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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은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만든 종이배로, 아이들을 향한 부모의 메시지가 써 있다.
 사진은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만든 종이배로, 아이들을 향한 부모의 메시지가 써 있다.
ⓒ 박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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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고 2학년 6반 어머니들이 또 울었다. 어떤 이는 무릎을 끌어안고, 어떤 이는 가슴을 뜯으며 울었다. 모두가 소리도 내지 않고 울었다. 한 어머니가 꽉 메인 목소리로 "울지 말라"며 옆 사람들을 다독였다. 하지만 눈가를 닦아내기는 그도 매한가지였다.

어머니들은 소맷자락을 눈물로 적시면서도 휴대전화 하나에서 눈길을 떼지 못했다. 세월호 참사 당시 같은 반 고 김동협군이 배안에서 찍은 동영상이 나오고 있었다. 하루에도 몇 번이고 들여다보건만, 아이들의 흔들리는 얼굴과 다급한 목소리에 어머니들은 무너져 내렸다.

벌써 7월 18일, 유가족들이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국회 본관 앞 농성에 나선 지 일주일 가까이 지났다. 김병권 세월호 사고 가족대책위원장을 비롯한 14명은 국회와 광화문으로 나뉘어 단식투쟁도 이어가고 있다.

오는 24일 세월호 참사가 100일째를 맞는다. 하지만 유가족들의 고단함은 끝이 안 보인다.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정이 여전히 헛돌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여야 협상에서는 갈등만 불거지다가 6월 임시국회 회기를 넘겼다. 정치권은 논의를 이어나가고 있지만, 유가족들의 요구사항인 수사권·기소권을 지닌 특별위원회 구성과는 여전히 거리가 멀다.

마지막 통화에서도 '아빠 선물' 물었던 착한 아들

 고 김승혁군은 김상길씨 슬하의 3형제 중 막내아들이다. 위로는 4살 터울의 형과 쌍둥이 형이 있다. 사진은 승혁이 쌍둥이의 어릴 적 사진. 왼쪽이 고 김승혁군이다.
 고 김승혁군은 김상길씨 슬하의 3형제 중 막내아들이다. 위로는 4살 터울의 형과 쌍둥이 형이 있다. 사진은 승혁이 쌍둥이의 어릴 적 사진. 왼쪽이 고 김승혁군이다.
ⓒ 김상길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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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늘 비가 많이 온다고 그랬는데 구름만 많이 끼었어요. 서울에만 비가 별로 안 내렸다죠? 학부모들끼리 '하늘에서 아이들이 우리를 지켜주는가 보다'라고 이야기를 했어요."

6반 어머니들 뒤편에 앉아 말없이 하늘만 올려보던 김상길씨가 입을 열었다. 김씨는 세월호 참사로 막내 아들인 고 김승혁군을 잃었다. 그의 잠긴 목소리가 찌푸린 하늘만큼이나 탁했다. 승혁이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김씨 눈시울이 조금씩 붉어졌다. 그가 말 한마디와 한마디를 잇는 데에는 시간이 조금 필요했다.

"승혁이 위에 형이 둘 있어요. 하나는 4살 많은 형이고, 하나는 쌍둥이 형이죠. 쌍둥이 형이 다른 학교를 다녔길 망정이지… 두 녀석을 한꺼번에 떠나보낼 뻔 했어요. 승혁이는 막내라 그런지 저하고 애 엄마한테 제일 살가웠어요. 주말에 누워있으면, 조용히 뒤에서 안아주고 어깨랑 발도 주물러주고 그랬어요. 그런 승혁이한테 더 잘해주지 못한 게 너무 미안해요."

김상길씨가 승혁이와 마지막으로 통화한 것은 4월 15일이다. 밤 9시쯤 승혁이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인천에 도착했는데, 안개가 많이 껴서 배가 못 떠날지도 모른다고 했다. 아이는 그 와중에도 '아빠 선물은 뭐 사갈지'를 물었다. 김씨는 "선물은 등긁개면 충분하고, 혹시 배가 못 떠나 안산으로 돌아오게 되면 데리러 갈 테니 전화하라"고 말했다.

이튿 날인 4월 16일, 처음 사고 소식을 들었을 때 김상길씨는 별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여겼다. 학교에서도, 방송에서도 '전원 구조'라는 이야기가 반복됐기 때문이다. 진도로 향하는 버스를 탔을 때서야 많은 아이들이 배 안에서 나오지 못했다는 것을 알았다.

"한 달만 있으면 진상규명 이뤄질 줄 알았는데"

 김상길씨가 승혁이와 마지막으로 통화한 것은 4월 15일이다. 밤 9시쯤 승혁이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인천에 도착했는데, 안개가 많이 껴서 배가 못 떠날지도 모른다고 했다. 아이는 그 와중에도 ‘아빠 선물은 뭐 사갈지’를 물었다. 4월 25일, 승혁이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다.
 김상길씨가 승혁이와 마지막으로 통화한 것은 4월 15일이다. 밤 9시쯤 승혁이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인천에 도착했는데, 안개가 많이 껴서 배가 못 떠날지도 모른다고 했다. 아이는 그 와중에도 ‘아빠 선물은 뭐 사갈지’를 물었다. 4월 25일, 승혁이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다.
ⓒ 김상길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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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5일에 승혁이가 돌아왔어요. 다른 곳은 다 멀쩡했는데, 손끝이 전부 새까맣게 변했더라고요. 아이가 살려고 이것저것 붙잡고, 매달리고 그랬을 거 아니에요. 그 무섭고, 춥고, 숨 막히고 하는 상황에서… 그렇게 아이가 죽었는데, 부모가 어떻게 가만히 있습니까?"

김상길씨는 한 달만 있으면, 진상규명이 다 이뤄질 거라고 믿었다. 대통령이 나섰고, 진도 팽목항에 찾아오는 정치인마다 그렇게 말했다. 구조과정에서 납득이 안 가는 부분이 있어도, 진상규명에 있어서 만큼은 정부가 못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김씨의 믿음은 부서져갔다. 이런 커다란 비극조차 "그냥 넘어가려는" 태도에 견딜 수가 없었다. 그는 "되돌아보면, 세월호 참사보다 작은 일들은 얼마나 그냥 넘어가버렸을지 생각만 해도…"라며 말끝을 흐렸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는데, 무언가 바뀌어야 대한민국이 정상적인 나라잖아요. 잘못한 사람은 처벌을 받고, 잘못된 부분은 고쳐야 되잖아요. 그래야만 나중에 이런 일들이 또 일어나지 않을 거잖아요. 저는 특별법만이 진상규명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진상규명을 해야 바꿀 수 있죠. 이번에조차 똑바로 바로 잡지 못하면 대한민국은 가능성이 없는 나라예요."

김상길씨는 자동차부품공장에서만 20년을 넘게 일했다. 가족을 위해서 늘 열심히 살았고, 그래서 '자식 농사 잘 지었다'는 말을 최고의 칭찬으로 여겼다. 그런 김씨가 일손을 놓고서 까지 국회 본관 앞을 지키고 있는 이유는 하나뿐이다. 진상규명을 위해서다. 그는 "그래야 승혁이에게 떳떳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아버지의 간절한 바람

 벌써 7월 18일, 유가족들이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국회 본관 앞 농성에 나선 지 이레가 지났다. 사진은 유가족들이 세월호 참사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국회 정원에 종이배와 종이비행기를 모아 만든 하트 모형.
 벌써 7월 18일, 유가족들이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국회 본관 앞 농성에 나선 지 이레가 지났다. 사진은 유가족들이 세월호 참사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국회 정원에 종이배와 종이비행기를 모아 만든 하트 모형.
ⓒ 박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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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이 일어나고 3개월이 지나가니까, 우리를 질타하는 사람도 있더라고요. 오늘(18일)은 광화문에 특별법 반대 서명을 받는 사람도 있었다면서요? 아빠들은 그렇다 쳐도, 그런 사람들 때문에 엄마들이 상처를 너무 많이 받아요. 아물지도 않은 상처 위에, 또 상처가 생기고…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상처 말이에요."

최근 인터넷을 중심으로 번지고 있는 유가족들과 특별법을 향한 오해와 왜곡은 김상길씨에게도 커다란 상처다. 의사자 지정에서부터 대학특례입학, 보상금 문제에 이르기까지 어긋난 시선이 유가족들을 옥죄고 있다.

유가족들이 추진하는 '4·16 참사 진실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안)'에는 어디에도 의사자 지정에 관한 내용이 없다. 대학특례입학도 마찬가지다. 보상도 사실상 외부에 위임한다. 오로지 유가족들은 특별법(안) 제정을 통해, 제대로 된 권한과 기간을 갖춘 특별위원회로 진상규명이 이뤄지길 바라고 있다.

김상길씨는 "여기 나와 있는 부모들 아무나 붙잡고 물어도 보상금 같은 거 바라는 사람은 없다"며 "자식 앞세운 사람들에게 무슨 돈이 중요하겠느냐"라고 말했다. 김씨는 답답한 듯 국회 한편에서 애꿎은 담배만 입에 물었다.

"저희(유가족들)는 상관없어요. 날이 덥든, 비가 쏟아지든 그 따위가 무슨 힘든 일이겠어요. 많은 분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은 딱 하나예요. 세월호를 그저 비극으로만 남길 순 없잖아요. 많은 사람들이 죽은 걸로 끝낼 순 없잖아요. 앞으로 이런 일이, 다른 아이들에게만큼은 없도록 해야 되잖아요."

19일 오후 4시, 서울시청광장에서는 세월호 참사 희생자/실종자/생존자 가족대책위원회와 더불어 세월호 참사 일반인 희생자 대책위원회,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 등이 '4·16 특별법 제정 촉구 범국민대회'를 연다. 종교계, 시민사회단체 등도 결합한다. 이 자리에서 김상길씨를 비롯한 모든 유가족들은 한 데 모여, 조속한 특별법 제정을 촉구할 예정이다.

 19일 오후 4시, 서울시청광장에서는 세월호 참사 희생자/실종자/생존자 가족대책위원회와 더불어 세월호 참사 일반인 희생자 대책위원회,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 등이 ‘4.16 특별법 제정 촉구 범국민대회’를 연다. 종교계, 시민사회단체 등도 결합한다. 이 자리에서 김상길씨를 비롯한 모든 유가족들은 한 데 모여, 조속한 특별법 제정을 촉구할 예정이다.
 19일 오후 4시, 서울시청광장에서는 세월호 참사 희생자/실종자/생존자 가족대책위원회와 더불어 세월호 참사 일반인 희생자 대책위원회,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 등이 ‘4.16 특별법 제정 촉구 범국민대회’를 연다. 종교계, 시민사회단체 등도 결합한다. 이 자리에서 김상길씨를 비롯한 모든 유가족들은 한 데 모여, 조속한 특별법 제정을 촉구할 예정이다.
ⓒ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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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박현진 기자는 '세월호 안산시민기록위원회' 작가기록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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