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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라다크의 날씨

라다크에서는 날씨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아침은 눈 부신 햇살과 함께 시작되고 낮이면 눈이 시리도록 밝은 만년설과 푸르른 초록으로 뒤덮인 풍경에 보는 이의 넋을 놓게 했다. 그리고 밤이 오면 몇 분꼴로 꼬리를 길게 내리며 떨어지는 별똥별이 하늘을 수놓았다. 아무리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 풍경들이었다.

 설산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다. 그저 방 안에 쿡 박혀 바라만 보아도 좋을 듯한 풍경이었다.
 설산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다. 그저 방 안에 쿡 박혀 바라만 보아도 좋을 듯한 풍경이었다.
ⓒ 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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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이틀을 내리쉬었더니 몸이 한결 가벼웠고 숨쉬기도 한결 나았다. 메인 바자르를 지나 무함마드, 메헤룬 부부와 아들 임티아스, 딸 라헬라로 이루어진 화목한 가족이 운영하는 게스트 하우스에 도착했다. 가족들이 생활하는 이층에 자리한 방은 두 면을 가득 채운 창문을 통해 햇볕이 쏟아지고 있었다.

짐을 풀고 창문 너머를 내다봤을 때도 설산은 그 자리에 있었다. 그저 방 안에 쿡 박혀 바라만 보아도 좋을 듯한 풍경이었다. 짐을 내려두고 창스파 로드로 나오니 그제야 아까는 보지 못했던 풍경들이 눈에 들어왔다. 하나 같이 영어로 쓰여진 간판을 달고 있는 여행사와 음식점 스카프 가게가 번갈아가며 이어졌고, 여행사 벽마다 지프 투어 동행을 구하는 종이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레 시내의 모든 여행사마다 동행을 구하는 여행자들의 종이가 빽빽하게 붙어있다.
▲ 함께 갈 사람 구해요! 레 시내의 모든 여행사마다 동행을 구하는 여행자들의 종이가 빽빽하게 붙어있다.
ⓒ 김산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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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판공초에 가는 동행을 구한다는 종이를 써서 붙였다. 책임감 있고 사람 좋은 여행사 사장으로 한국인들에게 입소문이 자자한 체왕(Tsewang)의 여행사였다. 한국 여행자들에게는 '용해'라는 애칭으로 더 알려진 그와 그의 친구 텐진과 신 나게 수다를 떨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훌쩍 흘러가 있었다.

새로운 친구를 만나자 모든 것이 더 즐거워졌다. 황홀한 장소에 새 친구까지 더해지니 더 이상 부족할 것이 없었다. 그 아름다운 풍경을 보며 걷고 또 걸으며 우리는 수다를 떨었다. 언제 숨 가쁜 적이 있기나 했었냐는 듯, 나는 레 시내를 고삐 풀린 망아지 마냥 뛰어다녔다. 무슨 일이 생길지도 알지 못한 채.

나는 레 시내를 고삐 풀린 망아지 마냥 뛰어다녔다. 무슨 일이 생길지도 알지 못한 채.
▲ 고산병에 걸리기 6시간 전. 나는 레 시내를 고삐 풀린 망아지 마냥 뛰어다녔다. 무슨 일이 생길지도 알지 못한 채.
ⓒ 김산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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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발 3500미터의 공포

숙소에 들어와 누웠는데 유난히 몸이 으실거렸다. 있는 대로 옷을 모두 껴입고 침낭까지 꺼냈지만 몸속에 퍼지는 오한에 이가 딱딱 부딪혔다. 무엇보다 최악이었던 건 다리에서 시작된 종창이었다. 누군가가 자꾸만 펌프질을 하는 듯 끝도 없이 부풀어 오르는 다리는 터지지 않는 풍선처럼 커졌다.

살에 닿는 이불의 촉감까지도 고통스러웠다. 두 시간이 넘도록 J가 다리를 주물러 주었지만 전혀 괜찮아질 줄을 몰랐다. 정말이지 살면서 겪어본 중 최악의 고통이었다. 혼자서 가만히 있다가는 죽을 것만 같았다.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 몸을 질질 끌며 나가 라헬라 가족들이 자는 방문을 두드렸다. 문 앞에서 반쯤 쓰러진 나를 본 메헤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정말, 정말로 죄송해요. 그런데 정말로 도움이 필요해요 제발 좀 도와주세요. 아무리 껴입어도 너무 춥고 다리가 터질 듯이 아파요."

"Don`t worry. Everything will be okay. Bring some hot water Rahela!(걱정 마렴. 다 괜찮아질 거야. 라헬라, 뜨거운 물 좀 끓여오너라!)"

괜찮을 거야. 그녀가 나를 안으며 건넨 그 한 마디가 마법같이 나를 안정시켰다. 의지할 수 있는 이가 옆에 있다는 사실에 몸의 긴장이 풀리자 나는 그만 아이처럼 엉엉 울고 말았다. 나조차도 예상치 못한 울음이 터져 나온 건 아마 "괜찮아. 이제 다 괜찮을 거야"하고 내 등을 어루만지던, 내 어머니의 것과 같았던 메헤룬의 손길 때문이었을 것이다.

라다크에 머무는 2주 동안 내 가족 같이 가까워진 라헬라의 가족. 그들은 내가 다시 라다크에 돌아가야 할 이유 중 하나가 되었다.
▲ 라헬라 가족 라다크에 머무는 2주 동안 내 가족 같이 가까워진 라헬라의 가족. 그들은 내가 다시 라다크에 돌아가야 할 이유 중 하나가 되었다.
ⓒ 김산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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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동이 틀 때까지 메헤룬은 밤새 내 다리를 주물러 주었다. 살구씨 기름을 손에 발라 내 다리를 주물러 주던 그녀의 손은 이제껏 본 적 없이 거칠었다. 메마른 라다크 땅에서 가족들과 여행자들까지 보살피며 거칠어진 손이었다. 대패질하지 않은 나무토막만큼이나 거칠었던 그녀의 손이었지만 그 어떤 손보다 따뜻하고 정성스러운 손길이었다. 하늘이 밝아올쯤 그제야 나는 잠들 수 있었다.

웃지 못할 건 뭐야?

"고산병 증세예요. 내일까지 산소를 마시고 처방된 약을 복용한 뒤에 다시 혈중 산소도를 체크해보도록 하죠."

예상대로 고산병이었다. 침대에 누우니 옆집 아주머니같이 푸근한 얼굴을 가진 간호사 두 분이 와서는 내게 산소마스크를 씌워주셨다. 낡은 페트병에서 하얀 솜을 꺼내 링거 맞을 자리를 문지르는데 알코올 솜이라기엔 너무 보송하다.

한때 다른 용도로 쓰였을 페트병과 거기서 나온 알코올 없는 알코올 솜에 황당한 웃음이 터진 건 우리뿐인듯했다. 주사를 놓아 준 간호사는 걷어 올린 내 팔을 보고 놀라더니 이내 다른 간호사들과 우르르 함께 돌아왔다.

낡은 건물만큼이나 열악해 보이는 병실 침대에 누우니 옆집 아주머니같이 푸근한 얼굴을 가진 간호사 두 분이 와서는 산소마스크를 씌워주셨다.
 낡은 건물만큼이나 열악해 보이는 병실 침대에 누우니 옆집 아주머니같이 푸근한 얼굴을 가진 간호사 두 분이 와서는 산소마스크를 씌워주셨다.
ⓒ 김산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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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피부 좀 만져봐. 얼마나 하얗고 부드러운지 모르겠다니까."

라다크 말을 못해도 무슨 말인지 알 수 있는 리얼한 표정으로 수다를 떨었다. 잠시나마 그들의 관심거리가 된 나는 웃음이 나왔다. 히말라야 아래에서의 병원 신세라니. 다시 겪고 싶지는 않지만 결론적으로 나쁜 일은 없었으니 한 번의 좋은 경험이지 않은가.

반으로 자른 페트병에서 하얀 솜을 꺼내 링거 맞을 자리를 문지르는데 알코올 솜이라기엔 너무 보송했던 게 함정이었다.
 반으로 자른 페트병에서 하얀 솜을 꺼내 링거 맞을 자리를 문지르는데 알코올 솜이라기엔 너무 보송했던 게 함정이었다.
ⓒ 김산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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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 이제야 좀 살만한 갑다. 산소호흡기 끼고 있으면서 웃음이 나나?"

밤새 내 곁을 지키느라 한숨도 못 잔 15년 지기 친구 J가 웃는 내 얼굴을 보며 한 마디 한다. 듣고 보니 내가 생각해도 이 상황에서 웃고 있는 내 모습이 다행스러우면서도 어처구니가 없다. 연이은 나의 대답에 J는 못 말리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당연하지. 내 생 최악의 고통에서 살아났는데, 웃어야지 않겠어? 그런 의미로 마스크 낀 내 모습 사진 한번 찍어줄래?"       

병실의 내부. 고산병 환자들이 끊이지 않는 탓에 병실 곳곳에는 산소통이 가득했다.
 병실의 내부. 고산병 환자들이 끊이지 않는 탓에 병실 곳곳에는 산소통이 가득했다.
ⓒ 김산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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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라다크, #레, #고산병, #판공초, #용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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