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농구 짜릿한 역전승, 12년 만에 금메달 한국 농구대표팀 선수들이 3일 오후 인천 삼산월드체육관에서 열린 '2014 인천아시아경기대회' 이란과의 결승전에서 79대 77로 승리한 뒤 금메달을 획득하며 기뻐하고 있다.

▲ 한국 농구 짜릿한 역전승, 12년 만에 금메달 한국 농구대표팀 선수들이 3일 오후 인천 삼산월드체육관에서 열린 '2014 인천아시아경기대회' 이란과의 결승전에서 79대 77로 승리한 뒤 금메달을 획득하며 기뻐하고 있다. ⓒ 유성호


다시 한 번 꿈은 이루어졌다. 유재학 감독이 이끄는 남자농구 대표팀이 난적 이란을 격파하고 12년만의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3일 오후 인천삼산체육관에서 열린 2014 인천 아시안게임 남자농구 결승전에서 대한민국은 이란과 치열한 접전 끝에 79-77로 짜릿한 2점차 승리를 거뒀다.

이로써 한국 농구는 아시안게임에서 남녀가 최초로 동반 우승을 거두는 쾌거를 달성했다. 여자농구 대표팀이 중국을 꺾고 1994년 히로시마 대회 이후 20년만의 금메달을 달성한 데 이어 남자농구도 정상에 오르며 한국농구의 새로운 역사를 이룩했다.

남자농구의 우승은 그야말로 기적에 가깝다. 여자의 경우, 유력한 라이벌이던 중국과 일본이 일정이 겹치는 세계선수권에 1진을 파견함에 따라 비교적 수월하게 우승을 차지했다. 하지만 남자의 경우 중국, 이란, 필리핀 등 경쟁자들이 많은 데다 전력상 한국을 우승후보로 꼽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사실상 메달권 진입만 해도 성공적이라는 평가도 많았다.

이란전 승리, 2002년보다 더 기적인 이유

철벽 수비 펼치는 조성민  한국 농구대표팀의 조성민이 3일 오후 인천 삼산월드체육관에서 열린 '2014 인천아시아경기대회' 이란과의 결승전에서 아파흐 하메드의 드리블을 막고 있다.

▲ 철벽 수비 펼치는 조성민 한국 농구대표팀의 조성민이 3일 오후 인천 삼산월드체육관에서 열린 '2014 인천아시아경기대회' 이란과의 결승전에서 아파흐 하메드의 드리블을 막고 있다. ⓒ 유성호


특히 이란과의 결승전은 거의 모든 이들이 절대적인 열세를 예상했다. 이란은 자타공인 현재 아시아농구의 최강자다. 유재학 감독조차 경기전 이란에 대한 공략법에서 '답이 없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정도였다.

하지만 공은 둥글고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아는 법이었다. 마치 한국농구가 2002년 야오밍의 중국을 무너뜨렸을 때와 비슷한 데자뷰였다. 이란은 2002년의 중국보다도 어쩌면 더 까다로운 상대였다. 정상적인 조건 하에서 맞붙었을 때 한국이 이란을 이길 확률이 10~20% 내외라고 한다면, 이날 한국은 모든 면에서 가지고 있는 최상의 시나리오가 맞아떨어진 경기였던 반면 이란은 그렇지 못했다.

이란이 무서운 것은 하메드 하다디, 마디 캄라니, 니카 바라미로 이어지는 에이스 3인방의 내외곽이 동시에 터지는 순간이다. 이날 한국은 바라미를 막지못해 대량실점을 허용했지만 가장 무서운 하다디를 3쿼터까지 6득점으로 묶는데 성공했다. 한국은 초반 최상의 야투 컨디션을 보이며 기선을 제압했다. 김종규, 조성민, 문태종 등으로 이어지는 중장거리 야투가 높은 적중률을 보이며 초반부터 이란을 앞서 나갔다.

한국전에서 하다디는 평균 25점-10리바운드 이상은 기본이었다. 그런데 이날만큼은 하다디가 한국전에서 이 정도로 부진한 적이 있었나 싶을만큼 힘을 쓰지 못했다. 유재학 감독은 하다디를 막기 위하여 초반부터 강력한 전방위 압박수비와 드롭존을 번갈아가며 사용했다.

김종규나 오세근이 골밑에서 오버가딩을 하다가 만일 하다디에게 볼이 투입되면 가드진이 한 박자 빠른 도움수비로 볼을 가로채거나 최소한 바깥으로 다시 패스가 빠져나와서 오픈 찬스가 생기지 않도록 방해했다. 한국의 수비도 좋았지만 이날 웬일인지 하다디의 반응 속도가 평소보다 다소 느리고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것도 호재였다.

하지만 한국은 42-36으로 앞선채 시작한 3쿼터 들어 이란의 반격에 주춤했다. 체력 안배를 위하여 주득점원 하다디와 바라미가 벤치로 물러난 틈을 타 오히려 수비가 흔들리며 역전을 허용한게 아쉬웠다. 오세근이 4반칙을 당하면서 골밑운영에 빈틈이 생겼고, 잘들어가던 야투가 이란의 지역방어에 막히며 58-61로 끌려갔다.

마지막 10분은 그야말로 역전에 역전을 거듭하는 시소게임이 벌어졌다. 4쿼터 초반 오세근이 무리한 파울로 5반칙 퇴장을 당했다. 침묵하던 하다디가 연속 득점으로 살아나는 빌미를 제공했다. 한국은 조성민의 3점슛과 양희종의 팁인슛에 이은 추가 자유투로 반격했지만 가드진에서 연이은 실책이 이어지며 흐름이 자꾸 끊겼다.

유재학 감독은 승부수를 띄웠다. 하다디 수비에 어려움을 보인 이종현을 대신하여 김종규를 싱글포스트로 기용하는 스몰라인업을 내세웠다. 외곽의 바라미에게는 양희종을 전담마크로 투입했다. 어차피 높이가 열세인 상황에서 기동력과 외곽슛으로 승부를 보려는 전략이었다. 낮아진 높이를 의식하여 이란은 골밑의 하다디에게 패스를 집중하기 시작했는데, 오히려 이런 단조로운 공격루트는 한국의 적극적인 가로채기 수비앞에 실책을 남발하는 빌미가 됐다.

막판 1분여를 남겨놓고 70-75, 5점차로 뒤진 상황에서 상대 실책으로 공격권을 되찾은 한국은 양동근이 직전의 실수를 만회하는 3점슛을 터뜨렸다. 이어 하다디의 공격을 막아내며 다시 기회를 잡은 한국은 김종규가 하다디를 앞에 두고 과감한 골밑 공격으로 천금같은 역전 바스켓 카운트를 얻어내며 3점플레이 두 방으로 단숨에 승부를 뒤집었다.

이어 한국은 볼 경합 상황에서 김종규가 다시 몸을 날리며 공격권을 얻어냈다. 이날 경기의 주도권이 한국으로 넘어오는 결정적인 장면이었다. 막판 파울작전에 나선 이란을 상대로 한국은 문태종이 전담 자유투 슈터로 나서서 4개 중 3개를 성공시켰다. 이란은 79-77로 뒤진 종료 12초를 남겨놓고 마지막 반격에 나섰으나 회심의 3점슛이 림을 맞고 아슬아슬하게 튀어나왔고, 하다디의 팁인도 벗어났다. 리바운드 경합 상황에서 남은 2~3초가 지나가면서 그대로 한국의 극적인 역전 우승이 확정됐다.

'최악의 상황' 이겨낸 한국농구의 저력

농구 대표팀 '하디디를 봉쇄하라' 한국 농구대표팀의 김종규와 오세근이 3일 오후 인천 삼산월드체육관에서 열린 '2014 인천아시아경기대회' 이란과의 하다디의 슛을 저지하고 있다.

▲ 농구 대표팀 '하디디를 봉쇄하라' 한국 농구대표팀의 김종규와 오세근이 3일 오후 인천 삼산월드체육관에서 열린 '2014 인천아시아경기대회' 이란과의 하다디의 슛을 저지하고 있다. ⓒ 유성호


이번 아시안게임 우승은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을 극복해내고 이룬 성과였기에 더욱 값지다. 한국은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우승 이후 지난 12년간 국제무대에서 암흑기를 맞이했다. 올림픽과 세계무대 출전이 사실상 멀어졌고 아시아에서도 우승권에서 밀려나며 수많은 '참사'를 체험했다.

올해도 안팎으로 상황이 좋지 않았다. 다른 국가들에 비하여 대표팀 구성이 늦었고 준비 또한 부실했다. 이승준과 김민구 등 주축 선수들이 대회가 시작도 하기전부터 부상으로 줄줄이 이탈했고, 귀화선수 영입도 불발되며 40세의 문태종이 대안으로 뒤늦게 합류해야했다. 아시안게임 직전 농구월드컵에서의 5전 전패는 세계의 벽을 실감함과 동시에 대표팀의 자신감을 바닥까지 떨어뜨렸다.

하지만 대표팀은 아시안게임에서 분위기 반전에 성공하며 7전 전승의 퍼펙트 우승을 달성하는 반전을 일궈냈다. 8강리그 필리핀전이 분수령이었다. 첫 경기였던 몽골전에서 극도의 부진으로 여론의 질타를 받았던 대표팀은 지난해 아시아선수권 준결승에서 패배의 쓴맛을 안겼던 필리핀을, 38점을 넣은 문태종의 활약으로 역전승을 일궈내며 자신감을 찾는데 성공했다.

유재학 감독은 주전과 벤치의 구분이 없는 12인 로테이션을 적극 가동하며 강력한 체력을 바탕으로 한 압박수비와 외곽슛으로 강팀들을 연파했다. 주득점원인 문태종-조성민의 슛감각이 매우 안정적이었고, 골밑에서는 오세근이 공수 양면에서 분전했다. 김태술은 창의적인 패스와 경기운영으로 고비마다 경기의 완급조절을 담당했다.

경기가 풀리지 않을 때 공격에서는 스피드와 돌파가 좋은 김선형을, 수비에서는 대인방어와 허슬플레이에 빼어난 양희종을 각각 '조커'로 투입하며 변칙적인 스몰라인업을 수시로 가동한게 주효했다. 김종규와 양동근은 이번 대회 다소 기복은 있었지만 이란과의 결승전에서 몸을 사리지 않은 육탄수비와 클러치타임에서의 한 방으로 우승에 결정적인 수훈을 세웠다. 김주성도 전반적인 활약은 저조했으나 간간이 경기흐름을 바꾸는 블록슛으로 클래스를 증명하며 수비에서 공헌했다.

어느 정도 운도 많이 따라줬다. 강력한 우승경쟁자로 꼽히던 중국, 필리핀 등이 예상보다 일찍 탈락했다. 세대교체를 시도한 중국은 20대 초반의 젊은 선수들로 팀을 꾸렸다가 아시안게임 사상 첫 노메달의 수모를 당했고, 필리핀은 농구월드컵에 출전했던 NBA 출신 센터 안드레이 블라체와 제이슨 윌리암의 공백이 컸다. 한국은 준결승에서는 그나마 수월한 일본을 만났고, 이란이 카자흐스탄에게 예상밖의 고전을 펼치며 주축 선수들의 체력소모가 컸던 것은 결승에서 체력전을 펼친 한국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

아시안게임 우승, 독이 든 성배가 될 수도

농구 대표팀, 금메달 획득 기념 '찰칵' 금메달을 획득한 한국 농구대표팀 선수들이 3일 오후 인천 삼산월드체육관에서 열린 '2014 인천아시아경기대회' 시상식에서 승리를 만끽하며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농구 대표팀, 금메달 획득 기념 '찰칵' 금메달을 획득한 한국 농구대표팀 선수들이 3일 오후 인천 삼산월드체육관에서 열린 '2014 인천아시아경기대회' 시상식에서 승리를 만끽하며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유성호


남녀동반 금메달은 분명히 자랑스러운 성과다. 한국농구의 저력이 아직 죽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했다. 농구월드컵과 아시안게임 우승을 체험한 김종규, 이종현, 김선형 등 젊은 선수들의 성장은 미래를 위한 자양분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아시안게임 우승으로 인한 지나친 자아도취는 금물이다. 지난 2002년 아시아게임 금메달 이후 한국농구가 변화를 외면하다가 급격히 몰락한 게 좋은 예다. 이번 대회를 끝으로 김주성, 문태종, 양동근 등 노장들은 대표팀 은퇴를 고려해야 할 나이다. 김태술, 양희종, 조성민 등도 모두 30줄을 넘겼다.

내년 아시아선수권에는 기존의 이란은 물론이고 블라체가 가세한 필리핀이나 이젠롄이 돌아올 중국의 전력은 더욱 위협적이 될 게 자명하다. 대만이나 일본, 몽골, 카자흐스탄 등도 이제는 더 이상 만만한 1승제물이 아니다. 아시아국가들의 수준이 점점 높아지는 것은 물론, 벌써 한발 앞서 세대교체를 추진하고 있는 팀들이 대다수다.

경쟁의 문은 높아졌는데 당장 내년 아시아선수권에 걸려 있는 올림픽 티켓은 여전히 우승팀 1장뿐이다. 유재학 감독의 지적처럼 더 이상 개인능력 없이 수비 조직력과 외곽슛에만 의지한 농구로는 국제무대에서 계속 버텨나갈 수 없다.

대표팀은 물론이고 한국농구의 인프라와 유망주 육성을 위한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구상이 절실하다. 무엇보다 이번 아시안게임 우승이 그동안 협회의 무능한 행정력이나 주먹구구식 대표팀 운영 시스템에 대한 면죄부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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