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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어머니 김봉준 작. 이소선 여사 추모 그림
▲ 위대한 어머니 김봉준 작. 이소선 여사 추모 그림
ⓒ 김봉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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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에서는 점심을 굶는 노동자에 대한 대책을 당국에 요구했다. 이에 서울시는 중구청을 통해 청계천 노동자와 저소득층을 위한 후생식당을 열어 운영했다. 이 후생식당은 점심을 굶는 청계 노동자들을 위한 급식소 성격을 띠었다.

이 후생식당에서는 국수 한 그릇을 5원에 팔았다. 하루에 300 그릇의 국수를 만들었다.

그러나 무성의하게 만든 국수라 질이 나빴다. 급식시간도 문제였다. 점심시간 1시간 동안만 국수를 파는데 시장의 지게꾼 아저씨들이 먼저 와서 줄을 서버리면 공장의 청계노동자들은 미처 줄을 서지 못해 국수를 먹을 수가 없게 되었다.

이소선은 안 되겠다 싶어 자신이 직접 후생식당에 가서 일을 하겠다고 자청했다. 그런데 후생식당에서 기존에 일하는 사람들은 이소선이 일하는 것을 못마땅해 했다. 이소선은 들은 척도 안하고 무작정 식당에서 일을 했다. 후생식당에 고용되어 일하는 사람들은 국수를 삶기 위해 불에 앉혀놓고는 면이 불어터져도 상관하지 않았다. 이소선은 왜 그런 식으로 일을 하냐고 강력하게 항의했다. 후생식당은 매일 지급되는 국수와 멸치, 파, 고춧가루, 단무지 등도 제대로 다 쓰지 않고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됐다. 이소선은 더 이상 보고 있을 수 없었다.

이소선은 아침 일찍 식당으로 출근했다. 멸치를 넣어서 육수를 끓이고, 파를 썰었다. 단무지도 썰어서 고춧가루로 양념을 만들어주었다. 이소선이 이렇게 앞장서 성심껏 일을 하니 고용되어 일하던 여자들이 구석에서 구시렁거리며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이소선은 아랑곳 하지 않았다. 도리어 책임자한테 조목조목 따지고 들었다.

"하루에 얼마만큼 배당되는가를 따져서 쓰면 되는 것이지 이것 아껴두었다가 뭐 하려고 그러느냐?"

문제는 여러 곳에 있었다. 점심시간에 점심을 못 먹는 노동자한테 최대한 급식을 제공해야 할 텐데 그렇지 않고 그저 시간만 지나면 당장 급한 사람이 와도 무정하게 문을 닫아버렸다.

이소선은 그렇게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하루에 배당되는 양만큼은 급식을 해야 한다면서 늦게 오는 노동자들한테도 국수를 팔았다. 고용인들은 그것마저도 못마땅해서 눈살을 찌푸렸다.

이소선은 잘못된 것은 계속해서 고쳐나갔다. 점심시간이 지나 작업시간에 허둥거리는 노동자들에게 먼저 급식을 했다. 그런 다음에야 비교적 덜 바쁜 지게꾼 아저씨들한테 국수를 말아드렸다.

 후생식당에서 일 하는 이소선
 후생식당에서 일 하는 이소선
ⓒ 전태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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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엄마"하며 치맛자락을 붙잡던 그 아이

지게꾼 아저씨들한테 배식을 하면서 우스운 일이 하나 있었다.

어떤 지게꾼 아저씨한테 아이가 하나 있었다. 그 아이는 날마다 아버지를 따라서 함께 시장에 나왔다. 이소선이 보기에 엄마가 없는 것 같았다. 매일 시장바닥에서 돌아다니니 아이의 손과 얼굴에 땟국물이 흐르고 더럽기 이를 데 없었다. 하루는 날을 잡아 오후에 불을 때서 목욕도 시키고, 중앙시장에 가서 옷을 사 입혔다. 그 일이 있고 난 다음부터 아이는 이소선만 보면 엄마라고 하면서 졸졸 따라다녔다. 식당에 서 있다가 자기 아버지가 오면 이소선한테 달려왔다.

"아버지, 아버지, 엄마가 국수 줬어."

이소선을 빤히 쳐다보면서 엄마라고 부른다.

"나한테 엄마라고 하면 안 되니까 할머니라고 해라."

이소선은 머리를 쓰다듬으며 타일렀다. 아무리 타일러도 막무가내다. 할머니라고 부르기 싫다고 고개를 가로저으며 엄마, 엄마라고 치마를 붙들고 따라 다닌다. 아침 일찍 시장에 나가면 식당 앞에서 이소선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버지는 지게를 지고 일을 하러 갔으니 이소선에게 오는 것이었다. 이소선이 식당 안에서 국수를 삶으려고 왔다 갔다 하는 동안에도 그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것이다. 어떤 때는 한나절이나 시장에서 놀다가 국수 먹을 시간이면 돌아온다.

"엄마, 내 국수 내놔."

배가 고픈지 입술을 달싹거리면서 이소선을 채근한다.

이소선은 그 애를 보고 있으면 얼마나 웃음이 나오는지... 몇 달 동안 그 녀석하고 정이 들어서 안 나오기라도 하면 어찌나 궁금한지 견딜 수가 없었다. 꼬박꼬박 국수를 남겨놓았다가 녀석을 기다렸었다.

조합원들은 이소선한테 일은 하지 말고 양념 같은 거나 챙겨주라고 성화다. 이소선은 그네들의 말은 고마웠지만 그렇게 하고 싶지가 않았다. 국수 삶는 것도 보람이라는 생각에 힘든 줄 몰랐다.

시간이 흐르다보니 묘한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었다. 식당에 고용된 사람들이 급기야는 자기들의 일까지지 이소선한테 떠넘기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정신없이 일을 했는데 나중에는 너무 힘이 들었다. 매일매일 힘든 일 속에 묻혀 있다 보니 몇 달 후에는 이소선이 쓰러져서 병이 나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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