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가난한 사람들 안정적으로 집 살 수 있게 해줘도 모자랄 판에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어요. 정부가 국민들을 위한 주거정책을 짜는 게 아니라 철저히 건설사, 집 있는 사람들을 위한 정책만 내놓고 있어요."

퇴행적. 조명래 단국대 도시계획과 교수는 정부의 '9·1 부동산 대책'을 가리켜 이같이 평했다. 그는 "특히 재개발 정책이 지난 2006년 이전으로 돌아갔다"라고 지적했다.

서승환 국토교통부 장관은 1일 기자회견을 열고 '규제 합리화를 통한 주택 시장 활력 회복 및 서민 주거안정 강화 방안'(9·1 부동산 대책)을 내놨다. 그동안 대단위 주택공급 정책의 핵심이었던 신도시 건립을 멈추고 재건축을 활성화하겠다는 내용이다.

이에 대해 부동산 전문가들은 강한 우려를 보였다. 주택 공공성이 약화되고 월세·전세 사는 이들이 더 어려워진다는 이유 때문이다. 이들은 "주택 가격 안정에 정부가 손을 놓은 셈"이라고 입을 모았다.

30년 넘은 아파트면 재건축 가능...'신도시는 안 짓겠다'

국토부가 내놓은 '규제합리화를 통한 주택시장 활력회복 및 서민 주거안정 강화방안'(9·1 부동산대책) 설명 자료.
 국토부가 내놓은 '규제합리화를 통한 주택시장 활력회복 및 서민 주거안정 강화방안'(9·1 부동산대책) 설명 자료.
ⓒ 국토교통부

관련사진보기


이날 나온 정부 대책의 핵심은 '재건축 금지 연한 완화'다. 지금까지는 지은 지 40년이 넘은 건축물만 재건축을 허락했는데 이제는 30년만 넘어도 가능케 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구조에 전혀 문제가 없는 아파트도 30년만 넘으면 사실상 재건축이 가능해졌다. 정부가 재건축 안전진단에서 15%를 차지하던 주거환경평가 비중을 40%로 끌어올렸기 때문이다. 주거환경평가는 주차장 수, 배관상태, 층간소음, 에너지 효율 등을 보기 때문에 붕괴 위험도를 따지는 현재 기준에 비해 재건축 승인을 받기가 쉽다.

최근 30년 간 수도권 주택 부족 해소를 맡았던 대규모 신도시 건립은 앞으로 할 수 없게 됐다. 정부가 신도시 건설의 근거인 택지개발촉진법을 폐지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아울러 오는 2017년까지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대규모 공공택지 지정을 중단하고 주택 공급시기도 조정하기로 했다. 

큰 구도에서 기존의 저렴한 공급은 줄이면서 재건축을 통한 공급을 활성화하겠다는 정부의 의도가 엿보인다. 변창흠 세종대 행정학과 교수는 "이렇게 되면 주택가격 안정은 어려워진다"라고 설명했다.

대부분의 재건축은 도심과 거리가 가깝고, 해체 후 다시 짓기 때문에 대규모 개발에 비해 건설 단가가 높다. 변 교수는 "기존 신도시 건설은 문제점도 있지만 주택 가격을 안정시키려는 목적도 있었다"라면서 "이제 정부가 주택 공급을 저렴하게는 하지 않겠다는 이야기를 직설적으로 한 셈"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전체적으로 볼 때 이 정부가 주택 정책에 접근하는 기본 취지는 건설 경기 활성화를 통한 경기 부양이다, 거기에 '주택 가격 유지'가 추가됐다고 보면 된다"라고 덧붙였다. 재건축 활성화를 통해 주택을 공급하되 집값을 부양하겠다는 게 정부 의도라는 이야기다.

"시민들, 또 건설사에 속아 재건축 나설 위험성 높아"

재건축을 활성화하는데 왜 주택 가격이 오를까. 변 교수는 국토부가 이번에 완화시켜 내놓은 재개발·재건축 공공관리제도를 지목했다.

공공관리제도란 재개발·재건축 사업의 투명성 확보를 위해 지자체에서 공공관리를 위탁받은 자만 행정적·재정적 지원을 할 수 있게 하는 제도를 말한다. 재개발·재건축 조합과 시공사 사이에 만연한 유착과 비리를 공공 개입으로 줄여보자는 취지다.

이 제도의 핵심은 재개발·재건축 조합이 사업시행 인가를 받은 이후에만 시공사 선정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하면 설계도면과 시공비가 정해진 상태에서 시공사가 확정되기 때문에 건설사가 분양가를 나중에 과도하게 부풀리기 어렵다. 그런데 정부가 이를 '토지 소유자 과반수 이상이 원하면 인가 이전에도 시공사를 선택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한 것이다.

변 교수는 "재개발을 하려면 거액의 돈이 들어가는데 보통은 이 돈을 투자해주는 조건으로 시공사가 선정된다, 시공사는 당연히 미리 투자한 돈을 시공 과정에서 충분히 뽑아내려고 한다"라고 설명했다.

시공비가 높아지면 재개발 이후 분양 건물의 가격과 조합원들이 부담해야 할 추가 분담금도 덩달아 오르게 된다. 이는 못 사는 동네를 재개발할수록 원주민 재정착률이 낮은 주요 이유 중 하나다. 건설사는 재개발로 돈을 버는데 원래 살던 주민은 쫓겨나는 구도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아래 경실련)은 이날 논평을 내고 정부가 내놓은 9·1 부동산 대책이 서민 주거 안정과는 동떨어진 '건설사 일감 확보용 대책'이라고 질타했다. 경실련은 "정부는 기부채납 제도마저도 완화해 재건축 사업성을 높여놨다"라면서 "시민들이 또다시 건설사에 속아 재건축 소용돌이에 빠질 위험성이 높다"라고 지적했다.

"전·월세 사는 서민들, 주거난 심해질 것"

한 시민이 공인중개사 사무소 앞에서 아파트 시세를 보고 있다(자료사진).
 한 시민이 공인중개사 사무소 앞에서 아파트 시세를 보고 있다(자료사진).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정부는 주택 청약제도에서 2주택 이상 보유자들에게 주던 감점 조항도 폐지했다. 집을 보유한 사람들이라도 집을 더 사라는 신호다. 조명래 교수는 이같은 재건축 활성화 방안이 소득이 충분치 않은 서민 계층에 직격탄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조 교수는 "저소득층 약자를 위해서 정책적으로 주택을 공급하기 위해 도입된 것이 무주택자 가점제, 2주택 이상 보유자 감점제, 공공임대주택 확대의무 등의 정책"이라면서 "정부가 그런 정책을 강화해도 시원찮을 판에 있던 내용도 다 폐지하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정부는 2017년 1월부터는 85㎡ 이하 민영주택의 경우 40% 안의 범위에서 지자체장이 가점제를 자율 운영할 수 있게 했다. 운영 내용에 따라서는 지금까지 정부가 유지해왔던 무주택자 우선 공급원칙이 무너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조 교수는 "집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시장에서 집을 더 쉽게 살 수 있게 하는 것은 주택 약자들의 시장 접근성을 약화시키는 부작용이 따른다"라고 강조했다.

저렴한 주택들의 대규모 멸실도 9·1 부동산 대책의 주요 부작용으로 예상된다. 이날 대책에 따라 새롭게 재건축 대상에 포함되는 서울지역 아파트는 24만여 채. 대부분 강북 지역 아파트다.

선대인경제연구소의 선대인 소장은 "재건축 허용 연한을 완화할 경우 단기적으로 헐리는 주택이 급증하기 때문에 특히 전세·월세를 사는 서민 주거난이 심해질 수밖에 없다"라고 지적했다.


태그:#9.1 부동산, #부동산 대책, #서승환, #국토부, #변창흠
댓글19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