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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해인가 겨울이었다. '남자'와 '그녀'는 부석사를 다녀오기로 했다. '문득 뒤돌아보면 능선 뒤의 능선 또 능선 뒤의 능선이 펼쳐져 그 의젓한 아름다움을 보고 오면 한 계절은 사람들 속에서 시달릴 힘이 생긴다'(신경숙 「부석사」 <2001년도제25회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 문학사상사 2001, 35면)고 누군가 일러 주었다. 그것만으로도 '남자'와 '그녀'에게는 여행의 충분한 이유가 되었다.

남동으로 내닫던 백두대간은 태백산에 이르러 남서로 허리를 돌리고 지리산을 향한다. 태백과 소백이 나뉘는 사이의 봉황산 중턱에 1300년 동안 영주 부석사는 자리하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의 발길이 닿기 쉽지 않은 국토의 오지를 찾아가는 길은 이미 고해의 산맥을 넘는 일이다.

유홍준 선생은 남한의 5대 명찰(名刹)을 논하면서, '몇날 며칠을 두고 비만 내리는 지루한  장마 끝에 홀연히 먹구름이 가시면서 밝은 햇살이 쨍쨍 내리쬐는 듯한 절'이라고 부석사의정경을 그렸다. (유홍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2>, 창비 2011, 88면) 정말 밝은 햇살이 쨍쨍 내리쬐는 가을날이었다. 순흥 들판의 살 오른벼 이삭은 잇닿아 누런 물결을 이루고, 비탈밭의 빨간 능금들은 힘겨운 가지 위에서 막바지 가을햇살을 받고 있었다.

부석사 비탈길 일주문으로 오르는 길은 곧 쏟아질 것 같은 은행잎이 하나 가득이다.
▲ 부석사 비탈길 일주문으로 오르는 길은 곧 쏟아질 것 같은 은행잎이 하나 가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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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석사 일주문으로 오르는 길은 곧 쏟아질 것 같은 은행잎이 하나 가득이다. 비탈길에서 전해지는 다리의 긴장은 그동안 끌고 온 시간의 무게를 자각하게 한다. 내용을 알지 못하는 수많은 밤과 낮을 짊어지고 어디를 향해 걷고 있었던 것일까. 천왕문 아래 돌계단에 앉아 숨을 돌렸다. 갖가지 모양의 자연석이 잘 짜여진 돌축대가 무질서의 질서를 형상화하고 있다.

부석사 돌축대 갖가지 모양의 자연석이 잘 짜인 돌축대는 무질서의 질서를 형상화하고 있다.
▲ 부석사 돌축대 갖가지 모양의 자연석이 잘 짜인 돌축대는 무질서의 질서를 형상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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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심호흡을 크게 하고 키 높은 돌계단을 올라 천왕문을 지나면, 부석사 경내가 액자처럼 한눈에 들어온다. 이 깊은 산 속에 이렇게 정연하고 장쾌한 곳이 마련되어 있다는 사실이 경탄스럽다. 봉황산의 경사진 산자락에 일정한 각도로 비스듬히 비켜서 있는 건축물들은 수평과 수직의 절묘한 입체감을 온몸으로 느끼게 해준다.

부석사 경내 봉황산의 경사진 산자락에 일정한 각도로 비스듬히 비켜서 있는 건축물들은 수평과 수직의 절묘한 입체감을 온몸으로 느끼게 해준다.
▲ 부석사 경내 봉황산의 경사진 산자락에 일정한 각도로 비스듬히 비켜서 있는 건축물들은 수평과 수직의 절묘한 입체감을 온몸으로 느끼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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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석사는 건축가들이 주저없이 엄지를 치켜세우는 '가장 잘 지은 고건축'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절집이다. 천왕문에서 요사채까지 세 단, 범종루까지 세 단, 안양루까지 세 단의 돌축대로 나뉘어진 가람배치는 극락세계 9품 만다라를 건축물로 구현한 것이다. 좌향으로 틀면서 무량수전으로 오르는 길은 아미타불의 정토에 이르는 길목을 한 계단 한 계단 끌어올리는 고양감을 연출한다.

'일주문에서 무량수전에 이르는 길은 이 세상의 변방을 아득히 우회하는 듯한 공간감의 확장을 느끼게 한다. 서방정토는 굽이굽이 돌아서 찾아가는 곳이라는 느낌을 그 길은 구현하고 있다. … 서방정토는 인간의 현실 속에서 뚜렷하고도 분명하게 존재하지만, 그 낙원에 이르는 길은 아득히 우원(迂遠)하다는 종교적 경건성을 부석사의 길은 공간 안에서 드러내 보이고 있다.' (김훈, <자전거 여행>, 생각의나무2006, 168-169면)

부석사 무량수전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이다.
▲ 부석사 무량수전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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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루 누각밑을 거쳐 마지막 계단을 오르면 오랜 세월 늠름한 기품과 조용한 멋을 간직해 온 무량수전의 품에 안긴다. 무량수전의 기둥은 곡선이 미려한 배흘림 기둥인데, 그 탄력감이 대단해 훤칠한 느낌을 준다.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 서면 내려다 보이는 소백 연봉의 장쾌한 경관이 장관이다.

저 멀리산은 멀어지면서 소백산맥 연봉들이 남쪽으로 치달리는 산세가 일망무제로 펼쳐진다. 이 웅대한 스케일, 소백산맥 전체를 무량수전의 앞마당인 것처럼 끌어안은 것이다. 이것은 현세에서 감지할 수 있는 극락의 장엄인지도 모른다. (유홍준 같은책,99-100면).

부석사 경내에는 신라시대 유물인 무량수전 앞 석등(국보 제17호), 석조여래좌상(보물 제220호), 삼층석탑(보물 제249호), 당간지주(보물 제255호), 고려시대 유물인 무량수전(국보 제18호), 조사당(국보 제19호), 소조여래좌상(국보제45호), 조사당 벽화(국보제46호), 고려각판(보물제735호)이 있다. 한곳 한곳을 밟아가다 보면 의상과 선묘의 사랑 이야기도 만날 수 있다.

안양루에 올라 ‘저 멀리 산은 멀어지면서 소백산맥 연봉들이 남쪽으로 치달리는 산세가 일망무제로 펼쳐진다'
▲ 안양루에 올라 ‘저 멀리 산은 멀어지면서 소백산맥 연봉들이 남쪽으로 치달리는 산세가 일망무제로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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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는 어느새 이울고 있다. 안양루에서 소백산맥 준령들의 능선을 바라보았다. 무한강산이다. 이곳까지 꾸역꾸역 짊어지고 온 무거운 시간의 추가 스르르 풀려 바람에 날려가는 것을 보았다. 가을, 한 계절을 시달린 다리는 이제 또 하나의 계절을 버틸 힘을 얻고 있었다. 사무치게 고마웠다.

소백산 기슭 부석사의 한낮, 스님도 마을사람도 인기척도 끊어진 마당에는 오색 낙엽이 그림처럼 깔려 초겨울 안개비에 촉촉이 젖고 있다. 무량수전, 안양루, 조사당, 응향각들이 마치도 그리움에 지친 듯 해쓱한 얼굴로 나를 반기고, 호젓하고도 스산스러운 희한한 아름다움은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나는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서서 사무치는 고마움으로 이 아름다움의 뜻을 몇번이고 자문자답했다...(최순우,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학고재 1994, 78면)

영주 부석사에 가기 전 읽고 가면 좋은 글

「영주 부석사」 - 유홍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2> 창비 1994, 2011
「고해 속의무한강산」 - 김훈 <자전거 여행> 생각의나무 2000, 2006
「부석사무량수전」 - 최순우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학고재1994
「부석사」 - 신경숙 「부석사」 <2001년 제25회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 문학사상사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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