후 광주의 새 야구장인 광주-기아 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광주 홈경기 개막식에서 이삼웅 KIA 타이거즈 사장이 선동열 감독에게 꽃다발을 전달하고 있다.

지난 4월 1일 오후 광주의 새 야구장인 광주-기아 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광주 홈경기 개막식에서 이삼웅 KIA 타이거즈 사장이 선동열 감독에게 꽃다발을 전달하고 있다. ⓒ 연합뉴스


선동열 감독의 몰락 과정은, 여러 면에서 홍명보 전 월드컵 축구 대표팀 감독과 '평행 이론'을 떠올리게 한다. 종목은 다르지만 두 사람은 각각 한국 스포츠에서 한 획을 그은 기념비적 존재였다. 선동열은 현역 시절 11시즌 통산 평균 자책점 1.20이라는 불멸의 기록을 남기며 '무등산 폭격기' '국보급 투수'로 불린 슈퍼스타였다. 홍명보는 사상 최초의 월드컵 4회 연속 본선 진출과 2002 한일월드컵 4강, 브론즈슈 수상 등을 통해 아시아를 대표하는 월드 클래스 급 수비수로 명성을 떨친 '영원한 리베로'였다.

현역 은퇴 후 지도자로서 곧장 승승장구하는 과정도 닮은꼴이다. 선동열은 은사 김응용 감독의 후임으로 삼성의 지휘봉을 잡고 1군 감독 데뷔와 동시에 2005년과 2006년 2회 연속 통합 우승을 거머쥐었다.

이는 훗날 후임자인 류중일 감독에게 깨지기 전까지 한국 프로 야구 사상 최초의 기록이었다. 선동열 감독은 역대 삼성 사령탑 중 최장수로 6년간 지휘봉을 잡으며 한국 시리즈 우승 2회, 준우승 1회를 차지했고 2009년을 제외하면 매년 팀을 포스트시즌에 진출시켰다. 삼성에서의 통산 성적은 417승 13무 340패로 승률 0.551에 이르렀다.

홍명보는 A 대표팀 코치를 거쳐 2009년 U-20 대표팀 사령탑에 선임되며 처음 감독직에 올랐다. U-20 월드컵 8강,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3위를 거쳐 2012 런던올림픽 본선에서 한국 축구 사상 첫 동메달의 영광을 안기며 지도자로 화려하게 비상했다.

기세를 몰아 2013년에는 브라질 월드컵 A 대표팀 감독 자리까지 올랐다. 선동열과 홍명보, 두 감독은 초창기 스타 출신 지도자의 성공적인 롤모델로 꼽히기도 했다. 당대 최고의 스타 출신다운 명성과 자존심. 이들의 범접하기 어려운 냉철한 카리스마는 두 지도자를 상징하는 트레이드 마크였다.

[추락] '최악의 역사'를 경신하다

입술 깨문 홍명보 감독 홍명보 축구국가대표팀 감독이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축구회관에서 열린 사퇴 기자회견에서 기자의 질문을 듣고 있다.

홍명보 축구국가대표팀 감독이 지난 7월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축구회관에서 열린 사퇴 기자회견에서 기자의 질문을 듣고 있다. ⓒ 이희훈


2014년은 두 스포츠 영웅에게 나란히 추락의 한 해였다. 누구나 갈망하던 최고의 자리에서 나락으로 떨어지는 과정은 극적이었다.

선동열 감독은 2011년부터 친정팀 KIA의 지휘봉을 잡았다. 타이거즈가 배출한 역대 최고 전설 출신 감독의 귀환에 팬들의 기대도 높았다. 그러나 선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3년 간(2012~2014) KIA는 단 한 번도 포스트시즌 무대를 밟지 못했다. 해태 시절 말기(98~2001) 이후 최초다.

2012년에는 62승 65패 6무(.488)로 5위, 2013년에 51승 74패 3무(.408)로 8위, 마지막 2014년도 54승 74패(승률 .422)로 역시 8위에 머물렀다. 지난 3년 간 통합 성적은 167승 9무 213패(승률 0.439)로 고 김동엽 감독(82년 13경기 5승 8패)을 제외하고 역대 타이거즈 사령탑 중 최악의 성적을 기록했다. 매년 계속되는 주축 선수들의 부상 공백 속에 투수 육성과 외국인 선수 영입 실패, 선수단과의 소통 부재 등이 발목을 잡았다.

홍명보 감독은 2013년 7월부터 월드컵 본선이 열린 2014년 6월까지 약 1년간 총 19차례 A매치에서 5승 4무 10패로 26.3%의 승률을 기록했다. 이는 1960년대 이후 한국의 역대 대표팀 감독을 통틀어 최악의 승률이자 유일한 20%대 이하 승률이기도 하다.

자신이 아끼는 런던 올림픽 팀 출신 멤버들과 일부 유럽파에 대한 편애로 '엔트으리' '의리사커'라는 조롱을 들었던 홍명보 호는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1무 2패라는 초라한 성적으로 조별 리그에서 탈락했다.

이는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이후 16년 만에 가장 저조한 성적이기도 했다. 계속되는 성적 부진으로 홍명보 감독의 재임 기간 내내 한국 축구의 피파 랭킹은 60위권까지 추락하며 역대 최저 기록을 잇달아 경신하는 등 국제적인 위상 하락을 감수해야 했다.

[결말] '의리' vs '임의 탈퇴'... 온갖 구설수 시달려

두 사람의 추락은 본 게임이 아닌 장외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선동열 감독은 지난 3년 간의 성적 부진에도 지난 19일 KIA로부터 2년 재계약을 보장받으며 논란을 일으켰다.

홍명보 감독 또한 월드컵 조별 리그에서 탈락하고 귀국한 이후 축구협회로부터 아시안컵까지 재신임을 보장받았다. 이는 KIA를 포스트시즌으로 이끌고도 경질된 조범현 감독,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당시 현장에서 해임된 차범근 감독 등 전임자들과 비교해 형평성에 어긋난 특혜였다. 이 빗나간 '의리'는 곧 여론의 반발을 불러왔다.

치명타가 된 것은 두 사람의 부적절한 언행을 둘러싼 구설수였다. 선동열 감독은 재계약이 확정되고 얼마 되지 않아 군 입대가 예정된 2루수 안치홍에게 팀 잔류를 설득하면서 '임의 탈퇴'까지 거론하며 선택을 강요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선동열 감독은 이와 관련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내가 어떻게 안치홍을 협박했겠는가"라면서 "안치홍이 군대를 가겠다는 입장을 바꾸지 않자 구단에서 설득해 달라고 요청했다"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관련 소식을 들은 팬들의 비판 여론이 거세져 선동열 감독은 홍역을 치렀다.

다음 시즌 주축 선수들의 공백으로 전력 누수가 극심해질 팀 사정상 불가피한 상황이기도 했지만, 자신과 팀의 이해관계를 내세워 선수의 희생을 강요한 것은 협박에 가까운 '갑질'이라는 비판을 듣기도 했다. 이는 가뜩이나 싸늘했던 팬들의 여론이 완전히 돌아서는 계기가 됐다.

홍명보 감독은 월드컵 본선을 얼마 남겨 두지 않은 시점에 개인 명의의 부동산을 알아보고 다녔다는 의혹이 제기되며 팬들의 비난을 샀다. 월드컵 탈락이 확정되고 난 후, 현지에서 선수단이 음주 가무 회식과 관광을 즐긴 사실도 알려져 비판 여론은 더욱 악화됐다.

홍 감독은 결국 여론의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사퇴했지만, 마지막 기자 회견 자리에서마저 부동산과 회식 등 논란에 대한 정확한 해명이 없었던 데다가 "국내에서 활약하는 선수들은 B급"으로 지칭하는 폄하성 발언으로 뭇매를 맞았다. 이제껏 한국 축구의 영웅으로 그를 기억해왔던 팬들의 기대와 성원을 하루아침에 웃음거리로 만들어버린 셈이다.

선동열과 홍명보의 닮은꼴 몰락은 최고의 스타 출신이 왜 성공한 지도자가 되기 어려운지를 보여주는 교과서와도 같다. 두 사람 모두 자신의 과거 성공 모델에만 안주하다 변화를 외면했고, 합리적인 소통과 비판에 귀를 닫는 독선적 행보로 고립을 자처한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고비를 만났을 때 눈앞의 작은 이익에만 지나치게 집착하다 지도자로서 가장 중요한 '원칙과 소신'을 간과한 게 더 큰 부메랑이 되어 자신에게 돌아왔다.

이들은 단지 성적 부진을 넘어서 수많은 시행착오와 구설수를 통해 지도자로서 당분간 씻기 어려운 이미지의 타격을 입었다. 이들이 언젠가 다시 지도자로 복귀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팬들이 이들을 다시 받아들이는 데는 당분간 오랜 시간이 걸릴 듯하다. 선수 시절 한국 스포츠를 대표하는 전설로서 두 스타에 대한 화려한 추억을 공유하고 있던 팬들에게도 감독 선동열과 홍명보의 몰락은 인생의 희비를 느끼게 하는 씁쓸한 여운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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