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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2013년, <오마이뉴스>는 '마을의 귀환' 특별기획을 통해 대한민국이라는 '위험사회' 속에서 살아가기 위한 대안으로 마을공동체를 제시한 바 있습니다. 2014년, 마을의 귀환 시즌2는 '1인가구 공동체'에 주목합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1980년 4.8%에 불과했던 혼자 사는 1인가구의 비율은 2012년 25.4%로 늘어났습니다. 독립적인 삶을 살아가는 1인가구와 마을공동체, 언뜻 잘 어울리지 않는 조합인데요. '1인가구'와 '공동체', 나아가 '마을'의 만남은 가능할까요. 1인가구를 위한 마을사용설명서, 지금 공개합니다. [편집자말]
지난 9월 25일 오후 6시. 서울 마포구 아현동 웨딩거리 한쪽 골목에 나 있는 언덕길을 오른다. '드르륵' 봉제공장에서 흘러나오는 재봉틀 소리를 들으며 발걸음을 옮기자 '오래된 서울'의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지은 지 수십 년은 족히 됐을 것만 같은 집들이 따닥따닥 붙어있다. 칠이 벗겨진 무채색 건물들 사이, 노란색 페인트로 입구를 칠해놓은 다세대 건물 하나가 눈에 띈다.

"아현동 쓰리룸 오신 거예요?"

주인 없는 집 앞을 어슬렁거리고 있는데, 웬 남자가 살갑게 말을 걸었다. 오토바이를 타고 온 남자의 품에는 갈색 페트병 하나가 들려있다. '배달원인가?' 생각하는 순간,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집문을 연다.

"피터 만나러 오신 거죠? 저도 여기 사는 건 아닌데... 먼저 들어가 있죠. (웃음)"

'아현동 쓰리룸'은 한 집에서 개인 공간을 따로 가지면서 거실이나 부엌은 함께 쓰는 셰어하우스다. 1인 가구로 살면서 일주일에 한 번은 관심사가 비슷한 사람들이 만나 함께 식사하고 이야기도 나누는 '집밥' 모임을 갖는다.
 '아현동 쓰리룸'은 한 집에서 개인 공간을 따로 가지면서 거실이나 부엌은 함께 쓰는 셰어하우스다. 1인 가구로 살면서 일주일에 한 번은 관심사가 비슷한 사람들이 만나 함께 식사하고 이야기도 나누는 '집밥' 모임을 갖는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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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만났다 헤어지는 '집밥' 모임, 이곳은 달랐다"

소셜다이닝이란?
낯선 이들끼리 함께 밥을 먹으며 공통의 관심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모임. 대표적인 집밥 온라인 커뮤니티 '소셜다이닝 집밥' 사이트를 통해 전국 20개 도시에서 매주 300여 개 모임이 진행되고 있다. 2014년 9월 기준, 누적 참가자는 2만 명을, 누적 모임은 7000개를 돌파했다.
성진(30)이 이곳에 처음 온 것은 지난 3월. 당시 직장에 다니고 있던 그는 그즈음, 새로운 사람들과 함께 밥을 먹는 '소셜다이닝'에 푹 빠져있었다고 한다.

"많이 갔죠. 여기 오기 전에 스물 몇 개? 요즘 서울 사람들이 다들 외로우니까... 집밥 모임, 재밌잖아요. 그런데 단편적인 모임들이 너무 많아서 언젠가부터 그런 게 싫더라고요. 한 번 만나고 헤어지고, 한 번 만나고 헤어지고."

그러다 성진은 아현동 쓰리룸에서 열리는 집밥 모임에 참석하게 되었고,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 후로 "눌러 앉게" 되었다. 일주일에 한 번은 이곳을 찾는다는 그는 현재 회기에서 혼자 살고 있다.

성진과 어색한 대화를 이어가고 있는데 '피터' 휘재(30)와 혜리(30)가 양손 가득 장을 봐서 나타났다. 휘재는 '북유럽 감성밴드'를 표방하는 '피터아저씨'의 멤버. 아현동 쓰리룸은 피터아저씨 세 멤버가 함께 사는 셰어하우스다. 보증금 500만 원에 월세 50만 원. 여름엔 정말 덥고, 겨울엔 정말 추운, 그야말로 '옛날 집'이다.

대전 출신인 휘재는 서울에 온 지 4년이 됐다. 

"4년 동안 이직을 6번 했어요. 적응을 못해서요. 대학 졸업 하고 서울에 왔는데 뭘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닥치는 대로 이것저것 했죠. 광고 회사도 다녀보고, 소셜커머스 회사도 다녀보고... 그동안 친척집에서 살기도 하고, 혼자 산 건 고시원에서 두 달? 2년 정도 친구랑 원룸에서 같이 살다가, 피터아저씨 멤버들이랑 여기에서 산 지는 1년 반 정도 됐어요." 

지난해 8월, 아현동에서 '우리동네가요' 골목콘서트가 열리고 있다.
 지난해 8월, 아현동에서 '우리동네가요' 골목콘서트가 열리고 있다.
ⓒ 아현동 쓰리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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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라는 이름으로 음악을 해오던 휘재는 지난해 밴드 '피터아저씨'를 결성했다. 마을공동체에 관심이 많던 '피터아저씨'는 지난해 여름과 가을, 재개발 예정 지역인 아현동을 기록하는 '우리동네가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사라져가는 동네의 모습을 영상으로 남기고, 골목길에서 콘서트를 열었다. 골목투어를 하고, 쓰리룸에서 밥도 지어먹었다. 그러다 지난해 12월, 소셜다이닝 모임 '목요일엔 식당'을 시작했다.

"얼렁뚱땅 시작하게 됐어요. 멤버들이랑 나중에 식당을 같이 하고 싶었거든요. 집에서 한번 연습해보자면서 하우스 키친을 열게 된 거죠."

"맨날 혼자 TV 보면서 라면 먹고... 허전하잖아요"

'목요일엔 식당' 홍보 포스터
 '목요일엔 식당' 홍보 포스터
ⓒ 아현동쓰리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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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시작된 집밥 모임은 올해 여름까지 매주 이어졌다. 5평 정도 될 것 같은 거실에 매번 15~20명이 모였다. 

"여기 오는 사람들 대부분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 서울에서 자취하는 1인 가구예요. 집에서 혼자 밥 먹기 싫고, 외롭고... 그런 사람들이 이런 모임을 필요로 하는 것 같아요. 맨날 혼자 TV 보면서, 영화 다운 받아보면서 라면 먹고 그러면 허전하잖아요."  

9월 25일, 두 달 만에 쓰리룸에서 집밥 모임이 열렸다. 그동안 너무 쉴새 없이 달려온 것도 있었고, 무엇보다 집이 더웠다. 이날은 '집밥' 사이트나 페이스북을 통해 홍보를 하지 않고, 친한 친구들끼리 소소하게 모이기로 했다. 모두 집밥 모임을 통해 친해지게 된 이들이다.

성진, 휘재, 혜리는 다른 친구들이 오기 전에 분주히 집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휘재는 "사람이 올 일이 없으니 두 달 동안 청소를 못했다"며 머쓱하게 웃어보였다. 오늘은 직접 밥을 지어먹는 모임이 아니라, 각자 먹을 음식을 가져오는 '포트럭 파티(Potluck Party)'다. 

쓰리룸 집밥 모임의 특징은 인디뮤지션들의 공연이 함께한다는 것. 밥과 공연을 함께 볼 사람은 1만 원을, 공연만 볼 사람은 5천 원을 내는 식이다.

지난 3월, 아현동 쓰리룸에서 집밥 모임과 함께 공연이 열리고 있다.
 지난 3월, 아현동 쓰리룸에서 집밥 모임과 함께 공연이 열리고 있다.
ⓒ 아현동 쓰리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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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여기 사는 사람들이 뮤지션이다 보니까 친구들이 오면 '노래 한 곡씩 해 달라' 그랬는데, 해보니까 괜찮더라고요. 그 전까지는 공연이라는 건 공연장에서 한다는 고정관념이 있었어요. 그런데 그게 그때 깨졌어요."

부산 출신 아름(30)은 공연을 보기 위해 쓰리룸을 찾았다. 지난 2월, 서울에 있는 직장에 합격해 무작정 상경했다는 그는 이전부터 페이스북 등을 통해 인디뮤지션 '피터아저씨'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고.

"서울 오자마자 딱 와보고, 그 후부터는 웬만하면 시간 되면 왔어요. 여기에서 좋은 사람들 많이 만났죠."

"같은 지역 안 살아도, 밥과 음악만 있으면 공동체"

밥과 공연이 함께하는 '목요일엔 집밥'은 '홈메이드 콘서트'로 진화했다. 그동안 성북동 가정식 병원, 계동 게스트 하우스, 홍지동 가정집 등 지역의 작은 공간에서 '세상에서 가장 작은 콘서트'를 진행했다. 10월에는 매주 공연이 예정돼 있다. 얼마 전에는 부산에도 다녀왔다. 공연 기획과 준비는 휘재와 혜리가 함께 한다.

"인디뮤지션들이 공연할 장소가 그렇게 많지가 않잖아요. 공연을 해도 사람들이 많이 안 오고. 그럴 바에야 사람들이 살고 있는 동네로 들어가서 공연장을 만들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문화예술을 통해서 마을 커뮤니티도 활성화 시키고요."  

오후 8시쯤 되자, 문수(30), 지훈(32), 용덕(32)이 함께 도착했다. 퇴근 후 근처 시장에서 전과 튀김을 사오느라 늦었단다. 역시 쓰리룸 집밥 모임에서 만난 세 사람은 '친절한 이웃'이라는 팀을 결성해 단편 영화를 찍고 있다. 각자 생업을 하면서도 일주일에 한 번은 만난다.

탁자에 각자 사온 음식이 한 상 가득 놓였다. 떡볶이, 순대, 만두, 전, 튀김... 젓가락이 바빠진다. 요리를 좋아하는 성진은 믹서기에 바나나를 부지런히 갈아 막바사(막걸리+바나나+사이다)를 만들었다. 갈색 페트병에 담아온 수제 맥주도 꺼냈다. 직접 만든 거란다.  

허기를 채우자, 혜리가 케이크를 꺼냈다. 지난 8월 말이 지훈의 생일이었다며.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고, 초를 끄고. 그동안 못 떨었던 수다가 이어진다. 공통 분모는 주로 음악이다.

오늘 모인 여섯 명 가운데 아현동 주민은 휘재 한 사람뿐이다.

"요즘 마을공동체라는 말을 많이 하잖아요. 마을공동체라는 건 오랫동안 거주를 해야 하는데 서울에서는, 특히 젊은 세대들은 정주를 하기가 어렵잖아요. 지난 1년 반 동안 이런저런 활동들을 해보면서 내린 결론은, 굳이 공동체라는 거에 이제는 지역성이라는 걸 갖다 붙일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모일 수 있는 매개만 있으면 공동체를 만들 수 있으니까요. 저희들도 처음에는 전부 타인이었는데 밥과 음악이라는 걸 매개로 커뮤니티가 되었잖아요."

아현동에 모인 휘재와 친구들은 또 다른 작당 모의를 하고 있다. 이름하여 '언뜻 가게'. 쓰리룸 옆 건물 1층에 있는 빈 가게 '풍년 쌀 상회'를 커뮤니티 공간 겸 작업실로 만들었다. 임대료는 보증금 300만 원에 월세 30만 원. 출자자가 7명인 것을 감안하면 그리 부담되지 않는 금액이다. 이곳에서 누군가는 요리를 하고, 누군가는 커피를 내리고, 누군가는 재봉틀을 돌리고, 또 누군가는 주민들을 위한 꽃수업을 할 예정이다. 동네 아이들과 함께 노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이도 있다.

'언뜻 가게' 오픈 파티. 가게 안은 물론 밖까지 사람들로 가득했다.
 '언뜻 가게' 오픈 파티. 가게 안은 물론 밖까지 사람들로 가득했다.
ⓒ 박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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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뜻 가게' 오픈 파티. 가게 안은 물론 밖까지 사람들로 가득했다.
 '언뜻 가게' 오픈 파티. 가게 안은 물론 밖까지 사람들로 가득했다.
ⓒ 박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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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저녁, 언뜻 가게 오프닝 파티가 열렸다. 10평 남짓한 공간에 사람들이 가득 찼다. 가게 밖 도로까지 오프닝 파티를 축하하기 위해 온 손님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대부분 쓰리룸 집밥 모임에 한번쯤 참석했던 이들이다. 이날 '셰프'가 된 성진은 손님들이 마실 샹그리아를 만드느라 분주하다. 개업식이니 떡도 준비했다. '초대가수' 휘재는 기타를 들고 노래를 불렀다.

조용하던 동네가 들썩이자, 지나가던 주민들도 발걸음을 멈췄다.

"여기 뭐하는 데예요?"
"커피도 팔고 음식도 만들고 주민들을 위한 공간이에요. 자주 오세요."
"여기가 휴게실이 됐네. 이 동네에 휴게실이 없었는데. 난 여기 바로 옆에 살아."

휘재는 이 공간이 앞으로 마을 주민들의 '사랑방'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실 처음 집밥 모임을 하기 전에는 이 집에서 마을 사람들이 모여 있는 모습을 상상했어요. 그런데 집이라 그런가... 선뜻 오기 어려워하더라고요. 그러다 마을 밖에 있는 사람들이 오게 됐는데, 눈에 띄는 곳에서 계속 (언뜻 가게) 공사를 하니까 마을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관심을 갖더라고요. 뭐 만드냐고. 옆집 아저씨, 앞집 아저씨가 공사도 도와주시고. 여기가 집값이 싼 편이니까 은근히 젊은 사람들이 많더라고요. 공간이 생기면 이런 저런 재밌는 일들이 생길 것 같아요."

"이제야 내가 뭘 해야 할지 알 것 같다"는 서른 살 청년의 눈이 반짝거렸다.

[1인가구, 마을과 만나다①] 생활비가 3분의1로... '우리동네' 대박났다


태그:#마을의 귀환, #1인가구, #집밥, #아현동 쓰리룸, #피터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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