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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0일은 한국의 시민사회에 의미있는 날이다. 1994년 그날, 한국의 대표적 시민단체인 참여연대가 창립했다. 그로부터 20년, 참여연대는 한국 사회 발전의 순간에 함께해왔다고 평가받는다. <오마이뉴스>는 참여연대와 공동으로 참여연대의 과거와 현재를 짚어보고, 미래를 전망하는 시간을 마련했다. [편집자말]
'성명·논평 발표 5240건, 단행본·정기간행물 출간 514건. 1인시위·집회 2000건, 고소고발, 민·형사소송 제기 464건. 입법 청원·발의 176건….'

이태호 참여연대 사무처장
 이태호 참여연대 사무처장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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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94년부터 2013년까지 참여연대의 활동을 숫자로 나타낸 것이다. 내용으로 보자면 부패방지법 제정, 2000년 총선 낙천·낙선운동, 소액주주 운동을 비롯해 2014년 현재에도 굵직하고 의미 있는 사회 변화를 주도해왔다. 참여연대는 박원순 서울시장,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김기식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박원석 정의당 의원 등 주요 인사를 배출했다(참여연대 20년 약사).

한국의 대표적 시민단체, 참여연대 창립 20주년을 맞아 이태호 사무처장을 지난 4일 오전, 서울 종로구 통인동 집무실에서 만났다. 그와 함께 1시간 30분가량, '스무살 참여연대'의 오늘과 미래를 짚어봤다. 그는 서울대 서양사학과 1986학번으로 1989년 서울대 총학생회 사무국장을 맡았던 학생운동권 출신이다.

이태호 처장이 기억에 남는 일로 꼽은 것은 지난 2010년의 일. 백발 할아버지들이 LPG 가스통을 들고 참여연대 입구를 막았다. 경찰이 제지했지만 막무가내였다. 그들은 '종북' '친북' '이적단체'라며 위협했다. 그해 6월, 참여연대가 유엔에 천안함 침몰사고 민군 합동조사단의 발표에 이의를 제기하는 서한을 보낸 뒤였다. 하지만 보수 단체의 공격에도 참여연대는 회원수가 2000명이나 늘었다.

여론은 불리했지만 오히려 시민들은 자신을 응원했고 그 힘이 20년을 이어올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됐다. 이태호 처장은 "20년 동안 권력 감시 단체로서 시민 지지는 물론 재정적인 후원을 통해서 잘 버텨왔다"라며 "시민들이 지켜준 덕분에 재정 자립을 하면서 어떤 정권에서도 독립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20년 간 시민들이 달라졌다... 시민이 놀 수 있는 난장 만들어야"


"참여연대는 시민 동반자로서 시민들이 놀 수 있는 '난장'(亂場)을 만들어야 한다"
 "참여연대는 시민 동반자로서 시민들이 놀 수 있는 '난장'(亂場)을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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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처장은 보수-진보의 진영화를 경계했다. 보수 정권 2기, 사회의 보수화 속에서도 진보와 보수 세력이 서로를 그 자제초 비난하거나 모욕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소통 여지를 없애고 사회 발전을 가로막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는 "'이명박근혜' 정부 하에서 사회의 보수화보다 보수-진보 이념의 진영화에 맞서야 한다"라며 "이분법적 사고를 벗어나 진영 간 모욕과 비난을 자제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지난 20년간 시민들의 참여는 대폭 늘었다. 구경만 하던 시민들이 이제는 직접 피켓을 들었다. '참여형 시민'이 늘어나고 있다는 뜻이다. 세월호 침몰사고 이후 '잊지 않겠다'는 시민들의 행동이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온라인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을 통한 결집이 눈에 띈다.

이에 대해 이 처장은 "참여연대는 시민 동반자로서 시민들이 놀 수 있는 '난장'(亂場)을 만들어야 한다"라면서 "하지만 SNS를 통한 사회 참여가 폭발성이 크지만 휘발성도 강하다, 참여연대는 꾸준함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운동을 이끌어가야 한다"라고 말했다.

참여연대는 창립 20주년을 맞아 분주하다. 참여연대는 최근 <감시자를 감시한다>는 이름의 책을 출간했다. 20년 활동과 조직을 분석하고 평가한 '참여연대를 위한, 참여연대의 보고서'다. 또 지난 1일에는 '참여연대 20년 도전과 성찰 그리고 새로운 모색'이라는 주제로 심포지엄을 열기도 했다. 오는 15일에는 서울 세종로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창립행사를 연다. '꿈꾸는 청년, 스무살 참여연대'라는 이름으로.

다음은 이태호 사무처장과 나눈 일문일답이다.

"1987년 체제의 적자?...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급성장"

- 참여연대에는 어떤 계기로 들어오게 됐나.
"창립 멤버는 아니다. 참여연대가 1994년 9월에 만들어졌으니까 그 다음해 5월에 상근 간사로 들어왔다. 사실상 공채 1기 아니, 낙하산 1기다.(웃음) 창립 멤버는 1980년대부터 학생운동을 했거나 노동운동을 했던 분들이다. 나는 상대적으로 1990년대 중반까지 학생운동을 했고, 참여연대를 만든다는 것을 알고 함께 일하게 됐다."

- 20년 가까이 지내면서 기억에 남는 사업이 있다면. 
"처음으로 했던 일이 부패방지법 제정운동이다. 1995년에 삼풍백화점이 무너졌다. 세월호 침몰사고처럼 큰 충격이었다. 또 그해에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 밝혀졌다. 그러면서 반부패 척결이 1990년대 중반의 화두였다.

반부패 운동의 연장에서 부패 인물을 정리하다가 1998년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면서 입각해서는 안 되는 부패 인사 100명을 발표했다. 그 작업을 바탕으로 한 것이 2000년 총선에서 낙천·낙선운동이다.

또 지난 2010년에는 천안함 침몰사고 관련 민군 합동조사단의 발표에 이의를 제기하는 항의서한을 유엔에 보냈다. 이에 보수 언론과 보수 단체가 '친북' '종북'으로 우리를 매도했다. 대한민국어버이연합 할아버지들이 참여연대 앞에서 LPG 가스통을 들고 폭파시키겠다고 했다. 그렇게 큰 파장을 일으킬 줄 몰랐다. 유엔에 항의 서한을 보내는 것은 계속있던 일이다. 오히려 이 일로 회원 수가 2000명가량 늘어나기도 했다."

- '참여연대는 1987년 체제의 적자'라는 표현도 있다. 그만큼 1987년 이후 한국사회의 실질적 민주주의를 위해 참여연대가 나섰고 이를 잘 포착했다는 지적이다.
"'1987년 체제'의 수혜를 받았다는 말은 어폐가 있다. 참여연대가 급성장했던 시기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다. 부패방지법 제정 운동했던 것도 부패가 심해서 돈이 어디로 다 새서 비용을 줄이자는 취지도 있었다. 이렇게 해서는 경제를 제대로 유지할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외환위기가 왔다.

외환위기는 사회 체질을 바꿨다. 반부패, 복지, 재벌개혁이라는 화두가 국가 의제로 등장했다. 고용이 곧 복지를 보장한다고 했지만 비정규직 양산으로 복지는 제도로서 별도로 존재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그리고 재벌을 개혁해야 사회가 건전해질 수 있다고 믿었다. 참여연대는 이 세 가지를 주도해 나갔다. 재벌 개혁을 위해서는 소액주주운동과 부패방지법 제정, 복지 분야에서는 국민생활최저선 확보 운동, 노령 수당 지급 소송 등을 해나갔다."

"뿌리 깊은 보수-진보 진영화에 맞서야"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진영화에 맞서야 할 것 같다. 2000년대 중후반부터 뉴라이트 등 보수 성향의 시민단체가 태어났다. 이후로 많은 사회 문제에 진보와 보수라는 진영 논리가 팽배해지고 있다. 이분법적 사고를 벗어나야 한다.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진영화에 맞서야 할 것 같다. 2000년대 중후반부터 뉴라이트 등 보수 성향의 시민단체가 태어났다. 이후로 많은 사회 문제에 진보와 보수라는 진영 논리가 팽배해지고 있다. 이분법적 사고를 벗어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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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는 이후 '2008년 체제', 이른바 '이명박근혜'로 이어지는 사회의 보수화에 맞서야 할 국면이 아닌가 생각한다. '스무살 참여연대'의 과제가 아닐까.
"보수화보다는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진영화에 맞서야 할 것 같다. 2000년대 중후반부터 뉴라이트 등 보수 성향의 시민단체가 태어났다. 이후로 많은 사회 문제에 진보와 보수라는 진영 논리가 팽배해지고 있다. 이분법적 사고를 벗어나야 한다.

진영 논리는 사회 발전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복지를 위해서 세금을 더 걷으려면 사회적 대화가 필요하다. 대화 상대가 보수일 수 있다. 시민운동이 조금 더 건전해지려면 상대와 협력하고 대화해야 한다. 진영 간의 모욕과 비난은 자제해야 한다."

- 20년 동안 시민사회가 어떻게 바뀌었는가. 그동안 시민사회 자양분이 많이 바뀌었다. 구경하던 시민에서 이제는 피켓을 드는 참여형 시민이 늘었다.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시민단체가 앞장섰다. 그런데 알다시피 2002년 효순·미선 추모 촛불집회, 2004년 노무현 탄핵 촛불집회, 2008년 광우병 쇠고기 촛불집회를 보면 시민들이 스스로 나서고 SNS와 온라인을 통해서 사회적 주체로 거듭나고 있다.

이런 과정에서 참여연대는 앞서가는 시민들의 동반자로서 시민들이 놀 수 있는 '난장'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민 행동의 가교 역할 같은 게 필요하다고 본다. 하지만 SNS를 통한 사회 참여가 폭발성이 크면서도 휘발성이 강하다. 그래서 우리는 꾸준함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운동을 해야 한다.

세월호 침몰사고 이후 만들어진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에서도 참여연대 자체가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중요한 일원으로서 유가족들을 소리 없이 돕는 역할, 이들을 체계적으로 지원하는 방식으로 변하고 있다."

- 현재 참여연대는 권력 감시와 민생경제, 두 가지 축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 같다. 앞으로 지향하는 방향은?
"권력 감시는 아무리 열심히 해도 충분하지 않을 정도로 참여연대의 존립 근거다. 전통적인 권력 감시는 권력 남용과 부패를 막는 것이었다. 그게 기본인데, 신자유주의 체제하에서 권력 감시의 방향이 무엇일까 하고 고민한다. 복잡해졌다는 얘기다.

2000년대 이후로 여러 나라와 자유무역협정(FTA)가 체결됐고 국경 밖의 권력에 의해 한국 경제가 좌우된다. 국가는 헌법에 따라 국민의 권리를 양도해서 공적질서를 유지하도록 위임받은 실체인데, FTA 영향으로 다른 나라에 의해 우리 주권이 흔들리고 있다. 해외 자본에 의해 1대 99의 사회를 양극화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규정된다.

그런 측면에서 민생희망본부가 있다. 경제민주화운동 부서다. 경제민주화가 확장되면, 경제적 권리뿐만 아니라 사람으로서 최소한의 인권과 문화적 권리까자 보장될 수 있다.

정보독점과 정보권력에 대한 감시가 차세대 권력 감시에서 중요해진다. 새롭게 등장하는 독점화된 권력에 감시가 중요해졌다.
 정보독점과 정보권력에 대한 감시가 차세대 권력 감시에서 중요해진다. 새롭게 등장하는 독점화된 권력에 감시가 중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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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는 권력 감시 측면에서 국정원·국방부 등 안보권력과의 문제도 있다. 또 빅데이터로 인한 개인정보 보호 논란 등 정보 권력을 감시하는 문제도 있다. 대부분의 인권침해는 온라인에서 일어나기 쉽다. 정보독점과 정보권력에 대한 감시가 차세대 권력 감시에서 중요해진다. 새롭게 등장하는 독점화된 권력에 감시가 중요해졌다."

- 그런 점에서 전문성을 키워야 할 것 같다.
"두 가지다. 상근 간사의 역량과 전문가들의 네트워크 강화가 중요하다. 세월호 사고의 원인에 여러 가지가 있지만 전문가들의 문제 제기가 없던 것도 주요한 원인 중 하나다. 우리 사회 전문가들이 권력과 자본에 귀속돼 있기 때문에 말을 못하는 것이다. 전문가의 표현 자유가 취약하다. 말하면 밥줄이 끊겨 버리니까. 그런 차원에서 공익제보자 보호도 중요하다.

미국같은 경우에는 전미과학자협회가 중요한 정책 결정에 많은 의견을 낸다. 유럽의 핵 전문가들은 핵발전소와 관련해서 비판적인 목소리를 낸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이런 움직임이) 극소수에 불과하다. 그런 점에서 전문가를 조직하고 연대할 수 있도록 더 노력해야 한다."

- 참여연대는 100% 순수 회비로 운영된다. 재정에는 큰 문제가 없나. 더 큰 사업을 하고 싶을 때, 돈 걱정은 안 하시나. 계속 정부 후원은 안 받을 것인가.
"1998년 이후부터 정부 지원 프로젝트는 하지 않았다. 순수 회비나 후원으로 자립을 유지했다. 현재 1만4500여 명의 시민이 후원하고 있다. 20년 동안 권력 감시 단체로서 시민 지지는 물론 재정적인 후원을 통해서 잘 버텨왔다고 생각한다. 시민들이 지켜준 덕분에 재정 자립을 하면서 어떤 정권에서도 독립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태그:#참여연대, #이명박근혜, #진영논리, #조희연, #박원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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