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한 권의 책을 탈고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필요할까? 일단, 물리적 시간이 짧게는 며칠, 몇 달 또는 몇 년이 걸리기도 한다는 얘길 들었다. 길게는 평생에 걸쳐서 쓰고 다듬기를 반복하다가 만년에서야 출판을 한 책도 있다. 괴테가 쓴, <파우스트>가 이 경우라고 한다.

동시대 또는 이전 시대의 어떤 한 인간이 심혈을 기울인 노력의 결정체인 양서들을 저렴한 비용으로, 하루 또는 이틀 길어야 한 달이라는 짧은 시간을 투자해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가치로운 일이다. 지난해 어느 방송에 출연한 도올 김용옥 선생이 독서를 두고 "이런 호사가 세상에 또 어디 있단 말인가"라고 한 말을 기억한다.

그런데 서점에 가보면 너무 많은 분량의 책들이 전시되어 있다. 그리고 하루에만 수백 권의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고 하니 양서를 고르는 일이 쉽지 않다. 그래서 좋은 책을 소개하는 책들이 심심치 않게 출간된다. 2006년 출간된 <장정일의 공부>나, 지난해 목수정의 <월경독서>, 그리고 최근 소개된 한기호의 <마흔 이후, 인생길>같은 책들이 그런 예다. 운동과 보약으로 체질을 바꾸듯 책으로 정신과 마음을 바꿔보자는 거다.

<책은 도끼다> 표지
 <책은 도끼다> 표지
ⓒ 북하우스

관련사진보기

또 한 권의 독법 강의서가 있어 소개한다. 2011년에 초판이 발행되고 잠잠하다가 지난해에 폭발적으로 팔린 책, <책은 도끼다-인문학 강독회- 저자 박웅현, 2011년 10월 초판발행, ㈜북하우스 퍼블리셔스>다. 지난해에 친구의 소개로 읽었으나 까맣게 잊고 지내다가 지난주에 다시 읽게 된 책이다. 다시 읽는 동안, 일년 전에 읽고 나서도 변함없는 나의 책 읽는 습관과 태도를 반성한다.

저자는 서문에서 "(독서를 통해) 예민해진 촉수가 내 생업을 도왔다"고 밝히고 있는데, 그의 본업은 광고회사의 ECD(Executive Creative Director), 즉 창의력을 담당하는 임원이라는 말이다. 좋은 책을 여러 번 읽는 그의 독법에서 수 많은 아이디어를 얻게 됐고, 이는 인간과 삶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얻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책은 도끼다>는 강의하듯 구어를 그대로 옮겨 놓아 읽기 편하다. 저자가 경기 창조학교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2011년 초 네 달 동안 강독회를 진행했는데 그 강의를 책으로 묶었기 때문이다. 강연에 소개된 저자들은 이철수, 최인훈, 이오덕, 김훈, 알랭 드 보통, 고은, 오스카 와일드, 미셀 투르니에, 김화영, 니코스 카잔차키스, 알베르 카뮈, 장 그르니에, 밀란 쿤데라, 톨스토이, 손철주, 오주석, 법정, 프리초프 카프라, 한형조 등이다.

저자 박웅현은 최근 영화 <명량>으로 재조명된 <칼의 노래>의 저자이자, 세월호 진상규명이 되지 않는 현실을 개탄스러워하며 문인들을 이끌고 진도 팽목항을 찾았던 김훈의 글이 깊은 울림을 주고 있다고 말한다. 그의 글이 삶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리라.

글쓰기는 자연현상에 대한 인문적인 말걸기 – 김훈 -

'도다리는 백이숙제와 같다. 굶어죽어도 더러운 먹이를 먹지 않는다.'는 김훈의 에세이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의 한 대목이다. '이 짧은 문장은 많은 걸 담고 있습니다. 도다리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광어를 떠올리게 하죠. 둘은 비슷하게 생겨서 겉모습만 대충 봐서는 분간이 잘 안 가는데요. 옛날엔 광어가 더 비쌌지만 지금은 도다리가 더 비쌉니다. 광어는 양식이 되는데 도다리는 양식이 안되기 때문이지요.'(p.86)

또, 김훈의 여행에세이라고 할 수 있는 <자전거 여행>을 권하면서는 혜안과 통찰이 들어있는 구절들이 페이지마다 가득하다고 전한다. '삶 속에서는 언제나 밥과 사랑이 원한과 치욕보다 먼저다', '그만하면 견딜 만한 가난이다', '밀물의 서해는 우주의 관능으로 가득하다', '서해는 조국의 여성성이다', '낙원은 일상 속에 있든지 아니면 없다'(p.79) 김훈이 자전거를 타고 전국을 돌면서 우리가 차를 타고 쌩쌩 지나다니며 놓치고 있는 것들에서 추출한 시구와도 같은 구절들이다.

고은의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 갈 때/ 못 본 그 꽃'이란 시구가 주는 울림 또한 그런 것이리라. 정상만 바라보고 내 달리다 보면 놓칠 수밖에 없는 소중한 것들, 바로 우리 곁에 있는 것들과 지금 이 순간이라는 사실로 우리를 일깨운다.

사랑은 방향일 뿐 공간이 아니다. – 알랭 드 보통 -

<책은 도끼다>에는 이십 대의 나이에 사랑이라는 감정과 행위를 해박한 인문학적, 예술적 지식으로 철저히 분석한 소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와 그 속편으로 봐도 무방할 <우리는 사랑일까>의 저자 알랭 드 보통도 등장한다.

연인이 만나 사랑하고 어떤 이유로 소원해지다가 헤어지고 또, 누군가를 새로 만나는 과정에서, 철학자와 예술가들이 등장한다. '예술이란 삶을 모방하고자 분투하지만 결국 실패할 뿐이라'는 플라톤의 주장에, 오스카와일드가 '예술이 생활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이 예술을 모방한다'며 반기를 든다.

여기에 '예술이 생활이고 생활이 예술'이라고 하는 중재자, 앤디워홀이 등장한다. '워홀은 소박한 수프 통조림을 가지고 기적 같은 솜씨를 보였다. 예술은 플라톤 적으로 사물을 모방했을 뿐 아니라 와일드 식으로 그것을 고양했다.'(p.113)

저자, 박웅현은 실존주의 철학을 담고 있는 소설, 카뮈의 <이방인>도 소개하고 있는데, 지난 3월, 이정서라는 필명의 번역자가 새로 번역한 <이방인>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지 궁금하다. 번역에 대한 논쟁을 다시 쟁점화 하자는 것은 아니다. 저자 박웅현은 한 권의 책을 여러 번 읽고 그 속에서 '울림'을 발견하는 재주를 가졌기 때문이다.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리나>는 인생의 지도

<안나 카레니나>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과 같은 사랑과 철학, 이데올로기와 역사적 배경으로 직조된 한 번 읽어서는 이해가 쉽지 않을 책들에 대한 저자의 독법 또한 깊이가 있다. 이 책들이 고전의 반열에 든 이유가 단순한 사랑이야기가 아니라 저자 박웅현의 말을 빌자면, '인생의 지도'와 같기 때문이다.

저자는 '책이란 무릇, 우리 안에 있는 꽁꽁 얼어버린 바다를 깨뜨려버리는 도끼가 아니면 안 되는 거야'라는 카프카의 말을 인용하면서 서문을 시작하고 있는데, 여기서 <책은 도끼다>라는 도발적인 책의 제목이 탄생된 것 같다.

독서를 위한 계절의 정점에서, 이 책 저 책을 만지작거리다 다시 만난 <책은 도끼다>를 얼마 남지 않은 올해, 나와 독자들의 독서 길라잡이로 추천할까 한다.


책은 도끼다 (양장 특별판)

박웅현 지음, 북하우스(2011)


태그:#도끼, #책, #인생, #지도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