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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관계가 기로에 서 있다. 이명박 정부 이후 대립을 계속해오던 남북이 대화의 모멘텀을 살려 관계개선으로 나아갈 수 있을지 우리는 물론 국제사회도 주목하고 있다. 지난 4일 황병서 일행의 전격적인 방남이 2차 남북고위급 접촉으로 나아갈지는 상대를 배려하는 남북의 노력과 국제적 지지가 필요하다.

2차 접촉 성사까지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지난 10일 남한 반북단체의 대북 비난 전단 살포로 인해 남북한 총격이 발생했다. 이 사건은 남북관계 개선이 남북한 정부의 의지만으로 되지 않음을 보여준다. 대내적 요인들에 대한 적절한 통제도 필요하다. 주변국들의 견제나 유엔에서의 강도 높은 북한 내 인권문제 제기는 대외 변수로 작용할 것이다.

2014 인천 아시안게임 폐막식 참석차 방남한 북한 김양건 당 통일전선부장 겸 대남담당 비서, 황병서 북한군 총정치국장, 최룡해 노동당 비서가 4일 오전 인천시 남동구 영빈관에서 김관진 국방안보실장,  류길재 통일부 장관 등 우리 측 관계자들과 식사하기 전 대화를 하고 있다.
▲ 오찬하는 남·북 고위대표단 2014 인천 아시안게임 폐막식 참석차 방남한 북한 김양건 당 통일전선부장 겸 대남담당 비서, 황병서 북한군 총정치국장, 최룡해 노동당 비서가 4일 오전 인천시 남동구 영빈관에서 김관진 국방안보실장, 류길재 통일부 장관 등 우리 측 관계자들과 식사하기 전 대화를 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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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외교 경쟁이 인권 문제에 미치는 영향

지난 9월 말, 뉴욕에서 열렸던 제69차 유엔 총회에서 남북한의 외교경쟁이 재연됐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9월 24일 유엔 총회 연설에서 포문을 열었다. 박 대통령은 연설에서 북한인권 상황에 대한 국제사회의 우려를 상기하며 유엔의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 보고서와 북한인권사무소의 한국 설치를 지지하는 발언을 했다. 북한이 흡수통일로 해석할 여지가 있는 독일 통일도 언급했다.

연설 하루 전인 지난 9월 23일 뉴욕에서는 한·미·일 3국 외무장관이 주도한 '북한인권고위급회의'도 열었다. 북한은 참여 의사를 밝혔지만 거부당했다. 박 대통령의 유엔 총회 연설 직후 북한은 조국평화통일위원회, 국방위원회 등 관련 기구와 관영언론을 동원해 박 대통령과 우리 정부를 비난했다.

박 대통령의 연설에 맞서 북한의 리수용 외무상은 9월 27일 총회 연설에서 핵개발을 "평화와 안전의 문제이기 이전에 한 회원국의 생존권과 자주권 문제"라며 "그 무엇과 바꿀 흥정물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국가안보를 인권보다 우위에 두고 핵개발을 인권과 연계시키는 논리였다.

그러나 이는 동시에 변화이기도 하다. 유엔은 미국의 조종 하에 있는 기구라고 애써 폄하해온 북한이 15년 만에 유엔 총회에 외무상을 파견했다. 리 외무상은 "인권문제를 특정한 국가의 제도 전복에 도용하려는 온갖 시도와 행위에 반대한다"라고 주장하면서도 "우리를 적대시하지 않는 나라들과 인권 대화와 협력을 해나갈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북한이 유엔 총회에서 '인권 대화'를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리 외무상의 뉴욕 방문을 앞두고 북한은 인권문제에 대해 많은 준비를 해온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9월 13일 북한은 최초의 인권백서라 할 수 있는 <조선인권연구협회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는 북한의 인권보장제도-인권실태-인권정책-제약요소-인권개선 전망 등의 순서로 구성된 상당한 분량의 보고서다.

비록 대부분 북한의 기존 입장을 재확인하는 수준이지만 여기서 주목할 점이 있다. 리 외무상이 언급한 것처럼 인권 대화 관련 수용 입장과 그 조건에 관한 부분이다. 북한은 2000년대 초 유럽연합과 정치와 인권에 대해 대화를 진행한 전력이 있다. 그러나 2003년부터 유럽연합이 유엔 북한 인권 결의 채택을 주도하자 대화를 중단했다. 북한은 보고서에서 그  전례를 거론하며 다음과 같이 인권 대화에 대한 기본 입장을 밝혔다.

"우리는 인권대화를 반대한 적이 없다... 우리가 반대하는 것은 인권대화를 다른 나라들의 자주권을 유린하고 내정에 간섭하기 위한 도구로, 정권교체를 위한 범죄행위에 '합법'의 외피를 씌우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하는 것이다."

유엔 총회에서 박 대통령의 북한인권 언급 이후 남북 간 상호 비방이 있었다. 그러나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의 최측근 인사 3명이 남한을 전격 방문해 남북관계 개선 의사를 천명했다. 북한의 이런 행보가 무엇을 뜻하는지 진지하게 분석할 필요가 있다. 국제관계에서 인권문제, 특히 적대관계에 있는 당사자들 사이의 인권문제는 실제와 명분, 목적과 도구의 양 측면이 동시에 존재한다.

박 대통령이 유엔에서 북한 인권을 언급한 것도 북한 인권 개선을 촉구하는 실제(목적)의 측면과 향후 남북 대화에서 협상의 우위를 점하려는 명분(도구)의 측면이 동시에 반영돼 있다. 우리의 인권 문제 언급에 북한이 격렬하게 반응하면서도 남북 대화 의지를 표명한 것도 마찬가지다. 이 두 측면을 분리해서 대응하며 남북 대화를 복원하려는 전략이다. 실리 추구에 주력하겠다는 뜻이다. 그러나 남북관계에서 인권문제가 주요 의제로 부상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사실은 큰 문제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9월 24일(현지시간) 유엔본부 총회장에서 유엔총회 일반토의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9월 24일(현지시간) 유엔본부 총회장에서 유엔총회 일반토의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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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인권 대화의 조건과 추진 방향

뉴욕에서 윤병세 외무장관과 리수용 외무상은 각각 인권 대화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이는 남북 관계 발전과 분단 극복을 인권이라는 '보편 가치'의 방향으로 풀겠다는 의향이다. 매우 중요한 의미다. 윤 장관이 "북한이 납북자 문제, 국군포로 및 이산가족 문제 해결을 위해 진지하게 노력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남북 인권 대화의 기본 의제를 언급한 것이다. 적절한 입장이다. 문제는 앞을 예측할 수 없고 신뢰가 턱없이 부족한 남북관계를 감안할 때 남북 인권대화가 언제, 어떻게 가능할 수 있을지 불확실하다는 점이다.

자칫 대화의 모멘텀이 발전하기 전에 대북전단 살포, 유엔에서의 강도 높은 북한 인권 결의, 한미연례안보협의회(SCM)에서 대북 군사협력 강화 발표 등이 이어지면 인권 문제는 또다시 인권이 아니라 정치의 소용돌이에 빠질 수 있다.

한국 정부가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한 정책 비중을 높이고 국제 협력을 확대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시기와 방식이 남아 있지만 국제사회에 공약한 이상 남북은 인권대화에 나설 준비를 할 것이다. 앞으로 남한의 북한 인권 정책은 국제 여론과 남한의 이해가 고루 반영된 의제를 설정해야 한다. 또한 예상되는 의제에 맞춰 적절한 협상 전략을 준비해야 한다.

초기 대화에서 주 의제는 전쟁과 분단으로 파생된 인도적 문제의 해결이다. 체제의 차이에서 비롯된 다소 민감한 정치의 자유, 시민의 권리 문제는 유엔 등 국제기구에서 다뤄야 한다. 남북 간에는 지원과 교류 프로그램을 활성화 하고, 상호 신뢰를 축적해 나가야 한다. 그 과정에서 식량 지원 및 의료 지원 등의 남북협력 프로그램은 실질적 인권 개선과 남북 신뢰구축에 매우 유용할 것이다.

북한 인권의 실질적 개선과 통일 환경 조성을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 이는 남한의 북한 인권 정책이 다른 나라의 인권 정책과 다른 점이다. 그러므로 남북 관계 개선과 북한 인권 개선은 선후의 문제로 접근할 것이 아니라 병행 추진해야 한다.

북한 인권은 보편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남북 관계와 별도로 접근하려는 시도는 이명박 정부의 실험에서 실패로 나타났다. 남한의 위상과 남북 관계를 무시하는 태생적 문제였다. 박근혜 정부의 북한 인권 정책 방향이 이명박 정부를 답습한다면 인권 대화는 불가능하다. 남북 관계와 북한 인권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도록 정책 결정 집단의 신중한 판단이 필요하다. 아울러 정책수단의 합리적 배합이 요구된다. 남북 인권 대화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있다면 그 다음은 그것이 가능한 조건을 조성하는 일이다.

향후 남북 인권 대화를 위해 우리 정부는 다음 네 가지 방향성을 가지고 차분한 준비를 해나가는 한편 북한과 신뢰를 회복해 가야 할 것이다.

▲ 인권 대화는 북한의 인권 개선 역량 강화를 기본 목표로 하고, 보편 가치의 전 한반도 구현을 궁극 목표로 삼아 일관되게 전개해 나간다.

▲ 인권 대화의 의제는 인도적 문제에서 출발해 남북간 상호 합의와 남북관계 발전 정도를 고려해 점진적으로 확대해나간다.

▲ 인권 대화의 방식은 정부간 대화와 함께 민간 채널과 1.5트랙을 병행한다.

▲ 정부는 유엔인권최고대표사무소 및 국가인권위원회와 긴밀히 협력해 인권 대화의 실효를 극대화 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서보혁 박사는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HK연구교수이면서 코리아연구원 연구위원을 겸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코리아연구원 홈페이지(knsi.org)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북한인권, #유엔총회, #조선인권연구협회, #인권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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