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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 캐릭터를 이용한 트레킹 표지판. 유명한 거창의 수승대 트레킹 코스를 알리는 표지판.
▲ 수승대 트레킹 표지판 사과 캐릭터를 이용한 트레킹 표지판. 유명한 거창의 수승대 트레킹 코스를 알리는 표지판.
ⓒ 곽동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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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 좀 발랐다. 이 기사를 작성하고 있는 지금도 허리와 팔목이 욱신거린다. 손끝도 시려서 키보드가 부자연스럽게 터치된다. 이게 다 10여 일간의 사과작업 때문에 얻은(?) 증상이다.

지난 8월 21일. 필자는 전라북도 무주를 통해 경남 거창군 고제면으로 진입했다. 일명 '무진장'의 하나로 불리는 무주군은 백두대간인 덕유산과 삼봉산 등을 두고 거창군과 남북으로 맞닿아 있다. 그래서 무주 읍내에서 출발하는 무진장 시골버스를 타면 거창군 접경지역에 닿을 수 있다.

# 사과로 유명한 무주군 무풍면과 거창군 고제면

이렇게 두 지역이 인접해 있으니 특산품도 유사하다. 삼봉산 북쪽에 있는 무주군 무풍면과 남쪽에 있는 거창군 고제면 둘 다 사과가 특산품이다. 무주 무풍 사과의 명성을 잘 아실 독자들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거창군 고제 사과에 대해서는 '금시초문'일 분들이 많을 것이다. 어쩌면 '고제면'이라는 지명도 처음 들어보시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행여나 이런 분들도 있을지 모른다.

"거창하면 딱히 생각나는 게 없는데... 한국전쟁 때 일어난 거창 신원 민간인 학살은 알겠는데... 그나저나 거창이 사과 산지였어?"

거창군 고제면에 위치한 사과테마파크의 가로등
▲ 사과 가로등 거창군 고제면에 위치한 사과테마파크의 가로등
ⓒ 곽동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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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거창은 사과 산지다. 그 거창 사과의 중심에 고제면이 있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고제면에는 삼봉산이 자리잡고 있다. 해발 1254미터인 삼봉산은 거창의 주산으로 그 일대는 큰 일교차를 이용한 고랭지 농업이 발달해 있다. 그렇게 큰 일교차는 사과의 당도를 현격히 높여주는 '촉매제' 역할을 해준다.

그렇게 삼봉산 아래 자락에 위치한 거창군 고제면을 방문했던 건 사과작업을 하기 위해서였다. 추석 명절을 앞두고 한참 손이 부족할 시기이기에 기꺼이 가서 손발 노릇을 하려고 했던 것이다. 물론 품삯은 받았다. 대신 일당 이상의 값어치를 해준다는 생각으로 임했다.

'올해로 벌써 사과따기 3년 차! 농장주들한테 프로페셔널한 모습을 보여주겠어!'

# 무척 중요한 사과의 색깔

필자는 앞서 무주군 무풍면에서 시골버스를 타고 거창군 고제면으로 진입했다고 언급했다. 차창 밖으로나마 무풍면의 사과농장들을 관찰할 생각으로 그렇게 한 것이다. 관찰을 하다보니 좀 이상한 점이 발견됐다. 사과에 '색깔'이 안 났던 것이다. 색깔? 무슨 색깔?

무풍면과 마찬가지로 고제면에서 생산되는 사과는 홍로라는 품종이다. 홍옥과는 다른 품종인 홍로는 차례상에 오르는 사과로 추석을 앞두고 수확을 한다. '홍동백서'할 때 '홍'의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홍로인 것이다. 한가위 차례상은 햅쌀과 햇과일 등 그해 가을걷이로 얻어진 재료들을 올려야 하기에, 추석 직전에 출하되는 홍로는 자연스럽게 차례상에 오르는 과일 품목 1순위에 속한다.

홍로는 새빨간 사과다. 한 여름 일조량을 풍부하게 받아야 빨게진다. 
사진에 등장한 사과는 색이 아직 안 들었다.
▲ 홍로 홍로는 새빨간 사과다. 한 여름 일조량을 풍부하게 받아야 빨게진다. 사진에 등장한 사과는 색이 아직 안 들었다.
ⓒ 곽동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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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차례상에 올려지는 과일이기에 홍로는 출하시기가 명확하다. 이를 다르게 이야기하면 모든 생산 역량을 추석이라는 한계 시간에 맞춰야 한다는 뜻이다. 만약 추석을 넘겨 생산이 된다면 그만큼 시장에서의 가치는 감소될 수 있다. 사람들이 택배로 받아볼 수 있게 최소한 추석 연휴 이틀 전에는 작업을 완료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만큼 홍로는 시간에 쫓기며 작업을 할 수밖에 없는 품종이다.

# 잎사귀 따다가 사과를 날려 먹기도...

색깔이 안 난 건 일조량이 적었기 때문이었다. 8월의 뜨거운 햇살이 스며들어야 백설공주가 먹었던, 그 빨간 사과처럼 홍로가 붉은 색을 띤다. 하지만 올해 8월은 일조량이 적었고, 그만큼 사과에 붉은 기운이 들지 않았다. 이런 '색깔의 문제' 때문에 농장주들은 발을 동동 굴렀다. 어떤 농장주는 하늘을 원망하기까지 했다.

색깔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농장주들은 갖은 노력을 마다하지 않았다. 색깔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뭐니 뭐니 해도 강한 햇살이 최고다. 하지만 그건 인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 그래서 '잎따기'를 해준다. 사과 주변에 달려있는 잎사귀들을 제거하는 것이다. 무성하게 감싸고 있는 잎사귀들을 제거함으로써 사과에 직접 도달하는 햇볕의 양을 높여주는 것이다.

색이 잘 든 홍로
▲ 홍로 색이 잘 든 홍로
ⓒ 곽동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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잎따기는 매해 수확에 앞서 꼭 진행되는 작업이다. 하지만 올해는 잎따기가 더 강화됐다고 한다. 색깔이 안 났던 만큼 잎사귀 제거에 박차를 가했던 것이다. 그런 잎사귀 제거가 필자의 첫 번째 사과작업이었다. 

햇살을 더 잘 받도록 하기 위하여 열심히 잎사귀들을 제거했다. 그러다 애꿎은 가지도 몇 개 '제거'했다. 또한 알이 굵은 멀쩡한 사과들도 날려먹었다. 농장주의 시선이 싸늘했다. 

# 사과를 들었다 놨다!

색깔이 안 났다고 사과 따기를 계속 미룰 수는 없는 법! 농장주들은 8월 마지막 주를 기점으로 사과수확에 나섰다. 이제 고제면은 면 전체가 사과 수확에 매달리게 됐던 것이다. 필자는 매일 아침 마음을 다잡고 사과밭으로 향했다.

"열심히 일해서 사람들한테 누를 끼치지 않겠어. 내 명예를 지키겠어!"

하지만 저렇게 아침마다 한 다짐은 밤이 되면 달라졌다. 허리와 팔에 붙인 파스를 갈며 조용히 혼자말을 했다.

'내일 비가 왕창 와서 작업이나 취소됐으면...'

그만큼 사과 작업은 만만한 작업이 아니었다. 매일밤 숙소에 돌아와 허리와 팔다리를 주물러야 했을 정도로 고된 일이었다.

사과수확 작업에서 가장 고역이었던 건 컨테이너 박스를 옮기는 일이었다. 일단 사과나무에서 딴 사과는 일괄적으로 컨테이너 박스에 담기게 된다. 그렇게 쌓인 컨테이너를 화물차에 적재시키고 선별장으로 향했다. 선별장에서는 선별을 위해 컨테이너를 잘 쌓아 놓았다. '들었다 놨다, 들었다 놨다' 계속 컨테이너를 상차, 하차하는 것이 내 임무였던 것이다.

저 노란색 박스를 컨테이너라고 부른다. 저 컨테이너를 '들었다 놨다'했다. 
아주 삭신이 다 쑤셨다.
▲ 컨테이너 저 노란색 박스를 컨테이너라고 부른다. 저 컨테이너를 '들었다 놨다'했다. 아주 삭신이 다 쑤셨다.
ⓒ 곽동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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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었다 놨다'를 계속하다 보니 사람이 무척 단순해졌다. 컨테이너 중에는 사과가 덜 담긴 것들도 있었고, 많이 담긴 것들도 있었다. 적게 담긴 것에는 콧노래를 불렀고, 가득 담긴 것에는 속으로 욕을 해댔다. 컨테이너를 '들었다 놨다' 하면서 콧노래와 욕을 번갈아 했던 것이다.

그렇게 '들었다 놨다'를 무한반복한 날은 밥숟가락도 잘 잡히지 않았다. 음식을 뜨다가 실제로 숟가락을 놓친 적도 있었다. 또한 펜을 잡기 힘든 날도 있었다. 작업일지를 작성하려다 손가락이 시큰거려 그만 둔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 직접 작업한 사과라 그건가? 더 맛있네!

그래도 버텼다. 매일밤 온 몸을 파스로 도배하며 버텼다. 사과 농장주들은 매년 이렇게 고되게 작업을 해왔는데... 겨우 이거 가지고...

그렇게 그렇게 버티다 보니 마침내 필자가 잡아두었던 서울 상경일이 다가왔다. 잘 버텼던 셈이다. 어떤 농장주는 필자에게 일당 이외에 사과 한 박스를 선물로 보내주셨다. 또 어떤 농장주는 다음해에도 꼭 같이 자기와 사과작업을 하자고 신신당부를 하셨다. 이런 반응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 필자가 일을 못했던 건 아닌 것 같다. '들었다 놨다'의 역경을 뚫고 애초 다짐했던 명예를 사수했던 것이다.

추석 과일의 대명사 사과. 그 사과가 식탁, 혹은 차례상에 오를 수 있었던 건 수많은 사람들의 땀과 눈물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번 사과작업은 그 땀과 눈물의 의미를 다시 한 번 곱씹어보는 좋은 시간이었다.

필자의 집 한 편에는 '들었다 놨다'하며 작업했던 사과들이 놓여 있다. 식사를 한 후 후식으로 베어 먹는 사과 맛이 좋다. 아삭아삭... 소리까지 맛있다. 내가 작업한 사과라서 더 맛있는 건가?

사과작업을 하는 분들이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다. 멀리 삼봉산 자락이 보인다.
▲ 사과작업 사과작업을 하는 분들이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다. 멀리 삼봉산 자락이 보인다.
ⓒ 곽동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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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안녕하세요? 역사트레킹 마스터 곽작가입니다.

http://blog.daum.net/artpu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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