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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두번째로 높은 자동차 도로로 달려가는 길. 겁이 많은 나는 긴장감에 잠시도 눈을 붙일 수가 없었다.
 세계에서 두번째로 높은 자동차 도로로 달려가는 길. 겁이 많은 나는 긴장감에 잠시도 눈을 붙일 수가 없었다.
ⓒ 김산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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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 판공초를 향해 달리고 있다. 사실 '달린다'라는 표현이 무색할 정도로 느리게 운전할 수밖에 없는 이 아찔한 절벽 위 도로에 들어선 지만 거의 세 시간째.

알고 보니 세계에서 가장 높은 자동차 도로 1, 2, 3순위까지가 모두 라다크에 있다는데 그중 세 번째 고개인 '창-라'가 오늘 판공초로 가는 길 위에 있단다. 사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도로들인 동시에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도로'인지라 그 이름에 걸맞은 풍경이 정신을 번쩍 들게 한다.

가파른 절벽 저 밑에 원래의 형체를 거의 잃은 자동차가 보였다. 그리고 함께 있는 추모비까지. 올해만 해도 벌써 추락사고가 몇 번 있었다는데 이런 위험까지 감수하면서까지 판공초를 찾는 사람들은 매년 늘어나고 있다. 그곳에는 무엇이 있을까?

목적지만큼이나 아름다운 여행길

판공초는 영화 <세 얼간이>를 통해 더 유명해진 호수다. 주인공들이 다시 만나는 마지막 장면을 촬영한 장소였기 때문이다. 서로 맞닿은 하늘과 호수의 색이 너무나 비슷해서 그 경계가 흐릿해진, 온통 원색의 푸른빛으로 가득 찬 그곳. 한때는 바다였으나 히말라야 산맥의 융기와 함께 솟아올라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호수, 그것도 염호가 되었다는 판공초.

라다크에서 판공초까지의 길이 순탄하지는 않지만 그곳을 향해 달리는 여섯 시간 동안 시시각각 바뀌는 바깥의 풍경 또한 말도 못하게 아름다워서 나는 졸린 눈을 간신히 떠가며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 애를 썼다.

하얗고 포근한 만년설에 대한 환상은 이렇게 깨졌다.
 하얗고 포근한 만년설에 대한 환상은 이렇게 깨졌다.
ⓒ 김산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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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창-라를 지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눈앞에 거대한 얼음과 떡하고 마주쳤다. 언제나 하얗고 포근할 것 같았던 기대와는 달리, 매 겨울 쌓인 눈이 단단하게 굳어 만들어진 산등성이의 만년설은 너무나 단단하고 거대해서 차라리 '빙하'라는 이름이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고개를 넘어 조금씩 밑으로 내려오자 만년설에서 날아오던 차가운 바람은 사라지고 차마 '푸르다'라는 말로는 다 설명이 되지도 않는 싱그러움으로 대지가 차고 넘쳤다. 작은 천국을 보는 것만 같다.

뭐니 뭐니 해도 이 천국의 주인공은 땅굴을 파고 사는 귀여운 동물 모르모트(Marmotte). 기니피그와 같은 종이라는데 자연에서 보는 그들의 모습이 낯설어 인지 아예 다른 동물인 것만 같다. 뒤뚱거리는 귀여운 엉덩이와 깜찍한 얼굴에 푹 빠져 버린 아가씨 세 명이 자리를 떠날 줄을 모르자, 결국 차에서 기다리던 로드리고가 와서는 우리를 끌고 가 차로 밀어 넣었다. 

자연에서 땅굴을 파고 살아가는 모르모트들의 모습이 생소했다.
 자연에서 땅굴을 파고 살아가는 모르모트들의 모습이 생소했다.
ⓒ 김산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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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보다 중독적인 그것

"우린 네덜란드에서 인도까지 히치하이킹으로만 왔어. 유럽, 이란, 파키스탄을 거쳐서 말이야."
"뭐???!?!?!?!?!?!"

평소라면 여전히 꿈속을 헤매고 있을 시간이었지만 오늘 우리는 아슬아슬 절벽을 달리는 지프차에서 방금 루카가 들려준 이야기에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 중이었다. 우리는 네덜란드에서 온 훤칠한 금발의 두 청년 루카와 옙, 스페인 아가씨 노엘리아, 딱 봐도 멕시코 출신임을 알 수 있는 로드리고, 그리고 우리 둘(J와 나)을 포함해 총 6명으로 이루어진 팀이었다.

여행을 떠난 후 모든 것이 달라졌다는 루카와 옙
 여행을 떠난 후 모든 것이 달라졌다는 루카와 옙
ⓒ 김산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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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그들을 본 순간부터 이 여행이 꽤 재미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처음부터 붙임성 좋아 보이던 루카로부터 시작된 이야기는 어떻게 인도에 오게 되었나라는 주제로 흘러들었다.

"내가 학생일 때, 많은 사람들의 '성공'의 기준이 자기만족이 아닌 타인의 시선에 고정되어 있는 걸 발견했어. 그들은 많은 걸 가졌지만 불행해 보였어. 남의 평가가 내면의 목소리보다 중요해지다니, 웃기지. 그리고 곧 그들은 내게도 그럴 듯한 모습으로 그럴 듯하게 살아가길 닦달했어. 그때 난 갓 마약에 손을 대기 시작한 십 대였을 뿐인데 말이야.

그러니 그 사람들 눈에 나와 옙은 낙오자 정도였을 거야. 십 대 때부터 마리화나를 피우던 애들이 대학도 중간에 그만두고 나와 버렸으니. 틈틈이 일하며 모았던 돈을 챙겨서 곧장 짐을 쌌어. 내가 있을 곳은 거기가 아니었어. 모든 익숙함과 나를 판단할 잣대가 없는 곳에서 있는 그대로의 나를 마주 보고 싶었어.

그렇게 지난 몇 개월 동안 히치하이킹으로만 여행했어.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대화하면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도 더 잘 알게 됐고, 나도 꽤 괜찮은 사람이란 것도 알게 됐지.

그제야 그 빌어먹을 마리화나도 끊을 수 있었어. 이제 다신 예전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 같아. 산전수전 겪으면서 만들어지는 내 인생이 마약이 주는 몽롱함보다 더 중독적이거든. 좋은 것만 보고 먹는 안락함보다 내가 살아있다고 느끼는 이런 삶이 더 행복해."

자신의 이야기를 덤덤하게 털어놓아 준 루카가 고맙기도 하고 자신이 원하는 삶을 쟁취해낸 멋진 모습에 나는 엄지를 추켜올리며 웃어주었다. 노엘리아가 함께 엄지를 추켜올리더니 루카의 뒤를 잇는다.

"나도 몇 년 동안 같은 일을 하다가 이번 여행을 결심했어. '오늘은 기필코'를 매일 다짐했는데, 원하지 않는 일이지만 내게 안정된 삶을 주는 일을 포기하는 게 쉽지는 않더라, 하하. 더 웃긴 건, 막상 인도에 혼자 오려니 겁이 나지 뭐야. 그래서 동행을 구하는 사이트에 들어갔고, 거기서 로드리고를 만났지. 인도에 도착한 첫날 패닉 상태에 빠졌다가 로드리고를 만나니 어찌나 반갑고 편하던지! 윽, 하지만 귀가 터질 것 같은 그 코골이는 도무지 적응이 안 돼. J랑 소피, 너희는?"

"우린 십오 년지기 친구야. 난 졸업 후 취업 준비 중이었는데, 이번에도 떨어지면 인도에 가야겠다 생각하고 있었어. 그런데 그날 J가 전화로 뜬금없이 묻더라고. '소피, 너 또 나갈 계획 없니?'라고 말이야. 결론은 난 취직에 실패했고, 다음 날 우리는 함께 인도행 티켓을 사버렸어. 특히 라다크는 내가 십 년 전부터 마음에 품었던 특별한 곳이고 J에겐 이번이 그녀의 첫 배낭여행이야. 우리 둘 모두에게 특별한 여행인 셈이지."

"와우." 모두 J를 보며 엄지를 치켜든다. 루카가 J에게 물었다.

"첫 해외여행지로 인도를 택하다니 J, 너 정말 용감하다! 그래서 인도에 온 소감이 어때?"
"음, 처음엔 진짜 죽을 것 같더니 라다크에 오고 나선 좀 살 만해."
"넌 지금 여전히 살아 있잖아? 게다가 인도에서 살아남았다면 이젠 세상 어딜 가도 모든 게 쉬워질 거야."

유쾌한 일행 노엘리아와 로드리고
 유쾌한 일행 노엘리아와 로드리고
ⓒ 김산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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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든 여행이든 정답은 애초에 없었다. 그저 각자의 속도에 맞게 걸으면 될 뿐. 자신의 내면과 소통하는 법을 배워나가고, 그 소리를 따라가려다 가끔 장애물과 마주할 때 그것을 넘을 조그만 용기만 있다면 충분하지 않을까. 결국 자신의 인생은 본인이 정의하는 것이다. 주변의 정의가 아닌 스스로 내리는 '정의'를 찾아 떠나 마침내 행복을 찾은 루카와 노엘리아처럼.

나도 그랬다. '여행'이라는 길을 떠나기 전의 나는 남이 정의하는 내 모습에 웃고 울고 아파했다. 내가 정의하고 내가 원하는,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찾고 끌어안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했다. 나만의 색깔이 선명해질수록 모두에게 사랑받지는 못해도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해주는 '진짜' 친구는 늘어났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나의 삶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있었다.

"판공초예요."

눈앞에 탁 트인 하늘이 보인다. 우리가 이렇게 높은 곳에 있었던가, 육지는 보이지 않고 파란 하늘만이 세상을 둘러싸고 있었다. 아니다, 저건 하늘이 아니야. 그것은 하늘의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던 호수였다. 하늘과 땅의 경계도 무너뜨린 채 온통 푸른빛으로 물들인 거대한 호수. 먹먹하게 아름다운 이 풍경 앞에서 나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때로는 가슴으로만 담을 수 있는 것들이 있기 마련이다. 판공초는 눈으로 담아내기에는 벅찬, 차라리 감아야만 온전히 담을 수 있었던 곳이었다.

하늘과 호수의 빛깔은 누가 더 푸른지 겨루기라도 하듯 선명하게 푸르렀다.
 하늘과 호수의 빛깔은 누가 더 푸른지 겨루기라도 하듯 선명하게 푸르렀다.
ⓒ 김산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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