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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고 한다. 그래서 나는 내가 발 딛고 사는 서울에 대하여 좀 더 알아보기로 했다. 하지만 도대체 어디서 시작해야 할지 난감했다.

그러던 중 600년 전 서울의 첫 모습, 즉 서울성곽을 먼저 떠올리며 옛 한양도성을 돌기로 했다. 약 18.6Km에 해당되는 서울성곽. 바로 이 길을 걸으며 우리의 역사를 찾고 느껴 보기로 했다. 하지만 성곽 자체가 나에게 역사를 가르쳐 주지는 않을 것이다. 오로지 직접 그 곳을 밟고 지나며 주변에 남겨진 흔적을 통해 마치 퍼즐조각을 맞춰 나가 듯 지난 우리의 역사를 상상하는 것이다.

성곽 길을 통한 역사기행으로 정한 다음 어디서 시작해야 할지 고민했다. 역사기행은 어차피 과거의 흔적을 따라 상상하며 퍼즐 맞추듯 엮어내야 하는 여행이다. 이런 핑계로 도성 사대문 가운데 유일하게 흔적조차 없이 사라진 돈의문을 택했다. 그리고 그곳에 가기 위해 지하철 5호선을 타고 <서대문역>에서 도성순례를 시작하기로 했다.

1. 돈의문 ~ 사직터널 구간

1.1 <서대문역>에서 펼쳐지는 조선 500년, 계유정난과 임오군란

서울적십자병원(좌)은 조선 말 경기감영이 있던 곳으로 동대문에서 시작된 ‘임오군란’의 첫 격전지였다. 그리고 농업박물관과 농협(우) 일대가 계유정란의 신호를 알렸던 김종서 집터로 여기서 김종서가 수양대군에 의해 살해된 곳이다.
 서울적십자병원(좌)은 조선 말 경기감영이 있던 곳으로 동대문에서 시작된 ‘임오군란’의 첫 격전지였다. 그리고 농업박물관과 농협(우) 일대가 계유정란의 신호를 알렸던 김종서 집터로 여기서 김종서가 수양대군에 의해 살해된 곳이다.
ⓒ 유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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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5호선 서대문역 4번 출구로 나오자 좌우로 '조선 500년의 역사'가 마주서 있다. 우측 농업박물관은 조선 초 계유정난(1453)으로 수양대군에게 살해된 우의정 '김종서의 집 터'다. 좌측의 서울적십자병원은 조선 말 봉건지배층과일본제국주의에 대하여 총칼로 저항하며 싸웠던 임오군란(1882)의 현장이다. 바로 이곳이 구식군대가 싸움을 벌이고 무기를 탈취한 '경기감영터'다.

최근 영화 <관상(2013)>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계유정난은 우리에게는 영화나 드라마의 단골 주제이기도 하다. 그것은 수양대군이 조카 단종을 몰아내고 자신이 권좌에 오르고자 일으킨 일종의 역모다.

수양대군의 할아버지인 태종은 조선건국 후 각종 공신으로 가득 찼던 조정을 핏빛 숙청을 통해 정리했다. 그런 조선을 수양대군의 아버지인 세종에게 물려 주었기에 세종은 안정된 왕권으로 북방의 영토를 확장했고, 한글 창제 등 거대한 문화사업을 완성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세종의 둘째 아들 수양대군은 자기 형 문종으로 이어진 왕위가 그의 아들 단종으로 넘어가는 권력을 탐하여 결국 단종의 오른팔이었던 김종서를 바로 이곳에서 살해했다. 이렇게 시작된 계유정난은 수많은 사람을 죽이는 것에 그치지 않고, 단종을 강원도 영월로 유배 보냈으며, 결국 수양대군이 왕권을 찬탈하는 것으로 정리되었다.

태종에 의해 사라졌던 공신들이 수양대군과 함께 계유정난을 일으킴으로써 수양대군의 왕권찬탈과 함께 되살아 났다. 권력 찬탈을 위해 힘썼던 수많은 공신들에게 분배된 것은 권력과 재산뿐만이 아니었다. 김종서, 황보인은 물론이며 사육신의 아내를 공신들의 첩이나 노비로 나누어 주었다. 특히 신숙주는 단종이 서인으로 강등되어 사사되니, 얼마 전까지 자신이 임금으로 모신 단종의 정비 정순왕후 송씨를 자기 첩으로 달라고 주청하기도 했다. 세조도 차마 자기 질부(조카의 아내)를 공신의 첩으로 주는 것만은 받아들일 수 없었나 보다.

비록 이렇게 신숙주의 청은 거절되었지만 이러한 그의 폐륜적인 행동을 당시 조선의 백성들은 우리후대들도 영원히 잊어서는 안 된다고 만들어 준 말이 '숙주나물'이다. 녹두나물은 신숙주의 변절만큼이나 쉽게 변질된다고 하여 이를 '숙주나물'이라고 고쳐 부른 것이다. 이리하여 신숙주는 영원히 변절자의 상징적 인물이 되고 말았다.

어쨌든 수양대군의 계유정난으로 인하여 이제 조선은 '임금의 나라'가 아닌 '공신의 나라'로 변했다. 이는 임진왜란을 거치며 사대부의 당쟁을 여는 씨앗이 됐다. 여기 농업박물관 앞 '김종서의 집 터'라는 표석 앞에서 나는 조선 당쟁사의 그 뿌리를 상상해 본다.

이렇게 조선 초의 역사를 생각하며 길 건너 서울적십자병원을 바라본다.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400년이 넘는 세월이 훌쩍 지나 조선의 멸망사 속으로 나는 빨려 들어간다.

조선 말기 이곳은 외세에 빌 붙은 민씨 외척에 의해 도탄에 빠진 백성들이 총칼을 들고 항거한 곳이다. 바로 1882년 임오군란의 현장이다. 임오군란은 구식군대에게 그 동안 밀린 13개월 급료를 쌀로 주면서 겨와 모래가 섞인 것으로 주어 폭발한 항거였다.

분노한 병사들과 가족 등 도시서민들은 동대문에서 봉기하여 전 선혜청 당상이었던 관찰사 최보현을 죽이려 이곳 경기감영으로 왔지만 그는 이미 도주하고 없었다. 이에 분노한 군인들은 경기감영의 무기고를 습격하여 무기를 탈취했으며, 이 무기로 바로 서쪽으로 난 길 건너편에 위치한 일본공사관(현 동명여고 자리)을 습격하고 불살라 버렸다.

도주한 최보현과 민씨외척 민겸호 등은그 뒤 결국 이들에게 체포되어 처형되고, 일본공사 하나부사는 일본으로, 민비는 경기도 이천으로 각각 도피했다. 이는 그야 말로 조선민중들이 외세와 봉건지배층을 응징한 사건이다. 그러나 이후 민비의 사대주의적인 '청나라에 대한 도움 요청과 일본의 개입'으로' 임오군란은 결국 실패하고 이후 조선은 본격적으로 제국주의 군화발에 짓밟혀 가기 시작했다.

1.2 <4·19혁명기념도서관>, 이기붕 가의 멸문지화

서대문 역을 나오자마자 이처럼 좌우에서 맞이하는 조선 전후기 커다란 두 개의 사건은 결코 이번 기행이 간단하지 않으며, 깊은 생각을 하게끔 할 것이라는 느낌을 주었다. 이런 마음가짐을 하고 발길을 옮기려니 그저 표식으로만 표시된 우리의 역사가 아니라 커다란 건물이 막아 나선다. 그것은 바로 '4·19혁명기념도서관'이다.

도대체 어떤 이유로 이곳에 '4·19혁명기념'이라는 수식어를 가진 건물이 서있는 것일까? 좀 자세히 알아보니 이곳은 바로 4월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던 3·15부정선거의 주범 이기붕의 집이 있었던 곳이다.

자유당정권시절 제2의 경무대로 불렸던 이기붕의 집이 있던 곳으로 4월혁명으로 이기붕 가족 전원 자살함으로써 집을 헐고 지은 <4.19혁명기념도서관>
 자유당정권시절 제2의 경무대로 불렸던 이기붕의 집이 있던 곳으로 4월혁명으로 이기붕 가족 전원 자살함으로써 집을 헐고 지은 <4.19혁명기념도서관>
ⓒ 유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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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대통령선거에서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 조병옥이 선거를 한 달도 못 남겨둔 채로 사망하자 대통령선거는 단독선거가 되었다. 그리고 부통령선거는 자유당 이기붕과 민주당 장면의 대결이 되었다. 이에 부통령에 출마한 이기붕을 당선 시키려고 거대한 부정선거를 자행한 것이다.

이에 분노한 민중의 저항이 곧 4월 혁명인데, 바로 이곳 이기붕의 집에 군중들이 몰려와 그를 잡으려 했다. 이기붕의 자택은 자유당 정권 시절 '제2의 경무대'라고 불릴 만큼 온갖 권력을 행사하던 곳이다. 하지만 이기붕 일가는 모두 경무대로 도주하고 없었을 뿐만 아니라 이곳을 경비하던 경찰의 총격으로 수많은 민간인 살상이 발생했다. 이에 분노한 군중들은 이기붕의 집에 들어가 가구 등을 가져 나와 모두 부수었다.

한편 경무대로 도주한 이기붕 가족은 그곳에서 맏아들 이강석이 아버지뿐만 아니라 어머니, 동생 등 모두를 권총으로 사살했다. 그리고 그 총구는 이강석 자신조차 예외로 하지 않았다.

이처럼 멸문지화가 되고만 이기붕의 집을 그 뒤 1963년 정부 소유로 했다가 그 뒤 4월혁명단체에게 증여함으로써 현재는 관련 단체의 사무실 및 도서관으로 운영하고있는 것이다. 입구에 들어서면 도서관 로비는 4월 혁명 당시의사진들로 꾸며져 비록 사진으로 나마 지난 4월혁명을 느끼게 해준다. 그리고 각 층마다 일반열람실, 참고열람실, 전자정보시용실 등으로 꾸려져 있다.

덧붙이는 글 | 통일뉴스(www.tongilnews.com)



태그:#성곽순례, #한양도성, #서울성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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