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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어머니 김봉준 작. 이소선 여사 추모 그림
▲ 위대한 어머니 김봉준 작. 이소선 여사 추모 그림
ⓒ 김봉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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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선은 김진수 어머니를 날마다 만났다. 함께 머리를 맞대고 어떻게 해서든지 해결해야 하겠다고 생각했지만,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었다. 그는 별별 궁리를 다 하다가 공장장 유해풍을 생각했다.

이소선은 김진수 어머니를 앉혀놓고 공장장을 찾아가서 싸워야 한다고 설득했다. 밤새도록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를 가르쳐주고 연습까지 했다.

"네 놈이 우리 아들을 저 지경으로 만들었으니 우리 아들을 살려내라!"

김진수 어머니는 이소선이 하는 대로 따라서 소리를 지른다. 김진수 어머니는 밤새워 연습을 마치고 공장장 집을 찾아갔다. 그런데 공장장은 갈 때마다 집에 안 들어왔다는 것이었다. 이소선은 김진수 어머니 혼자만 보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 작전을 바꾸기로 했다. 이소선과 청계피복노조 간부들은 김진수 친구들하고 함께 공장장 집에 쳐들어갔다.

"공장장 이 새끼, 사람을 죽게 만들어 놓고 어디 갔단 말이야!"

이들은 집안을 발칵 뒤집어놓았다.

"공장장 안 찾아내면 올 때까지 여기서 죽치고 살 거니까 알아서 하시오. 어서 가서 공장장 유해풍이 찾아와요!"

이들은 방 안에 진을 치고 구호를 외쳤다. 이소선은 김진수 어머니에게 나를 따라 해보라고 했다. 그리고 이소선은 고함 지르는 법과 손 놀리는 것도 가르쳐 주었다.

"공장장이 시켜서 내 아들 죽었으니 살려내라!"

김진수 어머니는 그 말만 하고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다른 말도 하고 설쳐대야 할 텐데 김진수 어머니는 가르쳐준 한 마디만 하고 가만히 있는 것이었다. 참으로 답답했다. 직접 당사자인 김진수 어머니가 앞장서서 싸워야 지원하는 이들이 보조를 맞출 텐데, 어머니가 그 모양이니 이들이 나서서 싸울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이소선이 김진수 어머니와 공장장 집에 쳐들어가서 새벽까지 난리를 치고 싸우니까 경찰이 알고 들이닥쳐 모두가 연행되었다.

진수 어머니만 보내고 이소선만 잡아... "왜 옆에서 선동했냐"

경찰은 김진수 어머니는 내보내고 이소선만 붙잡아두었다. 당사자는 가만히 있는데 옆에서 선동했다고 해서 선동죄, 주거 침입했다고 해서 주거침입죄, 공장장 부인을 감금했다고 해서 불법감금죄 등 별별 죄목을 붙이더니 즉결 9일을 선고했다. 재판에서 이소선이 잘못했다고 말하면 용서해주겠다고 했다.

"나는 잘못한 것 없다. 공장장이 깡패를 사서 사람을 죽게 만들어놓고 저렇게 방치해 버렸지 않은가. 그 공장장은 처벌하지 않고 놔두면서 왜 우리만 가지고 처벌을 하는 것이냐!"

이소선은 있는 그대로 말했다. 결국 구류 9일을 살았다. 그가 구류를 사는 동안 영등포 산업선교회의 목사들하고 민주화운동하는 재야인사들이 계속 면회를 왔다. 

구류를 살고 나오니 결국 김진수는 죽어 버렸다. 그동안 식물인간으로 두 달간이나 링거만  맞고 있다가 끝내는 숨을 거둔 것이었다. 김진수가 죽고 난 뒤에도 회사에서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시체를 병원에 놓고 책임 문제와 보상 문제 때문에 무려 한 달 동안을 싸웠다.

이소선은 매일 김진수 어머니한테 찾아가서 싸우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이소선과 청계피복노조 간부들이 함께 노총·회사·경찰서·교회 등을 쫓아다니며 악착같이 싸웠다.

어느 날이었다. 최종인하고 공장장 집에 가려고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소선은 잠깐 화장실에 가려고 몇 걸음 옮기고 있었다. 그때 난데없이 체격이 우람한 사내들이 그를 둘러싸더니 네모 반듯한 지프차에 달랑 실어 넣어버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어디론가 갔다.

이소선은 지하실 같은 곳에 갇혀 버렸다. 함께 있던 최종인도 감쪽같이 모르게 이소선만 붙잡히고 말았다.

"왜 김진수 사건에 개입해서 이렇게 복잡하게 만들고 여러 모로 시끄럽게 하는 겁니까? 당신도 김진수처럼 죽어보려고 그래요?"

그들은 이소선에게 협박을 가했다.

"너희들이 나를 잡아온 것 세상이 다 아는데 한번 죽이고 싶으면 어디 죽여 봐라, 이놈들아!"

이소선은 화가 치밀어 머리로 들이받으면서 싸웠다. 그들은 이소선한테 항복을 받아내기 위해 온갖 모욕적인 고문을 자행했다.

"이놈들, 나는 죽어도 이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끝까지 달라붙어서 싸울 테다."

이소선은 죽기 살기로 대들었다. 그들도 하는 수 없었는지 저녁때쯤 되어서 이소선을 내보내주었다. 불과 7~8시간 동안 당했지만, 그 치욕스러운 순간은 7~8년쯤 되는 것 같았다. 이소선은 나오자마자 또다시 김진수 어머니를 찾아갔다.

결국 이 사건은 6월 19일에야 회사 측으로부터 위자료와 장례비를 받는 선에서 일단락 짓기로 했다.

 김진수의 묘
 김진수의 묘
ⓒ 민종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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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선과 청계노조 간부들은 장례 문제를 논의했다. 김진수 묘를 전테일 묘 옆에 쓰기로 결정했다. 이것마저도 압력이 들어와 싸움을 한 끝에야 모란공원에 안치는 하되 전테일 묘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자리 잡기로 했다.

3월 18일 사고가 나서 5월 16일 숨을 거두고, 6월 25일에야 가까스로 장례식을 치르게 되었다.

노동자의 죽음이 이렇듯 억울하고, 이렇게 외면당한 채, 이렇게 이름 없이 묻혀야 하는가! 이소선은 가슴이 메어지는 울분을 억누를 길 없었다.

덧붙이는 글 | [이소선 평전<어머니의 길>]은 매일노동뉴스와 함께 연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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